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여행]한옥마을/마곡사/송산리고분군/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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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충청&강원권 여행

2020. 11. 8.

   2020년 11월 6~7일


   이번에도 역시 갑작스러운 여행!
오후에 결정하고 부랴부랴 짐을 꾸려 4시 반쯤에 공주를 향해 출발했다. 오후 들어 혹시나 하고 공주 한옥마을에 전화를 해 보니 객실 한 개가 남아 있단다. 단체방인데 예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일단 잡아 놓았다.


   공주까지는 주로 고속도로가 아닌 자동차 전용도로로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했다.
2시간쯤 걸려 6시 반에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한옥마을 숙박체험 그리고 천년고찰 마곡사 방문, 무령왕릉 보기를 목표로 정했다.

 

관리실에서 체크인을 하고 방키를 받았다. 배정받은 방은 백제방인데 8명이 잘 수 있는 단체방이다. 2,3인은 개별 방을 주는데 이미 다 예약되었고 마지막으로 단체방이 한 개 남아 준 모양이다. 말하자면 가족 단위 또는 MT 등 소그룹 단위의 여행객들이 쓰기에 적합한 큰방에 화장실,옷장,신발장 등이 딸려 있었다.

아무튼 전에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 역시 마지막 남은 방이라고 해서 묵었던 골방에 비하면 운동장이었다. 뜨끈뜬끈한 구들장에 요를 몇 장씩 깔고 잤는데 자다가 와이프가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했다. 내가 코를 심하게 곤다고 멀리 떨어져 자고 있네. 

 

요즘 와이프가 기력이 떨어졌는지 눈꺼플이 떨린단다. 그때는 장어가 즉효라 인터넷으로 소학동에 있는 '고창애풍천장어'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알고 보니 이 일대가 장어촌이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빈 테이블이 몇 개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공주분들이 장어를 좋아하나...

웬일인지 와이프가 예전처럼 장어를 많이 드시지를 않았다. 후식으로 장어칼국수를 한 그릇 주문해 나눠 먹었는데 이것이 별미였다. 장어탕에 국수를 넣은 것인데 먹을 만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공산성'에 잠깐 들렀다. 식당에 갈 때 멀리 조명에 빛나는 공산성이 보여 들르기로 했었다.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렀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문주왕 1)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한 산성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0여 년 전 딸내미가 이곳에서 대학 다닐 때 가족이 함께 둘러본 적이 있는 곳이다.

 

공산성은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시간 맞춰 오면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구들장 온돌 바닥과 나무,황토로 된 벽채로 지어진 전통 한옥으로 아침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그 옛날 고향 마을 풍경이 떠올랐다.

 

2010년 개촌한 이 한옥마을은 단체동 37실과 개별동 19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부대시설로 식당도 있으나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운영하지 않았다.

오전 9시가 넘어 체크아웃을 하고 한옥마을을 나와 아침식사를 할 식당을 찾느라 헤맸다. 가까스로 10시가 되어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했다.

오전에 공기질이 최악이었다. 먼 산이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였다.

 

그래도 여행 왔는데 공기가 안 좋다고 실내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먼저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태화산 마곡사로 향했다. 사찰의 첫 관문인 일주문이다.

 

입구에서 절까지 700m 정도 걸었다. 나무데크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절 입구에서 멋진 가을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앉아서 커플사진도 찍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다. 640년(신라 선덕여왕 9) 자장이 창건하였다.

충남,대전 지역의 100여 개의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한국의 산지 승원'7개 사찰 중 하나이다.

 

해탈문,마곡사의 정문으로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를 들어가게 되며,해탈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두 번째 대문 천왕문,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스크 쓰고 포즈

 

범종루

 

대광보전과 오층석탑, 대광보전은 뒤에 있는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으로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순조 13년(1813)에 복원하였다. 건물 내부에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동쪽을 향하여 모셔져 있고,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보물 제191호)가 봉안되어 있다. 오층석탑은 고려 말기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으로 머리장식으로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등 장식을 두었는데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라고 한다.

 

대웅보전, 특이하게도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이나 내부는 하나다.

 

징검다리를 건넜다.

 

사람들이 드문 곳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영산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다시 세웠는데 이곳의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영산전 안에는 7분의 여래불상과 1,000분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불린다.

 

곱게 물이 든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경내 구경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싸 온 단감과 간식을 먹었다. 공기는 오전보다 조금 좋아졌다.

 

마곡사를 나와 내려오면서 와이프는 깐 더덕,밤 그리고 김장할 때 쓴다고 단감을 샀다.

 

무령왕릉을 보기 위하여 이동했다. 와 보니 무령왕릉은 송산리고분군에 있는 왕릉 중의 하나였다. 왕릉 내부의 구조를 가진 전시관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마침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는 문화 해설사가 있어 따라 다니며 같이 해설을 들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백제 웅진기의 대표적인 왕릉인데 각종 자료를 보면 약 30여기 이상의 고분이 확인되지만, 현재 7기가 이곳에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무령왕릉 발굴시 내부의 모습, 물론 재현해 놓은 것이다. 무령왕릉에서는 유물 4,600점이 발굴되었고 그 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국립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박물관도 가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왕릉 체험,물론 모형이다. 

 

무령왕릉에도 들어가 보았다. 삼국시대 백 수십 여명의 왕의 무덤 중에 현재 주인을 알 수 있는 왕릉은 오직 무령왕릉 하나라고 한다. 무령왕은 백제 25대왕(재위기간 501~523)으로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뒤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29대 무열왕(김춘추)와 혼동할 수 있다.

 

전시실에서 나와 실제 고분을 둘러 보았다. 1971년 5호무덤과 6호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무령왕릉이 발견되었다고 해설사가 이야기했다.

 

무령왕릉 입구, 모든 왕릉은 들어갈 수 없게 막혀 있었다.

 

송산리고분군에서 나와 근처에서 오후 4시경에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부랴부랴 국립 박물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의 대표 문화재인 진묘수 앞에서 와이프가 포즈를 흉내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무령왕릉 발굴시 발견된 이 진묘수는 입술에 빨간칠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진묘수는 중국 고대부터 나타나는 상상의 동물로 무덤을 지키고 죽은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모형은 진품을 7배 확대한 것.

 

짧은 시간이지만, 백제의 문화재들을 둘러 보았다.

 

국보162호 진묘수, 박물관 입구에 있는 대형 진묘수의 진품이다. 

 

국보 제154호 관꾸미개, 왕들이 머리에 쓴 모자에 달린 금제 장식품

 

국보 제247호 관음보살

 

어둑어둑해질 무렵 공주를 떠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