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새칼럼

새시대새청년 2008. 12. 18. 15:14

 

성경말씀이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왜곡 변질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앞의 글들을 통하여 여러차례 다뤘다.

 

그러나 모두들 욕심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일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대신 사람의 말이 강단을 대신하고, 목회자들은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로 개정되었으니 성경책 구입을 강요하고, 심지어 교단과 총회는 앞 다투어 공문으로 하달하고, 판매수익으로 사람의 배를 채워가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의 길을 걷는 종교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요즘 깨어있는 목회자들이 애타는 심정으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나섰다. 오직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에 취해 종교의 본질인 말씀을 왜곡해 부패하고 타락한 이 시대를 자초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성토였다. BC 3세기경 ‘70인 번역’은 하나님이 저자이고, 성경이 완전하게 쓰여졌으며, 아무런 오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성경은 글자 하나하나에, 또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감동하심(딤후 3:16, 벧후 1:21)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많은 선지사도들의 피 흘림의 결과로 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한국의 복음전파를 위해 가장 바른 사본을 번역해 펴낸 역본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과 경륜을 감히 경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무지무각한 이 시대 제사장들로 인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은 초토화 되어가고 있다.

 

성경은 신서(神書)다. 신이 주신 글을 신이 아닌 사람이 어찌 알기 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말은 신의 권위를 능멸하는 처사가 아닌가. 자신들이 하는 말과 행위가 무슨 짓인지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때에 종교현실을 한탄하고 절규하고 호소하는 목회자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전해진 성경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요일 5:13)을 알리는 신의 글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의 약속(요일 2:25)이다. 가감해선 안 된다(계 22:18~19)고 경고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신앙의 목적은 분명 영생이고,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 또한 3년 공생애 동안 영생 하나 말씀하시고 가셨다. 그러나 그 영생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분명히 하신다. 즉, 영생은 ‘마지막 날’이라는 한 때를 기약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이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개정되고 변질되어선 안 되는 이유이며,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성경을 문자대로 판단해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고 끝난 것인 양 과거형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구약, 신약이라 한다면 약속이란 의미며, 약속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이 남아있음이 전제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라고 하면서도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라고 하신다. 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히 4:7)”라고 하셨다면 그분들의 지적과 같이 성경의 기록은 성령 즉, 말씀이 현재 내게 직접 말하는 현재성이 있음이 틀림없다.

 

만약 현재와 현시성이 없다면 성경은 그저 지나간 옛 얘기일 뿐이다. 신(神)과의 약속을 이처럼 거짓으로 바꿔 백성들을 멸망으로 들어가게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그들은 진정 악신(惡神)의 조종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지 않은가.

 

정리하면 과거형의 말씀이 아닌 현재성이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은 나와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약속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고, 그 약속을 믿기에 ‘신앙을 한다’라고 하며 ‘소망을 가진 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짐을 믿을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 창세기 2장17절의 약속은 아담과 하와로 이루어졌고,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과의 약속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루어졌다. 또 구약 즉, 모든 선지자들과의 약속(눅 24:27, 44)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성경은 정확히 증명한다. 그래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언과 성취는 예언하신 하나님이 한 목자를 통해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 하나님이 때가 되어 한 목자를 들어 이루심을 깨닫게 한다. 이제 정작 중요한 것은 신약이며 이 신약 또한 이루어짐을 믿을 수 있으니, 우리에겐 신약의 약속을 지킬 일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신약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씀은 우선 사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말씀은 구약을 이루신 일을 포함한 당시의 사건과 장래 일에 대한 약속이다. 또한 승천 후 사도요한을 통해 장래 있어질 사건을 말씀하신 요한계시록이 있다. 즉, 신약이라 하면 사복음서의 장래사를 포함해 종합 정리된 요한계시록을 일컫는다. 신약인 요한계시록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지켜야 할 예언서임을 증명하는 것은 계시록 1장1절의 ‘속히 될 일’, 3절의 ‘이 예언의 말씀’, 22장18절의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면…’ 등이 그 증거다.

 

구약에서 영생이 있는 줄 알고 구약성경을 상고하던 유대인들(요 5:39)이 성경에 무지해 멸망 받은 성경의 역사는 신약시대 약속관계에 처해 있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겐 교훈으로 남아 있다. 즉, 신약인 요한계시록을 깨달아 지키는 자와 깨닫지 못해 지키지 못하는 자로 갈라지니, 예수께서 약속하신 영생과 영벌의 약속 또한 틀림없이 이루어짐을 믿어야 한다. 덧붙일 것은 계시록은 어떻게(마 11:27, 마 23:39, 요 14:16~17, 26, 계 1:1, 계 5장, 계 10장) 열려지는지를 성경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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