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서의 "대진국(大秦國)"은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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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재해석

2019. 5. 5.

글: 해색청징(海色淸澄)


감영이 도착하지 못한 대진국은 어느 나라일까?


한나라는 동시대의 고대로마제국(중국사서에서는 '대진국'이라 칭함)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현재 사학계에서 기본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비록 동서방의 전문가들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하여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초의 기록은 <후한서.서역전>이다: "(동한)의 한화제(漢和帝) 영원9년(기원97년), 도호(都護) 반초(班超)는 감영(甘英)을 대진(大秦)에 사신으로 보내어. 조지(條支)에 도착한다. 큰 바다를 만나 건너고자 하는데, 안식국(安息國) 서쪽의 뱃사람이 감영에게 말하기를, '바닷물이 넓고 커서 오고가는 사람이 순풍을 만나면 3개월이면 건널 수 있는데, 만일 역풍을 만나면 2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은 3년의 식량을 준비해 간다. 그리고 바다에 나가 있으면 고향생각이 나서 죽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을 듣고 감영은 바다를 건너는 것을 포기한다." 이것이 바로 저명한 감영이 대진국에 사신으로 갔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후한서>에는 166년 대진국의 사신이 성공적으로 내방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한환제9漢桓帝) 연희9년, 대진왕 안돈(安敦)은 사신을 보내어 월남해로로 와서 상아, 서각, 대모(玳瑁)를 바쳐서 처음 통했다." 나중에 사서에는 여러번 대진국에서 공식으로 혹은 민간에서 사람들이 중국으로 온 기록이 있다. 보기에 이 만리밖의 '대진국'은 중국에 대하여 아주 우호적이었다. 단지 중국에서는 한번도 답방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서에는 항상 이 나라를 '대진'이라고 칭하고, '로마(羅馬)'아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대로마제국은 대진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고대로마에는 한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렇다면 역사학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대진국이 로마제국이라고 단정하는 것일까?


첫째, 대진국의 지리적 위치 및 규모가 고대로마제국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약간 이후에 만들어진 <위략(魏略)>에는 대진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안식(安息), 조지(條支)의 서쪽 큰 바다의 서쪽에 있다. 안식국 국경의 안곡성(安谷城)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서쪽으로 가로지르면, 순풍을 만났을 때 2개월, 지풍(遲風)을 만나면 1년, 바람이 없으면 3년이 걸린다. 총령(파미르고원)의 서쪽에서 이 나라가 가장 크다. 여러 소왕(小王)을 많이 두었다."


한,위시기의 '안식'은 기원전247년에 건립된 파르티아제국과 226년에 이를 대체한 사산조 페르시아제국이다. 지리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이란에 해당한다. 그리고 '조지'는 소위 안식의 서쪽 국경으로 개략 이라크와 시라아 일대이다.


그래서, 이 대진국은 한나라가 있던 시기에 이란, 이라크 심지어 시리아의 서쪽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당히 멀어서 배를 타고 몇 달을 가야 도착하는 수퍼대국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국가는 고대로마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당연히 이것만 가지고는 대진국이라고 확정하기에는 부족하다. <후한서.서역전>에는 당시 대진의 정치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그 왕은 항상 같은 사람이 맡는 것이 아니라, 간략하게 현명한 자를 세운다. 국가에 재난이 있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바로 폐위시키고 새로 세운다. 물러나는 사람도 기꺼이 물러나고 원망하지 않는다."


원래 대진국의 국왕은 민주선거로 선출했다. 이것은 바로 고대로마 원로원의 독특한 민주공화제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동시대 다른 국가는 기본적으로 모두 세습제 왕국이었다.


셋째는 종교이다. 경교(景敎)라는 종교는 아마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같은데, 분석에 따르면, 경교는 기독교중 소위 네스토리우스파이다. 그것은 당나라때 정식으로 중국에 전래되고, 최초로 중국에 들어온 기독교 교파로 본다. 서안의 비림박물관에는 진관지보가 하나 있는데, 바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이다. 바로 이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대진경교비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대진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실제로 팔레스타인지역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기원전후부터 로마제국에 속해 있었고, 그래서 이 각도에서 보자면 대진은 로마제국이 되어야 한다.


