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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출판사 2012. 6. 29. 22:02

원문 : http://cafe.daum.net/chorusforyouth/RZcd/67 

 

온 국민이 지켜보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남 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우여곡절 많았던 삶에 위안이 돼준 것이 노래였기에 도전장을 내밀 용기가 났다. 지난해 청춘합창단 멤버로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 권대욱 사장, 그의 심장은 지금도 뜨겁게 뛰고 있다.

호텔리어 권대욱 사장 ‘청춘합창단’ 그 후 1년
2012년 06월
“36세에 사장이 된 후 단 한 번도 내 삶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권대욱(61)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이 KBS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 오디션 때 언급…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KBS 제공

“36세에 사장이 된 후 단 한 번도 내 삶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권대욱(61)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이 KBS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 오디션 때 언급한 이 한마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서른여섯 살에 CEO라는 자리를 꿰찬 능력이 부럽다가도 젊은 나이부터 감내해야 했을 책임감과 개인적인 희생 등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짠해졌다. 그의 모습에서 조금씩 모양새는 다를 수 있지만, 자신을 내던지고 가족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 아버지들의 삶이 보였다. 희로애락 속에서 한 줄 한 줄 새겨졌을 그의 인생 나이테를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다.

청춘합창단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권대욱 사장을 만난 곳은 최근 문 연 서울 역삼동 머큐어 앰배서더 호텔. 그가 CEO로 있는 회사는 국내 11개 앰배서더 호텔에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권대욱 사장은 서울대 농대 농업토목과 졸업 후 농촌진흥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한보건설에 입사해 만 35세에 사장에 오른 뒤 유원건설, 극동건설, 효명건설 사장 등을 거쳐 2008년부터 이곳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 여러 번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이제야 뵙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우리가 정이 많이 들었어요. 지난해 9월 합창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후 아무도 해체를 원하지 않아서 지금도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연습을 하고 있죠. 작년에 KBS 감동대상을 받았고,‘열린음악회’오프닝 무대도 서고, 보건복지부 홍보대사로도 위촉됐고, 기업체 공연도 하고요.”

▼ 단원들이 연세가 많고 투병 중인 분도 계셨는데, 그분들도 다 나오시나요.

“85세인 노강진 할머님이 가장 열심히 하세요(웃음). 건강이 안 좋으셨던 분들도 다 나오십니다. 합창을 하면 몸도 좋아진다고 해요.”

▼ 청춘합창단 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지요.

“처음에는 오디션에만 합격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단원이 되니까 솔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리움이란~’으로 시작하는 솔로는 원래 테너 파트였어요. 우리 짐승 베이스들이 ‘우우~’만 하다 보니 너무 재미가 없어 김태원 씨한테 사정해서 베이스 몫으로 가져왔는데, 제대로 소화를 못하니까 김태원 씨가 ‘베이스 그렇게밖에 못하십니까, 자꾸 그러면 솔로 파트를 다시 테너로 옮길 겁니다’라고 겁을 주더라고요. 다시 뺏기면 어쩌나 군기가 바짝 들어서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 오랫동안 리더로 살아오셨는데, 청춘합창단 리더 김태원 씨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처음에는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 지휘를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죠. 그런데 자신도 배워가면서 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었죠. 자기 말로는 인생을 많이 돌아서 왔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 있더군. 나이가 들면 그런 게 보이거든. 그럼에도 굉장히 아름다운 감성을 지녔고요. 그분 말을 받아 적으면 그게 바로 시예요(웃음). 부드럽지만 강하고 끈질긴 면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에요.”

▼ 방송 나간 이후에 더 유명해지셨죠.

“어딜 가도 알아보고, 또 굉장히 우호적으로 대해주세요. 업무 관계로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다소 딱딱한데 청춘합창단 이야기로 시작하면 대화가 부드럽게 풀리죠. 올 초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신년 하례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뵈었는데 ‘ TV로 보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대통령께서 노래를 굉장히 잘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청춘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고 하시던데…, 퇴임하시면 명예단원으로 함께 공연하러 다니자고 말씀드렸죠.”

▼ 오디션 합격했을 때 대학 합격 이후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사람들이 ‘대학 입학이 그렇게도 기뻤냐’고 묻더군요. 제가 안동 권씨인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재산 한 푼 없이 양반 자존심으로 버틴 집안인데, 그대로 두면 농사꾼밖에 안 될 것 같으니까 어머니가 ‘서울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어머니가 먼저 서울에 올라와 삯바느질로 돈을 모아 5년 만에 저를 불러 올리셨어요. 나중에는 삼촌 고모들까지 다 불러서 공부 시켜 안동 권씨 가문에서 주는 장한 어머니상도 받으셨습니다(웃음). 그러려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 저도 중·고등학교 시절 친척 집을 전전하며 오로지 ‘등록금 싼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했죠. 그래서 등록금이 가장 싼 서울대에, 그것도 과 수석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우시고, 할머니는 덩실덩실 춤을 추셨죠.”

