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

서민 2015. 1. 6. 23:57



2001년 9월 25일부터 10월 21일까지 "옛택견"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과 "감투바위"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의 논쟁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흥미로운 논쟁이라는 것 정도로 간주되고, 이네 관심에서 사라진 듯 하다. 논쟁이 이루어진 장이 애초 어딘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조민욱의 무예사랑방"이라는 조선일보 카페(cafe.chosun.com/muye)의 "무림고수"라는 방에 가보면 게시글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카페에서의 날짜는 분명 2001년 9월의 그 날짜에 게시된 것이 맞는데, 어찌된 일인지 날짜 순서가 논쟁 순서와 거꾸로되어 있어 이 카페에서도 어디선가 글을 퍼온듯 하다.

아무튼 이 논쟁은 송덕기 택견의 원형이 무엇일까에 대한, 결련협회측의 주장과 1980년대 초 송덕기옹에게서 직접 택견을 배운 사람간의 견해 차이가 드러난 그런 논쟁이었다. 당시 감투바위님은 결련협회의 초창기 멤버로 보이고, 옛택견님은 도기현 회장과 달리 송덕기옹에게서 이준서님과 동시에 택견을 배운 멤버로 보인다. 아무튼 요점은, 옛택견님이 보기에 결련협회의 택견도 송덕기 원형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이 논쟁은 2001년이라는 시점, 즉 그 전 해 어렵사리 만들어진 택견계의 통합 시도인 대한택견연합회가 3개로 쪼개지는 분열상을 겪으면서, 대택이 체육회 인정단체가 되고, 결련협회는 옛법을 대외적으로 소개하고 하면서 각자 천하3분지계를 추구하던 그런 시기였다. 아마도 각 협회간 논쟁도 치열하던 그 시기에 불거진 논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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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시작은 감투바위님이 지금도 택견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의구심들을 토로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첨부 화일 참조). 품밟기를 왜할까? 택견에서 강조하는 품밟기에서 나오는 택견의 힘이, 무예적으로 얼마나 가치를 갖을까? 송덕기옹에서 배웠다면서 왜 이렇게 3단체가 서로 다를까? 택견은 씨름 비슷한 민속경기라는데... 등등, 지금도 택견인이라면 의구심을 가져볼만한 의문을 그냥 피력했죠. 글 제목도 "현대 택견과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옛택견님이 1983~4년 송덕기옹에게 택견을 배웠던 사람으로서 한자 적는다는 답글이 나옵니다. 요점은, 신한승 택견이 송덕기 원형과 다르다는 것. 신한승옹은 송덕기옹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송덕기옹 왈 "한 보름이나 배웠나?") 이용복 택견도 그가 쓴 책으로 보건데 정말 아니라는 것. 품밟기가 거꾸로 되어있고, 째밟기라는게 이상하며, 차는 발 잡는게 이상하다는 것을 말하고, 중요한 논점 중 하나인 품밟기 왜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합니다. 옛택견님의 답변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즉, 시합때는 품밟기 안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개인적으로 송덕기옹에게 물어봤다는 것. 품밟기 자세는 취하되 쓸데없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시합때는 말이죠. 즉 둘이 서서 품밟기 하면서 움직이고 차는 것은 연습할 때 하는 거라는 거죠. 실전에서는 상대방의 자세에 따라 바로 서기나 엇서기를 한다고 하죠. 앞발이 정면을 향하고, 뒷발은 45도로 놓여 한발씩 전진하거나 후퇴하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택견이 무술인가? 하는 의구심에 대해서 옛택견님은 단호하게 택견은 무술이다. 관절기도 하고 다양한 손기술이 있는데 이건 격렬한 무술 아니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송덕기옹의 택견을 "웃대택견"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다른 택견들은 송덕기옹의 택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형태는 이준서님이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옛택견님은 결련협회 택견을 포함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택견들은 죄송하지만 송덕기옹 택견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있죠.

