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정왕 도르곤의 급사에 관한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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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도르곤)

2015. 2. 10.

글: 문방장궤(文房掌樻)


도르곤은 섭정을 한지 7년만에 돌연 급사한다. 그의 사인에 관하여 공식사서에서는 모호하게 얘기한다.

만주족은 처음에 말타고 활쏘는 민족이었다. 귀족은 매를 풀어서 사냥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한편으로 유락이며 다른 한편으로 무술연습이었다. 교육도 되고 즐거우니 안할 이유가 없다. 도르곤은 어려서부터 사냥을 좋아했다. 순치원년(1644년),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탄 배가 표류하여 지금의 두만강일대로 흘려들어온다. 그러다가 전전하여 북경까지 와서 1년여를 살다가, 청나라조정이 귀국시켜준다. 그들의 보고서인 <달단표류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북경에서 한번은 우리가 친히 구왕자(도르곤)이 성을 나가 사냥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뒤에는 많은 인마가 뒤따랐고, 많은 큰 매를 가져갔는데, 족히 천마리는 되었다. 실로 너무 많았다." 도르곤이 매년 여러번 사냥을 나가는데, 어떤 때는 교외지구이고 어떤 때는 새외(塞外)이다. 순치7년(1650년) 십일월, 도르곤은 고북구 밖으로 사냥을 나간다. 그러다가 부주의하여 낙마를 하게 되어 무릎에 부상을 입는다. 양고(凉膏)를 바른다.


십이월 초구일 카라성(喀喇城)에서 사망하니, 나이 겨우 39살이었다.


도르곤은 장년에 왜 죽은 것일까? 원인은 최소한 3가지이다:


첫째, 체약다병(體弱多病). 하오거(豪格)가 그를 저주한 말을 보면, 그는 "유병무복(有病無福)"한 사람이다. 도르곤의 몸은 말랐으며 풍질을 앓고 있었다. 북경에 들어온 후 병세가 날로 심해진다. 그래서 자주 머리가 어지러웠고 한때는 병세가 가중되어 소황제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도 아주 어려웠다. 그래서 특별히 그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절하지 않도록 은준한다.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도르곤은 여전히 정무를 모두 처리했고, 업무에 충실했다. 그는 여러번 신하들에게 말한다. 보고를 올릴 때는 간명하고 요점만 하라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아서 헛된 곳에 힘을 낭비하지 말라고. 도르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가 몸이 약하고 피로한 것은 관외 송산전투에서 친히 갑옷을 입고 노심초사했을 때 생긴 병이라고 한다.


둘째, 정신적 상처. 순치6년(1649년) 삼월, 도르곤의 친동생 나이 겨우 36살의 도도가 천연두로 사망한다. 동생의 두 제수(도도의 두 푸진)는 같이 순사하겠다고 한다. 이어서 형수 즉 아지거(阿濟格)의 푸진도 천연두로 사망한다. 이는 병약한 도르곤에게 큰 심리적 부담이 되었다. 은연중에 재앙이 강림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 후, 그의 원비 보르지지터씨도 천연두로 사망한다. 친척들이 하나둘 죽어가니, 거대한 그림자는 도르곤의 마음과 머리를 휘감았을 것이다. 그는 하루종일 우울했고, 병세는 악화된다.


셋째, 종욕과도(縱慾過度). 속담에 '영웅은 미인관을 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도르곤이라는 이 광세기재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처첩이 도대체 몇 명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명분이 있고 조사가능한 사람만 최소한 10명이다(6처4첩). 그중 몽골여자가 6명, 조선여자가 1명이 있다. 이들 미녀들 가운데 언급할 만한 사람은 세 명이 있다.


원비(元妃) 보르지지터씨 몽골 커얼친부 상가르차이 패륵의 딸. 후금 천명9년(1624년) 그녀가 도르곤과 성혼할 때, 도르곤은 겨우 13살이었다. 순치6년 보르지지터시가 사망한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25년을 살았다. 도르곤은 그녀에게 애정이 깊었고, 그녀를 경효충공정궁원비로 추봉한다. 도르곤이 죽은 후, 경효충공의황후로 추봉된다. 다음 해에는 황후추봉이 박탈된다.


오비(五妃) 보르지지터씨. 몽골 커얼친부 차노부타이지의 딸. 원래는 숙친왕 하오거의 푸진(부인)이다. 하오거가 유금되어 죽은 후 도르곤은 그녀를 왕부로 데려와서 자신의 왕비로 삼는다.


육비(六妃) 이씨. 조선인. 조선 금림군공(金林郡公) 이개음(李開音)의 딸. 즉 조선의 의순공주(義順公主). 순치7년(1650년), 도르곤은 허오거의 미망인을 취하는 동시에, 심복을 조선에 보내어 미인을 구한다. 그 결과 16살된 이씨가 뽑힌 것이다. 도르곤은 친히 가서 맞이하고, 여허한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 그리고는 성급하게 이씨와 연산(連山)에서 성혼한다. 얼마후 도르곤은 사망한다.


도르곤은 처첩이 많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사방으로 미녀를 찾았다. 일찌기 팔기에 명하여 미녀를 왕부로 보내라고 한 적도 있다.그리고 새로 귀부한 몽골 카르카부에서 유부녀를 데려오기도 했다. 종욕과도로 병이 몸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것도 급사의 한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