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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쟁이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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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2010. 4. 11.

솥 때우시오~
깨진 솥, 뚫어진 솥 때우시오~

 

고무신짝 때우시오~
신발 때워요~ 뚫어진 신발 때워요~

 

깨진 항아리 때워요~ 독 때우시오~

 

어렸을 적에 자주 듣던 소리이다. 땜장이들이 걸쭉한 목소리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한참을 떠들고 다닌 후 마을 큰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으면 어머니, 할머니들이 손에 손에 뚫어진 솥, 깨진 솥을 들고 나오거나 닳아 구멍이 뚫린 고무신짝을 들고 나온다. 항아리의 경우에는 아저씨들이 리어카에 싣고 오거나 지게에 지고 나온다.

 

큰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이기에 동네 조무래기들에게는 땜장이들의 땜질하는 광경이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우선 솥때우는 광경을 보자. 솥은 납으로 때우는데 작은 도가니(용광로)를 숯그릇에 넣고 그 안에 납덩어리를 몇 개 넣는다. 그리고 불을 붙이고 나서 풍구 쇠를 돌리면 곧 숯이 발갛게 되면서 도가니 안에 있는 납도 발갛게 녹는다. 납땜을 하는 손잡이(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는 모르겠다) 로 구멍 뚫린 한쪽구멍에 대고 곧 녹은 납을 조그만 숟갈로 떠서 붙인 후 다른 손잡이로 꾸욱 누른다. 그러면 검은 무쇠 솥에 하얀 납이 감쪽같이 붙어 버린다. 그리고 물을 부어 물이 새는지 확인하면 끝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이렇게 납으로 때운 무쇠 솥을 부엌에서 다시 불을 때서 밥을 하거나 물을 끓였는데 이게 우리 몸에 괜찮았던 건지 궁금하다. 요즘은 환경문제가 심각해 져서 특히 납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면 아주 좋지 않다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 당시는 양은솥보다 대부분 무쇠 솥을 사용했는데 오래 쓰다보면 구멍이 나게 마련이거나 무쇠의 특성상 잘 깨지게 되어 있어 솥땜장이가 자주 마을을 돌아 다녔다. 이후 양은솥이 많이 보급되더니 연료가 나무에서 연탄으로, 그리고 석유, 전기로 바뀌면서 무쇠 솥 땜장이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다음 고무신짝 때우는 일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다. 신발을 때우는 기계는 꼭 기름을 짜는 것처럼 위 아래로 압축을 할 수 있도록 생겼다. 땜장이는 고무를 살짝 녹여서 손으로 찍찍 늘려서 뚫어진 신발에 척척 붙인 후 때우는 기계에 놓고 꾹 누른다. 신발 때우는 기계 역시 불로 가열시켜서 사용하게 된다. 부잣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발은 한두 번씩 때워서 신었던 시절이다. 조무래기들이야 뚫어진 신발은 엿장수가 왔을 때 엿 바꿔먹는게 제일인데 어른들께서 자꾸 때워 쓰니 좀 불만스럽기는 했다. 그래도 신발 때우는 일을 구경하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또 항아리는 어떤가?
집집마다 커다란 간장독, 그리고 고추장. 된장독, 장아찌를 담그는 작은 독, 김치독등 대부분 10여개 이상씩은 가지고 있다. 항아리를 움직이거나 아이들이 까불다가 깨지면 그냥 버리지 않고 잘 맞추어 놓았다가 항아리 때우는 사람이 오면 가져간다.

항아리는 깨진 부분에 하얀 접착제(성분이 무엇인지는 따지지 않았다) 를 바르고 잘 맞춘 후 철사 등으로 얽어서 고정시킨다. 이렇게 때운 독이나 시루 등은 또 한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60~70년대는 모든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무엇하나 그냥 버리는 경우가 없고 깨지거나 뚫어지면 때우고 고쳐서 쓰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 깨진 유리, 쇳조각을 하나 주우면 잘 모아두었다가 엿장수 에게 엿하고 바꾸어 먹거나 어머니들은 비누등과 바꿔 썼었다. 지금이야 모든 물자가 넘쳐나게 흔해서 조금만 고장 나거나 실증나면 버리고 있지만, 자원은 한정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흥청망청 쓰는 자원은 후세들의 재산을 미리 빼앗아 쓰는 게 되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후손들에게 쓰레기를 남겨주는 꼴이 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원을 아끼고 정부에서는 말로만 녹색이 아닌 진정한 녹색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인프라와 시설 인프라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그 옛날 땜장이가 제대로 대접받던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