이에 그 다음날 9월 27일, 감투바위님은 결련협회 택견의 입장에서 답글을 다십니다. 그리고 자신은 1985~7년까지 송덕기옹에게 택견을 배웠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서 옛택견님의 견해, 즉 "다른 택견"들은 송덕기 택견이 아니라는 주장에 맞장구를 칩니다. 맞습니다. "현재의 택견"은 송덕기 택견이 아니라고 말합니다(대한택견과 충주택견을 염두에 둔 듯). 그리고서 "품을 무턱대고 밟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의해 밟는다는 말씀"을 송덕기옹은 자주했었다고 주장하며, 이 품밟기를 "약속", 즉 룰로 이해하는 주장을 합니다. 즉, 택견은 무술이 아니라, 타무술 고단자였던 사람들이 택견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다 보니 무술로 이해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품밟기는 무술 보법이 아니라 그냥 경기를 위한 약속이라는 것이죠. 이 견해가 바로 정낙준 사범님의 견해 그대로죠. 그래서 이 감투바위라는 분이 혹시 정낙준 사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아마도 이것은 결련협회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마니 두장 룰을 주장하죠. 이 좁은 공간에서 해야 하므로 품밟기를 하면서 할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인 결련협회의 주장입니다. 택견을 씨름과 같은 민속 놀이로 이해하는 견해죠. 단오날같은 명절에만 하는 경기같은 거라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논쟁이 그다지 뜨겁지 않았는데, 그 글이 올라온지 두시간도 안되어 옛택견님이 답글을 답니다. 여기서 핵심 논점은 택견을 민속놀이로 보는 견해를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송덕기옹이 보여주신 기술들에는 고나절기도 있고 혈도 짚는 기술도 있고, 상대방 안면을 무릎으로 가격하는 기술도 있으며, 눈찌르고, 턱을 빼고, 고막을 치는 기술들이 있는데 이런 기술들을 경기용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위험하니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서 가르쳤다는 거죠. 명치치기나 낭심차기같은 것도요.

이에 감투바위님은 이틀후 답글을 답니다. 여기에서 감투바위님은 택견을 경기 택견과 실전 택견으로 구분하죠. 품을 이용해 겨루는 형태의 택견은 민속놀이라는 것이고, 즉 이것은 경기용 택견이고, 실제로 고막치고 하는 기술도 있는데 이건 다른 택견이라는 거죠. 이런 실전 상황에서는 품밟기 안한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 역시 정낙준 사범님의 견해와 동일한 견해로 보입니다. 다만 정낙준 사범과 다른 부분은 품밟기를 도출하는 방법에 있어서, 여전히 좁은 경기장을 통한 품밟기 유도 논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1985년 첫택견 대회의 실패 이유는 경기장이 레스링 규격으로 넓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죠. 경기장 넓으면 택견 기술을 쓸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말하면서요.

