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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솔로몬 2005. 3. 7. 11:19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마치 자석에 끌린 듯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금은방을 지나다 황홀한 보석에 시선을 빼앗겨 발이 멎는 당혹감.


    그 가지지 못할 아쉬움으로 되돌아본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영원히 귀의하고 싶은 충동이요 본능이요 이끌림인가 보다.



    나는 간혹 꽃보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욱 미혹될 때가 있다.



    꽃을 보면 가슴이 말갛게 용해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적이고 미시적인 아름다움이다.


    가슴이 설레고 소용돌이치진 않는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동적이며 변화와 생동감이 있고 무엇보다 영혼이 깃들어 있다.


    가슴 떨리게 하는 맑은 눈빛이 있고 잔혹하게 마음을 뺏는 미소가 있다.


    꽃처럼 소유할 수가 없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이렇듯 아름다움은 확실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원천이며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추구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美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이는 어떻게 생긴 사람을 미인으로 하는가의 문제다.



    미인의 기준은 나라마다 고유하지만 그 객관성은 다수의 투표에 의한다.


    얼굴의 황금비례와 신체의 조화를 수치로 나타내어 점수를 매기고 미인을 선발한다.


    그리하여 대중에게 현대 미인의 표본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는 단지 무대 위의 미인일 뿐이다.


    모든 사람의 시각을 만족시킬 순 없다.


    아름다움이란 개인의 주관적 시각과 감동을 떠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 눈의 안경이요 자기만의 만족이다.



    추운 겨울밤, 종종걸음 치던 어떤 아가씨가 빙판에 주르르 미끄러졌다.


    소지품들은 길 이쪽저쪽에 어지러이 나뒹굴고 치마는 반쯤 접혀 허벅지 위로 올라붙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고 웃고만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말없이 손을 내밀며 부축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수더분한 외모의 노총각이었다.



    그가 이제 장가를 갈 수 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 단순한 행위가 그녀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의 그의 외모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친절이라는 따뜻한 마음씨가 부각되어 더욱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말이다.



    이처럼 외모는 객관적인 기준보다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표정, 인간미와 고운 마음씨 등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아름다운 얼굴은 시선을 멎게 하고 발을 멈추게 한다.


    그 순간 가슴에 행복감이 일며 곧 잃어버릴 것 같은 아쉬움에 뒤돌아본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움은 물 위에 부유하는 거품과 같다.


    혹하여 잠깐 고개를 돌려보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곧 그를 잊게 된다.



    외모는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조건의 총칭이 아니다.



    말씨 하나, 행동 하나가 그동안 쌓아 온 그 사람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기도 하고,


    믿게만 보이던 얼굴이 우연히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씨와 만나면서,


    어떤 우발적인 사건에서 그 사람의 실체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아름다움으로 거듭 태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외형적 조건만이 아니라, 사람을 경험하면서 점차 알게 되는 내면과 실체,


    그 당사자만이 느끼는 주관적 실감 내지 감동의 결합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움은 가꾸고 꾸미는 치장의 개념이 아니라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향기 같은 것이 아닐까.



    꽃은 자연의 섭리에 그냥 내맡겼을 뿐이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향기를 피어내진 않는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름다움도 맑고 투명한 얼이 안에서 비쳐 얼굴에 투영된 모습이 아닐까.



    얼굴은 곧 사람의 영혼의 모습이고, 그 영혼은 그 사람의 삶의 치적 즉 '어떻게 살았는가'에 의해 세탁되고 오염된다.


    아름다운 얼굴은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아름다운 얼을 가꾼 결과이고, 추한 얼굴은 추한 행동만을 쌓은 흔적이다.



    아름답고 추한 얼굴은 '내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그런 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얼굴은 하늘이 내려준 우연한 축복이 아니라 후천적인 자기 노력에 의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끔, 아무리 훑어봐도 예쁜 구석 하나 없는데도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고 친근감이 생기는 얼굴을 만난다.


    아마 그는 내면을 잘 가꾸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꽃피웠을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눈을 미혹시키지 않고 마음을 미혹시키는 감동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