이상의 몇 가지를 종합하면, 감영이 가려던 곳은 비록 이름이 대진이지만 실제로는 로마제국이라고 보는데 의문이 없다. 다만 아주 아쉽게도, 감영은 뱃사람의 말을 듣고 바다를 건너 고대로마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동서방문명의 교류는 아마도 다른 국면을 맞이했을 것이다. 중국고대의 세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을 것이다. 매번 이것을 생각하면 이천년후의 우리는 항상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진국이 정말 고대로마제국일까?


아마도 이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금방 대진국이 고대로마제국이라고 논증해놓고서는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대진국은 로마제국이다'라는 설은 근거가 충분하다. 다만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보면, 고서의 대진국에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들이 이 결론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천애(天涯)'에 실린 "중국사서대진국의문(中國史書大秦國疑問)"이라는 글(작자미상)에서 언급된 날카로운 의문점들을 얘기해보자:


명칭의 의문:


스스로를 대진이라고 한 적이 없는 고대로마인들은 그들의 동쪽에 진국(秦國)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2세기이후 더 이상 스스로를 진이라 부르지 않던 중국인들은 그들의 사서에서 중국의 서역에 대진국이 있다고 적었다; 지금 고대로마문헌에서 진국은 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중국사서의 대진국은 고대로마로 해석한다; 두개의 서로 자신을 진으로 부르지 않던 국가인 고대로마와 고대중국은 거의 동일한 시기(기원1세기)에 상대방을 진국 혹은 대진국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인종의 의문


<후한서>등 사서에 기록된 대진국은 "그 인민이 모두 장대평정(長大平正)하여 중국과 비슷하다", "그 사람은 장대하고 모습은 중국인과 비슷하다" "그 사람은 단정하고 장대하며, 의복, 차기(車旗)는 중국과 비슷하다." 이들 기록을 보면, 대진국과 중국은 같은 종족이다. 대진국인이 여러번 중국에 왔고, 중국인들은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나누었다. 심지어 왕조도 몇 개가 바뀌었다. 설마 그들이 중국인처럼 생겼는지, 아니면 심목고비(深目高鼻)의 종족인지조차 각 왕조 각지방의 관리와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했단 말인가?


산업의 의문:


<후한서>등 사서의 기록을 보면, 대진국의 "사람들이 밭에서 일하며, 뽕나무를 심어 양잠을 한다." "그 땅은 오곡, 뽕나무, 마(麻)가 자라기 좋으며, 사람들은 누에와 밭에 힘쓴다." 이런 기록을 보면, 대진국은 양잠업이 있다. 이런 기록에 비추어보면 양잠업이 대진국의 주요산업이라는 말이다. 대진국은 동한시기부터 양잠업이 성행하고 대진국의 주요경제산업이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대진국이 과연 고대로마제국이 될 수 있을까?




기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 뿐만이 아니라, 필자가 보기에, 기본적인 지리교통의 측면에서도 좀 말이 되지않는다. 만일 감영이 확실히 로마제국으로 가려고 준비했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갔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걸음을 멈춘 큰 바다는 어느 바다였단 말인가?


대진국은 큰 바다의 서쪽에 있어, 해서국(海西國)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사람들에게 감영이 지중해 동안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다음에 배를 타고 로마 혹은 콘스탄티노플로 가면 로마제국이다. 다만 실제로 감영이 그때, 지중해 동안으로 갔다면 거기는 이미 로마제국의 행성(行省)이다. 즉 만일 감영이 정말 그곳까지 갔다면, 기실 이미 로마제국(대진) 경내에 도착한 것이다. 다만, <후한서>의 기록으로 보면, 당시 감영은 아직 대진국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 안식의 뱃사람을 데리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비교적 주류의 견해는 저명한 독일의 한학자인 하덕(夏德)의 견해인데, 그는 감영이 당시 도달한 곳이 페르시아만이라고 본다. 그 목적지인 대진은 로마제국치하의 시리아 일대라고 본다.