이에 다시 옛택견님은 그날 새벽 답글을 답니다. "같은 스승에게 배웠어도 생각이 많이 다르군요"라고 시작하면서. 택견을 놀이로 보는 것은 무리다. 중국 무술도 명절 때 무술 시범하고 경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그 중국무술을 민속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이 말은 무술도 룰을 가해 경기를 소프트화하면 얼마든지 놀이 비슷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술의 정체성이 놀이인 것은 아니다는 주장입니다. 즉 단오때 하던 경기는 택견에서 부차적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옛택견님이 들은 경기장 규모는 가마니 두장이 아니라 멍석 두장이라고 합니다. 이정도면 꽤 크죠. 시합이 과격해지면 상대의 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 격렬한 시합이었다고도 한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첫택견 대회에서의 큰 공간에서는 택견 기술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경기장이 어떻든 승부는 손발이 닿는 거리에서 나는 것이며 경기장 크기는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하죠. 그리고 품밟기는 스텝, 즉 보법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실전이든 경기든, 어디서든 상대의 자세에 따라 내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을 송덕기옹은 많이 했는데, 이건 모든 무술에서 기본 아니겠냐는 주장입니다. 즉 저혼자 삼각형 밟기하고 있으면 안되고, 실전이든 경기든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보법을 써야 하고, 이것이 품밟기의 요체라는 것이죠. 연습할 때에는 둘이 붙어서 자세를 낮게 잡고 품밟기를 하지만, 송덕기옹 혼자 하실 때 보면 앞발은 대부분 헛발이더라는 증언도 덧붙이는 군요. 품밟기가 제일 중요하다는 송덕기옹의 말씀은, 품밟기가 안된 상태에서는 다른 기술을 배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다시 몇시간 후 감투바위님은 답글을 답니다. 자신의 "놀이"라는 말을 오해하신듯 하다며. "놀이" 대신 "경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경기택견과 무예택견을 구분합니다. 무예택견의 복원도 시급하지만 경기택견의 올바른 정립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의 주장을 합니다. 결국 무예에서 경기로 변화했다고 주장하고 그 변화의 핵심에 규칙, 즉 품밟기 규칙이 있다는 의미로 말합니다. 그리고 무예택견의 복원도 지지하지만 없던걸 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결련협회에서 흔히 갖고 있는 이준서님에 대한 폄하, 즉 박민 체육관에 오면 혼자 샌드백을 손바닥으로 치는 연습만 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게 신비한 기술을 추구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송덕기옹의 공격형 기술들을 "할아버지가 가르치다가 우쭐하셔서 하시는 기술"이라고 평가합니다. 송덕기옹이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기술을 토대로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이때 감투바위님이 말하는 "송덕기옹이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기술"들이란 '욱하지 마라' '곧은발질 하면 안된다', '나앉아라', '품을 밟아라' 등의 제약적인 말씀이라는 거죠. 그리고 멍석이라는 말씀도 송덕기옹이 했지만 가마니 두장 언급도 있었다(결련협회에서는 농취록도 있다고 하면서)고 주장하며, 여전히 그 의미는 좁은 경기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시 결련협회의 주장이죠. 특히 이준서님의 샌드백 장치기를 한풀 기술로 오해하는 부분은 아마도 그것을 안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택견의 기본 손질인데.

한 참 뒤 10월 11일 옛택견님은 답글을 답니다. 이준서님에 대해서 옹호하는 짧은 댓글이죠. 송덕기 택견을 제대로 전수받은 사람은 이준서님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송덕기옹이 살아 생전에 유일하게 인정했던 제자였다는 점을 다시 주장합니다. 이준서님은 당시 다른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기술도 많애 배웠는데, 이제 그 기술을 들고 나온다 해도 그것의 진위를 가려줄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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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을 다시 한번 보니, 이 논쟁이 그다지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게 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째는 옛택견이라는 분이 논쟁을 더 이상 끌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논점이 세간에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때문인것 같다. 당시 택견계의 논쟁은 주로 결련과 대택의 역품 논쟁, 대택-충주의 활개짓 논쟁이 위주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품밟기를 왜하는가에 대한 논쟁도 물론 있었을 것이나, 이것이 무술-경기 논쟁으로 집중적으로 논의가 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낙준 사범은 아마도 이 당시에 택견은 경기라는 입장과 품밟기는 규칙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견지하면서 논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옛택견-감투바위 논쟁에서 감투바위의 논지와 비슷하게 말이다. 실제로 결련택견과 대한택견은 택견은 놀이적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왜 송덕기옹에게 배웠는데, 이렇게 견해가 다를까? 왜 그럴까? 왜 감투바위님은 송덕기옹과의 수련 기억에서 코침치기나 안경잽이와 같은 기술보다는 품밟아라 욱하지 마라 뭐 이런 제약들을 더 기억할까? 박종관 저서에는 품밟기/활개짓 하고 바로 손기술(코침 등)이 나와버리는데, 왜 이걸 앞부분에서 안배웠을까? 제자들간에 그룹이 달랐나?

