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카노푸스

相民 윤봉택 2016. 5. 15. 09:19

2016. 05. 15.

 

남극노인성

조선 왕조시대 노인성은 무엇이었나

 

조선의 왕들이

그토록 흠모했던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

 

우리나라에서는

서귀포시에서만 관측이 가능한

이 남극노인성을 보기 위해

<토정비결>저자 이지함은 한라산을 세번이나 찾아 왔었다.

 

먼저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은

 

태종실록 21, 1411(태종 11) 111일 기사 

태종은 문헌통고에 따라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단을 쌓고 소 한 마리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노인성제에 대한 규례를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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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5, 1413(태종 13) 68일 기사

예조에서 노인성제를 지내는 법도를

개정하여 주상께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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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21, 1423(세종 5) 88일 기사

세종이 직접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과 향교의 공자께 지낼 제사(석전/釋奠) 등에

쓰일 향과 축문을 전하여 지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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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32, 1426(세종 8) 519일 기사

예조(현재 교육부.문광부)에서

송나라 원풍의 예제에 따라

노인성제를 지내겠다고 주상에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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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47, 1430(세종 12) 219일 기사

예조에서 노인성제를지내는 제단 등을

수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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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22, 1460(세조 6) 106일 기사

세조가 개성(황해남도)에 행차하였을 때

개성의 기로(耆老)와 유생들이 남문 밖으로 나와서

운문()으로 노래하여 임금을 칭송하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관서(關西) 천리에 추성(秋成)을 경축(慶祝)하니,

봉연(鳳輦)과 예정(霓旌)이 옥경(玉京)에서 내리도다.

바다와 산악은 빙 둘러서 지고(指顧)에 돌아오고

풍운(風雲)은 뒤얽히어 함령(咸靈)을 돕는다.

누가 순성(巡省)이 편안히 노는 것이 아닌 줄을 알랴?

숭고한 자리에 있으면 감히 편안할 수 없음이리라.

만년을 가져서 성산(聖算)을 더하니

남극(南極)의 노인성(老人星)이 빛나도다."

하였다

詞曰

關西千里慶秋成,

鳳輦霓旌下玉京

海岳周遭歸指顧,

風雲轇輵助咸靈

誰知巡省非惟逸,

自是崇高不敢寧

擬把萬年增聖算,

煌煌南極老人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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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06, 1765(영조 41) 1011일 기사

영조가 경현당에 나아가 몸소 세손(이산)의 술잔을 받다

 

들어와 절하는 자리에 나아와서 먼저 치사(致詞)를 하였는데,

치사에 이르기를,

"세손 신() 이산(李祘)은 이에

수성(壽星)이 동쪽에 비추임을 만났으니

성상의 연세가 높으시고,

종국(宗國)에 경사가 넘치니

팔방(八方)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지행 순덕 영모 의열 장의

홍륜 광인 돈희 체천 건극 성공

신화 주상 전하께서 다스리신 지

사기(四紀)에 교화가 나라에 퍼졌습니다.

지극히 효성스럽고 어지시며,

거룩하고 밝으십니다.

한결같은 생각이 공경하고 삼가며

매양 겸손하고 억제하는 마음을 간직하셨으므로,

황천(皇天)이 덕 있는 자를 도와 주어

높으신 연세 8순에 이르러서,

언덕과 같고 구릉과 같으시며

소나무와 같고 잣나무와 같으신데,

다행히 경사스런 모임을 당하매

오래 모시고 싶은 마음이 더욱 절실합니다.

보잘것없는 간절한 마음을 힘써 좇으시어,

정성과 예()가 모두 화합하게 되었는데,

이날 잔을 받들어 선열을 더욱 빛내니,

신은 경사롭고 기쁜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천천세(千千歲) 장수하실 것을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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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6, 1797(정조 21) 61일 기사

대신들과 영성과 수성에 대한 제사 여부를 논의하다

 

제사는

바로 영성(靈星)과 수성(壽星)에 제사 지내는 것이며

수성은 바로 노인성(老人星)이다.

간혹 추분일(秋分日)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더러는 천추절일(千秋節日)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만수하며 끝이 없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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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6, 1797(정조 21) 616일 기사

정조가 영성 및 노인성제를 지내기 위해

성단향의를 편찬하였다.

