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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 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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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2021. 8. 5.

(깊은 강, 엔도 슈사쿠, 유숙자 옮김, 민음사0

 

많은 소설이 작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지는데 깊은 강 역시 엔도 슈사쿠의 어릴적 기억과 카톨릭 신자이면서 일본인인 입장에서 쓰여졌다.

 

1. 소설은 평범했던 이소베의 부인이 암선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이소베는 그저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고 부인에 대해서는 사랑 표현등을 하지 않고 그저 아내를 자기가 살고 있는 공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그이 아내는 가정에 충실하면서 남편에게 불평불만도 한 번 하지 않고 그저 안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암 발견 당시 3개월 시한이었다는데 일본은 그 당시에 곧 죽을 사람에게도 항암 치료를 했나보다. 그녀는 죽기 전에 가망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이 건 의사도 알고, 그 남편도 알고 있었음에도) 항암치료를 해서 더 고통을 받았다. 하여간 의사가 예고한 3개월에 맞게 그녀는 임종을 맡게 되었는데 죽어가면서 남편에게 "나.... 반드시.... 다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디가에. 찾아요... 날 찬아요... 약속해요. 약속해요." 라고 유언을 남긴다.

 

2. 그리고 암 투병실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미쓰고 나루세. 이 여성은 무엇이든지 그저 시큰둥 하다. 제법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별 부족함 없이 성장해서 대학교에 다닐 때, 고지식하고 순진한 기독교 신자  '오쓰'를 유혹해 보라는 남학생들의 권유를 받고, 그에게 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오면 함께 놀아주겠다고 유혹한다. 오쓰는 그 제안을 받는다. 나루세는 자신이 신을 이겼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자신의 신을 배신하고 넘어온 오쓰를 걷어찬다. 그 후 사업가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이혼한다. 

 

3. 작가의 어린시절과 마찬가지로 일제시대 만주 대련에서 살던 누마다는 버려진 강아지를 주워와 그 집의 소년머슴과 함께 키우며 소통의 문을 동물에게만 열어둔다. 그 부모들은, 전시 일본사람들이 원래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자 그들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물론 그가 키우던 개를 버리고 떠난다. 떠날 때 그 개의 눈빛을 잊지 못하는 누마다는 그 뒤 아동작가 생활을 한다.

 

4. 2차 세계대전시 미얀마에서 전쟁에 참가했던 기구치는 미얀마의 우기 때 일본이 패배하면서 정글에서 무작정 삶을 향해 패잔병의 행진을 한다. 그들은 말라리아에 걸려 설사똥을 싸거나 열에 들뜨고, 더구나 며칠씩 굶주림에 허덕인다. 그들이 후퇴하는 숲속에는 말라리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일본 병사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근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무슨죄로 너희들 전쟁에 끌려가서 그렇게 죽었나?) 그나마 전우 쓰카다의 도움으로 낙오되지 않고 후퇴하다가 드디어 말라리아에 걸려 죽게 되었지만, 끝내 쓰카다가 죽은 병사들의 옷을 뒤져 곡식 알갱이를 모아 먹여 기력을 살리고, 나중에는 죽은 동료병사의 고기를 먹고, 기구치에게도 먹이지만 기구치는 토하며 먹지를 못하게 된다. 나중에 그 기억에 빠져 쓰카다는 알콜 중독이 되고 결국 그 일로 죽게 된다.

 

5. 오쓰는 잘 생기지도 그리 부유하지도 않은데, 카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가 아닌 집안의 의사대로 신을 믿게 되고 그저 막연히 신학대학을 가려고 한다. 그러다가 나루세에게 유혹을 당했다가 내버려진다. 그는 자신은 신을 버렸지만 신의 이끌림에 다시 신의 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프랑스의 신학교에 들어가 수련을 하지만 '유일신을 믿는 카톨릭에 순응하지 못하고, 다신을 믿는 일본인 답게 신은 모두의 가슴에 있다' 는 주장을 하여 서품을 받지는 못한다. 

