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이삼

서재원 2009. 4. 4. 08:57

제1편. 원시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밝혀지는 깜작놀랄 명마산 글씨 바위

 

     ( 명마산 글씨 바위 한조각)

 

 

1. 들어 가는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 인근 촌노들에 의하면 명마산에는 예로부터 글씨 바위가 있다 하는데 역시 인근에 사시는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씨는 이 바위에는 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고 이 기사가 부산 일보 등에도 기재 됐다.

그 이후로 이 바위는 인터넷 상에서 가림토 바위라고도 불리워 지기도 하는데 그뒤 많은 학자들이 찾아가 확인해 보았다 하나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글쓴이의 인근에 사시는 독자님들 역시 그곳에 찾아가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으나 글자 몇개가 한글 자모와 비슷 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가림토라고 단정할 수도 없어 더이상 관심을 포기 했다는 말을 듣고 글쓴이도 호기심에 한번 찾아가기는 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찾아 가 보니 상상외로 놀랄만한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그 바위에 새겨진 암각들은 최소한 3 ~천년전것 들이고 따라서 우리 하는님이 내리신 진본천부경 시지녹도전자 다수와 당시 한자의 모태가 되는 우리 조상들이 썼던 그림글자 금문과 그림, 그리고 지금 한글의 모태가 되는 가림토 뿐만 아니라 기림토의 어머니 신지 신획등 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어 가지고 와서 컴퓨터로 분석을 해 보자 더욱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진은 마치 홀로그램을 보는것 같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글자 다른 그림이 되는가 하면 몇번을 보고도 다시 보면 다른 글자,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따라서  19 인치 컴퓨터 모니터 상으로 다 확인 하고도 다시 46 인치 TV에 연결 확대해 보니 또 다른 글씨 다른 그림이 나타나며 그래서 이번엔 빔푸로잭터로 투사해 보니 정말 놀랄만한 그림들이 나타 났다.

 글쓴이가 찾아본 글자, 그림은 다음과 같다.

 

2. 가림토로 추정되는 글자들

 

1) △자도 몇개 보이는데 이는 하느님이 환웅께, 아니 우리 민족에게 내리신 천부인 원방각(ㅇ ㅁ△)중 하나 이며 사내와 사내의 남근을 뜻하고 인본주의를 말하는 가장 중요한 글자이며 지금 ㅅ 의 원형이다.

 

2) ㅅ 의 글자는 획등이 入 자 처럼 꺼꾸로된 글자등이 너무 많으나 이는 지금 한글의 발음기호ㅅ 이 아니라 사람의 가리쟁이인 그림으로 ㅅ 의 뜻인 남근, 서다, 솟다, 사람 의 그림이 ㅅ 으로 변하는 글자이다.

 

3) ㅈ 글자도 몇개 발견되나 이역시 현재 한글의 발음기호 ㅈ 이 아니라 ㅈ 의 뜻인 자다, 죽다 가 ㅈ으로 변하는 글자이다.

 

4) ㄱ, ㄴ 여기에 ㄱ 자가 나타날 이유가 없음으로 ㄴ 자의 각도를 꺼꾸로 쓴것이다.

 

5) ㄷ 도 나오는데 이도 현재 자음이 아니라 ㄷ의 뜻인 땅이라는 뜻이다.

 

6) ㅂ 자도 나오는데 가림토 ㅂ은 ㄷ을 세워 놓았음으로 ㄷ 과 혼동이 된다.

 

7) ㅁ 자도 나오는데 이도 물보다 높다는 뜻이며 현재 ㅁ 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8)  ㅇ 자도 다수 발견되는데 이는 하늘을 뜻하며 현재 ㅇ 의 원형이다.

 

9)  ㅇ 안에 점 찍은 글자 즉 日 자도 발견되는데 이는 현재 한자 日 자가 아니라 日자의 원형인 하늘을 뜻하는 ㅇ 안에 점을 찍거나 ㅡ 를 그은 해라는 뜻의 글자로 바로 한민족을 표상하는 글자다.

