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뜨락의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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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나들이

2012. 11. 27.

'길상사'

 

 

 

 

해질무렵의 길상사 뜨락은 온통 늦가을 정취로 가득하다.
지금은 모두가 떠나버린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길상화와 법정스님의 무소유 실천은 잔잔한 감동으로 남는다.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로 삼각산 자락인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하고 있다.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하였으며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 1997년에 길상사로 개명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보수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 범종각, 일주문, 적묵당,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관세음보살석상, 길상화불자공덕비 등이 있다.
사찰의 대웅전격인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를 봉안하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승려이자 수필작가인 법정이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회주(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로 주석하였다.

 

 

 

 

 

 

 

 

 

 

 

 

 

 

 

 

 

 

 

 

 

 

 

 

 

 

 

 

 

 

 

 

 

 

 

 

김영한  (법명 길상화 / 아호 자야).. 


1916년에 태어난 김영한은 관철동 반가에서 태어났다. 
가세의 몰락으로 금하 하규일이 세운‘조선권번’에 들어가‘진향’이라는 기명의 기생이 된다.
그녀는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며, 해방 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그녀는 1936년 함흥영생고보에 재직하던 시인 백석과 만나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이백의 시 ‘자야오가’를 인용해 ‘자야’라는 아호로 불렀다.

 

 

 

 

 

 

 

 

 

 

 

 

 

 

 

 

 

 

 

 

 

 

 

 

 

 

 

 

백석과의 운명적인 만남.. 


나는 시인 백석과 1936년 가을 함흥에서 만났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내가 스물둘이었다.
어느 우연한 자리였었는데, 그는 첫 대면인 나를 대뜸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자기의 술잔을 꼭 나에게 건네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의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자리가 파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 마누라요’ 하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아득해지며 까닭 모를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그것이 내 가슴 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틋한 슬픔의 시작이었다. 
-길상화의 회고록 중에서-

 

 

 

 

 

 

 

 

 

 

 

 

 

 

 

 

 

 

 

 

 

 

 

 

 

 

 

 

 

 

 

 

사랑과 이별.. 


백석과 서울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백석은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가 정한 여자와 혼인을 올리지만 도망쳐 나와 자야에게 돌아온다.
백석은 부모에 대한 불효와 자야에 대한 사랑에 번민하며 자야에게 만주로의 도피를 제안한다.
그러나 자야는 이를 거절하였는데 그 것이 마지막이었다.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며 글을 썼으며,
한국전쟁 뒤에도 북한에서 살다가 지난 1996년 압록강변 삼수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석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무소유.. 


자야 김영한은 그 이후, 성북동 자락에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했으며,
청암장은 제3공화국 시절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 되었다.
노년의 그녀는 1995년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당시 1000억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한다.
그녀는 대원각을 시주하면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는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법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전해진다.
이로써 7천여 평의 대원각은 1997년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길상사로 탈바꿈한다.
그녀는 1999년에 고인이 되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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