 

정조가 영성(靈星)과 수성(壽星)에 대한

제사를 다시 시작하려 하면서

무릇 역대의 전례(典禮)로서

두 별의 사전(祀典)을 언급한 것을 널리 채집하여

한 책으로 엮어 책상 위에

비치하고서 때때로 살펴보았다.

 

마침 예조 판서가

오례의(五禮儀)에 기재된 의절(儀節)을 따라

두 별에 대한 제사를 일찍 거행할 것을 청하니,

주상이 대신(大臣)과 유신(儒臣)에게

헌의(獻議)하도록 명한 뒤

다시 전일에 편집한 책을 가져다

그 의절 가운데서

오늘날에 시행할 수 있는 것을 고르고

또 악가(樂歌)와 악무(樂舞)를 붙여서

성단향의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하여 앞으로 거기에 맞추어 시행하려다가

마침내 일이 많아서 행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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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이 성단향의를 편찬하게된 사연은

 

성단(星壇)

영성(靈星)과 수성(壽星)을 제사하던 단()이다.

영성은 바로 농상(農祥)으로 이 별에 제사하는 것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고,

수성은 노인성(老人星)으로 이 별에 제사하는 것은

장수(長壽)하기를 바라서이다.

 

이 두 별에 대한 제사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소사(小祀) 조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데,

영성에 드리는 제사는 추분(秋分) 후 진일(辰日)에 지냈고,

수성(노인성)에 드리는 제사는 추분에 지냈다.

 

재령(齋令)은 산재(散齋)치재(致齋)5일이고

헌관(獻官)3품관으로 임명하며,

한성부에서는 길을 청소하고

장생령(掌牲令)은 희생의 상태를 보고하였다.

 

이외에 준뢰(尊罍)를 진설하는

위치, 제사를 드리는 절차가 모두 그림과 설명이 있었다.

이로 보아 국초에는 분명히 고정적인 제사였는데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간에 폐지되고 시행하지 않은 것이다.

혹자는

제후국은 천지와 성신(星辰)

제사 지낼 수 없는 것이므로

국초에 행하다가 곧 폐지한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옛 제도를 상고(詳考)해 보지 않고 하는 말이다.

() 나라 제도에는 영성사(靈星祠)의 제사에

현읍(縣邑)의 영장(令長)이 참여하였고,

() 나라의 사령(祀令)에도

현읍은 영성에 제사한다.” 하였으며,

 

하해(何楷)세본고의(世本古義)에도

역대로 영성을 제사하는 일은

전적으로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므로

언제나 군읍(郡邑)에 속하였다.” 하였다.

 

이를 보면 영성은 군현에서도 제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후국은 제사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군망(群望)’

대하여 풀이하는 이가 성신(星辰)과 산천이다.”

한 것을 보면,

제후가 해당 분야의 성신에 제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고례(古禮)에도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수성이 추분에 나타나는 위치는

실로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의 남쪽으로

바로 우리나라의 분야에 해당하니,

어떻게 제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농업을 중시하고

어버이의 장수를 비는 마음에서

이 두 별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여

국초의 법을 회복하기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위로는 주송(周頌)의 사의편(絲衣篇)에서부터

아래로는 역대(歷代)의 사지(史志)에 이르기까지

이 두 별의 사전(祀典)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널리 수집하여

한 책으로 엮어 책상 위에 비치하고 수시로 살펴보았다.

 

마침 예조 판서가 국조오례의에 실려 있는

예법에 따라 영성과 노인성 두 별에 대한

제사를 일찍 거행할 것을 건의하였으므로,

내가 다시 신중하게 검토하고

관각(館閣)에 지시하여

널리 상고한 다음 대신(大臣)과 유신(儒臣)들에게

헌의(獻議)하도록 하였더니 의견이 모두 같았다.

 

그리하여 지난날에 편집하였던 책을 가져다가

그 가운데 오늘날 시행할 만한 예절을 고르고

또 제례에 사용할

악가(樂歌)와 악무(樂舞)를 붙인 후

성단향의(星壇享儀)라고 이름하여

훗날 이를 시행할 때 참고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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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5, 1822(순조 22) 1019일 기사

제주·대정·정의 백성들에게 위유하는 교서를 내리다

순조 임금이

제주·대정(大靜정의(旌義) 백성들에게 유시하였다.

