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3대방파: 천도맹(天道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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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2021. 6. 1.

글: 숭명경야(崇明慶爺)

 

천도맹은 대만의 저명한 흑사회조직이다. 또한 대만 최대의 '본성괘(本省挂)' 각두(角頭, 외성괘는 방파로 부르고 내성괘는 각두로 부른다)연맹이다. 1985년에 성립되었다. 1950년대에 성립된 죽련방, 사해방과 비교하면, 천도맹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다만 세력은 상당한 규모이고, 비교적 강력한 지연관계가 있어, 최근 들어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대만외에 천도맹은 해외에서도 활동한다. 미국, 호주와 동남아등지이다. 현재 죽련방, 사해방과 함께 나란히 대만3대방파로 불리고 있다.

 

죽련방, 사해방의 '위로부터 아래로의' 핵심권력집중조직형식과 비교하자면 천도맹은 '아래에서 위로' 발전한 연맹집단지도체제를 갖추고 있다. 권력핵심은 각 회계(會係)의 주류파 고위층지도자(총재)이고, 그 산하의 회계간에 협상, 의사결정하는 공동의 플랫폼이다. 각 회계간의 의사소통 협력을 위한 '최고중재기구'(위원회)인 것이다.

 

1984년 '일청전안(一淸專案)'후 감옥에 들어가게 된 각두는 죽련방이 힘으로 억누르는 것에 불만을 품고 감옥에 있던 각두들이 연맹을 결성하기로 논의한다.

 

1986년 10월 30일 암만(巖灣)직업훈련센터, 토성북감(土城北監)등 옥중의 사람들이 "천도자재인심(天道自在人心), 시비자유공론(是非自有公論)"을 외치고 "불귀죽(不歸竹), 편귀천(便歸天)"의 구호를 외친다. 문산(文山)의 나등고(羅登高, 文山幇)가 발의하고, 고웅(高雄) 양등괴(楊登魁, 西北幇), 기륭(基隆) 오동담(吳桐潭, 田寮港幇), 삼중(三重) 소택굉(蕭澤宏), 중화(中和) 이박희(李博熙), 창화(彰化) 사통운(謝通運) 및 신죽(新竹) 임민덕(林敏德, 三光正義組)등이 공동으로 천도맹을 결성한다. 성립종지는 '제폭안량(除暴安良), 체천행도(替天行道)'이며 나등고가 '총연락'으로 추대된다. 이때는 단지 의식상의 천도맹이고 구체적인 조직까지는 없었다.

 

1987년 여러명이 출옥하면서, 전체 대만에 천도맹 최초의 6개 분회가 설립된다: 태양회(太陽會), 제공회(濟公會), 공작회(公雀會), 부도회(不倒會), 민덕회(敏德會)와 압패회(鴨覇會). 같은 해 천도맹은 일본의 야마구치구미(山口組)와 결맹을 맺는다.

 

1989년 야마구치구미의 다케나카 마사시(竹中正)이 대만으로 와서 천도맹과 교류하고, 얼마 후 천도맹은 일본으로 인원을 파견하여 야마구치구미의 경영방식을 견학한다. 

 

천도맹이 성립된 후 강호에 풍파가 끊이지 않았다. 1989년 9월 나복조(羅福助)는 당시 황홍우(黃鴻寓, 별명 黑牛)와 충돌이 발생하여, 그의 주택에 방화하고 총격을 가한다. 그리고 나복조의 친형은 노부궁화재사건때 연기에 질식되어 사망한다. 나복조의 적계인 오동담은 '특공대'를 조직하고, 천도령을 내려 현상금 500만을 내걸고 황홍우의 목숨을 거두려 한다. 같은 해 천도맹은 '공론보(公論報)'를 발행한다. 이를 통해 여론의 힘을 빌어 천도맹세력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매체의 치열한 경쟁하에, 공론보는 점점 쇠락한다.

 

1993년 9월 22일 정오, 천도맹 부도회 회장인 '아부도(阿不倒)' 사통운이 습격을 받아 총격에 사망한다. 

 

1994년 천도맹은 내부조직을 개조한다. '총재' '부총재'를 두고 각회의 회장을 고급고문으로 한다. 그리고 고급고문이 조장을 지정한다. 같은 해 6월말 태양회내부에 분열이 발생하여 신구양파가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그리고 2002년 10월 모 주간지의 본사를 깨트려버릴 정도로 공개화된다.