 

아무튼, 그래서...이 논쟁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사실은, 1982~1987년 사이 약5년간 송덕기옹에게 택견을 배운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이게 서로 그루핑이 되어서 각 그룹간 연계가 적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적어도 세 개의 그룹이 존재한 것으로 이해된다. 즉 (1) 이준서-고용우라는 그룹이 따로 있었고, 그런데 고용우라는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준서는 박민 태권도장에 자주 나타나 따로 혼자 연습했다. 그리고 (2)박종관 사범을 리더로 하는 학습 그룹이 존재했다. 그리고 결련협회로 알려진 (3)도기현 그룹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 각 그룹간에 상호 교류가 빈번히 없었던 듯 하다. 각기 수련 시간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감투바위님의 생각은 택견을 무술 택견과 경기 택견으로 이원화한다는 점에서 택견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에서 어려움에 부딛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논쟁은 2001년 당시에는 결론이 나기 어려운, 혹은 옛택견님의 마지막 술회처럼,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해도 그걸 입증해줄 사람이 없다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그 1년 후, 2002년 유명한 [태견] 책이 나오고, 고용우-이준서라는 인물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택견의 무술적 면모가 확인되었고, 기존 택견계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8년 고용우님의 등장은 택견의 정체성에 다시금 의문을 던지며 옛택견-감투바위 논쟁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이준서님이 박민태권도장에서 샌드백을 장으로 치는 그것이, 송덕기 택견의 코침치기이고 가슴치기이며 면치기, 사면올려치기 등 숱한 손기술의 기본 기술이다. 도기현 그룹도 이걸 안배우지는 않았을텥데....

논쟁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수능과 학력고사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이런 것에 익숙할 듯....

감투바위

옛택견

비고

택견이란 무엇인가?

놀이, 경기

무술

감투바위님은 경기택견과 무술택견을 구분함. 그러나 무술 택견은 택견의 핵심이 아니라 곁가지라고 봄

품밟기는 무엇인가?

경기 규칙

무술 보법

감투바위님의 주장에는 품밟기가 경기 규칙이고 무술 보법이 아니라는 아이디어가 있고, 동시에 좁은 경기장에서 아랫발질 피하는 동작이라는 아이디어가 동시에 공존함

품밟기는 왜하는가?

좁은 경기장에서 아랫발질 피하기

보법 연습

이준서님에 대한 견해

한풀에 경도된 분

송덕기 택견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분

경기장 넓이

가마니 두 장

멍석 두 장

 

그리고, 옛택견님이 정경화보유자의 저서 [택견원론]이나 도기현의 [우리무예택견] 또는 이용복은 [한국무예택견]보다는 박종관의 [전통무술 택견]이 더 송덕기 택견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무튼 옛택견님의 견해에 따르면, 송덕기옹의 1980년대 제자 그룹 중 이준서-고용우 그룹과 박종관 그룹이 송덕기 택견의 원형에 더 가깝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논쟁 후 1년만에 등장한 2002년의 [태견]책에 나오는 숱한 송덕기옹의 택견 영상들은 옛택견님의 견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옛택견님이 어디엔가 살아계시다면, 송덕기 택견 원형의 복원에 기여해주셨으면 한다. 이것은 아마도 택견인이라면 누구나 희원하는 바일 것이다.

 

 

옛택견-감투바위 논쟁.pdf


 

