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국가

나그네 2009. 12. 4. 13:36

 

파키스탄 국가정보

인도 반도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성한 나라' 또는 '청정의 땅"이라는 뜻의 파키스탄은은 '서파키스탄'에서 '파키스탄 회교공화국 (Islamic Republic of Pakistan)'으로 정식국가명을 바꾸고, 대외적인 외교정책은 비동맹 중립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 수 도 : 이슬라마바드 (Islamabad, 70만명)
◈ 인 구 : 1억 3천 9백만(2000. 12월 현재)
◈ 기 후 : 지역에 따라 열대 또는 아열대 건조기후
◈ 면 적 : 803,940 ㎢(한반도의 3.6배)
◈ 주요도시 : 카라치(Karachi 950만), 라호르(Lahore 506만)
◈ 주요민족 : 인도아리안족,드라비다족,터키아리안족
◈ 주요언어 : 우루두어(Urdu공용어), 펀잡어(Punjab 56.6%)
◈ 종 교 : 이슬람교(Islam 97%), 기독교, 힌두교 등

◈ 지 리
남서쪽은 이란,서쪽 및 북서쪽은 아프가니스탄,동북쪽의 중국과 일부 접경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동북쪽과 서북쪽은 산악지역으로 거친 반면, 인더스강 유역은 평원지대이다. 카이버 패스(Khyber Pass)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주요 도로로, 인도아대륙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 기 후
고온건조한 아열대기후로, 영하에서 50℃까지의 큰 기온 분포를 보이고 있다. 9월-2월에는 건조하여 생활하기에 적합한 기온을 보이고, 3월-8월사이에는 여름으로 낮기온이 최고 50℃까지 오르기도 한다. 특히 7-8월은 몬순기로서 많은 비로 인해 인더스강이 범람하기도 한다. 히말라야 남부산악지역과 주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부족한 강우량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비는 7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 사 회
미디어 매체로 비쳐지는 파키스탄의 모습은 정치적 혼란, 폭력사태 등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 확대 해석된 경우이고 실상 파키스탄 사람들은 그 어느 여행지보다 순수함과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파키스탄 일반정보

시 차
그리니치표준시 GMT+5로 GMT+9인 한국시간보다 4시간 늦다.

◈통 화
공식 통화는 파키스칸 루피(Pakistani rupee, PKR)로 1루피=100페사(paisa), 동전은 25 페사~2루피까지, 지폐는 1루피~1000루피까지 있다.
1달러 59PRs (2006.10 현재)


◈전 압
220V / 50 Hz. 전력공급이 불안정하고, 정전사고도 잦다. TV/VCR 포맷은 PAL 시스템을 사용하므로, 우리나라가 채택하여 사용되고 있는 NTSC 방식과 다르므로, 사용시 주의해야 한다.

◈주요연락처
- 경찰(이슬라마바드): 15
- 외교단지 : 921-9674, 920-6878
- 앰블런스 : 115
- 소방서 : 16
- Al Shifa Hospital병원 : 444-6806~30 (응급실: 523480)
- Shaheen Chemist약국(24시간 영업): 282-4759

 

역 사

파키스탄은 수천년전부터 인더스강 유역 평원지대에서 자리를 잡고 수많은 민족의 역사가 남아 있다. 기원전 1,500년 경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기원전 6세기, 파키스탄을 포함한 인도전역에 불교가 확산되었다.

11세기 이슬람교도가 이곳을 침략하였고, 16세기에 이르러 이슬람교도인 바부르가 무굴제국을 일으켜, 전국을 통일하였다. 17세기초 파키스탄에 들어온 영국인들에 의해 무굴의 세력을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19세기중엽에는 인도반도가 영국의 지배권아래 들어가게 된다. 영국의 통치하인 1906년 전인도 회교도연맹이 조직하여 '파키스탄(淸淨한 나라라는 뜻)'운동을 펼치게 된다. 힌두교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된 무슬림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이 왕성해지면서, 1947년 영국과 인도의 합의하에, 지금의 방글라데시인 '동 파키스탄'과 파키스탄인 '서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영국연방내의 자치령으로서 독립을 이루게 된다.

인민당이 이끄는 서 파키스탄과 아와미동맹이 이끄는 동 파키스탄은 각각 강력한 정당형태를 지닌채 발전하게 된다. 자치권확대를 요구하는 동 파키스탄에 그들의 대립을 켜져 가다, 결국, 1971년 국경분쟁으로 인한 인도와 전쟁에서 승리한 동 파키스탄은 독립하여 방글라데시를 이룩하였고, 서 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라는 국호를 유지하였다.

 

항공

한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직항편은 없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도시에서 출발하여 카라치로 들어갈 수 있다. 중국영해를 지난는 항로에서는 히말라야의 절경을 볼 수 있도 있다. 파키스탄내 국제공항은 카라치, 라호르, 이슬라마바드에 있으며, 주요 국제선은 주로 카라치와 이슬라마바드 경유로 연결되어 있다.

 

현지교통

◈ 철 도
1861년 4월 13일에 오픈한 파키스탄 철도는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 코트리에서 이슬라마바드간 169km에 달한다. 그당시 증기기관을 이용하였으며, 대부분은 목재운송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파키스탄 철도의 독립은 주요도시간의 철로 공사와 승객용 편의시설 등이 확충되었다. 에어컨 들급, 침대, 1등석, 2등석 등 4가지 종류로 구분되어 있다. 파키스탄내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객수가 매우 많으며, 미리 예약하여 이용하는 것이 좋다.

