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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나 강의 다리 - 이보 안드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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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2020. 12. 2.

(드리나 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문학과 지성사2005)

24부로 구성된 드리나 강의 다리는 예전에는 유고스라비아 였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의 국경 '비셰그라드'에 있는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차 다리'에 얽힌 이야기와 그 주변의 400년간 변화에 대하여 그리고 있다. 이 다리는 오스만제국의 수상 메흐메드 파샤의 지시로 1577년경 완성되었다고 한다. 

 

   비세그라드의 드리나 강과 약간 작은 르자브 강이 교차하는 곳에 삼각주처럼 생긴 곳을 행정구역으로 카사바라고 하는 곳인데 이곳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느긋하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메흐메드가 드리나 강에 다리를 놓을 때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일부 기독교(이곳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혼재되어 사이좋게 살고 있다) 신자들은 다리를 놓게 되면 벌을 받는 다고 생각해서 반대했었다. 그러나 다리는 멋지게 완공되었다.  

 

  예전에 다리가 없었을 때에는 터키에서 이곳 아이들을 끌고 갈 때 어머니들이 이별하는 장소였고, 타 세계와 단절되는 지역 이었으나 다리가 완공된 후부터는 다리는 다른 문명세계와 연결시키는 장소가 되었고 문명이 들어오는 지역이 되었다.  사람들은 다리에서 모든 대소사를 논의하고 주민들 간 회합장소로 이용했다.

 

  오스만제국은 1300년대 부터 1878년 세르비아가 독립할 때까지 발칸반도 뿐만 아니라 헝가리 까지 지배했었다. 오스만제국의 세력이 약해지자 1878년 세르비아가 독립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이곳도 그 영향을 받아 세르비아가 독립하기 전까지 다리에 보초가 서고, 세르비아 반역자를 처형하는 장소로 되기도 하였다.  1908년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고 다리는 터키군인들이 퇴각하는 길로 사용 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인이 들어오는 길이 되었다.  점령군들은 다리를 보수하고 공동상수도를 건설하는 등 지역을 발전시켰다. 오스트리아는 점령지를 착취하기 위해 개발하였고 카사바 시민들은 그들을 의심하면서도 잘 지낸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을 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발칸반도는 슬라브족, 터키족,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등 구성이 복잡한 만큼 서로의 이해관계가 난해하다.   세르비아는 슬라브계 민족국가를 발칸반도 전체로 확대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등을 묶어 제국으로 하려는 욕심이 있는데 이 욕심이 충돌한 것이다. 그래서 세르비아계 청년이 황태자 부부를 살해하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족인 러시아가 참전하고, 오스트리아와 삼국동맹인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가 뭉치고, 러시아 삼국 연합인 러시아-영국-프랑스가 뭉쳐서 전쟁을 벌인다. 미국과 일본은 이들 전쟁에 특수를 맞아 부자가 되고, 나중에 미국의 상선을 폭격하면서 미국도 참전하여 연합국이 승리한다. 그런 와중에 드리나 강의 다리는 큰 훼손을 당하게 되고 카사바 역시 많은 피해를 당하게 된다. 

 

결국 다리는 문명이 들어오는 길목,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는 길목, 새로운 사상이 들어오는 길목도 되지만 전쟁시에는 갈등이 들어오고, 전쟁물자가 들어오고, 군인이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곳은 여러민족, 여러 종교가 혼재하여 살고 있던 지역이나 각 민족, 각 나라, 각 종교의 욕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피해를 입고 죽임을 당하며 소코로비차 다리 역시 많은 역사를 겪는다. 엄청난 홍수에도 버티던 다리는 전쟁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