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말씀/사복음서

새시대새청년 2008. 12. 26. 08:07

 

마태복음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85.
1) 예수께서는 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모든 십일조는 드리면서도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렸다고 하셨는가?
2) 또한 당시 목자였던 그들에게 “소경 된 인도자”라고 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3) 본문의 하루살이와 약대는 무엇을 말하는가?
4) 하루살이는 버리고 약대는 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  소경 된 인도자
  성경에는 육적인 소경과 영적인 소경이 있으며, 영적 소경은 육적 소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육적인 소경은 눈이 있어도 사물(육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자요, 영적인 소경은 성경 말씀(영적인 것)을 보아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자이다.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귀머거리요, 입이 있어도 진리를 증거하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벙어리이다. 

아래 성구를 참고하여 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사 29:9-13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 42:18-20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듣지 아니 하는도다

마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계 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위에서 살펴 본바 영적 소경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한 하나님의 종(목자)들이다.  그들은 보아도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소경과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벙어리가 되어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한 영적인 소경 아래 있는 성도가 배울 것이 있겠는가?  그 목자(소경)들이 낳은 성도 또한 영적인 소경과 영적인 귀머거리와 영적인 벙어리 아니겠는가?


  마태복음 15장 14절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신 말씀은 성경을 보아도 뜻을 알지 못하는 목자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교인을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 결과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데, 그 구덩이는 지옥이요(벧후2:4), 멸망의 처소이다(계9:1).


  소경 된 목자들이여, 이제 그대들의 소경 됨을 성경 말씀대로 인정하라.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 목자노릇 하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소경이라 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하셨다(요9:41).  또한 재림 때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일곱 사자조차 자신의 눈 먼 것을 모른다고 하신다(계3:17).  과거와 오늘날 모든 목자들이 그러하다고 성경에 미리 증거하고 계시니, 본다고 하는 목자들은 이제 그 입을 봉하여야 한다.


  아무리 신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했을지라도 그 학문은 사람에게 배운 인학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가르친 스승 또한 영적인 소경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성경책을 봉해진 채로 두셨는데(계5:), 어찌 그대들의 스승이 성경을 보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대들이 배운 학문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계시)이라 하겠는가?  성경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대들이 성경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눈 떴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래도 안다고 자랑하니, 그대들을 가르친 영은 성령인가, 악령인가?


  예수님께서는 재림 때에도 목자가 소경이라고 하시니, 성도는 먼저 자신의 목자가 소경임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소경인 목자를 따라 가다가 구덩이에 빠지지 말고, 이제는 눈을 뜨기 위해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한다(계3:18).  그 약은 열려진 성경 말씀(계10:)을 증거하는 시온기독교신학원에 있다.
 
▶ 하루살이와 약대
형식에 치중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십일조의 범위를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같은 사소한 식물에 이르기까지 확대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십일조보다 더욱 중요한 율법의 정신은 소홀히 여기며 실천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유대 목자들이 율법의 세세한 조항보다 훨씬 더 큰 율법의 정신을 소홀히 하는 사실을 지적하시며 소경된 인도자들이

하루살이는 건지고 약대는 삼킨다고 비유하셨다.


하루살이는 율법의 세세한 항목을 의미하고, 몸집이 큰 약대는 율법의 조항보다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뜻한다.
한편,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과 대화를 나누실 때 인용한 약대는 부자를 상징한다. (마 19:24)
그러나 율법의 이념이 중요하다고 하여 그 정신만 따르고 율법의 규례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율법의 정신을 준수하려는 사람은 그 규정까지도 지켜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둘은 어느 것 하나라도 버려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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