그러나, 감영이 시리아로 가려다가 페르시아만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고 보면 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감영은 해로를 통해 고로마제국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서에 따르면 배를 타고 바로 서쪽으로 가로질러 간다고 되어 있다. 확실히 해로로 직접 도달할수 있는 곳이다. 다만 당시는 아직 수에즈운하가 없어서, 현실적으로 해로로 직접 시리아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서 가는 항로는 기본적으로 배제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한학자인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는 대진국의 시라아설의 약점을 파악하고, 대진국은 이집트라는 견해를 제기한다. 감영이 서쪽으로 가려다가 멈춘 곳은 홍해(紅海)의 동안(東岸)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대진국을 이집트라고 보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당시 고대이집트는 국가로서 이미 멸망했고, 이집트는 지형이 좁고 길어서, 면적이 크지 않다. 동서남북 수천리의 대국은 전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서에 대진국은 물산이 아주 풍부하다고 적었고, 바다와 산의 이로우밍 있다고 했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수준이 아니다. 특별히 대진국은 양잠업이 발달했는데, 고대이집트는 양잠을 하지 않았다. 이는 역사상 명확하다.


그래서 도대체 감영이 어디에 도착했고, 어디로 가려했는지에 대하여 현재는 각종 학설이 있지만 모순이 많다. 어느 역사학교수의 말에 따르면 대진국은 "역환역진(亦幻亦眞, 환상인 듯 진짜인듯)"하다고 한다.


악숨(Axum), 진정한 대진국




대진국의 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필자는 학자들이 대진국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모두 역사상 아주 중요한 한 나라를 망각했다고 생각한다: 악숨제국.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진국일 것이다.


악숨이라는 이름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마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원1세기부터 기록된 악숨제국의 수도는 지금의 에티오피아의 악숨성이다. 통치중심은 에티오피아, 에르투리아에 위치하고 있다. 일찌기 로마, 페르시아, 중국과 나란히 세계4대강국중 하나로 불리웠다. 가장 강성했을 때, 악숨제국은 누비야의 쿠시왕조를 통치했다. 지금의 수단의 넓은 지역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홍해를 넘어 예멘과 홍해연안의 기타 일부지역도 점령한다. 그리하여 홍해를 거의 내해로 삼았다.


아래에서는 우리가 고서에 나오는 대진국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서, 악숨제국과 비교해보기로 하자.


먼저 지리를 보자.


<위서(魏書)>에는 대진국을 이렇게 말한다: "그 바다가 옆에 있는데 마치 발해(渤海)와 같다. 동서로 발해와 마주 보는데, 자연의 이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대진의 바다를 중국의 발해에 비유했다. 만일 세계지도를 본다면,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홍해의 아프리카에서의 위치가 확실히 발해가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하다는 것을. 재미있는 것은 고대인들이 이런 지리상의 대칭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저 자연의 이치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땅은 네모나고 육천리이며, 두 바다의 사이에 있다."

"나라에는 작은 성읍이 사백여개 있으며, 동서남북 수천리이다."


대진국이 두 바다 사이에 있고, 상대적으로 편평하고 네모나며 넓다는 것이다.

악숨제국에 있어서 동쪽은 홍해이고, 서쪽은 나일강 상류에 바다라고 불러도 좋을 빅토리아호수가 있다. 확실히 두 바다 사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악숨제국의 국토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넓었을까?

역사기록에 따르면, 악숨제국은 아프리카대륙에서 북으로 이집트남부, 남으로 소말리아 향료산지, 서로는 나일강중하류, 동으로는 홍해에 이른다. 지도에서 개략 측량해보면, 개략 남북2,300킬로미터, 동서 2,600킬로미터이다. 리로 환산하면 각각 5,500리와 6,200리가 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땅이 네모나고 육천리라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시리아이든 이집트이든 모두 이런 지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시 산업을 보자.


"그 토지에는 소나무, 전나무, 홰나무, 가래나무, 대나무, 갈대, 버드나무, 오동나무, 백초(百草)가 있다. 민속은 밭에 오곡을 심고, 짐승으로 말, 나귀, 노새, 낙타를 탄다. 뽕나무와 양잠을 한다."

확실히 대진국의 농,목업은 아주 발달한 것같다.