 

10) X 도 더러 나오는데 이는 알파벳이 아니라 누리위에 내리는 환웅의 빛 이며 신지녹도전자가림토 글자이다.

 

11) ㅗ ㅜ ㅏ ㅓ 같이 보는 방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음도 다수 발견되나 가림토에서 모음은 아래아점 하나 밖에 없다고 보며 있다. 또 있다해도 체계가 없으니 현재 한글의 발음기호로 보기 보다 올리다, 내리다, 저쪽이다, 이쪽이다 하는 방향표시로 본다.

 

12) ㅠ 자도 다수 발견되나 이 역시 현재 모음이 아니고 젯상, 올리다의 금문 그림으로 본다.

 

13) ㅡ 자도 많이 발견되는데 이도 현재 한글 모음 ㅡ 가 아니라 땅이라는 뜻으로 본다.

 

 

 이상 가림토로 추정되는 글자는 △ ㅅ ㅈ ㄴ (ㄱ)ㄷ ㅂ ㅇ, 과  ㅗ ㅜ ㅏ ㅓ ㅠ ㅡ 의 글자가 나타난다.

 

3. 한자 같은 글자

 

14). 한자 二 자 같은것은 수도 셀수 이 너무 많으나 二는 한자가 아니고 우리 선조들이 쓰던 金文상 上 자로 올린다는 뜻이다.

 

15) 八 자역시 수도 샐수 없이 너무 많은나 이것도 여음, 다산을 뜻하고 이는 진본 천부경 여덟의 금문이다.

 

16) 三 자 같은 글자도 나타나지만 이도 한자 三이 아니라 신지녹도전자에 나오는 빗금 세개인 환웅의 빛 이라는 뜻이다.

 

17)工 자도 나오지만 이도 한자가 아니라 하늘 아래 땅위에 서있는 사내로 사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의 갑골문이다.

 

18) 점 세개가 나타나는데 이는 화랭이(男巫)였던 환웅의 악공 풍백, 운사 운사를 의미하는 금문  글자이다.

 

19) 九자의 신지녹도전자 글자가 나오는데 이는 신지녹도전자 로 아홉. 즉 남근, 씨족을 뜻하는 업 구렁이 이다.

 

 

4. 그림

 

20) 업구렁이 그림이 있는데 이는 남근의 상징물이다.

 

21) 여음에서 아기가 나오는 그림

 

22) 난산인지 여음에서 아기를 빼내는 그림

 

(23) 다수의 한국인 얼굴

 

24)서양인 모습

 

25) 보물 항아리

 

26) 벌거벗은 여인과 남자

 

27) 새 뱃속의 새끼새로 뤤트겐 기법그림

 

28) 쇠 머리

 

29) 승냥이와 올빼미

 

30) 올라간다는 뜻의 사다리 금문

 

31) 그외 미해독 다수

 

* 물론 이상 글자나 그림은 너무 작은것이 많고 그간 너무 마모되어 컴퓨터상이나 육안으로 선뜻 알아 보기 힘든것들이 많으므로 글쓴이가 이 작은 글자를 설명하며 올릴때는 돋보기나 큰 TV로 연결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같은 글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일수도 있는데 심지어 빔프로잭터로 쏘고 봐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림이 달라 진다.

또 어떤 그림속의 부속그림이 글자로 보일 수도 있으나 글자, 그림을 새긴이들의 뜻과 동기를 짐작해 본다면 전연 관과할 것이 아니므로 여러 각도로 관찰해 봐야 한다.

 

5. 명마산 글씨 바위의 특징

 

1)  이 바위의 원 명칭은 기림토 바위도 아니고 글씨바위도 아니며 글쓰는 바위 였을 것이다.

 

2) 새긴 시기는 최소한 3~ 4 천년 전이다.

