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車城)李氏 中央大宗會

월성이씨 수분적종 차성(車城)이씨 시조와 분적종에 대하여 공개 하고자 합니다.

25 2021년 02월

25

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4. 세상의 앞에서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4. 세상의 앞에서 이영백 세상을 잘 몰랐다. 더구나 세계도 잘 몰랐다. 살아왔던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를 얕잡아 보았다. 나도 세상을 얕잡아 보았다. 그러나 참 무서운 세상이었다. 죽을 때까지의 비록 짧은 기간이겠지만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너른 공간, 세상의 앞에 서면 얼마나 행복할까? 꿈을 가진 소년으로 작은 마을에서 태동하였다. 겨우 겨자씨 같은 인생을 시작하였다. 걸음마에서부터 아장아장 걸었다. 집 앞 용마래보(洑)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들어가 놀았다. 논둑에 심어진 논둑 콩 그늘 밑에서 할딱거리는 개구리를 들여다보면서 놀았다. 동해남부선 부산가는 기차가 지나가면 오포(午砲)가 울리고 배고픈 것을 알았다.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나른 궤적인 하..

25 2021년 02월

25

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3. 책상 앞에서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3. 책상 앞에서 이영백 나는 현재도 살아 있다. 중학생 때 생 오징어무침 먹다 목에 걸려 죽을 번하였는데 지나가던 노옹이 익모초 뜯어 돌에 짓이겨 먹여 주어 목숨 건졌다. 고2때 입주 가정교사하다 11월말 연탄가스 불 피워서 가스 마시고 죽다 살아났다. 도회지 살면서 이웃사촌들과 임하계곡에 여름밤 다슬기 잡다 헛디뎌 물귀신 되다 살았다. 아직 책상 앞에 앉아 글 쓰고 있다. 젊어서 직장을 가졌는데 교사라고 하여도 잡무 핑계로 고사리 손잡고 기본부터 제대로 못 가르치다, 8년 하다 떠났다. 그 8년 경력으로 제자들이 지금 나를 찾는다. 너무 부족한 선생이었는데 그 제자들이 찾는다. 내가 가르친 것이 무엇 있다고 국가 세금만 축내다 왔는데 너무 고마운 제자들이다...

21 2021년 02월

21

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2. 즐거움 앞에서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2. 즐거움 앞에서 이영백 사람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그 즐거움을 계속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다. 인생에 돈이면 무엇 하랴. 건강이 없으면 모두가 사라진다. 우리나라 재벌 1, 2위 사람들이 돈이 없어 죽었던가? 인생에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젊은 남성으로서는 경국지색의 미에 빠질 것이고, 젊은 여성으로서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인생의 즐거움이 끝일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즐거움이란 짧게 보아서는 남녀가 화합하여 극치를 느끼는 것은 수초 동안에 불과할 뿐이다. 크게 보아서 지속적 즐거움이란 남을 기쁘게 하여 자손대대로 칭송받고 전해지는 그것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맹자(孟子)는 인생의 세..

20 2021년 02월

20

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제1부 앉음의 변명 1. 성(誠) 앞에서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제1부 앉음의 변명 1. 성(誠) 앞에서 이영백 나는 앉는다. 일상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로 확인하고 머릿속에서 정리된 일들을 자판기에 두들긴다. 글쓰기가 지루할 때면 간혹 한 번씩 앞의 벽 위를 쳐다본다. 그곳에는 액자 속에 가훈(家訓)인 외로운 한 글자가 씌어 있다. 바로 “정성 성(誠)”자다. 성 글자는 긴말이 필요 없고 “모든 일에 정성을 다 하라”는 나의 자식들에게 주는 가훈이다. 부모님 앞에 세운 비문에는 할아버지가 주신 “뒷날에 나타날 일을 미리 알아서 비밀로 적어 놓은 글인 부서(付書)”가 있다. 이들 忠ㆍ孝ㆍ誠 석 자 중에 시대에 맞추려고 충과 효는 숨기고, “정성 성(誠)”자만 두고두고 생각하며 사용하라고 외자 가훈을 남긴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 ..