악숨제국의 핵심인 에티오피아지역을 보면, 한편으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소가 땅을 경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다른 한편으로, 목축업이 극히 발달했다. 소양식은 아프리카에서 1위이고, 세계6위이다. 면양, 산양양식은 아프리카 3위, 세계8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진국의 다른 이름은 "이간(犁靬)"인데, '이(犁)'는 바로 땅을 간다는 말이고, '간(靬)'은 바로 피혁제품이다. 분명히 이런 점 때문에 그렇게 명명했을 것이다.


다시 물산을 보자.


"대진에는 금, 은, 동, 철, 아연, 주석, 신구(神龜), 백마, 주모(朱髦), 해계서(駭鷄犀), 대모(玳瑁), 현웅(玄熊), 적리(赤螭), 벽독서(辟毒鼠), 대패(大貝), 차거(車渠, 백산호), 마노(瑪瑙), 남금(南金), 취작(翠爵), 우핵(羽翮), 상아, 부채옥(符采玉), 명월주(明月珠), 야광주(夜光珠), 진백주(眞白珠), 호박(琥珀), 산호, 적백흑록황청감표홍자의 10가지 유리, 구림(璆琳), 낭간(琅玕), 수정(水精), 매괴(玫瑰), 웅황(雄黃), 자황(雌黃), 벽(碧), 오색옥(五色玉)...이 난다"

<위략>의 작자는 백종이 넘는 고대인들의 눈에 신기한 물산을 나열해 놓았다. 확실히 대진국의 물산은 아주 풍부했다. 거기에는 바다와 산에서 나는 물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무역대국의 이미지는 악숨제국의 역사와 완전히 부합한다. 그리고 이는 홍해와 이웃하고, 고원지대라는 독특한 지리적위치와도 관계가 있다.

언급할만한 점은 기원1세기의 여행기 <홍해항행기>에는 악숨제국의 3가지 주요수출상품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상아, 서각, 대모이다. 이것은 앞에서 열거한 대진국이 동한에 사신을 통해 보냈던 공물과 일치한다.

역사학자들은 일찌기 고로마제국이 왜 한나라에 3가지 공물을 보냈는지에 대하여 곤혹해 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대로마제국의 특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간 억지스러운 주장중 하나는 바로 당시 대진국의 사신이 아마도 정부에서 파견한 것이 아니고 민간상인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동남아 일대에서 현지의 특산물(마침 동남아에서도 이 세 가지 물건이 나온다)을 사서 한나라 황제에게 바치고 하사품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만일 악숨제국이 바로 대진국이라면, 이 수수께끼는 자연스럽게 풀린다. 왜냐하면 에티오피아에서는 바로 이런 것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역사를 보자.


악숨제국은 개략 기원1세기때 출현한다. 중국에 최초로 대진국의 기록이 나타난 것은 감영이 대진국에 사신으로 간 때인데 바로 1세기이다.

악숨제국은 200년부터 금은화를 발행한다. 당시 국제무역의 화폐였다. 같은 시대 중국역사를 기록한 <위략>에서는 대진국에서 금전,은전이 나온다고 기록한다: "금은전을 쓰는데 금전 1개는 은전 10개에 상당한다."

악숨제국은 상업이 발달하고, 멀리 인도, 중국에 이르렀다. 중국사서에도 손권이 황무5년(226년) 대진상인 진론(秦論)을 접견한 기록이 있다.

악숨제국은 에자나(Ezana)왕의 통치기간(320-360)에 국세가 전성기에 이르고, 강역이 가장 컸다. 이때 "왕중의 왕"으로 불린다. 약간 이후인 중국의 북위(386-534)의 사서에는 명확하게 대진국이 '영토가 네모나고 육천리이다"라고 적었다.