 

3) 신지녹도전자와 가림토의 어머니 신지신획과 금문을 혼용 하던 4~5 천년 시대,  한자나 가림토 조차 없던 시기의 글자를 한반도에 흘러 들어온 상민들이 그대로 썼다

 

4) 이 암각은 누게에게 보여주기 위해 새긴것이 아니다. 즉 광개토대왕 비나 어떤 충신 열사의 전적비 등과 같이 후세에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5) 새긴 장소가 마치 젯상 같이 북쪽에 병풍 같은 벽  바위가 있고 그 아래 젯상 같은 암반이 있는데 그 젯상 암반에 글자가 새겨져 있으니 그 젯상위에 글자 한자를 새겨 놓고 그 위에 술이나 음식물을 올려놓고 복을 빈 자리로 본다.

 

 6) 그 위에 장군석 이라는 남근석이 있음으로 환웅과 연관된 문자가 많다.

 

7) 암각전문가가 새긴것이 아니라 당시 천민들 아무나 새겼으므로 매우 조잡하다.

 

8) 글자의 배열이 상하 좌우가 있는것이 아니라 새기는 사람들이 아무렣게나 앉아 새겼다.

 

9) 일시에 새긴것이 아니라 수백년에 걸쳐 남이 쓴 글씨위에 덧대기로 새긴것도 많으니 꼭 대학가 술집의 낙서판 같다.

 

10) 새긴 연장도 별똥별 쪼가리나 흑요석, 그리고 그후 무쇠 징으로 새겨젔다.

 

 11) 좁은 바위 위에 여러 사람이 글자를 새기다 보니 아주 작을 글자가 많다.

 

12)  글자 그림들이 빽빽히 새겨 젔으나 너무 마모된 글자, 그림이 많아 해독하기힘든다. 그러나 글쓴이는 본론에 들어가 이 글자 하나 하나를 별도로 떼어 분석해 볼것이다.

 

 

6. 이  바위가 중요한 이유

 

이상 이 명마산 글쓴바위(글쓴이 추정. 이후 글쓴바위)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 젔나 하는 의문을 푸는 열쇄인 동시 우리 민족의 역사까지 다시 써야할 귀중한 유산으로 우리의 국보는 물론 유네스코에 보고하여 인류문화유산으로 보전해야할 귀중한 유산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유물은 우리 한반도에는 아직까지 없었고 외국에만 있었다.

 

7. 외국에서만 나타난 원시한글 의 흔적

 

 지금 일부 학계, 특히 한글학회 일부 회원중에는 세종전 원시 한글은 있을 수 없다 하며 만약 세종전 언문이 있었다면 그 흔적이 하나 라도 남아 있어야 할텐데 그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가끔씩 있었으니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4000년전 녹각에 새겨진 ㅅ ㅈ × ㅜ 등의 문자가 바로 원시 가림토문자이며


 

중국 섬서성 西安  앙소문화 반파유적지. 5천년전 깨진 질그릇 조각에서 발견된 원시 가림토

 

 ㅅㅅㅅ

 

 

ㅈ  

 

 

 

 누리라는 ㄴ 의 원형에 햇빛이 내리는 / 으로 한웅(환웅) 한 민족의

 

 

 

 

T 자가 아니로 羊족을 표시하는 양머리   

 

 

아홉의 울타리 같기도 하고

 

 

세워놓고 보면 숫자 같기도 한데  금문 갑골문 등으로 보았을 때는 아직 숫자가 생길 때가 아니지만 만약 숫자라면 6 이라 10.

 

일본 신사에 보관된 신대문자( 神代文字)는 후기 가림토이고

 

 

 

현재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 통용되는 부라미 문자 역시 현재 인도에 가보면 그대로 인데 이는  가림토가 수메르 지방을 겉쳐 인도쪽까지 흘러 들어 간것이로 보인다.

