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새칼럼

새시대새청년 2009. 1. 8. 09:5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이천년 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게 되면 부대도 터지고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는 당 시대의 생활풍속을 들어 말씀하신 세상의 이치임을 깨달을 수 있다. 예수께선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 하는 장로와 제사장들은 새 것이 왔음에도 새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묵은 것이 좋다고 고집을 부리는 데서 기인된 말씀이다.

 

즉, 송구영신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 시대 지도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날도 지난 시대를 보내야 하고,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영적교차점에서 많은 생각을 낳게 한다. 신앙인이라면 말이다.

 

이천년 전 예수 초림 때에도 오늘날과 같이 구약을 상고하는 목적은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아를 영접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송구영신(送舊迎新) 호시절(好時節)이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안는 경사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선민의식으로 교만하기만 했던 유대인들에겐 인정하지 않는 그 자체가 곧 심판이었다.

 

따라서 성경의 이름과 같이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그들에게 응하고 말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고집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천년이 지난 즈음에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이 택한 아담의 시대가 부패해 노아를 통해 심판하고 새 시대를 열었지만, 그 노아시대마저 부패하고 타락하므로 아브라함을 통해 다시 새 시대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천년의 기독교 역사는 입으로는 주를 부르나 이미 마음은 멀어진 상태가 되고 말았다.

 

2600년 전 예레미야를 통해 두 가지 씨 뿌릴 것을 예언(렘 31:27)하시고 약속대로 초림 예수를 통해 두 가지 씨를 뿌리셨다(마 13:24~25). 그리고 추수 때가 있음을 예고하시면서 추수 때(마 13:30)까지 함께 자라게 놔두라 하시더니 계시록 14장에 와 보니 참으로 추수하는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추수 때라면 세상 끝(마 13:39)이요 바로 계시록 때임을 알 수 있다. 계시록 때라는 의미는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이 실상으로 열려 증거 되는 때를 이르며, 바로 오늘날이 계시록 때요, 성경이 말한 그날 즉, 마지막 때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몰라도 말세 또는 말세지말을 외치고 있으며, 또 너도나도 계시 받았다며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고 난리다.  

 

즉,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시작된 육적 이스라엘시대를 끝내고 영적 씨 즉, 성령의 씨로 영적 이스라엘시대를 열었듯이, 이젠 이천년의 영적 이스라엘 시대를 끝내고 새롭게 열리는 영적 새 이스라엘 시대를 선포하고 있다. 곧 지금이 송구영신해야 할 때요 호시절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는 사도바울의 말씀과 같이 진정 구원과 능력과 하나님의 나라가 말세지말에 예비되어 있었음을 요한계시록 12장은 증거하고 있다. 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어느 때니이까”라고 질문했듯이 지금이 바로 참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임을 성경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여자가 낳은 아이가 철장으로 사단에게 빼앗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육천년 회복의 역사를 훼방하고자 지음 받은 사단은 발악을 하며 자기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 송구영신(送舊迎新) 호시절(好時節)이기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구전(口傳)되어 오지 않았던가.

 

여기서 잠시 초림으로 가봐야 한다. 왜냐 예수께선 마지막 때가 초림 때 같고 노아 때와 롯 때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하나님은 예수에게 오셨다(마 3:16). 그리고 함께 역사하셨고(요 10:30),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루 세 번씩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하던 그들 즉, 장로와 제사장이라는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를 영접은커녕 외려 형틀에 매달았다.

 

오늘날 이 시대가 초림 때와 같다는 말씀과 같이 외형적으론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초림의 과오를 반복하는 장본인들은 아닌지 눈 여겨 봐야 한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송구영신해야 할 때,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인은 과연 누굴까.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간다고 해서 예수 잘 믿는 것이 아니다. 외식하는 신앙, 주여 주여하는 신앙, 형식적인 신앙은 이제 추수 때 밭에 버려둠을 당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라는 경고를 마음에 담고 핍박과 저주가 아닌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추수 때에 합당한 알곡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추수 때라면 알곡만이 곳간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버림을 당하는 세상의 이치를 꼭 깨달아야 한다.

 

기축년 소(牛)는 종교세상을 향해 이미 울었다. 그리고 회개를 호소한다. 다 귀 있는 자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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