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초기적석총과 몽촌토성 그리고 풍납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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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행복한 걷기여행

2021. 3. 8.

    2021년 3월 8일


   서울 시내 백제의 문화가 서려 있는 '걷기 코스'를 걸었다.
오늘도 경마공원 환승주차장에 차를 두고 전철을 이용하여 석촌역까지 이동했다.
석촌역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1시 10분에 트레킹을 시작했다.

 

석촌역에서 천호역까지 10.4km의 코스에서 백제초기적석총,몽촌토성,풍납토성 등 백제시대 유적,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한 기념비인 '삼전도비', 88 올림픽 기념시설 그리고 시원한 석촌호수를 볼 수 있었다.

 

일단 점심 때라 석촌역 근처에 있는 김치찌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어디서나 혼자 식당 들어가는 것은 어색하다.

 

여러 메뉴 중에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너무 푸짐하게 나왔다. 1인분이면 다른 식당은 보통 주방에서 다 끓인 뒤 작은 뚝배기에 나오는데 여기는 큰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놓고 먹게 되어 있고 썰지 않은 넓적한 돼지고기가 들어 있어 손님이 직접 가위로 잘라서 먹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고기를 아끼지 않아도 남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아끼면 우리는 망한다!" 라는 모토를 실천하고 있는 식당이다.

  

식사를 마치고 사적 제 243호인 '석촌동 고분군'으로 이동했다.

백제 한성 도읍기에 만들어진 무덤군인데, 1917년까지 석촌동과 가락동 인근에 약 300기의 무덤이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도시개발 등으로 대다수가 파괴되고 고분군의 서쪽 일부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사진의 3호분은 한 변의 길이가 50m로 이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내부에서 금제 장식 조각,동진제 청자 조각 등이 발견되어 백제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제4호분, 산책 나와 있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무덤들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셈.

 

제2호분 뒤에서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셔터를 눌렀다.

 

고분군에서 나와 석촌호수로 걸었다. 미세먼지가 조금 있기는 했으나 청명하고 포근한 날씨에 많은 시민들이 주변 산책로를 걷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셀카를 찍어 궁금해할 와이프에게 보냈다.

 

사람들은 산책로 바닥에 제시된 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데 내가 들고 있는 여행책에서는 시계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어 좀 불편했다.

 

'삼전도비'는 석촌호수 서호(西湖)와 동호(東湖) 사이에 있었다.

병자호란(1636년)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해 항거하고 있던 인조가 결국 항복하고 당시 한강 나루터였던 이곳 삼전도에 나와 청 태종의 신하가 되는 치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의례를 거행하고 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세웠다(1639년).

 

두 번이나 땅속에 묻혀 있다 나와서 그런지 앞,뒷면의 새긴 글씨들은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았다. 뒷면 위에 크게 새겨진 '大淸皇帝功德碑' 라는 글씨는 명확히 보였다. 사진으로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비석이 무척 컸다. 이런 치욕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너와 나의 서울, 서울을 이끄는 송파

 

올림픽 공원까지는 시내 거리를 한참 걸었다. 88 올림픽 당시 세운 '세계 평화의 문'

 

 

만국기 게양대

 

소마미술관, 올림픽공원에 있는 서울올림픽미술관

 

알제리 작가 모한 아마라의 작품 '대화'

 

이것저것 구경하며 걷다 보니 드디어 몽촌토성 산책로 입구에 도착했다.

 

성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이곳 역시 걷고 있는 시민들이 많았다.

 

2천 년 전 선조들이 그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성 위를 우리 후손들은 건강을 위해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백제 하면 공주(웅진)와 부여(사비)를 떠올리는데 온조가 백제를 건립한 기원전 18년부터 멸망한 660년까지 근 700년 역사 중 부여와 공주의 시기는 단 186년이고, 초기 500년에 달하는 역사가 이곳 한성백제의 역사이다. 한성백제시대가 백제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성했고 영광스러운 시기였던 것이다.

걷다가 산책로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싸 온 간식을 먹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백 년의 은행나무

 

너른 잔디밭에 제법 큰 향나무가 외롭게 서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 '왕따나무'란다.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서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몽촌토성에서 나와 풍납토성으로 향했다. 토성 밖에 노란 산수유꽃이 막 피기 시작했다. 요즘이 꽃소식이 반가운 시기이다.

 

마지막 방문지인 '풍납동 토성'에 도착했다.

1997년부터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왕궁 터로 볼 수 있는 증거들이 다수 발견되어 백제 초기 도읍한 '하남위례성'으로 인정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으로 원래는 둘레 3.4km로 몽촌토성보다 규모가 훨씬 컸으나 지금은 성곽의 일부만 남아 있다. 하남위례성의 위치가 현재의 몽촌토성이라는 설과 풍납토성이라는 설이 있는데 현재는 풍납토성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

 

성 밖의 퐁경, 안쪽에는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산책로 주위 벤치에 앉아 남은 간식을 다 먹었다. 남겨 가면 와이프의 핀잔을 들을 것 같아서...

 

오후 4시 40분에 천호역에 도착했으니 3시간 30분 걸린 셈이다.

천호역에서 근처에 살고 있는 여자 동창생을 만나 한 시간 가량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주차한 경마공원역까지 가는 전철은 마침 퇴근 시간대라 말로만 듣던 지옥철이었다. 2호선에서 앉아 있었으니 망정이지 서있었더라면 피곤한 데다가 힘들었을 것.  이런 서울에 살지 않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오후 7시 30분 집에 오니 와이프가 내가 좋아하는 묵은지 쪽갈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만보기를 보니 21,000보, 신기록이란 메시지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