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새칼럼

새시대새청년 2008. 12. 4. 15:18

 

오늘날 한국교회는 병이 깊어가고 있다. 이미 깊어진 병이라면 정확히 진단 후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미 한국교회가 자정능력을 잃었다면 이렇게 가르쳐서라도 또 보다 심층적으로 병폐를 열거하고 분석해서라도 신앙인들이 공유하게 함으로써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세상에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나무란다는 뜻이니 어이없다는 말이다. 성경의 역사도 이와 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그 예로 예수께서 게네사렛 땅에서 병 고치는 일을 행할 때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 15:1~2)”라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질문한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라고 답한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처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킨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 즉, 장로들의 유전이었다. 이것이 바로 성경속의 적반하장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장로들의 유전으로 논쟁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떡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왜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느냐는 것이었고, 예수께선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범한 하나님의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었다. 즉,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대신 하나님에게만 하면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 사건이 2천년 전의 일로 끝난 게 아니라, 바로 오늘날도 똑같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성경의 역사는 현 신앙인들에게 거울과 경계로 삼아야 한다며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사도 바울이 엄히 경고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후죽순(雨後竹筍)같이 생겨난 수많은 교단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아랑곳없이 교권으로 자신들이 만든 교법과 유전을 따르기만을 강요한다.

 

사람이 만든 주석과 교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따르지 않고 어쩌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라도 한다면 이단아가 되고 만다. 초림이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계명 대신 자신들의 교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믿고 따르라 한다면 자신들의 교주(敎主)가 하나님과 예수가 아닌 ‘장로’라 시인하는 셈이며, 하나님과 예수의 가르침보다 칼빈의 주석을 주장한다면 자신들의 교주가‘칼빈'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던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찌니라(잠 19:27)”라고 말이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자기들의 유전을 강요하고 또 쫓고 있는 이들을 향해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라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 장로교는 제주도에서 지난 일제 강점기에 하늘을 버리고 일본 천황을 받아들인 씻지 못할 죄를 70년이 지나서야 회개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당시 절개를 지키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와 고신파가 있었으나 고신파 역시 끝까지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과 다시 하나 됨으로 한국교회는 어둠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회개할 일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한국장로교는 칼빈의 후예답게 개종목자들을 양산해 내는 공장이 되고 말았다. 그 증거는 개종하지 않으면 화형과 참형으로 죽이던 500여년 전 칼빈의 방식대로 지금 이 순간도 개종목자들을 앞세워 하나님의 계명을 쫓는 참 신앙인들을 자기 교단의 유전을 따르지 않는다고 수면제와 가족을 동원,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세상의 법도 이를 심판하였건만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마지막 발악인가.

 

이젠 신앙인들이 한국교회의 이 참혹한 현실을 정확히 분별해야 할 때다. 회개할 일은 또 있다. 절대 예정론이다. 구원과 심판이 이미 예정되었다면 신앙생활은 왜 해야 하는가. 오늘날 신앙인들이 종교 편향과 이기주의자가 되고 교만케 된 원인이다. ‘사랑, 용서, 희생’의 예수의 가르침과는 절대 반하는 것이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라고 하듯이 오직 내가 선택하는 것이며, 찾고 두드리는 것이다.

 

또 성경에도 없는 ‘사도신경’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왜곡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죽였지, 빌라도가 죽인 게 아니다(행 3:13, 7:52). 한마디로 자의적 거짓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금까지 속여 왔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통(正統)이라 했으니 바로 이 점 또한 깊이 회개해야 한다. 이방 신을 섬긴 교단이 결코 정통이 될 수 없고 다만 전통(傳統)일 뿐이다. 이 말이 틀렸으면 반론을 해야 할 것이며, 옳다면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 이젠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는 시대임을 잊지 말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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