 

천도맹의 성립초기는 대만경제가 발전을 거듭할 때였고, 각회는 각자 발전하며 다만 외부의 간섭이 있을 때만 각회들간에 서로 도움을 주었다. 각회의 자금원은 주로 보호비, 도박, 지하전장등 전통산업이었다. 특히 전체 대만에 육합채연선(六合彩連線)과 일본에서 도입한 파칭코로 상당한 돈을 벌면서 바, 디스코텍, 이용원을 개설한다. 나중에 천도맹내의 양씨성의 인물은 연예계내의 세력을 빌어 남부에서 유행하던 식당쇼프로그램을 유선TV채널에 올리고, 채널에 도박성프로그램을 올리며, 암중으로 포커, 직춘(職春), 육합채등 도박활동을 경영한다. 채널프로그램을 통하여 도박을 전체 대만으로 연결시켰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천도맹은 전차 업그레이드된다. 공공공사입찰, 주가조작, 부동산, 매체에 관여하고, 나중에는 주식시장에서 번 돈으로 해운업, 선물시장, 오락과 영화드라마사업으로 진출하며 정치선거에까지 성공적으로 개입한다.

 

1995년 나복조는 무당파의 신분으로 입법위원에 당선되고, 정계에서 6년간이나 머물어, 대만에서 '흑도대부'로 불린다.

 

2000년 4월부터 태양회내부가 분열되어 신태양회와 구태양회가 대립한다. 같은 해 8월, 타이페이시에서 '길림차행총격사건'이 벌어진다. 태양회의 대리회장 '세장(世將)'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 이는 태양회와 동심회간의 투쟁이 점차 기륭에서 타이완북부의 각지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 3월, 신태양회 회장 염당리(閻當利)는 중화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 태양화이 내부투쟁이 공개화된 것이다.

 

2002년, 천도맹의 지도구조에 변화가 발생한다. 나복조가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 더 이상 입법위원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양등괴는 사업에 성공하여 강호를 떠난다. 그리고 무투파(武鬪派)인 오동담은 해외로 도망친지 여러 해 되었다. 세명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세력이 점점 약화된다. 그리하여 지도자의 지위는 진인치(陳仁治, 실명은 鄭淸輝, 厦門幇幇主)가 차지한다. 진인치는 실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각지의 각두를 널리 끌어모아서, 전후로 대만에 천의회(天義會), 천경회(天慶會), 천명회(天鳴會), 북해회(北海會), 송산회(松山會), 천림회(天林會) 및 관성회(關聖會)등의 분회를 조직한다. 진인치는 '화해공존'을 제창하고, 옛날의 숙적들도 손을 잡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일부 오래된 회계는 불만을 품고 독립한다.

 

2005년, 진인치는 강호의 거물 '문가(蚊哥)'의 장례식을 빌어 강호세력을 확장한다. 각지의 방파를 모을 뿐아니라, 기자회견도 개최하여 '흑도평안일'을 정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새로운 세대의 '흑도중재자'로 자청한다. 이런 조치는 정부와 치안기관의 주목을 끈다. 게다가 진인지는 나이가 들어 맹주의 직에서 물러나서, 막후에서 '중재인'으로 역할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진인치는 제공회의 회장인 소택굉을 후계자로 추대한다.

 

2008년초, 소택굉이 제3대 맹주에 오른다.

 

2008년 10월, 경찰은 제공회를 압수수색하여 흑미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명을 체포한다.

 

2009년 1월, 타이페이시 대안구 광복남로 420항 내에 있는 중화재경대(中華財經臺)의 대문이 새벽에 총격을 받는다. 같은 날, 재경대의 건물내에 있던 제공회의 주요거점을 경찰이 압수수색한다. 같은 해 7월, 타이페이지역의 공사독응사건으로 타이페이시경찰은 타이페이 광복남로의 천도맹주요거점에서 부도회의 임씨성의 회장, 태양회의 온씨성의 각두, 진씨성의 각두등 중요인물을 체포한다.

 

초대 총재 나복조(천도맹의 정신적 지도자)

위원회집행장: 진인치(전 하문방 방주)

고문: 양등괴(원 서북방 각두, '팔대영시' 동사장)

고문: 후귀생(侯貴生, 대호방 각두)

고문: 임응명(林應明, 망천회 회장)

중부지구총연락: 요준웅(廖俊雄, 포리각두)

 

역대총재

제1대 나복조(1987-1996), 대만입법위원 역임

제2대 진인치(별명 圓仔花, 전 하문방 방주, 1996-2008)

제3대 소택굉(별명 濟公, 凌霄會 창시자, 제공회 회장,. 2008-)

 

조직세력

태양회, 제공회, 공작회, 부도회, 민덕회, 인의회, 동심회, 문산회,대안회, 태극회, 천덕회, 천응회, 미응회, 환남회, 봉추회, 천두회, 운소회(능소회), 망천회, 석지회, 화북회, 삼련회, 송산회, 천림회, 천원회, 응중회, 천의회, 지존회, 죽풍회, 동안회, 일통회, 천룡회, 천명회, 북해회(북해연맹), 염정회, 청봉회, 천라회, 특공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