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나그네 2009. 12. 4. 23:45

 

카자흐스탄 국가정보

카자흐란 이름은 '유랑자' 또는 '독립인'이라는 말로 이들 민족은 13세기 징키스칸의 후예로 전통적인 유목민족이다.
중앙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고, 면적은 272만 4900㎢로 세계에서 9위이며, 남한의 27배에 달한다. 인구는 2001년 1673만여명으로 한국의 수도권 인구와 비슷하다.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 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이다.

◈수도 : 아스타나(Astana)
* 1998년 12월에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이전
◈인구 : 약 16,731,303(2001년 7월 기준)
◈면적 : 2,724,900㎢ (면적상 세계9위, 남한의 27배)
◈주요도시 : 알마티, 카라간다(61.5만) (췸켄트 40만)
◈주요민족 : 카자흐인 51%,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독일인 3%
◈주요언어 : 카자흐어 40%, 러시아어 66%(공식 언어로 널리 사용됨)
◈종교 : 회교(수니파), 러시아정교

1991년 구소련의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CIS)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는 공화제의 형태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고, 90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방한을 한 후 우리 나라와 북한에 각각 92년 1월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공관이 설치되어 있다. 1998년에는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겼다.

북쪽은 러시아연방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 중국과 몽골에 남쪽으로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에 접하고, 서쪽으로 카스피해(海)에 닿아있다.

역사적으로 카자흐는 나라없는 한인들의 한많은 수난의 역사가 쓰여진 중앙 아시아의 나라이다.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수십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 아시아의 농업 개척에 이용 하기 위한 목적,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로 이송되었다.

추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달여에 걸친 이동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으로, 소련당국은 이 황무지에 수십만의 한인들을 내려 놓고 아무런 대책없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했다. 2차 세계대전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되자, 한인들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현재 고려인은 11만명 정도가 있으며, 교민도 10만 5천여명으로 추정된다

 

 

카자흐스탄 일반정보

나라없는 한인들의 한많은 수난의 역사가 쓰여진 중앙 아시아의 국가 카자흐스탄.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수십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 아시아의 농업 개척에 이용 하기 위한 목적,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로 이송되었다.

10월과 12월 추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달여에 걸친 이동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으로, 소련당국은 이 황무지에 수십만의 한인들을 내려 놓고 아무런 대책없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했다. 2차 세계대전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되자, 한인들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수도 : 아스티나
◈인구 : 약 천700만명
◈면적 : 2,717,300㎢ (면적상 세계9위, 남한의 27배)
◈주요도시 : 카라간다(61.5만) (췸켄트 40만)
◈주요민족 : 카자흐인 51%,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독일인 3%
◈주요언어 : 카자흐어, 러시아어
◈종교 : 회교(수니파), 러시아정교

현재, 카자흐스탄은 CIS 유일의 한글 주간 신문 (한,노어판)인 고려일보(구, 레닌기치)가 발행되고 있고, 한인 교포로만 구성된 조선 극장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1997년은 한인 중앙 아시아 정착 6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개최 되었다.

90년 11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과의 경제 협력이 논의되어 91년 8월 22일 알마아타 한국 교육원 개설되었다. 대구시와 알마아타시간 자매 협정 (92년 4월)을 맺고 경제 및 문화 교류를 위한 협의서에 서명함. 95년 5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2번째로 한국을 방문하고 카자흐 종합대학과 아바이 사범대학, 외국어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였다.

정식 국명은 카자흐스탄 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이고, 동경 50-90도, 북위 40-55도로 중앙아시아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은 러시아, 남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즈스탄,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271만7천km로 구소연방 영토의 12%이며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이며, 한반도의 11.6배, 남한의 약27배 크기이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서 강우량이 적고 계절별 온도차가 심하다. 가장 추운 달인 1월 중 북부지역 평균 기온은 -19도이나, 남부지역은 -2도, 가장 더운달인 7월중 평균 기온은 각각 20도, 30도이다.