 

이상 외국에서는 원시 한글의 흔적이 있고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민족의 원 개국지인 중국 대륙에서 발견된 것이니 우리 한글의 원형이고, 신대문자는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져 그 전해준 이들이 신과 같은 대우를 받았으므로 神代文字 이며 인도 구자라트 글자는 우리와 언어 등으로 볼때 동족으로 추정되는 수메르 인을 통해 인도로 전해 졌을 것으로 본다.

하여간 공룡   발톱 하나만 발견되도 공룡이 살았아는 증거에는 충분 하므로 원시 한글의 한 글자 흔적만 있어도  원시 한글은 있었던 것이니 구지 한반도에서 유물이 나타 나지 않으니 원시한글이 없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특히 한반도는 지리 풍토 여건상 상민들이 나무나 종이 등에 써 놓았을 유물은 보전  될수도 없었을 것인에 이 명마산 글쓴바위 만큼은 유일한 석각본으로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니 더욱 중요하다.

 

 

8. 명마산 글씨쓰는 바위가 그간 무시된 이유.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귀중한 유산이 왜 숨겨져 있었으며 얼마전 재야 사학자 예대원 선생과 부산일보등  발표가 있었는데도 지금껏 별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간 이 바위를 연구 했다는 학자들의 말이다.

1). 민정음은 予爲此憫然親製二十八字라 했음으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 한것이고 세종 전에 한글이 있었다는 말은 언어 도단이다.

2).가림토 란 말은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말인데 환단고기 조차 위서라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3) 명마산 가림토 바위는 문자 또는 암각화라고 보기에는 형태의 연결 또는 단위의 구분이 어렵다.

4) 패여진 모양(단면),이나 글자 형태가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서 새겼을 때는 시간에 의한 풍화현상으로 테두리가 부드러워지는 데 비해 테두리가 날카롭게 선명하여 사람의 손에 의한 새김 보다는 암석의 형성 또는 풍화 과정에서 자연발생된 듯한 느낌이든다.
5) 바위가 놓여진 위치의 산은 약간(경사면 30도 정도) 가파른 산으로 바위의 재질이 인근한(8키로 정도) 팔공산의 흔한 화강암이 아니라 그 산(명마산)의 주된 구성 암석인 퇴적암으로 바위가 놓여진 위치에서는 암반이 흔하게 노출되지 않은 지점이라서 유독 이 바위에 가득 글귀 또는 암각화를 새겼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6)추정 : 고대 문대 또는 암각화로 사람의 의한 창작물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럴 경우 문자 또는 그림으로 고고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간혹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게 된 것 같다.

 좀더 세밀한 조사를 통해 밝혀 볼 필요가 있음

 

7).그러나 한편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8).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경산=정철수기자 csjung

 

그러나 그 가림토를 인정 하는 분들 조차도 아직껏 연구하여 발표한 실적은 없는것으로 안다.

따라서 글쓴이는 위 학자들의 이론을 뒤업고 아래와 같은 순서로 원시 한글의 존재와 그 만들어진 동기까지 밝힌다. 우선 지금도 훈민정음전 원시 한글이 있을 수 없다는 분들을 위해 다음 글 부터 제시 한다.

 

1)훈민정음은 予爲此憫然親製二十八字라 했음으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 한것이고 세종 전에 한글이 있었다는 말은 언어 도단이다.

 

 먼저 글쓴이 카페 '가림토 해독'에서도 말했지만 훈민정음은 분명 세종이 새로 28 자를 창제한것이지만 그것은 전연 무에서 창조한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글자를 가지고 새로 창제한 것이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면 지금 전투기나 보잉 747 여객기는 분명 라이트 형제가 프로펠러로 만든  비행기가 아니라  제트엔진이니 그 추진 방법서 부터 다른 현대인이 창작한 비행기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원리, 즉 공기를 앞에서 빨아 뒤로 밀고 날개로 나는 원리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원리를 모방한것이다.

또 자동차 페차장에서 각 차의 부속을 빼어 헌 차 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었다 해도 이는 먼저 헌차의 부속을 쓴것이지 전연 無 에서 창조한 것은 아니다.

