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자기는 세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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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산업

2018. 7. 31.

글: 박풍(泊風)


사쿠라를 얘기하면 일본을 떠올리고, 에펠탑을 얘기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고, 보드카를 얘기하면 러시아를 떠올린다.

자기를 얘기하면, 중국인은 당연히 중국을 생각한다. 비단, 차처럼 중국의 특산이자 명함이라고 여긴다.

2.8억홍콩달러의 명성화두채계항배(明成化斗彩鷄缸杯), 2.3억위안의 원청화귀곡자하산도관(元靑花鬼谷子下山圖罐)...모두 사람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의 영문 또한 china가 아니던가.

그러면 사실도 우리가 도취되어 있는 것처럼 그러할까?

중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청년으로서 필자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와 사회에서 얻은 관념은 이러했다: china(자기)라는 문제에서는 China를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중국인들이 "세계자도(世界瓷都)"라고 불리는 경덕진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교재는 도자기문제에 대한 묘사순서는 대체로 지직의 요점이 이러하다: 용산문화의 훈도를 받아, 상나라때 원시적인 청자가 나타나고, 동한말기에 성숙한 청자기가 나타나며, 당삼채는 세게에 이름을 떨치고, 당나라때 남청북백의 양대계통이 나타난다. 당나라때 채색자기공예가 처음 나타나고, 원나라에는 청화자기가 있다. 명나라에는 오채자기가 있고, 청나라때는 분채자기가 있다.

위대한 중국은 독립적으로 전세계의 조류를 이끌었다. 암흑의 수천년간, 항상 어두운 밤에 등불을 밝혔고, 지금 세상은 중국을 우러러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자기의 발달은 당연히 중국 노동인민의 분투노력ㅇ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진전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세계인민의 공동지혜의 결정이다.

당삼채는 고대이집트에서 자양분을 받았다.

먼저 당삼채를 얘기해보자.

이것은 일종의 저온유도기(低溫釉陶器)이다. 황, 녹, 백, 갈, 남, 흑등의 색이 있다. 황,녹,백의 삼색을 위주로 하여 '삼채(三彩)'라고 불리는 것이다.

저온채유기술은 어디에서 왔는가? 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그것은 아마도 궁전건축물에 사용하는 유도제품 - 유리기와의 제조법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

북위 이전에 중국은 성숙한 유리공예가 없었다. 머나먼 서방에서 유리제품이 전해진다. 그리고 기진이보로 소장되고 무덤에 배장했다.

일찌기 기원전20세기에 고대이집트인들은 저온채유기술을 발명했고, 장식품을 제작했다.

그후, 채유의 기술은 동으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유역으로 전해진다. 그리하여 고대바빌로니아인은 지금봐도 놀라운 많은 예술작품들을 남긴다. 그 후에 이 기술을 배운 것은 고대페르시아제국이다. 그리고 기원전2세기에 서천한 대월지(大月氏)인들이다. 확실히 중앙아시아에서 유리의 제조기술을 배웠다.

기원전6세기, 고대바빌로니아의 성문에는 유리로 만든 숫사자가 있다.

대월지가 서천한 후 700년이 지난 6세기초기, 대월지인은 북위의 도성에서 유리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위서>는 이 일을 이렇게 기록한다: "어느 나라의 상인이 경사로 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오색유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광산을 채집하여 경사에서 유리제품을 주조한다. 완성하니 광택이 서방에서 온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리하여 행전에 백여명을 불러모았다. 색깔이 예뻐서 구경한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신이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의 유리제품은 흔해지고 더 이상 진귀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저온채유기술이 있어서, 당삼채, 당청화등 도자기공예가 바로 이 기초 위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다른 문명에서도 중국당삼채의 기술을 배우고, 중국에 전혀 못하지 않은 도자기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일본의 나라삼채(奈良三彩)와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삼채이다.

나라삼채와 당삼채는 현재의 고고학자도 구분할 때 여전히 도대체 어느 것이 당삼채이고 어느 것이 나라삼채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고고학자의 이런 곤혹은 기실 나라삼채와 당삼채가 동일한 제작기술과 제작수준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고중국문명이 학생인 고대한반도지역에서도 일찌기 아주 고급의 도자기공예를 창조한 바 있다.

송나라때의 <고려도경>과 <수중금>의 두 책에서는 고려청자의 제조공예에 대하여 끝없는 찬탄을 늘어놓았다. 그중 <수중금>은 이렇게 말했다: "감서(監書), 내주(內酒), 단연(端硯), 휘묵(徽墨), 낙양화(洛陽花), 건주차(建州茶), 고려비색(高麗秘色)은 천하제일이다."