- 첨부파일

옛택견-감투바위 논쟁.pdf  
   
비밀댓글입니다
물론 감투바위라는 분은 결련택견협회의 초기 참여자로 보입니다. 이로보건대 결련협회의 공식 입장은 (1)택견을 놀이/경기로 보되, (2)품밟기는 씨름의 샅바처럼 강제된 경기 규칙으로 볼 수도 있고, (3)좁은 경기장에서 아랫발질 피하는 용도로도 볼수 있다고 초기에는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택견의 정체성에 관한 (1)은 정사범님과 동일한 견해고, 품밟기의 기능에 관한 (2)와 (3) 중에서 고민하다, 결련협회는 (3)으로 귀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사범님의 견해는 (1)+(2)이라면, 결련협회는 현재 (1)+(3)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사범님은 삼각형 밟기(품내밟기, 기본품밟기)만을 품밟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더욱이 http://cafe.naver.com/widaetaekkyeon/343 을 보시면, 송옹은 정사범님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군요. 오로지 신한승옹만 정사범님의 기대대로 움직이시네요. 1971년 동영상에만 집착하신 결과 이상한 곳으로 가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71년 동영상을 연습 동영상이 아니라 진짜 택견 경기하는 동영상이라고 굳게 믿으시고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키신 결과 다수가 납득하기 힘든 결론으로 치달으신듯 합니다만...추신하자면, 이러한 저의 논평이 정사범님의 무예적 성취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정사범님의 숱한 무술 이력을 논의하는 것이 아닐, 오직, 택견의 정체성에 관한 견해에 대해서만 국한하여 논의하는 것임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1971동영상은 경천사지 동영상인데요, 그걸 말씀하시는건지....그건 정사범님께서 택견의 전부로 확대해석하시는 동영상인데, 이게 편집되었다니...아마 82년인가 83년의 동영상이 아닐까 합니다만. 잔디밭 시연. 아무튼 문화재 된 이후의 동영상이죠. 80년대 동영상은. 아무튼 80년대 동영상이 정교하게 편집되었다는 것은 상식이다. 신한승옹은 정품밟기만 요구받았다. 이것은 정사범님의 상상력으로 보입니다. TV에서 카메라 돌리고 문화재 두 분은 서로 시연해보시라고 주문했을 개연성이 더 크죠. 1971년 영상에만 집착하시면 다른 팩트들을 못보시게 됩니다.
그리고 삼각형 밟기는 규칙이고, 다른 품밟기는 실용이라... 이상하지 않나요? 왜 삼각형 밟기만 1회만 밟으면( 안되고, 혹은 한쪽으로만 계속 밟으면 안돼고 여러번 삼각형이 나올때까지 밟아야 하죠? 다른 품밟기는 1회만 밟아서 실용적으로 써도 되고? 이상하지 않나요? 즉 발 한 번 들어 피하면 그게 접어밟기가 되네요? 여러번 안해도 되고. 왜 삼각형 밟기만 여러번 해야 하죠? 삼각형 밟기도 1회 하면 즉, 들어가면서 상대 중앙으로 한발 들여놓는 동작인데요? 그리고 한 방향으로만 계속 밟으면 앞뒤밟기 처럼되서, 스턴스 교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앞뒤로 까닥까닥 하는 동작으로서 무술에서 흔히 나오는 그런 동작이죠. 왜 이러면 안되죠? 이것도 정품밟기 동작 아닌가요? 왜 도대체 왜 삼각혁 꼭지점 댄스를 추어야 택견이죠? 거기서부터 이 거대한 오해가 생긴거죠.
문제를 계속 제기하게 되는 것은 다른건 몰라도 3)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습기 때문입니다. 송덕기옹의 택견이 진짜로 그랬는지 아무도 확증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 즉 과거의 사실에 관한 것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해야 합니다. 누가 이론으로 확증하고 하는 성격의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정사범님께서는 지속적으로 1971년 동영상에 의거해서 그러신다고 하시는데, 1971년 영상에는 정품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역품도 있습니다. 송덕기옹은 갈지자로도 앞발을 내딛기도 하죠(위대태껸의 갈지자 밟기, 대택의 역품과 흡사). 게다가 이 영상이 편집되었다고 보시면서(물론 실제로 편집되었죠, 정교한 편집은 아니지만요), 이 영상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사범님의 이론이 기대는 것으로, stuart cullins의 기록, 예용해선생의 신문 기사(송덕기옹의 간접 화법)인데요, 이러한 것들이 송덕기옹의 직접 증언이 아니라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한 서너가지 말고 다른 증언(직접 제자들의 증언, 태견 책 등등)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더 폭넓게 고찰하고서 결론을 내리셔도 될텐데요.
택견의 품밟기는 경기 규칙이다라고 하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그리고 의사진행성 발언인데요...토론 중에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만 합시다.