이 세종전에 이미 원시 한글이 었다는 말을 증명 하기 위한 몆가지 증거를 제시  한다.

 

(가) 字倣古篆

1) 훈민정음은 非新字也 (훈민정음은 새 글자가 아니다.) 字倣古篆(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다)

이는 세종말씀이다.

2)象形而字倣告篆 ( 그 형태는 옛 글자를 모방했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이다.

 

이에 대해 한글학회 회원중에는 옛글자를 모방했다는字倣古篆 은 원시 한글이 아니고 한자나 다른 나라 글자라 한다. 즉 세종이 우리 조상이 쓰던 글자를 모방해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말에는 세종을 모독 한다며 쌍지팽이를 집고 일어 서면서 세종이 다른 나라 사람의 조상이 만든 글자를 모방했다고 우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외국인 조상이 만든  글자를 모했다는 말의 반론이다.

 

1)古人 이란 말은 자기 조상이 아니면 쓰질 않고 

2) 한자나 일본 글자에는 ㅇㄴㅂ 없다.

3)알파벳에는 ㄱ ㄴ ㄷ ㄹ ㅂ ㅅ ㅈ ㅊ ㅎ 등이 없다.

4) 이외 당시 몽골, 여진 어느 나라 글자도 한글과 닮지 않았다.

 

(나) 최만리등 상소문중

 

1) ...諺文皆本古字非新字也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

 (...언문은 다 옛자를 근본으로 했으므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하시는데,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것을 모방했다고 하나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은 옛것과 달라서 실로 근거한 바가 없사옵니다.

 

2)...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

 (...전 조정(고려?) 때부터 있었던 언문을 빌려 썼다고 하나, 지금 같은 문명의 치세에는 오히려 글자를 분별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데 뜻을 두어야 하는데,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3)...上覽䟽謂萬里等曰汝等云用音合字盡反於古薛聰吏讀亦非異音乎

(대왕께서 상소문을 다 보시고 최만리 등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말하기를 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나 글자의 조합이 옛것과 다르다 했는데, 설총의 이두 역시 소리가 다르지 않더뇨? )

 

4)今此諺文合諸字而並書變其音釋而非字形也

(...지금 언문은 모든 (옛) 글자를 합하여 아울러 쓰고 그 소리의 해석만 변경하였으니, (한문) 글자의 형태가 아닙니다.)

 

5) 借使諺文自前朝有

(...전 조정 때부터 있었던 언문을 빌려 썼다고 하나...)

 

 6)...况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 ...하물며 언문은 문자(한자)와는 맹세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전용하는 말일 뿐이옵니다.)  

 이상 글을 제시 했는데도 세종전 원시 한글이 없다고 우기는 분은 세종이나 정인지는 순 거짓말 쟁이 이고 또 세종실록을 위서로 보는가?

 

2).가림토 란 말은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말인데 환단고기 조차 위서라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환단고기가 필사 과정에서 가필도 많지만 진필도 많다는 증거를 글쓴이는 30여 가지를 밝힌바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가림토가 허위냐 아니냐를 따 지기 전에 그 가림다와 가림토 라는 말이 두가지로 전해 온다는 사실로 부터 가림토가 실재 했다는 증거를 든다.

 

(1) 가림다(加臨多)

가림다란 말은 이조 연산군때 사람 이맥이 전해지는 사서를 보고 쓴 환단고기 소도경전에 있는 말이고 이는 필자의 졸저 등에서 밝힌바 있지만 한자의 뜻으로는 말이 않된다. 즉 加 는 더할가 이고 臨은 임할 림 이며 多는 많을 다 이다. 이게 말이 되는 단어 인가?