같은 시기, 고려와 송의 청자제조공예는 모두 대단했다. 다만 역대이래로 청자를 논할 때, 사람들은 항상 월요비색자(越窯秘色瓷)와 여요(汝窯)를 청자제조의 최고봉이라고 여겼다. 동등한 공예수준을 가진 고려청자를 빠트린다. 그리고 청자 이외에 조선이조백자(李朝白瓷)의 제작도 송나라의 정요(定窯), 형요(邢窯)와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다.

아래에서는 중국자기가 외국의 선진성과를 받아들인 사례를 얘기해보기로 한다.

원청화(元靑花), 모두 알고 있다시피 그 안료는 중동에서 왔다. 늦어도 9세기에 중동지구의 장인은 산화코발트광석원료로 도기를 장식하면 구운 후에 아름다운 파란색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을 중국인들은 "소마리청(蘇麻離靑)"이라고 불렀다. 이 광물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의 도자기 장인들도 배워서 쓴다 그리하여 청화자기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청화자기의 장식도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예를 들어 반복되는 전지연(纏枝蓮)무늬와 권초(卷草)무늬같은 것이 있다.

청나라때 유행한 채색자기는 서방의 법랑채기술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후 중국의 장인은 법랑채자기의 기초 위에서 분채(粉彩)를 만들어 낸다.

다른 문명이 중국의 도자기에 미친 영향을 보았다. 우리는 이제 다른 지역의 고대 도자기기술을 알아보자. 도자기분야에서 중국은 일지독수(一枝獨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백화제방(百花齊放)이었다.

확실히 동아시아이건 중동이건 유럽이건 각 문명은 모두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가지예술을 창조한 바 있다. 중국자기의 광휘는 찬란하다. 또한 계속하여 다른 문명의 성과를 받아들였다. 폐문조거(閉門造車)하며 독자적으로 발명, 창조한 것이 아니다.

중국도자기는 세계에 유명하다. 중요한 원인은 바로 유럽이 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때, 거대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생산량은 바로 중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17.18세기 유럽의 각계층은 자기를 좋아했고, 자기무역은 이윤이 거대한 업종이었다. 마침 바로 이 때, 중국만이 안정적으로 대량의 자기를 공급해줄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중국에 자기를 주문했고, "토양결합(土洋結合)"의 문양은 유럽인의 이역풍정에 대한 추구를 만족시켜 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은 대량의로 자기를 제조하는데 필수적인 고령토(高嶺土)가 많이 있었다. 남방에는 충분한 나무가 있어서 자기를 구울 수 있는 연료로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인구가 많아서, 도가지업에 충분한 노동력도 제공해줄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은 비록 도자기기술과 예술수준은 상당히 높았지만, 고령토가 부족했거나 혹은 중동지역처럼 연료가 부족했다. 혹은 인력이 부족했다. 그리하여 도자기를 대량생산할 수가 없었다. 중국만이 유럽의 가장 적합한 자기생산국이었다.

그러나, 나쁜 소식이 바로 전해진다. 유럽인이 근대과학의 기술을 가지고 금방 중국도자기공예를 모방하고, 중국이 지금도 따라기기 어려울 정도로 개선한다. 영국의 웨지우드도자기, 핀란드의 아라비아도자기, 프랑스의 에르메스도자기, 헝가리의 헤렌드도자기는 세계일류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자기는 여전히 생산량은 많으나 2류로 전락했다.

필자는 20세기말의 도자기시장점유율을 연구한 바 있다. 그중에 당시 국제시장의 도자기시장규모는 30억달러였다. 일본도자기수출은 7억달러였고, 중국은 2억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2009년의 <중국당대도자기는 그저 국제시장의 노점상물건이 될 수밖에 없는가?>라는 보도에서 중국도자기제조공예가 당대에 유럽국가와 비교하면, 200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규모로 국제적인 도자기브랜드의 수준과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외에 예술수준에서, 중국도자기는 계속하여 방고(仿古), 표절에 머문다. 설사 도자기 자체는 일류수준이지만, 도자기의 조형, 무늬는 세계일류브랜드와 비견할 수가 없다. 투자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일부의 대가급 실력이 되지 않는 도공을 추켜세워서 '도공세가'의 항열에 올리고 나서 작품을 엄청난 가격에 팔았다. 그렇지만 예술과 공예는 여전히 별로이다.

그 후에, 중국자기의 자랑은 그저 "중국특색을 너희는 모른다"와 엄청난 고가의 "골돌품자기"뿐이다.

중국인이 2.8억위안의 명나라때 자기가 가져다주는 허영에 빠져 있을 때, 그리고 중국의 자기가 천하제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중국의 자기는 계속 옛날의 휘황 속에 빠져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