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 쌍폭포, 용추폭포 & 학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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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2021. 8. 21.

쌍폭포(雙瀑布).

박달골과 바른골, 두 개의 골짜기 물이 절벽인 쌍폭포에서 무릉계곡으로 합쳐지는 독특한 비경입니다.

 

용추폭포( 龍湫瀑布) 삼단 중 중탕.

세 개의 웅덩이를 거쳐 삼단으로 떨어지는 이 폭포의 하담(荷擔)은 둘레가 30m나 되는 깊은 소(紹)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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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 : 2021년 7월 17일 (토)           날씨 : 흐리고 상부 비

산행길 : 들머리 - 선인교 (배틀 바위 입구) ,      날머리 - 선인교 (배틀 바위 입구). 원점회귀.

           * 신선교 - 배틀 바위 입구 - 배틀 바위 전망대 -  미륵바위 -  산성터 입구 - 12 산성 폭포 상부 - 석간수 - 마천루

              - 쌍폭포 - 용추폭포 - 선녀탕 - 옥류동 - 학소대 - 무릉계곡 - 삼화사 - 신선교.

 

 

마천루 조망 하늘계단을 내려오며 보는 마천루는 안개에 가려 몽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서니 쌍폭포와 용추폭포에서 시작하는 무릉계곡으로 갈 수 있는 철계단 길을 만납니다.

 

 

이 철계단은 생각보다 길게 늘어서 있어서 하산길이 짧지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철계단 하산길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두타산 명물이 된듯한 혹부리 소나무도 만납니다.

 

 

그리고 마주하는 협곡의 기암군락의 위용.

 

 

짙은 안개에 가려 조망은 아쉽지만 그래도 안갯속의 협곡은 우람하고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안개와 운무에 가려 있는 저 모습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듯합니다.

 

 

여러 번 와봐서 얼핏 익숙한 풍광 같기도 하지만 올 때마다 그 규모와 모습의 아름다움이 그저 신비로울 뿐입니다.

 

 

미 멋진 풍경에 가을의 단풍을 입으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궁금해하며 다음 계절도 기대되는 두타, 청옥입니다.

 

 

철계단길을 다 내려와 뒤돌아 보며 지나온 풍경을 거꾸로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비에 잦은 선녀와 나무꾼 포토죤.

 

 

이렇게 멋진 계곡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없으면 심심하죠.

 

 

쌍폭포와 용추폭포 갈림길의 이정표를 보며 먼저 쌍폭포로 향합니다.

 

 

쌍폭포(雙瀑布) 이름처럼 두타산 박달골과 청옥산 바른골, 두 개의 골짜기 물이 절벽인 이곳에서 

쌍폭포를 만들면서 무릉계곡으로 합쳐지는, 한 곳에서 두 개의 폭포를 보는 독특한 비경이 펼쳐집니다.

 

 

쌍폭포 전망대.

 

 

용추폭포에 들어서니 큰 바위에 별유천지(別有天地)라고 쓴 서각(書刻)이 보입니다.

별유천지(別有天地)는 무인(戊寅)년 모춘(暮春)에 광릉 귀객(廣陵歸客)이 썼다고 적혀있습니다.

무인(戊寅)년은 육십 간지의 15번째 해이고, 모춘(暮春)은 봄이 저물 무렵 즉 늦은 봄을 이야기합니다.

 

 

용추폭포( 龍湫瀑布) 삼단 중 하단.

삼단의 용추폭포 중에 이 하담(荷擔)은 둘레가 30m, 깊이는 10m나 되는 깊은 소(紹)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조 21년(1797) 가뭄이 들었을 때 삼척부사 유한준이 용추(龍湫)라 새기고 제사를 지냈더니

비가 내렸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후부터 이 폭포는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각 바위와 용추폭포,

 

 

용추폭포 안내문.

 

 

용추폭포 맞은편에는 삼단 중 중단 용추폭포로 가는 철다리가 놓여있습니다.

 

 

중단 용추폭포로 가는 철다리에 올라서니 밑에서 못 봤던 또 다른 바위의 서각이 보입니다.

 

 

그리고 배틀 바위 방향으로는 거대한 암벽으로 이뤄진 발바닥 바위가 소개됩니다.

 

 

운무에 가려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발바닥 닮지않은 거대한 발바닥 바위를 담아봅니다.

 

 

중단 용추폭포로 가는 길목의 안내판. 여기는 '용추 중탕'으로 소개되어있습니다.

 

 

거리는 50m라는데 오름길의 철사다리 길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드디어 시원한 물줄기를 곧게 뿌리고 있는 중단 용추폭포를 만납니다.

 

 

주위의 암벽을 배경 삼아 담아본 중단 용추폭포.

 

 

아까 올라왔던 철계단이 이런 모습입니다.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며 보이는 쌍폭포를 용추폭포 방향 상부에서 바라본 모습.

 

 

용추폭포가 쌍폭포와 만난 이 계곡물이 무릉계곡을 이루어 흐릅니다.

 

 

무릉계곡(武陵溪谷)은 두타산 동북쪽 용추폭포에서부터 시작해 무릉반석까지 이어지는 4Km의 계곡을 말합니다.

 

 

무릉계곡(武陵溪谷) 명칭은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또는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金孝元)이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맑고 시원한 물과 계곡과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진 길을 걷다 보니 학소대(鶴巢臺)를 만납니다.

