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료사회의 "신비인"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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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2021. 4. 17.

글: 악산(岳山)

 

중국 관료사회에는 '신비인'이라고 불리는 관리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즉, 신분도 신비하고, 경력도 불분명하거나, 혹은 일부 경력이 빠져있거나, 감추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중공중앙 610판공실 부주임 펑보(彭波)가 3월에 조사를 당하고 있는데, 그의 이력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국안(國安)이라고 하여 나의 주의를 끌었다.

 

관방보도에 따르면, 펑보는 2015년 8월 국무원 망신판(網信辦)의 직무에서 벗어난 후, 언제 610의 관련직무를 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중국의 법외기구 610은 1999년 6월 장쩌민이 파룬공을 탄압하기 위하여 성립한 개세태보(蓋世太保, 케슈타포)조직이다. 중국공산당은 중앙에서 지방까지의 특권체계를 이용하여 모든 당정자원을 동원하여 파룬공을 박해했다.

 

이 시스템은 법에 어긋나게 만든 것이어서 처음부터 운영은 감추어져 있었다. 일찌기 2005년 6월, 중국호주인권대화가 끝났을 때 중국 외교부장조리 선궈팡(沈國放)은 베이징에서 호주매체기자가 '당신의 뜻은 610판공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선궈팡의 반응은 '의문, 웃음'이었다.

 

610의 관리의 직무변동은 지하당식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최고위층부터 그러하다. 나중에 사람들은 알았다. 619영도소조의 조장은 모두 정치국상위가 맡았다는 것을 앞의 세 명의 조장은 모두 장쩌민의 심복으로 전후로 리란칭, 뤄간, 저우용캉이었다. 뤄간, 저우용캉은 모두 중앙정법위서기였다. 2012년말에 시진핑이 취임하고나서, 조장의 인선은 아예 '소실'된다. 다만 파룬공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었다.

 

610영도소조와 그 상설기구인 610판공실은 성립된 다음 해(2000년)에 중앙사교문제방법및처리문제영도소조 및 그 판공실(방범판)으로 개칭된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모두 정법위계통과 통합하여 업무를 보았고, 국무원에 같은 이름의 기구가 있어 "한개 기구, 두개 간판"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국무원은 610판공실의 임명에는 간여할 권한이 없었다.

 

중국에서 방범판이라는 간판을 내건 것은 당연히 610설립의 연원을 감추기 위함이다. 다만 여러 해동안, 중공내부이건 외부이건 모두 610이라는 이 특수기구명칭을 여전히 사용해 왔다.

 

610판공실의 역대 주임은 왕마오린(王茂林), 류징(劉京), 리동셩(李東生), 류진궈(劉金國), 푸정화(傅政華), 황밍(黃明)이다. 다만 공식적으로 대외선전부문에서는 610판공실이 취소되었고, 관련직책이 정법위와 공안부로 귀속된 2018년 3월 '기구개혁'기간에 마지막 610판공실주임 황밍이 사임한 후, 더 이상 그 후임자가 누구인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610영도소조의 조장이 이미 '소실'된 것과 유사하다.

 

밍후이왕(明慧網)의 보도에 따르면,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자오러지가 작년 어떤 지역을 조사연구할 때 현지관리를 질책하면서, '610'은 아직 존재하고, 특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취소했다는 것은 그저 대외선전이고, 서방사회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한 펑보가 610에 진입한 시기가 불분명한 것과 유사하게 일찌기 공안부 법제에서 20년간 재직했던 커량동(柯良棟)은 작년 6월 재신망(財新網)의 보도에 따르면, 작년 연초에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 부회장이라는 한직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2014년 6월 그는 항저우시 공안국장 직위에서 면직된 후, 최근 2년간 거취가 불명했다. 2017년 2월 13일까지, 공식보도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2016년 5월 24일 오후 커량동은 중앙방법판 부주임의 신분으로 지난시 공안국으로 조사연구를 나간 바 있다. 이렇게 보면 그가 2014년 6월 항저우공안국을 떠나면서 610계통으로 들어갔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일부 이렇게 신비하게 임직하는 사례가 있지만, 610판공실이 공개적으로 내건 간판인 방범판은 어쨌든 공개된다. 최근 들어 중국의 지방에서도 수시로 610계통의 관리의 임면과 낙마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더욱 직접적으로 610과 관련된 직무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는 파룬공박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부에서도 더 이상 이를 감추지 않고 '죽은 돼지는 뜨거운 물을 겁내지 않는다'는 자세를 보인다고 볼 수 있다.

 

그외에, 앞에서 말한 중앙 610판공실 부주임 펑보가 신비한 이유는 어떤 소식에 따르면 그가 국안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역사문헌학자 우런화(吳仁華)는 3월 14일 트위터에서 이렇게 공개했다. 펑보에게는 하나의 신비한 신분이 있는데 바로 국안부(국가안전부)의 인원이라는 것이다. 우런화는 이렇게 말한다. 펑보는 베이징대학 중문과 신문전공으로 1977학번이다. 본인과는 같은 기숙사의 방에서 살았다. 펑보는 1982년 봄에 대학을 졸업한 후, 국가안전부(당시는 국가안전부가 정식 설립되지 않았으므로, 그 전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에 뽑힌다. 그리고 국가안전부에서 2년간의 '전문교육'을 받는다.

 

원로매체인 궈쥔(郭軍)은 <간중국>에 이런 글을 발표했다. 제목은 <610판공실두목 펑보는 나의 옛 동료이다>인데 거기서 작자가 1985년 중국청년보에 입사하여 근무할 때, 펑보는 국제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키는 160정도이다. 연환회에서 소품을 공연할 때는 여자로 분장했는데 아주 그럴 듯했다. 나중에 펑보는 총편집장조리를 맡았다.

 

이 정도의 키로 펑보가 국안계통에 뽑힌 것은 정치심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외에 또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그건 알 수가 없다.

 

필자가 아는 바에 의하면, 국안의 특무는 일찌감치 배치하고, 깊숙히 숨어있다는 특징이 있다. 국안계통은 대학교에서 인원을 선발하는 것은 관례이다. 당사자가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국안에 선발되면 그 후로 국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략 2002년을 전후하여, 필자는 정부부문에서 개조후의 기업으로 가서 사무실직원으로 일한 바 있다. 새로온 젊은 사장의 이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북경외국어대학을 졸업한 후, 먼저 북경국안국으로 진입했고, 그후에 티벳으로 파견간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광동의 합자기업에 중국측 대표가 된다. 그리고 다시 낙하산으로 내가 일하던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와 나는 나중에 가까워졌고, 나에게 일부 내막을 털어놓기도 했다.

 

관료사회뿐아니라, 사회의 각분야에도 모두 국안의 인원이 심어져 있다. 국내에 아주 유명한 민영기업의 오너도 바로 그러하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경우도 있고, 노점상으로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도 일찌감치 국안에 거두어진 인원이다. 국외로 파견되어 각종 신분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더욱 많다. 어떤 사람은 국안이 아니고, 군대의 특공인 경우도 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한번 거기로 들어가면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중공은 그들이 진정 사회로 진입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안심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실 그들의 운명은 비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