약1,7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카자흐인 약40%, 러시아인 약38%, 한인약 0.6%.
인구밀도 1평방 킬로미터당 6.2명(한국은 440명)

카자흐어를 공용어로 하나 일반적으로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공식적인 국교는 없지만 이슬람(수니파), 러시아 정교, 신교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종구성으로 인해 타 중앙아시아처럼 이슬람을 신봉하는 인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역사

카자흐인은 BC 1세기경 이 지역에 거주하던 몽골과 터키족의 후손임. 카자흐스탄 지역은 카자흐족(터키유목인)들의 방목지로 사용되어 오다, 18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카자흐는 러시아 혁명후 1920년 러시아 공화국내 키르키즈 자치공화국으로 되었다. 1925년 거대한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을 분리할 목적으로 행해진 중앙 아시아의 국경정리 결과 카자흐 자치 공화국으로 개명되었고, 1930년대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소연방의 가장 커다란 수용소가 되었다.

2차 대전중 스탈린에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 많은 소수 민족(한인 포함)들이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결과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인구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1936년 12월 5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소련의 일원이 되었고, 구소련 붕괴과정에서 여러 공화국들의 연방 이탈이 계속되자 1991년 12월 10일 국명을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2월 16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2월 21일 CIS창설 협정에 조인 하였다.

 

카자흐스탄 여행안내

대부분의 항공로는 이스탄불(터키), 비엔나(오스트리아), 프랑크프르트(독일), 모스크바(러시아) 등을 경유해서 알마티로 이어진다.

인천에서 알마티까지의 비행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 정도이고, 알마티에서 인천까지는 기류가 심해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의 동쪽 관문이므로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부분의 항공로가 있다.
아시아-태평양과 유럽여러국과의 교두보로써, 카자흐스탄의 철로는 발전되었다.

 

- 모스크바와 알마티간의 장거리 철로(매일 운행)
- 우루무치(중국)에서 알마티간 철로
(기차 편의시설이 낙후되어 있음)


 

카자흐스탄에서는 2번의 크리스마스, 4번의 신년, 3번의 유월절이 있는데, 국적에 따라 따르면 된다. 흥청망청 지내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초다국적 나라의 특징을 잘 반영한 것이다. 휴일에는 중대한 비지니스나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 좋다. 이날에는 어디서나 테이블에 보드카를 가져다 놓는다.

▷ 공식 국경일은 8번으로, 휴일이다.
- 신년: 12월 31일, 1월 1일, 1월 2일
- 세계 여성의 날: 3월 8일
- Nauryz : 3월 22일
- 카자흐스탄 민족의 날 : 5월 1일
- 승리 기념일 : 5월 9일
- 카자흐스탄 헌법선포일 : 8월 30일
- 공화국 창립일 : 10월 25일
- 12월 16일 : 독립기념일


아스티나

1997년부터 현재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 도시인구는 375,000명이다. 수도 이전은 지리적으로 카자흐스탄의 중심에 있으며, 잘 발달된 교통시스템과 균형있는 자연환경 등등의 경제적, 생태학, 지리학적 편의성을 고려하여 이루어 졌다. 아스타나로의 수도이전은 카자흐스탄 북부, 중앙, 동부 지역의 경제적 발전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됨으로써. 카자흐스탄의 균형있는 경제 발달을 이루게 되었다.

아스타나는 1824년 "아크몰라(Akmola)"라는 요새로 만들어졌다. 1862년부터 도시로써의 형태를 갖추게 된 후, 1868년 행정상 중심지로 발돋움 하게 된다. 19세기, 아크몰라는 거대한 교역과 경제중심으로 활발한 도시로 형성하여, 풍요의 상징으로, 도시에서는 다양한 생산품이 매일 쏟아 졌다. 1950년대 크루시체브가 250,000평방KM의 카자흐스탄의 대초원을 밀밭으로 개간하는 버진랜드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아스타나는 프로젝트의 중심으로, '첼리노그라드(Tselinograd)'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 시기가 곡물생산 성장시기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당시 다양한 연구소, 고등 교육기관(교사 양성, 농업, 의료, 기술학, 건축학)이 아스타나에 세워지게 되었다.