그 교서에,

"! 너희 탐라의 백성들이여.

너희들이 사는 곳은 큰 바다 건너 외딴섬의 먼 고장이다.

굶주리면 먹여주기를 기대하지마는 혜택이 미치지 않았고,

궁핍하면 구제해 주기를 기다렸지마는

인정(仁政)을 베풀 겨를이 없었다.

이를 비유하자면,

마치 어린아이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을 때

항상 품에 있는 아이보다

먼저 울면 젖주고 싶고

어루만져 주고 싶은 심정과 같아,

남쪽을 바라보는 일념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유행의 괴질(怪疾)

천리의 바다 밖에까지 넘어가

마을에서 마을로 전염되어

마치 불이 들판을 태우듯이 한 바람에

3(三邑)의 사망자가 거의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 이게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예로부터

너희들의 고장은 수성(壽星)이 비쳐

거주민들이 질병이 적다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번 재앙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진실로 내가 덕이 없어

상서로운 기운을 이끌어 먼 곳까지

널리 감싸주지 못한 소치이므로, 두렵고

놀라워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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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30, 1828(순조 28) 11일 기사

왕세자가 순조 임금에게 올린 치사와 전문의 내용이다

대전에게 표리를 올리는 전문에는 이르기를,

"장수(長壽)도 반드시 누리시고,

복록(福祿)도 반드시 얻으며,

명예도 반드시 얻으시어

대덕(大德)의 큰 광채를 우러러 보았으니,

 

한해의 첫달 정월(正月)의 첫날의 아침에

새로운 휴징(休徵)이 풍성히 이르는 것을 맞이하소서.

상서로운 기운이 남극성[壽星]에 드리우니,

경사가 동방(東方)에 넘칩니다.

삼가 생각건대,

(王業)을 크게 이어받으셨으니,

아름다운 운회(運會)를 누리소서.

태어나신 해가 공성(孔聖)과 같은

경술년 구갑(舊甲)으로서 39년이 되었으니,

()나라 운명이 펼쳐나가듯 하는 때를 만나

앞으로 천억만 년에 이를 것입니다.

세월이 바뀜에 따라 해옥(海屋)

더욱 산대가 더하여지기를 빕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은 세자로서는 부끄러운 신분이나

정성은 오래도록 사시기를 바랍니다.

신기(宸機)를 대청(代聽)하게 되니,

비록 찬양(贊襄)하는 공은 모자라나,

낭함(琅函)을 새로 가지어 감히 송축하는 정성을 올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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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30, 1828(순조 28) 212일 기사

왕세자가 대전과 중궁전에게 술잔을 올리다. 진작 전문

 

왕세자가 자경전(慈慶殿)에 나아가서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에게 술잔을 올렸다

 

대전에 올린 제1(第一爵)의 치사에 이르기를,

"신기스러운 공()이 널리 퍼졌고

지극한 덕이 높이 빛납니다.

경사는 양전(兩殿)에 넘치고,

기쁨은 8(八方)에 고루 내렸나이다.

봄기운 같은 온화함이 골고루 펼치고,

수성(壽星)이 빛을 발휘하였습니다.

성인(聖人)에게는 근심이 없으니

만세(萬世)토록 강녕을 누리소서."

 

중궁전에 치어하기를,

"경사스러운 해 따스한 봄날에

나는 노래자(老萊子)의 색동옷을 입었습니다.

왕비가 계신 장락궁(長樂宮)에는

새로 장춘주(長春酒)가 익었는데,

남극(南極)의 수성(壽星)은 빛을 더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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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30, 1829(순조 29) 212일 기사

순조 임금이 내진찬(內進饌)을 자경전(慈慶殿)에서 받았다.

 

치사(致詞)를 올렸는데, 이르기를,

"지극한 덕이 하늘을 감동하니,

수성(壽星)이 밝게 비치어 모든 별이 모입니다.

임금의 교화가 펼쳐진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워

자손들을 보호하고 길러줍니다.

