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태평군(太平軍)이 1만 상군(湘軍)에게 패배한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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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2021. 1. 13.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태평천국의 마지막 대결전인 천경보위전(天京保衛戰)때 왜 30만의 태평군은 1만의 상군을 막아내지 못했을까? 그건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일까?

 

태평천국에 30만의 군대가 있었을까? 그건 확실치 않다. 다만 최소한 20여만은 된다. 상군은 처음에 확실히 1만여명이다. 그러나 계속 외부의 증원군을 받으면서 외곽포위를 추가해 나갔다. 이때의 청군은 아마도 10만가량일 것이다. 즉, 전쟁에 총투입된 태평천국은 20여만이고, 청나라군대는 10만가량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태평천국이 숫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다. 즉 이런 상황하에서 태평천국은 실패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를 하나하나 분석해보기로 하자.

 

1. 태평군의 전투력이 하강했다.

 

태평천국을 얘기하자면, 처음 금전의거(金田起義)때, 겨우 2,3천명이었다. 다만 이 수천명이, 청군을 계속 물리치면서 남경까지 쇄도해 들어왔을 때, 태평천국은 이미 4,5만의 병력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이들 병사들은 전투력이 아주 강했다. 모두 광서 객가인(客家人)을 핵심으로 하고, 대량의 광동, 호남의 자제병이 더해져서 전투력이 아주 강했다.

 

그러나, 남경에 들어온 후, 북벌이건 석달개의 서진이건, 모두 대부분의 태평천국 정예부대를 끌고가 버렸다. 그후 새로 뽑은 병사들은 전투력이나 군인자질이나 모두 원래의 부대만큼 전투력이 없었다. 특히 태평천국후기, 신병은 더욱 많아지는데, 태평천국의 부패에 더하여, 군대훈련과 자질도 계속 하강한다. 그리하여 태평천국부대는 상군만큼 전투력이 강하지 못하게 되었다.

 

2. 홍수전의 잘못된 지휘

 

천경보위전을 얘기하자면, 홍수전의 지휘는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처음에 천경의 수비군은 3만여명이었다. 상군은 겨우 1만여명이다. 그러나 홍수전의 오른팔이던 진옥성(陳玉成)이 피살되고, 할 수 없이 홍수전은 각로의 지원군을 끌어모은다. 합계 9만여명이다. 이때는 상군도 3만명 정도로 증원된다. 그러나 10만여명의 태평군은 여러번 상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이는 지휘가 잘못된 측면이 강하다.

 

1862년 9월, 홍수전의 엄명하에 충왕 이수성(李秀成)은 13왕, 16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지원을 온다. 이는 상군의 몇배나 되는 인원이다. 그러나 증국전(曾國荃)의 상군과 46일간 악전고투를 벌인다. 그러나 시종 우화대(雨花臺)의 본영을 함락시키지 못한다. 홍수전이 이수성으로 하여금 천경으로 돌아오도록 한 것부터가 실수이다. 상군을 격퇴하지 못하고 난 후에, 홍수전은 다시 이수성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호북을 습격하게 한다. 이를 통해 천경의 포위망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강서, 호북등지는 상군의 고향이다. 어찌 가볍게 점령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수성의 도강은 실패로 끝나고, 인원손실만 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천경으로 되돌아오낟. 이때의 천경은 이미 양초(糧草)가 부족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홍수전의 엉터리 지휘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양초부족

 

천경의 양초는 원래 일찌감치 모아놓았다. 그러나 홍수전의 두 형인 홍인달, 홍인발은 천경이 위기에 처하자, 위기를 이용해 재산을 불렸다. 그리하여 천경에는 충분한 양초가 없었다.

 

천경보위전이 격화되면서, 천경의 수상양식운송로인 구보주(九洑洲)는 상군에 점령당한다. 그리하여 양식을 천경으로 운송하는 것이 어려웠다. 육상운송로만으로는 수십만인구의 천경을 먹여살리는데 부족했다. 그래서 천경의 양식은 갈수록 부족해졌고, 태평군의 전투력도 갈수록 낮아진다. 효릉위(孝陵衛)가 차단된 후, 천경은 철저히 고립된다. 더 이상 양초공급이 없었다. 결국 홍수천은 백성들에게 풀을 뜯어먹게 할 수밖에 없었다.

 

4. 인재의 소실

 

태평천국 후기, 실력이 뛰어난 장수는 겨우 이수성, 진옥성에 불과했다. 진옥성이 죽은 후, 이수성은 홍수전이 가장 의지하는 장군이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로 하여금 상해를 포기하고, 상해를 공격하던 이수성으로 하여금 천경으로 돌아오게 시켰겠는가.

 

이와 비교하면, 상군의 증국번, 증국전, 이홍장, 좌종당등은 인재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전투에 능한 인물들이다. 홍수전에게는 이수성 한 명밖에 없었다. 홍수전은 그러나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만일 이수성의 말을 듣고 '천경성을 버리고 떠났더라면' 태평천국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재기도 가능했다. 그러나 홍수전은 이를 거절한다.

 

당연히 천경보위전의 실패는 여러 요소가 겹쳤다. 농민반란군의 한계도 있고, 태평천국고위층의 소극성도 있다. 그러나 거창했던 농민운동은 결국 천경이 함락되면서 실패로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