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지하철: 북경지하철건설을 중단하고 평양지하철을 무상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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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2020. 10. 6.

글: 간중국(看中國)

 

중공이 오랫동안 감추고 말할 수 없던 비밀이 있다: 1966년, 모택동은 김일성을 회유하기 위해, 북경지하철공사를 중단하면서까지 우선적으로 평양지하철건설을 지원했다. 그런데 화가 나는 것은 지하철이 개통되는 날, 김일성은 경축행사때 세계에 이렇게 선포했다는 것이다: "평양지하철은 조선인이 스스로 설계하고 건설하였다."

 

북한여행을 하면,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아무 버스나 탈 수는 없다. 북한당국은 외국인이 일반북한민중과 근거리에서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다만, 평양의 지하철은 예외이다. 관광객들은 모두 평양지하철의 역 하나를 구경한다. 북한당국이 보기에, 화려한 평양지하철은 각국의 관광객들에게 자랑할만한 건설의 성취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다수의 중국관광객들 심지어 대륙의 기자들까지도 평양지하철을 관람한 후, 즉시 북한을 괄목상대하게 된다. 평양지하철은 '호화지하궁전'이라고 칭찬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30년전에 이런 규모의 지하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탄해 마지 않는 것이다.

 

중공이 40년간 숨겨온 비밀

 

2011년이 되어, 중국 상무부 부부장 푸쯔잉(傅自應)은 기자회견때, 최초로 중공이 북한을 원조한 비사를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중국의 북한에 대한 원조는 주로 공업, 농업등 일부 생산분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일부 SOC 건설도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평양지하철이 바로 중국정부가 원조로 건설한 것입니다."

 

1966년, 김일성은 북한대표단을 이끌고 북경을 방문한다. 모택동은 김일성등을 연회에 초청했고, 중국측은 김일성에게 비밀리에 건설중인 평양지하철을 참관시킨다.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에 지하철을 원조로 건설해달라고 요청한다. 모택동의 비준을 받아, 중공은 '선인후기(先人後己, 남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한다)'의 정신으로 베이징지하철프로젝트건설을 중단하고, 우선적으로 평양지하철공사에 무상원조로 건설한다. 1968년에 착공되었고, 1973년 1기공정이 개통된다. 제2기공정은 1987년에 전면완공된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중국철도병(鐵道兵)의 두 개 사단, 수만명(철도병은 1개완편사단이 4,5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대량의 기술자들이 북한으로 가서, 전력을 다하여 시공에 투입된다. 모든 차량설비, 건축재료는 동북에서 북한으로 운송했다. 소련인이 전체적으로 설계계획한 기초 위에서, 중국인이 구체적인 시공도면을 작성한다. 그 후에 중국은 무상으로 모든 구조공정, 차량, 통제시스템과 기전설비를 원조한다. 그중 평양지하철에 적합한 엔진차량은 상해에서 연구개발했다. 객실차량은 중국장춘객차공장에서 제조한 것이다.

 

1973년 8월, 장춘객차공장은 평양지하철에 690노트DK4형열차를 제공한다. 이 차량은 길이가 18.8미터, 너비 2.7미터, 높이 3.51미터이다. 설계상 최고속도는 90킬로미터/시이고, 최대가속도는 1.0m/s2이다. 긴급제동표준치는 1.3m/s2이다. 매노트당 최대승객량은 186명이다.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북한은 공식적으로 차량모델을 DKJI(正日型)이라고 부른다. 평양 김정태통용전기기차공장에서 제조했다고 하며, 모든 한자흔적을 지워버렸다.

 

평양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시스템이라고 말해진다. 가장 깊은 곳은 지하 150미터이다. 평균깊이는 90미터이다. 지면에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플랫폼까지 가는데 3분이 걸린다. 이 모든 것은 전쟁대비 방공을 고려해서이다. 이는 당히 기계화수준이 높지 않았던 중국철도병부대에 있어서 시공난이도가 아주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중공은 고도의 기밀로 유지한다.

 

북한의 사회주의제도가 남한의 자본주의제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북한은 별도로 중국측에 서울지하철이 개통되기 전에 평양지하철의 개통을 실현해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철도병부대는 이미 아주 긴장된 시공계획에 계속 박차를 가해, 1973년 9월 6일 최초의 지하철노선(천리마선)이 개통된다. 남한의 서울지하철보다 1개월 빨랐다.

 

세계에서 중공과 같이 시원시원한 정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평양지하철의 선전화는 오직 김일성부자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인들이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지하철이 개통되는 날, 김일성은 경축행사에서 세게에 선포한다. 평양지하철은 조선인이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설비를 제조하고, 스스로 시공건설한 위대한 공사라고 자랑한다. 마치 정말로 그들이 위대한 공사를 스스로 완공한 것처럼.

