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 중국의 명의(名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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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원)

2020. 2. 27.

글: 원사문(苑嗣文)


금나라(1115년-1234년), 중국역사상 여진족이 건립하여 중국의 북방과 동북지방을 통치한 봉건왕조.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건립했다. 서로는 서하, 몽골등과 국경을 접했고, 남으로는 남송과 대치했다. 모두 10명의 황제, 119년간 존속했다. 천경4년(1114년) 금태조 완안아골타는 여진의 여러 부락을 통일한 후 거병하여 요나라에 반란을 일으킨다. 다음 해 상경회녕부(지금의 흑룡강성 하르빈 아성)에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대금(大金)'이라 한다. 그리고 천회3년(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킨다. 천회5년(1127년) 다시 정강지변을 일으켜 북송을 멸망시킨다. 천회8년(1130년) 송고종 조구가 금나라황제에게 항표(降表)를 올려 칭신(稱臣)하여, 남송은 금나라의 속국이 된다. 정원원년(1153년) 해릉왕 완안량이 중도(지금의 북경)으로 천도한다. 금세종, 금장종의 통치시기에 정치문화가 전성기에 이른다. 금장종의 즉위후기부터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금선종이 즉위한 후 내부의 정치는 부패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진다. 밖으로는 몽골족의 공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변경(지금의 하남성 개봉)으로 천도한다. 천흥3년(1234년), 금나라는 남송과 몽골이 납북에서 협공하자 채주(蔡州)에서 멸망한다. 금나라 전성기때의 통치강역은 진령,회하이북의 화북평원, 동북지역 및 러시아연방의 극동지역을 포함하여 강역이 매우 넓었다.


원나라(1271년-1368년),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소수민족이 건립한 대통일왕조이다. 통치자는 몽골의 보르친(孛兒只斤)씨이다. 수도는 대도(지금의 북경)이고, 5세 11제로 전해진다. 1206년 징기스칸이 몽골정권을 건립한 때로부터 계산하면 162년간, 쿠빌라이가 국호를 원으로 정한 때로부터 계산하면 98년간 존속했다. 원나라가 중원에서 물러난 후 북원정권은 1402년까지 존속한다. 원나라통치하의 판도는 아주 넓어서,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판도보다 훨씬 컸다.


유완소(劉完素)


유완소(개략 1110-1200), 자는 수진(守眞), 하간(河間, 지금의 하북성 하간현) 사람. 그리하여, 유완소가 죽은 후 세상사람들은 그를 유하간이라고 불렀다. 개략 북송말년부터 금나라건립초기까지 생활했다. 즉 송휘종 대관4년(1110년)부터 금장종 승안5년(1200_년의 사이에 살았다. 주로 금나라통치하의 하북 하간지역에서살았으니 진정한 금나라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금나라의 저명한 의학자이다. 후세에 금원사대가중 첫번째 의학자로 꼽힌다.


장원소(張元素)


장원소(1131-1234), 자는 결고(潔古). 금나라때 역수(易水, 지금의 하북성 역현) 사람.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8살때 '동자거(童子擧)'에 응시하고, 27살때 '경의(經義)'진사에 응시한다. 그러나 '묘휘(廟諱)'를 범하여 낙방하고  만다. 그리하여 과거를 버리고 의학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장부(臟腑)의 변증과 위기(胃氣)의 부양(扶養)을 중시하는 사상을 가졌다. 이고(李杲)가 창립한 "보토(補土)"를 특색으로 하는 계통의 비위이론(脾胃理論)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역수학파(易水學派)'의 가장 두드러진 이론적 특색이 된다. 장원소의 학술사상이 형성된 후, 여러 제자들과 후대의 의학자들의 계승, 발전을 거쳐 원나라때 '하간학파'와 서로 다른 학문풍격의 일대유파를 형성한다. 양파는 서로 경쟁하며 상호 촉진하는 작용을 했다. 최종적으로 전체 금원시대 의학의 번영을 가져온다. 장원소의 경력을 보면, 그가 사망하던 때 금나라가 원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그래서 장원소는 전형적인 금나라 사람이다. 그래서 '금나라의 저명한 의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동원(李東垣)


이동원(1180-1251), 자는 명지(明之), 진정(眞定, 하북성 정정) 사람. 만년에 스스로 동원노인(東垣老人)이라는 호를 붙인다. 그는 중국의학사상 '금원사대가'중 한 명이다. 중의의 '비위학설'의 창시자이다. 그는 비위가 사람에게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아주 강조했다. 왜냐하면 오행중에서 비위는 중앙토(土)에 속하므로 그의 학설은 '보토파'라고도 부른다. <원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고(즉 이동원)는 어려서부터 의학을 좋아했고, 당시 역수사람 장원소가 의학으로 연,조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고는 천금을 바치고 그에게 배웠다." 금세종 대정2년(1180년)에 태어나 나주에 금나라가 원나라에 멸망되고, 원헌종원년(1251년)에 사망한다. 그래서 이동원은 진정한 금원의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단계(朱丹溪)


주진형(朱震亨, 1281-1358), 자는 언수(彦修), 원나라때의 저명한 의학자. 무주(婺州) 의오(義烏, 지금의 절강성 금화 의오) 사람이다. 그의 고향은 아름다운 작은 계곡이 있어, 호를 '단계'라 한다. 학자들은 그를 존경하여 '단계옹(丹溪翁)' 혹은 '단계선생'이라고 불렀다. 주진형은 의술이 고명하여, 치료효과가 뛰어났다. 대부분은 약을 먹으면 바로 효과를 보고 다시 진료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주일첩(朱一貼)', 주반선(朱半仙)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그는 먼저 유학(儒學)을 배웠고, 나중에 의학으로 바꾼다. <소문(素問)>, <난경(難經)>등 저작을 연구한 기초 위에서 명의를 찾는다. 유완소의 재전제자(再傳弟子)인 나지제(羅知悌)에게 배운다. 여러 대가의 장점을 하나로 합쳐서 일대명의가 된다. 주진형은 사화(瀉火), 공사(攻邪), 보중익기(補中益氣)의 여러 방법외에 자음(滋陰)의 대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는 "양기는 항상 넘치지만, 음기는 항상 부족하다(陽常有餘), 음상부족(陰常不足)"는 이론을 주장하여, 음허상화병기학설(陰虛相火病機學說)을 만들어 인체의 음기, 원정(元精)의 중요성을 밝혔다. 그리하여 후세에 '자음파'의 창시자로 불린다. 유완소, 장종정(張從正, 장원소), 이동원과 나란히 '금원사대가'로 칭해진다. 중국의학사상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제자도 많고, 책도 널리 전해진다. 원나라때 가장 유명한 의학자이다.


이렇게 보면 아주 분명해진다. 유완소, 장원소는 확실한 금나라사람이다. 금나라의 저명한 의학대가이다. 이동원은 난세에 살아서, 왕조의 교체와 변천을 겪었다. 통치자는 처음에 금나라이다가 나중에 원나라로 바뀐다. 그는 진정한 금원의학대가라 할 수 있다. 주단계는 원나라때 사람이고 전형적이 원나라의 의학대가이다.


금원사대가라는 명칭은 누가 가장 먼저 부르기 시작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는 금나라의 2명, 금원교체기의 1명, 원나라의 1명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학술원류는 계속 이어졌다. 다만 각각 특색을 지니고 있고, 독자적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금원사대가'라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