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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자서전 - 운명이다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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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2010. 5. 23.

아끼는 후배공무원으로 부터 '운명이다'를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정말 훌륭한 대통령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도 난,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반감이 약간은 살아 있었기에,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며 국민들이 과반수의 정당으로

밀어 주었음에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은점,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점, 한미FTA를 밀어부치며 4대 선결과제를 해결한점,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의했던점등을 들어 반론을 제기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 진심은 일정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분이 잘못한 것은 당신의 진정성이 다른사람에게도 먹힐것으로 생각한 순진함이라고 생각한다. 깡패들이 칼을 들고 설치는데 이 깡패들에게 말로 칼을 내려놓도록 한것(검찰의 정치적독립), 그리고 각종 법 규정등을 적용만 잘 하면 굳이 고칠필요가 없다고 한 그것이(국가보안법, 노조법 일부규정) 요즘에는 그야말로 다시 살아나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이 참 한심스러웠다. 그때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 부치고, 공무원노조법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의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받아 들였다면....그때 노무현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은 죽은법이라고 했던거 같다.

 

5월20일...금요일 오후 6시경, 천안함사건과 관련해서 시급한 사안이 있으므로 전직원은 대기하라는 구내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오후 6시 반경 담당급이상은 연휴기간중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는 지시가 떨어졌다. 천안함사건이 생긴시간도 아니고, 왜 하필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기간의 시작일에 천안함 발표를 하고 연휴기간에 근무를 하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쨋거나 5월20일 오후 9시부터 21일 새벽 5시까지 구제역초소 근무를 끝내고 곧바로 21일 비상근무때문에 출근했다. 하루종일 자리만 지키는 비상근무~~

 

5월22일 기차로 부산여행을 떠났다. 안해와 안해의 친구들...난 부산의 금정산을 가기위해 함께 출발했다. 대전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중 서점이 눈에 띄이기에 후배공무원이 말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이다' 생각이 나기에 샀다. 부산까지 가는 기차안에서 자서전 앞부분을 읽었다. 노대통령의 가난했던 어린시절과 사법고시, 그리고 평범한 변호사 생활을 거쳐 노동전문변호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인권변호사 시절에 대해 알게 되었다. 머리는 좋지만 가난했던 어린시절... 그래도 깨어있던 큰형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참으로 머리좋고 의지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1981년 9월에 일어난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처음 접한 시국사건에서 무지막지한 현실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차츰 현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처음 조금씩 접할때는 안개속에 가린 하늘처럼 일부만 보이다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뚜렷이 보이는 현실!! 나도 공무원노조를 처음 시작할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가 배웠던 한국 근.현대사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뚜렷이 진실이 보였던것 처럼....

그리고 시국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가 되고, 관련있는 노동사건도 맡게되어 노동전문 변호사로도 불리웠다고 한다.

 

88년초 김영삼 전대통령으로 부터 정치권의 입문 제의를 받고 통일민주당의 부산동구 국회의원으로 출마(당시 허삼수씨와 대결)

하여 당선되고 5공비리 특위 청문회에서 청문회스타로 떴다.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정작 힘들고 가난한 노동자나 빈민들에게

해줄수 없다는데 분노를 느끼고 실망을 한 나머지 의원직 사퇴서를 썼다가 회유와 권유로 취소한적도 있다고 한다. 자서전에서는

'국회의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인간적 고뇌와 절망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정치인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부족해서 저지를 사고였던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0년1월 김영삼,노태우,김종필 3당 야합으로 통일민주당이 민자당으로 되면서 통일민주당 합당결의대회장에서 주먹을 불끈쥐고 "이견있습니다. 반대토론 합시다"라고 외쳤으나 그대로 통합이 되어 통일민주당을 박차고 김영삼과 결별하게 되었다. 노대통령께서는 3당 야합은 우리나라 정치사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첫째 호남은 고립되고 영남은 보수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둘째 우리 정치를 통째 기회주의 문화에 바뜨렸다고 주장한다.

 

그이는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당선하기 쉬운 서울을 놔두고 통합민주당(총재 김대중)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하여 첫번재 낙선을 하고, 두번째 95년 6월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에 나섰다가 또 낙선한다. 96년 4월 김대중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로 분열된 민주당후보로 서울 종로에서 출마하여 이명박에게 패배하면서 또 낙선했다. 97년11월에 민주당이 분열되면서 결국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고후에 이명박이 선거법위반으로 중도하차하여 98년7월 보궐선거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당선된지 반년만에 "지역 분열을 더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동서통합을 위해서 부산 경남 지역으로 갑니다"라며 국회의원직을 내 던지고 2000년 4월 13일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허태열 후보에게 큰표차로 낙선했다. 이때부터 '바보 노무현' 이 탄생된것 같다.

