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풍선

내가 사는 이야기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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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이/삐딱이의 시선(회사)

2020. 3. 18.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장비를 개조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맞다, 나는 기계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개조하는 일을 누구에게 지시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였다. Q대리는 A차장에게 이 내용을 보고 하는 중이었다. 이런 경우 대안이 2가지 이상이 있다면 대개는 어떤 제약조건이 있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를 짚은 다음에 한쪽으로 기우는 대안을 취하거나 버림으로써 의사결정을 한다. 대안이 겨우 2가지라면 무척 심플하다. 일단 결정해놓고서 상사에게 확인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대화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차장님, 이래서 어느 팀에게게 장비를 개조하라고 해야할지를 먼저 결정해놓고 C부장(조립부를 맡고 있는 책임자)에게 이야기(지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D팀은 현재 밖에서 다른 공사를 하고 있어서 대응이 안될 것 같고, E팀은 자기네가 하던 게 아니라서 품질에 대한 개런티(GUARANTY)를 하지 않을 것 같고, 천상 F팀에게 맡겨야 할 것 같은데, 그럴려면 C부장이 직접 감독을 해야 하는 거라서.."

 이미 Q대리는 나름의 안을 결정해놓고서 A차장에게 확인을 받으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A 차장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장비를 개조하는 거는 누가하라고 하던데?"

 전혀 몰랐다는 듯이 말한다.

 "저번에 전무님께서 이리 오셔서 지시를 하고 가셨습니다. 그 때 차장님도 그자리에 있었는데요"

 이렇게 Q대리는 대답을 한다.     

 어쩌면 A차장은 그 때의 일이 기억을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하느라고 지시하는 걸 못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면 대화는 쉬워진다.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이러면 좋을 텐데. A차장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 장비를 개조하는 이유가 뭐냐? 원래 납기가 내일 모레인데, 원래 지정한 장비를 다른 데로 돌려서 안되니까 그 장비를 개조해서 대응하려는 거 아닌가? 그러면 언제까지 개조하겠다는거지?"

 "앞에 말한, E팀에 일을 맡기는 데 동의 하시면 C부장과 협의해서 일정을 잡아서 보고하겠습니다."

 "일정이 먼저 나와야 될 거 아니냐. 그런데 어차피 그 일정은 물 건너간 거 아니내!"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짜증이 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E팀에게 개조 업무를 맡기겠다는 거야? 안 맡기겠다는 거야?'

 A차장의 관심은 HJN이 지시한, 00일까지 장비를 납품하라는 것에만 쏠려있다. 이미 그 전에 납기일을 어긴 거는 보고가 되었고, 대안을 수립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날짜만 요구하는 상황이 된 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고. 어떤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대화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어떤 책에서 본 내용 중에 이런 게 있다. 귀다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건 듣기를 말하는 것 보다 두 배로 더 많이 하라는 뜻이라고. 앞서의 내용을 보면, A차장이 제대로 듣기만 잘 했다면, 바로 결정하든지, 아니면 "내가 C부장하고 이야기 해볼게"라고 하면서 1분도 걸리지 않을 대화였다. 그러나 대화의 마지막 부분처럼 의사결정에 대한 질문을 했으나 그와는 약간 다른 대답을 하면 대화가 꼬인다. 갑자기 대화는 납기 변경은 승인을 받았네, 누가 승인을 했네, 보고를 했네, 보고를 못 받았네.... 대화의 소모가 시작된다. 토요타생산시스템(TPS Toyoda Product System)에서 흔히 말하는 낭비가 된다. 궁금한 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해도 되는 데, 모르는 게 있었으면 인정하고 설명해달라고 하면 되는데, 따지듯이 하니 스트레스가 된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보고하는 것 보다 보고 받는 게 많아진다. 그러면 더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잘 요약해야 그 윗 상사에게 요약해서 보고 할 수가 있다. 중간 관리자가 해야 할 임무는 잘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