 

지하철을 중국이 건설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북한측에서는 중국측 시공인원이 얼굴을 드러내지 말 것도 요구했다. 중국철도병 시공부대는 개통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중 단장급이상의 간부는 한 지하철역에서 접견받았다. 김일성은 연설을 마친 후 지하철에 탑승하고 비밀리에 한 역에서 내린다. 그는 그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철도병간부들과 악수를 하고 다시 객차로 돌아갔다. 감사의 말 한마디 없었다.

 

평양지하철역의 역이름과 장식은 모두 김일성부자를 찬양하는 것이다.

 

북한측의 '자존심'을 고려하여, 중공은 이 원조건설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아왔다. 중국인은 철저히 '무명영웅'이 된 것이다. 평양지하철은 김일성부자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십년간 자랑해온 것이다. 그들의 자주건설의 위대한 업적이 된다. 중국공산당은 무상원조건설에 대하여 침묵을 지킨다. 지금 북한인민이건 절대다수의 중국인이건 모두 북한이 평양지하철을 스스로 건설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양지하철은 천리마선과 혁신선 두 개의 노선으로 구성되었다. 총길이는 35킬로미터이고 모두 17개 역이 있다. 모든 역의 이름은 혁명관련 용어로 도배가 된다. 지면의 지리적 명칭과는 무관하다. 그중 광명역은 금수산부근에 있다. 김일성이 죽은 후, 유체를 영구히 보존하며 금수산기념궁에 보관하기 때문에, 이 역은 그때부터 폐쇄되어 버린다.

 

관광객들의 참관은 모두 "부흥역"에서 상징적응로 1정거장을 가서 "영광역"에서 하차한다. '부흥역' 입구에 홍색의 표어가 쓰여 있는데,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쓰여 있다. 부흥역의 플랫폼 로비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플랫폼의 사방에는 대형벽화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천정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사람들은 마치 모스크바 지하의 어느 지하철역에 와 있는 것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기계설비에서 '중국제조'표지를 지워버렸다.

 

평양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상해에서 생산한 것이다. 상해에스컬레이터공장은 북한 평양지하철공사를 위해 수직고도 64미터의 자동에스컬레이터를 설계제조한다. 그리고 무상으로 이 엄청난 길이의 에스컬레이터를 원조하고 시운전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몇년 후, 그들의 엔지니어가 다시 평양으로 가서 이들 에스컬레이터를 유지보수할 때, 그들이 원조한 설비의 모든 중국제조를 표시한 곳이 지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지하철열차는 중국의 70년대 지하철열차와 완전히 같다. 아마도 전력부족때문에, 플렛폼 로비의 등이 아주 어두운 것같다. 사진은 ISO3200의 감광도에 후기플래시까지 써야 비로소 로비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온다. 평양지하철 개통식을 하기 전날 밤에, 북한측 인원은 명을 받아 모든 차량, 설비의 '중국제조'의 작은 동패를 떼어냈다고 한다. 다음 날의 개통식에 중국측 인원은 참석할 수 없게 하고, 사후에 중국측의 3명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기훈장과 노동훈장을 수여한다. 현재 북한지허철안의 모든 설비에는 중국제조의 흔적이 지워져 버렸다. 오직 상해중국시계공장에서 만든 35표 전자시계는 수십년간 하루같이 계속 작동되어, 중국요소를 살짝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보기에 화려한 평양지하철은 각국의 관광객등레게 자랑하고 싶은 건설의 성취중 하나이다. 정말 적지 않은 중국관광객 심지어 중국기자들은 평양지하철을 참관한 후 바로 북한을 괄목상대하게 된다. 평양지하철은 '호화지하궁전'이라고 칭찬한다. 북한에 대하여 30여년전에 이런 규모의 지하공정을 건조했다는 것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이것이 중국철도병의 걸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평양지하철은 중국대외원조의 '대형프로젝트'중 하나이다.

 

평양지하철을 원조한 것은 모택동의 중공이 대외원조한 대형프로젝트의 하나이다. 모택동시대의 중국은 또 다른 형제국가인 알바니아에 대하여도 아주 시원스럽게 원조했고, 규모도 거대했다.

 

전 외교관 겅뱌오(耿飇)의 회고에 따르면, 1954년부터 중국은 알바니아의 경제원조와 군서원조는 근 90억위안에 도달했다. 당시 알바니아는 겨우 200만인구이다. 평균으로 보면, 매 알바니아인은 중국에서 4000위안의 돈을 원조받은 셈이다. 당시 중국인의 1인당 연수입은 겨우 100여위안이었고, 200위안이 되지 않았다.

 

1960,70년대에 중국대다수의 농촌에 살던 사람은 조명에 남포등을 쓰고 있을 때, 모택동, 주은래의 중공은 알바니아에 전국전기화를 원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