18 2021년 02월

18

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0.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의 시작에 부쳐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0. 일흔셋 삶의 변명『미늘』의 시작에 부쳐 이영백 세상에 하고 많은 일 중에 고된 글쓰기를 한다. 의자에 앉는다. 누구는 의자에 앉으면 졸음이 온다하고, 나처럼 자다가도 의자에 앉으면 잠이 달아난다. 그리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자판기를 두들긴다. 무슨 일에 빠지는 동안 언뜻 머리 스치는 어휘가 있으면 곧잘 컴퓨터가 있는 책상 앞에 앉아서 메모를 한다. 낚시 끝의 안쪽에 있는 거스러미처럼 되어 고기가 물면 빠지지 않게 만든 작은 갈고리 미늘에 걸리고 말았다. 사람 사는 것이 결국 저마다 미늘에 걸리어 파닥인다. 의자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앉혀야 자기 본성을 다한다 할 것이다. 어떤 자리, 그 자리를 메꾸는 그 일로인해 뭔가 끄적거린다. 미늘로..

18 2021년 02월

18

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118. 4다마 "계룡산"을 탈고하면서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8. 4다마「계룡산」을 탈고하면서 이영백 글 쓰면서 한 고비를 넘는다. 마을 뒷산, 계룡산을 오르내리면서 인생을 얽어 살아왔다. 누가 물어왔다. “계룡산에 대하여 무슨 글을 그리 오래 쓸 수 있느냐?”고. 사실 그랬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막연하였지만 글 쓰고, 산 오르고 하다 보니 참 인생을 알아버렸다. 살았던 인생을 알았다. 수필은 묘하다. 지난 삶을 돌아보아도 좋고, 현재를 탄하여도 좋을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데 흔히 자기 고생을 글로 쓰면 책이 몇 권이나 될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평생 책 한 권 못 쓰고 죽고 말았다. 쓸 수 있으면 글로 표현하라. 그리고 책도 만들어 후손들에게 유훈처럼 전해 주라. 내가 그렇게 살았다고. 글을 쓰면 그렇게 살아왔던 흔적..

16 2021년 02월

16

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117. 올라가 봤으니 내려와야지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7. 올라가 봤으니 내려와야지 이영백 내가 사는 동네에 작은 동산인 계룡산이 있다. 그곳을 요즘 근래에 와서 “야시골공원”이라고 구청에서 명명하고, 편백나무도 심고 가꾸어 놓았다. 아울러 흙길을 조성하여 맨발로 걷기 할 수도 있다. 순환로(A, B)가 각 350m로 두 곳을 돌아오면 700m이다. 왕복하면 딱 1.4km로 젉은이로서 운동하기에 좋다. 매일 이곳을 올라가 봤으니 이제 내려온다. 도심공원 산 정상에 올라서 생각해보니 이곳으로 오르내린 것이 마치 사람들의 삶이었던 인생 같았다. 내가 오르내리면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오르내린 것과 진배없다. 그래서 더욱 야시골공원이 좋았던 모양이다. 인생의 첫걸음은 촌사람으로 살면서 헐벗음 그대로 살았다는 표현이 맞..

14 2021년 02월

14

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116. 자문자답

“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116. 자문자답 이영백 나는 무종교다. 그러나 어려서 엄마 따라 절에 자주 갔다. 그렇다고 종교가 “불교”인 것은 아니다. 다만 통달의 원리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종교적 설파방법을 이용할 뿐이다. 티베트에서 스님이 되고자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즉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배워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답하여 해탈의 경지로 이르게 하는 것이다. 마치 옛날 서당식 문리(文理)틔우기 방법과 일치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에 통했기에 자문자답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겠는가? 남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웠기에 알고 있는 이론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라”가르칠 뿐이다. 수필 쓰는 것을 자신의 일상 드러냄에 불안하거나 공개가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