 

6. 이들은 우연히 인도 여행에 함께 하게 된다. 물론 오쓰는 다른 이유로 이미 인도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이소베는 자신의 아내가 말한 다시 태어난 아내를 찾으러,  미쓰코 나루세는 오쓰가 인도에서 신부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찾으러, 누마다는 자신이 병이 들었을 때 자기가 기르던 구관조가 자신을 살리고 대신 죽었다는 생각으로 구관조를 사서 방생할 목적으로, 기구치는 전쟁의 기억이 있는 그곳을 다시 찾아 그 때 죽어간 전우들의 넋을 위로할 목적으로 간다. 그들은 카스트제도로 상류층과 하류층이 너무나 많은 차이를 갖고 있고, 또 지저분한 인도 환경에 지저리를 내기도 하고 관심을 갖기도 하면서 인도 여행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바라나시'에 도착한다. 이곳은 갠지스강이 있는 곳으로 인도인들은 죽을 때 이곳에 와서 죽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한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들은 편하게 와서 호텔에 머물려 갠지스강에서 목욕도 하고 기도도 하겠지만 없는 사람들은 몇달을 걸어서 오기도 한다. 그중 많은 하층민들은 바라나시 까지 와서 갠지스강에도 못가고 길바닥에서 죽어간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바라나시에 머물며 자신들이 생각했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직접 경험하며 갠지스강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인도인들을 일부는 이해를 한다. 

 

7. 결국 이소베는 인도에서 다시 태어난 아내는 못 만났지만 살았을 때는 그저 소원했던 아내를 그의 가슴속에 환생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7일만에 환생 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그의 제자들 마음속에 환생하였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루세는 그가 유혹했다가 버린 오쓰가 몸으로 직접 신의 행동을 한 것을 평가하며 살아있는 신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귀국해서는 더 이상 시큰둥하게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누마다는 구관조를 방생하므로써 빚을 갚고, 기구치는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의 모습을 갠지스강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명복을 빌어준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여행 이야기는 현재 내가 국외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패키지 여행이 그렇듯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여행사를 따라가며 그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 그리고 나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모습, 캄보디아나 미얀마에 갔을 때 그 나라 아이들이  손을 벌리며 돈을 달라고 하는 모습등이 너무나도 같다. 내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는 오히려 일본사람들 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몰려 들었다.  나 자신도 인도 여행을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이 소설이 쓰여진 1993년이나 지금이나 인도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인도 소설 몇 권을 읽었는데 국가 지도자들의 무지막지 함, 부패, 아직도 흰두교 카스트제도에 얽매여 있는 사회, 여성들을 우습게 알거나 강간했다는 뉴스 등. 갠지스강에 시체를 태운 재를 뿌리고, 그 물을 마시거나 목욕하는 그런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소설속의 일본인들과 같다.  소설에서 갠지스강은 어머니의 강이라고 하고, 차문다 여신이 자신을 다 허물어 지면서도 말라 비틀어진 젖을 짜서 인도 백성에게 먹이는 모습은 비참하게 사는 인도의 여인상을 말한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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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다른 사이트에서 '차문다' 에 대해서 기술해 둔 것을 베껴 적는다. 

 

인도에는 두 여신이 있다 한다.

칼리와 차문다 여신이다.

 

칼리는 예로부터 풍요의 신으로서

얼굴이 예쁘고, 젖가슴은 터질 듯이 팽팽하고 자비롭게 보인다.

 

사람들에게 수확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대가로 소 같은 산 제물을 요구했다 한다.

칼리는 잔혹한 여신으로서 언제나 피를 요구하며

산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는 무서운 신이다.

주로 동물을 제물로 바쳤지만 때로는 인간을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여신 차문다는

눈이 푹 꺼지고 주름진 얼굴에 뼈마저 앙상하다.

 

문둥병과 굶주림으로 늙고 병든 차문다 여신은.

그러나 인간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젖을 내어물려주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대부분 칼리와 같은 신을 흠모하고

그에게 엎드려 숭배한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편으론 차문다 신의 모습에 감동하고

그런 삶의 모습을 칭송한다.

 

차문다신은 바로 우리 어머니 모습이다.

잘 배우지는 못했어도 모든 기쁨, 슬픔, 아픔, 사랑을 초연해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는 분들이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가난과 살을 에는 고통과 삶의 분노를

안으로 삭여내 사랑으로 정화시켜내는 분이다.

 

그 삶 속엔 불가능이 없다.

가눌 수 없는 힘이 있다.

비움과 사랑의 힘인가?

 

우리 인간 내면의 양면성!

 

인간의 세상살이가 칼리여신을 찾게 만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 엎드려 욕망을 갈구하게 만든다.

그러나 거기엔 인도에서 그랬듯이 잔혹한 피와 전쟁이 수반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 차문다 여신!

그의 고통과 시련은 표현 할 수 없는 환희와 밝은 빛으로 충만한다.

 

   - 도인학교 블로그 청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