천지의 화기가 상서롭게 빛나니

아름다움이 술잔에 넘칩니다.

용과 구름이 경사스럽게 만나니

헌원(軒轅)의 북과 순()의 오현금이

서로 화응(和應)합니다.

만년 억년 내려 가도록 해마다

해마다 이런 자리를 베풀 것입니다.

지극한 덕이 융화하여

크게 하늘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고 강녕하시니

경사가 우주에 넘칩니다.

이 거룩하신 4()18천 년의 시작입니다.

중원(中元) 이 장수(長壽)하시는 것을 도우니

한달 내내 이 잔치를 열 것입니다.

저 북두성 술잔을 기울여

동해 바다 물을 잔질하여

우리 성상 내외의 무한히 오래 살 것을 축하할 것이니,

어찌 이 정성과 사랑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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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1, 1894(고종 31) 27일 기사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 외진연(外進宴)을 행하였다.

 

주상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막차(幕次)에서 나와 자리에 오르고

왕세자(王世子) 및 종친(宗親), 문무 백관(文武百官)이 예()를 행하였다.

 

주기(酒器)를 올리자 헌가(軒架)로는 여민락(與民樂)’을 연주하고,

찬안(饌案)을 올리자 등가(登歌)로는 만유천세지곡(萬有千歲之曲)’을 불렀으며,

무동(舞童)들이 들어와서 헌선도(獻仙桃)’를 추었다.

 

별행과(別行果)를 올리고 근시(近侍)가 화반(花盤)을 올리자

등가로는 만화신지곡(萬花新之曲)’을 부르고 무동들이 들어와서 심향춘(沈香春)’을 추었으며,

염수(鹽水)를 올리자 등가로는 불록무강(茀祿無疆)’을 노래하고,

소찬(小饌)을 올리자 등가로는 수천명명지곡(受天明命之曲)’을 부르고

무동들이 들어와서 무고(舞鼓)’를 추었다.

 

악사(樂師)가 섬돌에 올라가서 문덕(文德)’ 악장(樂章)을 부르자

왕세자가 제1()을 올리고 치사(致詞)를 읽고 나자 상이 술잔을 들었다.

승지(承旨)가 전교(傳敎)를 선포하기를, "술잔을 들어 축하하는 때이니 왕세자와 경사를 함께 하노라." 하였다.

등가로는 해옥첨주지곡(海屋添籌之曲)’을 부르고 무동들이 들어와서 제수창(帝壽昌)’을 추었다.

()을 올리고 미수(味數)를 올리자 등가로는 수연장지곡(壽延長之曲)’을 부르고,

만두(饅頭)를 올리자 등가로는 만수무강지곡(萬壽無疆之曲)’을 불렀으며,

탕을 올리자 등가로는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을 부르고

()를 올리자 등가로는 수제천지곡(壽齊天之曲)’을 불렀다.

 

반수(班首)인 영의정(領議政) 심순택(沈舜澤)이 제2작을 올리고 치사를 읽고 나자 상이 술잔을 들었다.

승지가 전교를 선포하기를, "삼가 경들의 술잔을 들라." 하자,

등가로는 풍운경회지곡(風雲慶會之曲)’을 부르고 무동들이 들어와 초무(初舞)’를 추었다.

탕을 올리자 등가로는 만방함녕지곡(萬邦咸寧之曲)’을 불렀다.

 

왕세자 및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세 번 머리를 조아리며

산호(山呼)와 천세(千歲)를 부르고 다시 산호와 천천세(千千歲)를 부르자,

헌가가 낙양춘(洛陽春)’을 연주하였다.

 

왕세자 및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국궁(鞠躬)하고 사배(四拜)하였으며,

상례(相禮)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자리에 나가니 가헌이 보허자(步虛子)’를 연주하였다.

찬안과 별행과를 올리자

 

등가(登歌)로는 수성요지곡(壽星燿之曲)’(進饌案別行果, 登歌作壽星燿之曲)을 부르고

화반을 올리자 등가로는 즙희순하지곡(緝熙純嘏之曲)’을 부르고

무동들이 들어와 헌천도(獻天桃)’를 추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남극노인(강령탈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남주노인/남극노인(해주가면극)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수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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