 

2008년 해양수산부 장관시절은 노대통령에게 국정운영의 많은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정치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국정운영의 경험이 있어야 되기에 대통령시절 정동영,김근태,김두관등 많은 유능한 사람들을 장관으로 기용했다고 한다. 해양수산부장관 시절에 공무원들의 다면평가제도를 처음 도입한분이 노무현장관 이었다. 참으로 신선했다.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공무원들은(특히 상위공무원들) 자율성과 책임성을 읽고 권력을 가진 상전의 취향에 맞추어 진실을 왜곡한다. 그러기에 고급공무원 몇명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덜보는 하위직단체의 의견을 듣는것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때의 생각을 대통령이 되어서도 좀 헤아렸으면 좋았을텐데..

 

제3부 권력의 정상에서는 각 분야별 따로 소제목을 달아 놓아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것의 진실을 알수 있게 잘 정리하였고 스스로 잘못한것 에 대하여는 솔직한 반성이 눈의 띈다.  나는 그동안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이 권력을 가졌을때 잘못한 것에 대하여 솔직히 국민앞에 사과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나 자신도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 탓만 했지, 나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생각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진보진영, 노동계도 정말  스스로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좀더 참고, 좀더 믿고, 좀더 양보할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새 시대의 첫차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라당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민주당조차도 대선기간중의 갈등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새시대의 첫차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차라고 했다.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부동산가격을 잡기위해 노력했고 종합부동산세제로 어느정도 부동산가격은 안정이 되었다.

 

재임기간 내내 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의 사실을 왜곡한   공격을 받았으며, 특히 대북송금특검법, 이라크파병, 한미무역협정, 대연정제안으로 정치적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대북송금특검법을 수용하게 된 계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 이라크 파병때는 국민들이 반대시위를 해 주어 미국에서 요청한 사단규모 보다 훨씬 적은 3천명으로 감축할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물론 그때 우리는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뽑았는데 왜 미국의 눈치를 보느냐며 시위를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대통령은,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뽑아 줬어도 미국의 눈치를 안볼수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집권중에 솔직하게 미국의 눈치를 봐서 파병해야 겠다고 밝힐수도 없었을것이다. 한미FTA는 4대 선결조건을 먼저 양보했다고 난 알고 있었는데 회고록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화 스크린쿼터축소, 미국산쇠고기 수입재개, 건겅보험약가 제도 현행유지, 자동차배기가스 기준 적용유예) 어쨋거나 지금의 조건에 비하면 이정도는 양보도 아님을 인정한다. 그리고 마지막 대연정제안에 대하여는 완전히 실패한 전략임을 인정했다.

 

또한 재임중 검찰개혁을 실패한것에 대한 후회도 보인다. 노대통령은 검찰에게 정치적 독립을 주면 정치적 중립도 될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가 강패인데 그 강패에게 순수한 말과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 규칙에 의해 싸우자고 했다. 그게 실패원인 아닐까? 결국 검찰에게 정치적 독립을 주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스스로 독립을 벗어 던지고 검찰중립도 없던일이 되었지 아니한가.

 

노무현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밀어부쳐야 할 것은 안밀어 부치고, 그렇지 않을것은 밀어부친것이 문제가 아닐까? 열린우리당 출범초기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합치면 충분히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킬수 있었을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 법은 죽은법이라며 밀어부치지 않았다.  한미FTA는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거리를 뛰어다니며 반대하는데 그렇게 밀어 부칠 필요가 있었을까? 더 많은 논의, 더 많은 토론을 거칠수는 없었을까? 초기의 평검사들과 토론하듯이 토론할 수는 없겠지만, 한미FTA를 반대하는 대표적 인사 몇명과 청와대에서 대화라도 나눌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최소한 진보쪽은 등을 돌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보면 민주당도 노무현대통령이 현정부와 검찰의 치사한 압박을 받고 있을때 그분의 방패가 되어주지는 못한것 같다.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전두환,노태우, 그리고 3당 야합을 한 김영삼대통령이 저렇게 꿋꿋하게 살고 있는것을 그들을 지켜주는 한나라당과 보수층이 있어 가능한 것처럼 우리의 진보 대통령도 그를 막아줄 정치적 지지층이 확고해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을 해체되었고, 힘이 있고 인기있을때는 몰려들었던 어중이 떠중이 같던 정치인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자기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했다. 거기에 노사모를 제외한 지지층들이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노대통령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어제 노무현대통령 서거 1주기에서 보이듯..."그때는 몰랐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정도 민주화는 당연한걸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이제 정말 당신이 소중하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일단 아는 사람들에게 꼭 투표하도록 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사람들이 아는 사람에게 꼭 투표하도록 전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입니다. 노대통령 자신도 이야기 했듯이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