1992년 카자흐스탄의 독립이후, "아크몰라(Aqmola)"로 도시이름을 바꾼다. 1994년 카자크 정부는 알마티에서 아크몰라로 수도이전을 결정하게 되어 1997년에 수도이전을 마무리하게 된다. 수도이전의 마무리에 이르러,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지니기 위해, 도시이름을 '수도'라는 뜻에 "아스타나(Astana)"로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알마티

알마티의 인구 130만명의 카자흐스탄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자 공화국의 이전 수도였다. 알마티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가진 국민족 도시로서 카자흐인이 51%, 러시아인이 37%, 기타 국적이 12%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알마티의 사람들은 카자흐어나 러시아로서 의사소통을 하며, 때로는 토속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외부세계로의 갑작스런 노출로 인해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쇼핑점, 레스토랑, 호텔, 카지노 등이 들어서 1990년 이전에 이곳을 본 사람들은 그 변화에 놀라고 있을 정도이다. 알마티는 1997년 11월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수도는 바뀌었지만, 남쪽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침불락 스키 리조트

최고 수준의 리조트인 침블락 리조트는 100% 천연설로 만들어진 천연 스키장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스키산정리조트로 인정받고 있다.
카자흐스탄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보다 침블락에서의 스키와 관광을 목적으로 카자흐스탄을 찾는 스키 애호가와 관광객들이 많다. 자연과 안락하고도 안전한 휴식처로서 향상된 서비스와 뛰어난 기후를 만끽할 수 있다.

침블락에 오르기 위해서는 알마티에 물을 공급하는 댐에서 고산지에 있는 침블락역까지 약 4 km를 올라가야 한다. 메데오까지는 버스가 운영되나, 이후부터 나있는 지그재그 모양의 길은 택시나 밴을 이용해야 한다. 자주 버스가 지연되고, 알마티에서 산아래까지 1시간정도 소요되는데 비용이 50텡게(약 50센트)에 한나절 리프트 티켓이 약 20불에 이르러 현지인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비용이므로 버스를 이용하는 층은 주로 젊은 사람들로 스키를 타기위해 침블락을 찾기보다는 피크닉이나 하이킹을 위해 오거나 메데오 야외 스케이트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러 오는 경우가 많다.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고급 4륜 자동차나 벤츠를 타고 침블락 리조트까지 오르는데, 이때는 브레즈네프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댐을 지나 올라야 한다. 댐을 지나 산 중턱에 올라서면 좁은 계곡에서의 집중홍수를 예방코저 거대한 구멍을 볼 수 있다.
침블락에 이르면 워낙에 고산지대라 겨울 안개는 리조트 아래로 형성되어, 밝은 햇살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침블락에는 스키어를 위한 호텔과 1,500미터의 케이블이 볼쇼이 탈가 스키장(해발 3,000미터에서 시작된 길이 3,200미터 활강코스)까지 이어져 있다. 침블락 스키 리조트는 원래 일반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 운동선수를 위해 만들어 졌다. 최근 리조트가 개인소유로 넘어가면서 편의시설 확충과 개보수로 일반인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 리프트가 2인승 3개가 추가 건축되면서 스키어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해발 3,000미터까지의 리프트는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1인승이다.

- 코스: 8개의 활강코스
- 식당: 3개
- 빠: 1개
- 정상높이: 3,163 미터
- 탑 리프트: 3,163 미터
- 스키가능지역: 99 에이크
- 수직 높이: 943 미터
- 주변 공항: 알마티 국제 공항
- 리프트: 5개(체어 리프트 2개, 서페이스 리프트 3개)


 

 

  자료출처 : www.royaltour.kr

다음주 출장가는데 유용한정보 감사드립니다.
좋은 자료 됐다니 반갑습니다
모든걸 이루는 갑오년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