친구 집 전전하며 어렵게 공부했던 학창 시절

▼ 그 어려웠던 와중에 중학교 입시에는 실패하셨다고요(웃음). 당시에는 충격이 컸을 것 같습니다.

“친구 어머니들이 과외 팀을 짜면 저는 공짜로 넣어줄 정도로 공부를 곧잘 했는데 체력장에서 점수를 까먹는 바람에 그만 낙방했죠. 어머니는 못 먹어서 그런 거라고…(웃음). 2차로 중앙중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으니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잘됐습니다. 당시 중앙중·고등학교의 교육 방침이 전인교육이었습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좋은 강연을 듣고, 수요일에는 음악 조회를 했습니다. 좋은 음악을 감상한 뒤, 전교생이 합창을 하는 겁니다. 3천 명이 노래를 하면 근처 풍문여고까지 들렸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노래에 대한 꿈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후배들과 중창단도 만들어 1년에 한 번 정기 공연도 하고 있죠.”

▼ 대학 입학 이후론 승승장구하셨습니다. 평범한 사원으로 입사해 만 35세에 한보건설 사장이 되셨는데, 초고속 승진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운이 좋았지만 열정이 많았던 것 같아요. 샐러리맨은 특히 직급을 떠나서 자기 일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중요하죠.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일에 끌려다니면 노예고,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면 주인이 되는 겁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일을 끌고 다녔어요.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열심히 했고, 그런 것들이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게 됐죠.”

청춘합창단과 함께 세계로 나가고 싶은 꿈

▼ 건설사에 있을 땐 추진력이 대단해서 같은 업계에 몸담고 있던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현 대통령)에 빗대 ‘권명박’이라 불렸다고 하던데요.

“1984년 한보건설 전무 때 요르단 공사 현장에 파견 나간 적이 있어요. 공사는 부진하고 돈은 쪼들리고 회사로선 최악의 상태였죠. 누가 현장에 나가도 그 상황이 호전이 안 되니까 정태수 회장님이 마지막으로 저더러 나가보라고 하시더군요. 현장 경험도 없고, 선배들도 ‘어차피 안 되는 일’이라며 다 말렸어요. 지금 같았으면 절대 안 했을 텐데, 그땐 젊었으니까 한번 해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회장님께 ‘인사를 포함한 전권을 주시면 하겠다’ 했더니 회장님도 조건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가거든 돈 달라는 소리 하지 마라, 공사 끝마쳐라, 빚 다 갚아라.’ 2년 6개월 동안 현장에 나가서 죽기 살기로 일했습니다. 불공정하게 맺었던 계약 조건들을 다 뒤엎고, 비협조적이었던 요르단 정부 관계자들을 ‘우리가 망하면 너희도 망한다. 같이 살자’고 설득해 자금을 융통하고, 현장 노동자들 대우를 개선해 사기를 높이고…. 처음에는 경험도 없고 어리다고 무시하던 현장소장들도 나중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못 한다고 하는 사람은 못난 사람입니다. 하다 보면 길은 나오는 법이거든요.”

▼ 동국대에서 멘토링 강의도 하고 계신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식 교육은 넘치는데 인생 교육, 사람 만드는 교육은 누구도 하지 않아서 멘토링 강의를 시작하게 됐죠.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꿈을 꾸고 이루는 과정이에요. 꿈이 이뤄지든 그렇지 않든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건 이미 성공한 인생입니다. 학기 끝날 때쯤 되면 꼭 강원도 산장으로 초대해 밥도 해 먹이고, 가능하면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가요. 예전보다 치열함이 부족하지 않나요.

“아무 문제 없어요. 고대 이집트 동굴 벽화에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낙서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젊은이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사회는 발전해오지 않았습니까.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면 예의 바르고 굉장히 똑똑하고 기본이 잘돼 있어요. 조금만 방향을 잘 잡아주면 다들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답니다. 그래서 멘토링이 필요한 거죠.”

▼ 젊은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시는데, 본인에게도 꿈이 있나요.

“청춘합창단이 세계로 나가는 거죠. 이미 해외에서 초청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요. 우리끼리 즐겁게 하는 것도 좋지만 단원들 사이에서 ‘방송을 통해 받은 혜택을 소외된 이웃이나 시니어들과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요. 청춘합창단을 잘 매니지먼트해서 세계에 그런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 꿈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권대욱 사장은 아내 친구들과의 노래 모임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평생 교직에 몸담은 그의 아내는 사실은 음치인데, 남편의‘청춘합창단’출연 이후 자극을 받아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고.“잘 못 먹여서 그렇다”는 어머니의 회한처럼 권 사장의 키(165cm)는 크지 않지만 그의 뒷모습은 누구보다 커 보였다. 그의 인생 나이테에는 마디마디 옹이가 박혀 있지만 그 덕분에 더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