악숨제국은 7세기이후 아랍인의 공격으로 점점 쇠망한다. 이에 상응하여, 같은 시기의 중국 수나라 사서에는 대진국에 대한 정식기록이 없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사서의 대진국에 관한 기록과 악숨제국의 역사궤적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악숨제국의 정치제도는 현제 사학계에서의 발굴과 연구가 아직 덜 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사서에서 말한 것처럼 "왕이 항상 같은 사람이 아니고, 간단하게 현명한 사람을 왕으로 세운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필자본 자료에서는 에자나왕때 왕의 권한이 너무 커서 원로원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를 보면 이 나라에도 원로원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진으로 가는 해상육상노선


다음으로 대진국과 중국의 해륙교통노선의 각도에서 추가로 악숨제국이 대진국이라는 추론을 검증해보기로 하자.




해로


"안식국내의 안곡성에서 배를 타고, 곧장 바다의 서쪽으로 가로질러가는데 바람이 좋으면 2개월만에 도착하고, 바람이 좋지 앟으면 1년, 바람이 없으면 3년이 걸린다."

먼저, 이 '바다'는 어느 해역일까? 그것은 분명히 지리적 위치로 보아 아주 중요한 항구일 것이다. 소위 '해서(海西)'는 인도양서족의 아프리카대륙이라고 봐야 한다.

다음으로, 안곡성이 어디일까? 그래서 추정해보면 페르시아만 입구를 지키는 호르무츠해협의 항구일 것이고, 아마도 지금의 반다르 아바스항구일대일 것이다. 그곳은 역사적으로 이란의 중요한 항구였다

아바스항구에서 악숨까지 가려면 아랍반도의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항해해야 한다. "바다의 서쪽으로 가로질러간다(直截海西)"와 일치한다.

주목할 점은 여기에서 항해에서 '바람'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라는 것은 북반구의 인도양계절풍이다. 아랍반도의 동쪽의 해양은 겨울에는 동북풍이 불고, 여름에는 반대로 서남풍이 분다. 그래서 아바스항구에서 악숨까지 빠르게 가려면 반드시 특정 계절이어야 한다.


"그런데 안곡성에서 육로로 직접 북쪽으로 가서 바다의 북쪽(海北)으로 가고, 다시 서쪽으로 가서 바다의 서쪽(海西)로 간다. 다시 남쪽으로 곧바로 내려가며 오지산성(烏遲散城)을 거쳐 강을 하나 건너는데, 배를 타고 하루면 건넌다."


"그런데 안곡성에서 육로로 직접 북쪽으로 가서 바다의 북쪽(海北)으로 가고, 다시 서쪽으로 가서 바다의 서쪽(海西)로 간다. 다시 남쪽으로 곧바로 내려가며 오지산성(烏遲散城)을 거쳐 강을 하나 건너는데, 배를 타고 하루면 건넌다."

육로도 여전히 안곡성에서 출발한다. 북으로 가서 '바다의 북쪽'에 이르는데, 바로 페르시아만의 이라크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후에 서쪽으로 직진하면 '바다의 서쪽'에 도착하는데 그것은 이집트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 후에 다시 남쪽으로 오지산성에 이르는데, 이 도시는 악숨의 수도 다음가는 주요한 도시일 것이고, 지금의 에리투리아의 고성인 아둘리스(Adulis)일 것이다. '강을 하나 건너면'은 분명히 지금의 에리투리아와 에티오피아의 국경을 이루는 마레브강(Mareb River)일 것이다.

확실히 일단 우리가 대진국을 악숨제국이라고 놓고 보면, 지리교통측면에서의 검증은 아주 정확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비교(飛橋)




그리고, 또 하나의 신비한 노선이 대진국의 속국인 여분국(驢分國)에서 대진국 본토 사이에 있다. 이 노선이 지나는 것은 소위 '비교'를 통해 바다를 건너는 것이다. 이 신비한 비교는 무엇인가? 많은 대진국연구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해석을 하지 못하는 이슈이다.


"여분왕은 대진의 속국이다. 그의 치소에서 대진으로 가려면 2000리가 걸린다. 여분성에서 서쪽으로 대진까지 바다를 건너는데, 비교의 길이기 230리이고, 바다를 건너 서남으로 간다. 바다를 돌아 직접 서쪽으로 간다."