 

그러나 ㄱㄴㄷ..ㅎ 속의 뜻과 우리 뿌리 말을 알면 쉽게 이해가 간다. 즉 아기들이 낮가림을 한다는 말은 분별 한다는 말이고, " 이것으로 인사말을 가름 하겠습니다" 에서 가름은 인사를 대신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검둥이, 감둥이가 같은 말이고 파릇파릇, 퍼릇퍼릇, 푸릇푸릇, 포릇포릇등 ㅏ ㅓ ㅗ ㅜ ㅣ ㅡ 등 아래아 점을 발음으로  모음이 혼동되던 시기의 아기들 낮가림이나 인사말 가름은 같은 말이고 이는 분별하여 대신 한다는 말이니 모든 사건의 표현인 말을 분별 대신 한다고 할때 말의 대신이 가림다가 된다.

여기서 '다' 는 4 백년전 훈몽자회만 보더라도 地는 따地가 아니라 다地 이다. 즉 소주가 쏘주가 되고 번데기가 뻔데기가 되듯 지금은 격음이 되어 따지 이지 원래 땅은 였다.

이는 文字라는 한자가 생기전 우리말이 바로 가림다 였다.  

따라서 이 원문을 필사한 이맥도 그 加臨多 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는채 그대로 필사 했을 것이다.

 

(2) 가림토(加臨土)

가림토라는 단어는 고려때 사람 행촌 이암이라는 분이 전해오는 사서를 보고 쓴 단군세기에 있다.

이 加臨土는 위 加臨多의  와 土자가 다를 뿐이고 이 加臨土의 한자 뜻으로도 역시 말이 되지 않으니 그 글을 필사한 이암도 加臨土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필사 했을 것이다.

 

그러나 加臨土는 위 加림多의 땅 이라는 우리말 '다'를 土로 바꿨을 뿐이니 같은 말이다.

따라서 가림다, 가림토는 같은 말이고 이렇게 먼저 글을 필사 하는 이들 조차도 무슨 뜻인지 몰랐던 단어를 그대로 필사 했다는것은 가림다, 가림토가 필사가 들의 위작이 아니었다는 말이며 또 그들이 보던, 전해 오는 사서가 달랐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환단고기 조차 이런 부분은 위서가 아니란 말이 된다.

즉 위서나 가필가들은 구태어 자기가 모르는 단어로 위서를 만들지는 않는다.

 

참고로 하나더 말한다면 위 가림다를 쓴 이맥은 가림토를 쓴 행촌 이암의 12 대 종손이다. 그는 너무나 강직하여 연산군에게 비위를 맞추지 못하고 충언을 했다가 귀양살이 까지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기 12 대 조상 이암이 쓴 가림토 라는 말이 있음에도 구지 가림다라 한 이유는 자기에게 전해지는 사서는 가림다였기 때문에 강직한 그로써는 조상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신껏 필사 한것으로 본다.

 

 

3) 명마산 가림토 바위는 문자 또는 암각화라고 보기에는 형태의 연결 또는 단위의 구분이 어렵다.

명마산 석각본이 광개토대왕 비나 그외 충신 열사비 처럼 후세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것 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의 착각이다.

이 석각본은 대략 3~천년 당시 왕이나 소의 지식층인 선비는 지리 여건상 경주나 대구 등에 살았겠지만 천민이었던 무당, 풍각쟁이, 남사당 패들은 당시 앞산과 뒤 명마산 사이에 개울물 밖에 없는 좁은 골에 여러 세대에 걸처 몰려 살면서 각자 당시  쓰던 그림글자 금문(金文), 그리고 그림이 글자로 변하는 신지녹도전자(神誌鹿圖篆字), 신지신획(神誌神劃), 그리고 금문이 한자로 변하는 갑골문과 그림을 한두 점씩  젯상 바위에 새겨놓 그 위에 제물을 바치며 자신의 복을 빌기 위해 새겨진 것이니 체계가 서 있을 수 없고 그것이 오히려 더 진실된 기록이다.

