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새칼럼

새시대새청년 2009. 7. 3. 13:57
출처  http://cafe.daum.net/scjjohn/I4hP/59

 

 

신앙인들의 손엔 왜 성경이 들려져 있을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감동함을 입은 사람이 받아 기

록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읽는

자가 유익함을 얻기 위해선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답을 얻게 된

다.

 

그래서일까.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영장으로 노래하고

있고,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하신다.

 

그렇다. 막연한 신앙은 좀 그만하자.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모든 말씀은 말세를 만난 신앙인

들을 향해 책망하고 교훈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신앙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영생과 구원이다. 이 목적을

놓고 말세 신앙인들이 꼭 알아야 할 세 존재가 있다.

 

우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예배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강조하신다. 우주만

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생명과 복의 근원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섬겨야 할

유일하신 한 분이시다.

 

다음으로 종교(宗敎)의 의미를 통해 꼭 알아야 할 분 즉, 예수다. ‘종(宗)’ 자의 갓 머리는 하늘을 의미하며 밑에

는 ‘볼 시’ 자가 있다. 또 ‘교(敎)’ 자도 ‘효도 효’에 ‘아비 부’가 함께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종교란 ‘하

늘을 보고 효도하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며 이것이 곧 종교의 참 뜻이다. 여기서 ‘하늘’이라 함은 저 높이

있는 창공을 생각하기 이전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하늘’이라 칭한다는 영적의미를 먼저 떠

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하늘의 아버지께 목숨 바쳐 효도하고 순종했던가. 바로 독생하신 아들 예수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

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이처럼 인생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 짓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순종하셨으니 예수님이 바로 참된 효(孝)의 근본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치심으로 이 엄청난 종교의 참 뜻을 행함으로 보이셨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 21:25)”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해 보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

워서” 효의 본이 되셨고,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

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는 것과 같이 인류의 죄의 문제를 담당(벧전 2:24)하셨으며,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의 밭 곧 오늘날 예수교회에 하나님의 씨를 뿌리셨다

(마 13:24~25).

 

그리고 이천년 전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밭 즉, 오늘날 기독교세상이 된 수많은 교

회에서 자라왔으며, 이제 추수 때(마 13:39)를 만나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한 존재가 또 있으니 바로 추수의 사명을 맡은 자다.

 

농부가 자기 밭에 씨를 뿌렸다면 추수할 일이 남아 있음은 당연한 이치다. 만일 다 익은 곡식을 밭에  버려둔다

면 왜 밭을 갈아엎고 씨는 왜 뿌려야 하는가. 오늘날도 이러한 순리를 깨닫지 못하는 신앙인들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는 심히 훼방을 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있기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라’고 주문하

신다.

 

이처럼 추수되어 온 신앙인들에 의해 마지막 때 하나님나라는 창세기의 약속(창 1:1)대로 오늘날 창조(계 7장,

14장)되고, 그곳에서 영생의 양식을 먹여 주는 목자다(계 10장). 새로 창조되는 하나님나라에서 먹게 되는 영생

의 양식은 전에 먹던 것이 아닌 새 것이기에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 맑은 포도주

(사 25:6)”, 생명나무 과실(계 2:7), 감추었던 만나(계 2:17)로 비유되었다. 바로 이 양식을 먹여줄 자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림의 예수는 하나님이 함께(요 4:24, 마 3:16, 요 10:30, 요 5:17)하셔 지식과 명철(렘 3:15, 요 17:8)로 양육하

셨고, 오늘날 보내심을 받은 목자 또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마 24:45)”하시며 예수님이 찾으시던 바로 그 목자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요 14:26)과 함께하는 약속의 목자임도 알 수 있다. 요한

계시록 2, 3장에서 이기는 그에게 주신다는 약속과 같이 이기고 받은 ‘이긴 자’이며, 영생의 양식과 치리권을 가

진 목자다.

 

바로 이를 찾아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 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

냐” 그렇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핍박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삼고 길로 삼아 확인하며 달려가는 신앙인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