여분국은 바다의 건너편이니 당시 악숨제국의 홍해 반대편에 있던 속국이다. 지금의 예멘이 될 것이다. 예멘에는 모려(毛驢)가 많다. 아마도 여분국이라는 이름과 '나귀(驢)'는 정말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여분의 치소는 지금의 예멘 수도인 사나이다. 지도에서 보면 우리는 비교의 비밀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실제로 홍해 만두해협을 건너는 해상길이다. 만일 이 노선으로 가지 않으면, 예멘을 출발한 배는 홍해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였다가 다시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야 비로소 악숨에 도착한다. 그러면 오가는데 수천킬로미터가 된다. 그저 약간 먼 정도가 아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 해상의 지름길을 하나의 바다를 건너는 다리처럼 보아서 '비교'라고 이름을 붙인 것일 것이다.

우리가 지도를 통해 관련노선을 검증해보자. 사나에서 출발하여 서쪽의 항구에 도착한다. 그 후에 '비교'로 가서 '서남으로 '바다를 건너' 바다 가운데 있는 하니스군도로 가는데 약 90킬로미터의 거리이다. 이는 <위략>에서 말한 230리와 대체로 일치한다. 그후에 서쪽으로 시계침방향으로 바다를 돌아서 아둘리스성으로 가고 마지막으로 악숨의 수도에 이른다. 이 길은 거의 800킬로미터(2천리)이고, 방향이나 거리는 <위략>의 기록과 완전히 일치한다.


감영이 사신으로 간 노선을 알아본다.




우리는 다시 최초의 이슈로 되돌아가서, 감영이 도대체 어디까지 갔는지 알아보자. 그의 원래 계획은 어떻게 가는 것이었을까?

먼저, 그는 육로로 조지로 가야 한다. 즉 이락크 시리아일대이다. 이어지는 해로는 노선의 핵심이다.

안식의 서쪽 경계의 뱃사람이 한 말은: "오가는 사람이 순풍을 만나면 3개월이면 도착하고, 역풍을 만나면 2년이 걸린다. 그래서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3년치 식량을 준비한다"

우리는 이것이 <위략>의 안곡성에서 악숨으로 가는 해로의 묘사와 아주 비슷한 점을 알 수 있다: "순풍을 만나면 2달만에 도착하고, 바람이 좋지 않으면 1년이 걸리고, 바람이 없으면 3년이 걸린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순풍때 조지에서 3개월인데, 안곡성에서는 2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된 일일까> 분명히 조지가 안식국의 서쪽에 있는데, 왜 대진까지 가는 해로가 더욱 길었을까?

기실 지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감영은 조지에서 해로로 악숨으로 가려면 페르시아만을 지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는 이라크의 항구 바스라일대에서 출항하였을 것이다. 그 후에 반드시 먼저 동쪽으로 가서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페르시아만을 빠져나가야 한다. 이 노선은 직접 안곡성에서 가는 것보다 1000킬로미터가량 멀다. 이 1000킬로미터는 순풍이면 1달이 걸린다는 것이니, 평균 매일 30-40킬로미터를 간다. 이는 논리에 부합한다.

<위략>에서는 조지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는데 곡선으로 1만리이다(西渡海曲一萬里)" 그 뜻은 조지에서 서쪽으로 가려면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해야하기 때문에 1만리를 가야 악숨에 도착한다는 말이다. 이 숫자는 정확할까?

우리가 지도에서 해안선을 따라 측량해보면 바스라에서 악숨까지의 해상노선은 개략 4천여킬로미터이다. 고대로 따지면 1만리가 된다.

더 많은 수수께끼를 파헤쳐야 한다


대진국이 바로 악숨제국이라는 추론은 초보적으로 형성되었다. 지리, 교통, 역사, 산업, 물산등의 방면으로 보면 로마제국의 시리아설이나 이집트설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역사상 이 '역환역진'의 대진국은 마침내 여산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대진국의 비밀을 완전히 파헤치려면, 여전히 수많은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1. '진(秦)'은 중국역사상 최초의 통일왕조의 명칭인데, 악숨제국은 왜 '대진국'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2. 왜 사서에 대진국 사람은 양잠을 하고, 중국인과 닮았으며, 스스로 중국인이라 칭한다고 적었을까?

3. 기독교의 한 갈래로 여겨지는 대진경교는 정말 악숨제국에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