앞으로 여기 오지도 않을 것이고 선생도 내 블로그에도 오지 마세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1) 송덕기옹은 왜 많은 제자 중에 이준서씨를 전수자로 지목했을까요? 한풀 사람들을 통해 영상을 촬영하게 주선한 것이 이준서씨라면, 송옹은 이준서씨가 한풀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준서씨를 싫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군요. 이 질문은 어떻게 보면 그냥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나온다면........

2) 결국 충주나 대택에 비해 가장 송옹을 닮았다고 인정받는 단체는 결택입니다. 그런데 이제 결택(도기현 회장)보다 더 오랜 제자가 등장했다면 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 원형에 가장 비슷하다고 봐야되겠지요. 고용우, 이준서씨를 잇는다는 위대태껸이 가장 오래되었고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면, 다른 단체와의 교류나 자신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시도는 할 의향이 없는 것인지요. 만약 의향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또한 다른 단체인 한풀과의 관계, 손질을 배우는 무술로서의 위대태껸이 다른 협회와 비교했을 때 가지고 있는 전수 체계의 합리성, 그리고 송옹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았다는 객관적인 자료 등이 공개되면 좋을텐데.. 이를테면 고용우씨가 지니고 있는 노트라던지..

너무 개인적인 걸 요구하는 것일까요..
별볼일 없는 글을 잘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 질문에 대해서는 일개 수련자에 불과한 제가 답변할 위치가 아닌데요, 단지 추론 정도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1)과 관련하여서는 가장 오래 사사한 고용우님이 1985년 가족과 함께 도미하게 되어 국내에 없는 상태였고, 1986~7년 당시 국내에 있으면서 가장 오래 사사한 분은 아무래도 이준서님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김정윤님의 송덕기옹과의 면담을 녹취한 음성을 들어보면 "선생님께서 연세가 있으시니까...준서가 좀 부족하다고 해도 일단 전수자로 해놓고...."하면서 전수자 등록을 먼저 해놓으시라고 권유하는 부분이 나오고, 송옹께서는 당시 그러마고 대답하신 부분이 나오죠. 아마도 그 면담 녹취가 있은 후 송덕기옹께서 아마도 전수자로 등록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정도로 사유가 충분할지요? 또한 한풀을 수련한 것을 두고 택견계에서 설왕설래가 있는것 같은데요, 물론 고용우님도 한풀을 배웠죠. 이준서님도 그런 것으로 보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풀 기술이 그분들의 택견에 들어왔다고 보는 것은 다소 견해가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접한 무술이 택견이었고, 택견이 어느 정도 형성된 뒤에 타무술을 접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한풀을 잘 모르지만, 신상득님의 영상으로 본 결과에 따르면 기본 보법부터 다른 듯 한데, ...아마도 섞이기 힘든 무술이지 않나 합니다.

2)와 관련하여는 정말로 제가 답변할 위치가 아닌듯 합니다. 다만, 위대태껸에서 예전에 공개 세미나도 하고 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아마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중단된듯 합니다만....(저는 그 세미나에 참여한 적도 없고 공개된 영상 몇 개 정도만 본적이 있죠. 그래서 사정 잘 모릅니다). 우선 한풀과는 무관합니다. 아마 한풀에서 더 펄펄 뛸 걸요? 아직도 한풀 관련성 운운이 나오는 것은 이상합니다. 고용우님의 직접 전수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는 이미 알려졌고, 더 이상 자료가 필요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우님의 수련 노트는 언젠가 공개되겠지요. 신한승옹의 노트(택견 체계화 노트)도 이미 박물관 스타일로 유물처럼 공개되고 있듯이 말이죠. 세종님께서 가장 확실하게 확인하시는 방법은 고용우님과 대화 한번 하시거나, LA 한번 찾아가 보시면 아마도 확실할 것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서민님 개인적으로 정사범님과 소모적이고 의미없는 논쟁은 안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순환논리를 무장해제 시키지 않는 한-_-;;
송덕기를 거쳐간 이들 중에 누구도 그와 같은 증언을 한 적이 없는데도 '경기 중에 품밟기를 반드시 하는 것이 규칙'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아직까지 통용되는 현실에, 횡령범 이 아무개가 택견계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낍니다.