 

 

그 옛날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입니다.

 

 

비가 와 수량이 많을 때는 거대한 폭포를 이룬다는데 지금은 물은 별로 없어도 그 규모와 생김이 장관입니다.

 

 

학소대 좌측 절벽에는 모형의 학 한 쌍이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학은 언제쯤 만날 수 있으려는지....

 

 

주위의 거대한 암벽이 절을 호위하는 듯한 모습의 삼화사(三和寺)를 만납니다.

 

 

삼화사 경내로 들기 전의 사대천왕을 모신 천왕문에서 보는 모습.

 

 

삼화사 적광전(대웅전)과 마당 중심에 자리 잡은 3층 석탑(보물 제1277호)

 

삼화사(三和寺) :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입니다.

옛날에는 삼공사(三公寺) 또는 흑련대(黑蓮臺)라고도 하였습니다.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지장 율사가 흑연대를 창건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습니다.

사찰은 본래 동쪽 약 1.3km의 반릉 부근에 있었던 것을 여러 차례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창을 거듭한 결과 무릉계곡 내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고 합니다.

 

 

삼화사 범종각.

 

 

삼화사 입구 십이지 석상.

12 띠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갖춘 신상(神像)으로 부처를 도와 사람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그중에 본인 띠 인(寅)에 해당하는 범상을 담아봅니다.

 

 

두타(頭陀)라는 말은 불교용어로 원래 범어 ‘dhuta’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 한 것으로써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행위, 즉 스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두타(스님)의 생활규범은 매우 엄격해서 열두 가지나 된답니다. 즉

① 인가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에 머물 것,

② 항상 밥을 얻어먹을 것,

③ 걸식을 할 때는 빈부를 가리지 말고 차례대로 할 것,

④ 하루에 한 끼만 먹을 것,

⑤ 과식하지 말 것,

⑥ 정오가 지나면 과실즙 따위도 먹지 말 것,

⑦ 해지고 낡은 옷을 입을 것,

⑧ 옷은 세 가지 이상 소유하지 말 것,

⑨무덤 곁에 머물며 무상관을 닦을 것, 나무 밑에 머물 것, 공한지에 앉을 것, 항상 앉고 눕기를 삼갈 것 등입니다.

 

 

박달골 계류와 사원터 계류를 모아 이루어 낸 약 10리 길의 무릉계곡이 끝이 안 보이게 펼쳐져 있습니다.

 

 

두타산 동북쪽 용추폭포에서부터 시작해 무릉반석까지 이어지는 4Km의 무릉계곡은 그야말로 절경으로

무릉도원을 연상케 합니다.

또한 이곳 반석교에서 계곡 중심부 바닥을 자세히 보면 물속에 길게 그어진 검은띠가 보이는데 이건

용이 승천하며 계곡을 훑고 간 자국이라고 전해집니다. 

 

 

삼화사 입구 반석교를 건너 일주문으로 향합니다.

 

 

두타산 삼화사 일주문.

일주문 현판 아래 금란(禁亂)이라고 적은 깃발이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지금이 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 15일 ~ 7월 15일] 중이라 스님들 수행에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무려 1,500평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무릉반석(武陵盤石).

 

 

〈삼화사 고금 사적〉에 따르면 “수령(守令)과 목백 (牧伯)들이 이반석 위에 이름을 새겨 놓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마치 조정의 중신들이 늘어선 것 같고 또한 시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문장이 이곳에서 나오는 것 같다”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금란정이라는 편액이 붙은 열 기둥의 사각정자,  1,500여 평에 이르는 넓은 반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정자입니다.

 

 

두타산의 웅장하고 위엄 있는 기세가 오대산과 더불어 표리(表裏)를 이루고 있으며 시내가 있는데, 이 또한 천고의 뛰어난 경치가 되기에 족하고, 그래서 수령(守令)과 목백(牧伯)들이 바위나 반석에 이름을 쓰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마치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모여든 것과 같았고, 시인과 묵객들도 모두 계속 아래서 시를 지어 잠깐 사이에 하나의 사원(祠院)을 열었었다고 합니다.

 

 

금란정 옆 한편에는 단원 김홍도 화백이 그린 '금강 사군첩(金剛四郡帖)-무릉계' 그림이 놓여있습니다.

 

 

무릉반석(武陵般石) 암각서(岩刻書) 모형 석각.

‘무릉 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 동천(頭陀洞天)’이라는 12글자의 서각(書刻).

이 서각은 전하는 말로는 조선 선조 때 강릉부사를 지낸 명필 양사언(陽士諺, 1517~1584)의 글씨라고 합니다.

 

 

무릉반석 암각서 안내문.

 

 

그렇게 쌍폭포와 용추폭포 그리고 무릉계곡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오전에 출발한 배틀 바위 입구를 지납니다.

 

 

들머리 배틀 바위 입구를 지나고 다시 신선교를 건너 오늘 배틀 바위, 마천대, 무릉계곡 탐방을 마무리합니다.

이야기로는 4시간 30분에서 5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본인은 아직도 부자연스러운 다리 때문인지

산성 폭포에서 두타 산성길을 빼먹었는데도 6시간 가까이 소요된 것 같습니다.

못 본 것, 더 보고 싶은 것은 다음을 기약하며 단풍이 무르익는 가을에 꼭 또 와보고 싶은 두타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