즉 어떤 체계가 있는 비문이면 조작된 사연도 있을 수 있으나 이 젯상바위 위의 석각본들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으니 진실일 것이고 이 석각본을 종합 분석해 보면 당시 사람들의 환경과 사고를 그대로 짐작 할 수 있다.

 

4) 패여진 모양(단면),이나 글자 형태가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서 새겼을 때는 시간에 의한 풍화현상으로 테두리가 부드러워지는 데 비해 테두리가 날카롭게 선명하여 사람의 손에 의한 새김 보다는 암석의 형성 또는 풍화 과정에서 자연발생된 듯한 느낌이 들었든다.

글자가 자연 발생적이라? 이는 시각장애자가 위 사진만 더듬어 봐도 사람이 새긴 글자임을 알수 있는 터무니 없는 말이다. ㅎㅎ

오히려 이 암각은 그간 풍화작용에 의해 글자. 그림들이 마모되어 해독하기 힘든것이 더 많다.

그렇다면 그 당시 쇠 징도 없거나 시원치 않았을 당시 강한돌로 새기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이는 절대 애들 작난이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5) 바위가 놓여진 위치의 산은 약간(경사면 30도 정도) 가파른 산으로 바위의 재질이 인근한(8키로 정도) 팔공산의 흔한 화강암이 아니라 그 산(명마산)의 주된 구성 암석인 퇴적암으로 바위가 놓여진 위치에서는 암반이 흔하게 노출되지 않은 지점이라서 유독 이 바위에 가득 글귀 또는 암각화를 새겼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글바위 위쪽 남근바위(장군바위) 나 더 올라가 갓바위( 당시는 불교가 들어 오기 전이니 갓바위 부처는 없었을 것임) 암석같은 화강암이 아닌것은 사실이나 그 부근에서 그런 글자를 새겨 놓을 장소는 그곳 밖에 없다.

즉 그 글 바위는 후세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자신의 복을 기원하기 위해 새겨 놓은 것으로 그들은 암석 재질이 단단한 화강암이냐 아니냐는 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글씨를 쓴  바위가 젯상 노릇을 했으며 우리가 제사 지낼때 북쪽을 향해 병풍을 치듯이 북벽에도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재질이 비슷해 보이는 다음 석각본을 제시 한다.

 

 

이 그림은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국보 285 호 이다.

 

  

 

 6)추정 : 고대 문대 또는 암각화로 사람의 의한 창작물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럴 경우 문자 또는 그림으로 고고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간혹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게 된 것 같다.

 좀더 세밀한 조사를 통해 밝혀 볼 필요가 있음

 

그저 고대 암각화라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있을것 같아 부산일보등에서 기사화 했다는 말인데 어떻게 고대 유물을 연구 해 보지도 않고 이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는가?

 

 7).그러나 한편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8).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경산=정철수기자 csjung

 

지당한 말씀들이다. 따라서 글 쓴이 이 분석 말고도 더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 2 편은 본격적 분석이다.

우리는 그곳을 보존하고 아직은 알려지지않기를 바람니다
각단체에서 나름 해석을하여 공개를 하고있는데 이것자체도 불쾌함니다
우리는 문자를 오래전부터 해독 하였으며 그곳에대한 모든것을 알고 있음니다.

모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자기네 교리에 유리하도록 해석을하여 행사때 신도들에게 설교를 하는것을보고 신도들앞에서 그교주를 톡톡히 망신을 준일도 있음니다
.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하거나이득을 위해서 무속행위를 한사람들 대다수가 좋지않은 결과를 초래했음니다
.
선생님또한 전혀 맞지않는 내용을 올리셧는데 우리는 굉장히 불쾌함을
느낌니다
그곳은 오랜세월동안 인간들에게 수많은 시달림을 받앗음니다
이런식으로 이치에 맞지않는 내용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그곳을 또다시 파괴하려는 역사 왜곡자들에의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임니다
.
어떤연유로 그곳을 알게되엇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땅의
먼훗날을 위해서
알림을 하지말아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