품밟기가 경기 규칙이었다는 근거는 1. Korean Games의 '택견하기' 항목에서 역삼각형으로 발을 움직이는 묘사 2. '대한뉴스'에서 송덕기가 시범을 보일 때 품밟기를 하는 모습 3. 예용해의 <한국일보> 기사 중에 품 자로 발을 놓아야 한다고 하는 부분 크게 이 세 가지인 듯한데 1. 2.는 단순한 상황 묘사와 움직임뿐으로 그것이 경기 규칙이라는 명시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특히 2.는 누가 봐도 실제 택견 경기가 아닌 기술 시연을 찍은 것이어서 해당 영상의 특정 움직임이 규칙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는 자료로써는 매우 부적절합니다. 실제 경기가 아닌 것을 따라해 놓고서는 --그런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송덕기 원형 그대로의 택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죠.
예용해 기사의 경우 문맥이나 '약속'이란 표현으로 봤을 때 품밟기가 경기 규칙이라는 판단을 도출하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만, 문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해석'일 뿐 명시적인 표현으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송덕기 옹의 직계 제자 중엔 '옛택견'과 같이 송 옹이 시합 중 품밟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을 증언하는 이가 있습니다.

송덕기의 직계 제자들이 이끄는 단체인 결련(도기현)과 위대(고용우) 둘 다 이른바 '기본 품밟기'에서 벗어나는 보법을 전수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들이 품밟기를 경기 규칙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음은 자명합니다. 한 번 만나서 잠깐 말 섞어 본 기자 1인과 다년 간 기예를 전수 받은 복수의 제자 중에 어느 쪽이 경기 규칙을 더 잘 아는가를 따진다면 당연히 후자를 말함이 상식적인 거고요.

그러니 송덕기 옹이 품밟기가 '약속'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경기 규칙'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겁니다. 품밟기의 중요성을 누누이 주입받은 제자들이 그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거나 알고도 남에게 전해주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예용해 기사의 경우 직접 인용이 아니고 간접인용으로서, 송덕기옹이 "약속"이라는 표현을 진짜로 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예용해박사가 그렇게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용해의 1964년 한국일보 기사에서 "또 택견에서 몸을 능청대며 는지르는 것도 덮어놓고 하는 것이 아니고 발을 품 자(品字)로 놓는다는 약속이 있으며"라고 기록한 것은, 는지르기 할 때에도 품을 밟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예용해 기자가 그렇게 옮겨 적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요즘 기자들은 인터뷰하면서 그대로 노트북에 키보드로 치지만, 60년대라면 수첩 들고 다니며 인터뷰하고, 수첩에 내용을 기록했다가, 집이나 사무실로 가서 다시 문장으로 정리하고, 이것을 원고지에 써서 제출하는 방식이었죠. 그래서 속기사를 대동하지 않았다면, 간접화법, 그것도 기자가 머릿 속에서 정리한 것을 르뽀 스타일 기사로 내는 거죠. 그래서 예용해 기사의 "약속" 표현은 그의 해석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용해 기자도 송덕기옹 딱 1번 만난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죠.

위대태껸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든 발질에서 걸음걸이를 하면서 찹니다. 본세 자세(결련협회의 선품 자세에서 양팔을 자연스럽게 들어올린 자세)에서, 앞손을 휘저으며 앞발을 내고(이것도 결국 품밟기죠) 뒷발로 는지르고 는지른 그 발을 거두어 새로 앞발로 놓되 끌어 당겼다가 앞으로 내어 딛으므로(이것 역시 품밟기라면 품밟기) "덮어놓고 는지르면 안되고 품밟기를 하면서(삼각형 꼭지점 댄스가 아닌) 는지르기 발질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샘이죠.
오.... 핵심을 짚어서 말씀하시네요 ㅇㅅㅇ/ 좋은 요약 감사합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0&dirId=1004&docId=183796688&qb=7Iug7ZWc7Iq5&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 참고하시길.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더군요(....근데 그게...제가 답변 단 거라...이거 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