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새칼럼

새시대새청년 2008. 12. 12. 15:29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단 9:25)”라는 예언은 약 600년이 지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라는 말씀과 함께 십자가 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기록된 예언을 이루셨다.

 

즉,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것은 육적인 성전을 들어 영적 성전 곧 심전(心田)인 사람의 심령을 다시 짓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고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위 말씀에서 헐고 다시 일으킨다는 중건(重建)의 뜻처럼, 세상의 건물이야 하자가 생기면 보수나 증축도 가능하겠지만 심령의 전만큼은 보수나 증축이 아니라 오직 중건하지 않으면 쓸모없어 버려진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라는 데서도 답을 얻을 수 있다. 구약에도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렘 1:10)”라고 하듯, 먼저 집이라면 파괴와 파멸과 넘어뜨린 후 다시 건설하고, 나무라면 먼저 뽑아 없앤 후 다시 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찌끼가 남아 혼잡물 즉, 바벨이 되어 물들까 염려함이다.

 

육적 이스라엘도 이방민족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김으로 인해 결국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되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중건을 위해선, 초림 예수가 다니엘 9장25절의 예언이 이루어진 실상이듯 먼저 지음 받은 즉, 약속한 목자를 택하고(눅 9:35), 그를 통해 중건의 역사가 시작됨을 깨달아야 한다. 창세기에서는 이를 ‘창조(創造)’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확실히 할 것은 창조라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보아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있었으나 잘못 지어졌기에 부수고 다시 짓는다는 의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즉, 창조가 아닌 다시 창조하는 ‘재창조(再創造)’의 역사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재창조 한단 말인가. 심전이라 하듯 사람의 마음이 완악해져 타락하므로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할 수 없으니 떠날 수밖에 없었고(창 6장), 하나님 곧 빛이 떠난 심령은 어둠 그 자체가 되고 만다. 창세기 1장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어둠’이 되었기에 ‘빛이 있으라’ 하며 빛을 창조하게 된다.

 

즉, 먼저 땅이 창조되었으나 섞였고, 비었고, 어두워진 고로 하나님의 신(영)이 그 육체와 함께할 수 없게 되니 결국 새로운 빛(요 1:4)을 창조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렘 4:23~28)”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들어 다시 한 번 설명하시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분명 장래에 다시 창조할 사건을 미리 말씀해 놓으신 예언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창조하는 역사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육천년간 일해 오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는 말씀에서 새 하늘 새 땅인 ‘신천신지’가 다시 창조되는 영적 재창조의 역사임을 분별해야 한다.

 

이제 우리 신앙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이 같은 재창조 즉, 중건의 역사는 예수의 초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림으로 완성됨을 믿어야 한다. 초림으로 “다 이루었다(요 19:30)”는 말씀이 있다면, 재림으로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계 21:6)”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수 초림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면 재림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다(히 9:28, 히 8:10~12)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예수의 피로 죄가 해결되어야만 죄악세상으로부터 떠나가신 하나님(창 6장)이 다시 오셔 죄 없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계 21:3)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이천년 전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흘리신 피의 효력은 하나님나라(계 7장)가 임하면 유월절 양식을 다시 먹겠다(마 26:29)는 예수님의 새 언약이 있기에 그 언약이 성취(계 5:9~10, 계 7:14)되는 오늘날에 나타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초림 때도 내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하는 걸 보아 하나님의 백성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었음을 마태복음 4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재림 때도 계시록 18장에 보니 다시 만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사단의 권세 아래 마귀와 결혼하여 미혹된 종교세상이 되니, 이는 온갖 주석과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보다 높아진 종교세상을 일컬음을 어찌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이처럼 오늘날 지구촌에 수많은 신앙인들이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자신이 사단의 권세 아래 사단의 사상으로 창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마지막 때 계시의 말씀을 받은 한 목자를 통해 이를 파멸하고 뽑아내어 새로이 지음 받아야함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다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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