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이야기

미꼬 2011. 2. 2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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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싫고 인간도 싫다. 모든 것이 싫다."

 

한 여인이 울고 있다.

받아들이기 싫다고,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느냐고.

그녀는 울부짖는다.

스물여덟의 인희는 평범한 여자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결혼도 하고 싶은 그런 평범한 여자다.

 

어느 날, 몸이 아파져 왔고 가족들도 사고를 당한다.

어느 곳을 찾아가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무당 이해경에게 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어야 할 팔자라는 것이다.

내가 왜, 내가 왜......

 

신도 싫고, 사람도 싫다. 그래도 또 울고 가자!

 

 

 

이 영화에는 배우가 없다.

배우가 없으니 연기도 없고, 감독의 역할도 없다.

감독은 그저 이들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필름에 담기만 할 따름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죽음 이후 무속인이 된 대무(大巫) 이해경.

무당이 되는 길로 들어서길 거부하는 바람에 무병을 앓는 황인희.

30년 동안 무병을 앓다가 마침내 무당의 업을 받아들이는 손영희.

여덟 살에 무당에의 길을 예감하는 김동빈.

 

무당, 그들은 신도 사람도 아니다.

스스로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신과 사람의 경계선에서 중개자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무당이 되고자 해서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적인 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손이 비치며 카메라가 돌아간다.

여기서 손은 그들의 타고난 운명을 들여다보는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삶의 이야기와 많은 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는

거울 같은 것이다.

 

"손금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손에는 신이 그려 놓은 선이 있습니다.

이 선은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웁니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 아닌 '숙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 우리와는 다른 손을 지닌,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숙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대 인사를 나온 이해경 씨와 손영희 씨는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이해경 씨는 대학 교수쯤의 인상을 풍기는 지적인 이미지였고, 손영희 씨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의 이미지였다.

 

 

 

무속신앙은 우리 민족의 5천 년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근대에 이르러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전략에 일조하며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수많은 민족적 종교가 탄압받고 이단의 굴레를

뒤집어쓰게 되면서, 사람들에게는 마치 마녀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오랜 역사를 존재해 온 '숙명의

선택을 받은 자'들인 것이다.

 

"넘어져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 오뚝이처럼 펄떡 일어나라."

 

인희에게 내림굿을 해준 후에 이해경은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지난 삶의 세월에 겪은 고됨과 앞으로 감내해야 할 힘겨움이 노래에 담겨 한숨처럼 눈물처럼 흐른다.

나 역시 그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건 어떤 면에서 나의 삶이었고, 또한 내가 하지 못한 고백이자 넋두리였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나를 대신해 울고 있었던 것이다.

 

 

 

걸어가고는 있지만, 결코 원하지는 않았던 숙명의 삶.

그들은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고,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한과 슬픔은 드러내지 못한다.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무당이라는 이해경 씨의 말처럼 스스로를 버려야 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그들, 우리를 위해

대신하는 그들에게, 이제는 우리도 위로와 격려의 손을 건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 나의 운명의 그림자를 걷어 치워주는 손을 내밀어 준다는 것, 그 손을 맞잡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행복은 바로 그런 것에서 연유하는 것일 게다.

그럴듯한 포장과 조건의 구비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은 울고 힘들어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울고 울어서 그 울음의 끝에는 더 이상 고통도 지난 세월의 아픔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온전히 제대로 울어낸 사람들만이

그 '운명'의 손을 건넬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숙명과 닿아 있는 또 다른 이의 숙명.

그 뒤섞이고 뒤얽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끈 가운데에서도, 분명하게 맞닿아 있는 끈이 있을 것이다.

그 끈을 잡는 것에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더딘 걸음은 그 끈을 놓치게 할 수도, 다시 잡기까지 너무나 고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울며, 웃으며 자신의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해경 씨의 당차고도 아픈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Between

감독: 이창재

 

*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한을 풀기 위해 대신 울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

주어진 숙명을 떨치려고 울고 쓰러졌지만 결국 그 길을 가는 사람들.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 뒤쪽의 객석에서 나란히 영화를 본 그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며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빛을 건넸다.

그리고 흐릿해진 시야를 가다듬고 천천히 극장을 빠져나왔다.

그들의 숙명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의 숙명을 생각하며......

 

 

출처 : 『 BluE, 2월 30일生.. 』
글쓴이 : evol 원글보기
메모 : 벌써 오래된이야기임은 분명한대 .. 새록새록하다 그당시의 신명을 모신 선배 또는 신어머니로서 갖추어야 할마음 이 요즈음 은 많이도 퇴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