◈ 버 스
장거리 버스는 매우 발달되어 있어, 외국인이 이용하기에도 별 문제 없다. 하지만, 유아를 동반한 여행이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출입국

외국인 전용 입국심사대를 이용하여, 입국신고서, 건강신고서와 함께 여권을 제시하여 입국허가를 받는다. 1개월이상의 체류기간을 예상한 여행일 경우, 외국인 등록사무소에 등록하는 것이 좋다.

 

파키스탄 행안내

이슬람교도의 독특한 문화를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은 여행시 주의해야 한다.

1. 여성을 촬영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성은 남편 이외의 얼굴을 보이지는 않는 이슬람 계율이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으며, 특히'브루카'라는 검정천을 두른 여성에게는 카메라를 향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2. 혼자 여행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여성은 남성을 동반하여 여행하는 것이 좋다. (남성의 보호를 받은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파키스탄 남성의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3. 종교적 발언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4 20 ~ 40℃의 여름철에는 가벼운 남방이나 셔츠를 준비하는 것이 편하다. 이슬라마바드의 가을은 1~ 18 ℃정도로 아침저녁에 춥고,

   한낮은   활동하기에 적합한 기온을 보인다. 북쪽산악지대 여행시에는 동복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특히, 옷을 준비할 때는 파키스탄의 종교 및 관습을 고려하여, 가능한한 노출이 없는 옷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소매없는 옷이나, 반바지

    등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라호르

 라비강의 동안에 위치하고 있는 경이의 도시 라호르는 파키스탄의 카리스마를 상징한다. 라호르는 인구 8백50만의 생기가 넘치는 펀잡주의 주도이다. 이 도시의 매력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사람들이 넘치는 시장이다. 비록 수세기를 지났지만 무굴제국(1500AD~1800AD)의 전통 건물들이 이 도시에 그대로 살아있다. 무굴식의 건축물들은 아마도 가장 매력 넘치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보통 여기서 이틀 정도를 머물면 어느 정도의 명소를 다 돌아볼 수 있다. 수많은 회교사원들과 시장, 전통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여기에서 체험할 수 있다. 라호르 박물관은 이 나라에서는 가장 크고, 파키스탄 곳곳의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도시의 25km 외곽은 인도와 접경한 지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은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정기 교통편 외에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라호르에서 암라스터로 가는 기차편이 있고, PIA를 비롯해 외국 국적기가 연결하는 편이 몇 편 있다. 파키스탄의 주요도시들과는 PIA를 비롯해 민항 3사가 연결해 주고 있다.

기온은 보통 약간 쌀랑한 1월과 2월을 제외하고는 따듯한 편이다

 

 

이슬라아마드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는 포토하르 고원의 북쪽 끝 마르갈라 힐을 배경으로 위치하고 있다. 쌍둥이 도시인 라왈핀디에 비해 짙푸른 녹음과 널찍하고 평화로운 도시이다. 이 이전까지는 작은 도시였는데, 1960년에서 70년 사이에 카라치에서 수도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된 도시이다. 1959년 라왈핀디에 수도를 옮긴후, 다시 1967년 이곳 이슬라마바드로 수도를 옮겨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초현대식 도시의 마스트 플랜은 그리스의 건축가인 콘스탄티노 독시아데(Constantinos Doxiades)에 의해 1960년 설계되었다. 1961년 10월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1966년 10월 이슬라마바드의 관공서가 첫 입주함으로서 도시로서의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진흙으로 지어진 집과 전형적인 시골의 삶이 녹아있는 이전 마을의 흔적은 아직까지 찾아볼 수 있다. 이슬라마바드는 현대식건축물들이 늘어선 도시이다. 이슬라마바드는 넓은 3열의 거리와 큰 집들, 우아한 공공건물과 잘 계획된 바자(시장)를 가지고 있다.
교통혼잡과 많은 인구로 인한 번잡도 드문편이다. 좁은 골목과 슬럼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훨씬 외곽에 위치해 있다.

 


 

 

카라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신디(Sindh)지역의 핵심도시이며,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카라치는 아라비안해(Arabian Sea) 동쪽해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더스강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인구 8백만명의 서로 다른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0년 영국의 통치하에는 작은 어촌과 무역의 도시였으나, 목화와 곡물을 반출하기 위해, 인더스 계곡을 이용하는 주요한 기점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하였고, 이때 카라치는 새로운 국가의 수도로서, 1959년 라왈핀디로 옮기전까지 12년간 파키스탄의 핵심지역이었다. 카라치는 파키스탄의 가장 규모가 큰 도시로, 무역, 경제, 금융, 교역, 제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파키스탄의 국제 무역의 대부분이 이 곳 카라치항구에서 이뤄지고 있고, 육지로 둘러싸인 아프카니스탄으로 들어가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1869년 수에즈운하(Suez Canal)가 열리게 되면서부터 카라치는 항만으로써 그 역할이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1847년 신디(Sindh)의 정복자 찰리 내피어(Charles Napier)는 1백여년 전 카라치를 보고 "동양의 영광이 될 거다(You will yet be the glory of the East)" 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작고 보잘 것없는 조그만한 마을에 불과했던 카라치는 오늘날 방대한 교역과 산업의 중심지로 파키스탄의 제1의 도시로 탈바꿈되어 있다. 카라치는 1725년 불모의 땅으로, 아라비안해(Arabian Sea)의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불모의 땅에는 "카라치조쿤(Kalachi-jo-Kun)이라고 불리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카라치라는 명칭은 어부의 이름과 "쿤(Kun)"은 '깊은 수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카라치조쿤은 "어부 카라치의 깊은 수로"를 의미하고 있다. 몇몇의 진흙 오두막이 이 지역에 퍼져 있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차츰 마을로서 그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랄 점점 성장해 가는 이 마을을 "카라치조코트(Kalachi-jo-Ghote)"라고 불렀다.

 

 

 

   자료출처 : www.royaltou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