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화(普通話, Mandarin)는 만주족들이 만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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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언어

2006. 4. 19.

[곤혹]

 

북경에 가 본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북경말은 보통화와 다르군. 보통화를 잘 할 줄 아는 사람도 북경말은 알아듣지를 못한다. 심지어 방송국의 보통화 아나운서도 북경에 가면 북경말을 못알아듣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보통화와 진정한 북경말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책에서는 보통화는 북경화를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아주 곤혹스럽게 한다. 보통화는 도대체 북경말인가 아닌가? 보통화와 북경말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북경말과 보통화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답안을 찾아봤다. 국민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언어문제를 명확하게 하기를 바랐고, 보통화와 북경말의 개념에 관하여 명확한 답변을 얻어내기를 바랐다. 사실상 보통화가 북경말인가 아닌가? 이것은 역사를 살펴보아야 답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보통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말이 아니라, 그것은 세계의 다른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언어에서 하나하나 진화하며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400년전의 북경말: 오어(吳語)]

 

북경은 도시가 형성된 이래로 많은 황조의 변천을 겪었다. 자고이래로 북경말은 얼마나 변화를 겪었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이 문제는 현재까지 아무도 진정으로 고증을 하지는 못하였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400여년전인 명나라 말기에, 이탈리아에서 온 전도사 마테오 리치는 로마자로 당시의 북경말을 대량 기록하고 있고, 이러한 기록은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다. 마테오 리치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의 북경말은 대량의 입성(入聲, 우리말의 각, 밥등과 같이 받침이 있는 것)이 있고, zh, ch, sh등의 권설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북경말은 현재의 북경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재의 보통화와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북경말이든 보통화든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북경말과 보통화의 역사는 모두 400년이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400년전의 북경말은 명나라의 관화(官話)이고, 고증에 따르면 오어(吳語, 옛 오나라지역 즉 남경 소주등지의 말)라는 것이다.

 

[북경에 나타난 두번째 언어: 만주어]

 

만주족이 북경에 진주한 이후, 지역의 안전등 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만주족은 자금성 주위 10리내의 한족들을 전부 내보내고, 만주족 전용의 거주지역으로 정했다. 이 범위를 북경의 내성(內城)이라고 부르고, 10리밖을 외성(外城)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북경에는 두 개의 집단이 나타난다. 만주족집단과 한족집단. 이것은 계급, 언어 및 거주지역등에서 분명하게 차이를 나타내는 두개의 집단이었다. 북경성에도 두 개의 언어가 출현한다. 바로 명나라의 관화와 만주어이다. 어떤 언어도 모두 사람들과 일체가 된다. 당시 북경의 두 가지 언어의 지역차이는: 내성은 만주어를 말하고, 외성은 명나라의 관화를 말하였다.

 

[만주어의 분화 --만주식 한어]

 

만주어는 북방민족의 언어이므로, 만주족들은 초원과 숲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해오고 만주족의 역사는 짧았으므로 만주어의 성숙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만주어는 비교적 원시적인 언어라고 볼 수 있었다. 발음, 단어 및 어법등이 상당히 원시적이었고, 성숙되지 못하였다. 북경에서도, 만주어는 일상생활에서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북경의 동식물, 건축, 일상용품등 많은 물건들은 만주인들이 보지 못한 것이었고,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물건들은 만주어로는 도저히 설명하거나 교류할 수가 없었다. 만주족과 한족간에도 이러했지만, 만주족과 만주족간에도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것들을 분명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한족들의 건축공사용어, 예술언어, 의학 및 기타 과학기술용어등 고급언어사용에 있어서는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의 상황은 만주어로는 북경에서 더 이상 의사소통을 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수천녕 역사를 거치면서 단련된 한어를 보면서, 만주족들은 비록 중국의 정권을 탈취하였지만, 그 언어로는 중국을 통치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만주족들이 중국의 통치자로 되면서 부득이하게 한어를 사용해야하는 현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적게는 자기의 일상생활에서의 의사표현을 위해서이고, 크게는 중국을 통치하기 위한 정치적인 필요에서였다. 만주족들은 모두 자기 주변생활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만주어를 개선하는 것은 이미 시간이 없었다. 만주족들에게는 한어를 배우고 모방하는 것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북경에 사는 한족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유일한 선택방법이었고, 이렇게 해서 세번째 북경어가 나타나게 된다. 즉, 만주족들이 배워서 말하는 절름발이 한어(임시로 이것을 만주식한어라고 부르겠다)가 나타난 것이다.

 

[제3종북경말의 형성 - 내성북경말(Mandarin)]

 

북경성내의 하나의 작은 나무, 주방의 하나의 도구도 만주어로는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만주족의 조상은 이런 식물을 본 적도 없고, 이런 도구를 사용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중국을 통치하게 된 만주족들이 부닥친 냉혹한 언어현실이었다. 북경내성의 만주족들은 어려운 한어를 모방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만주어는 한어에 비하여 선천적인 결함이 있었다. 우선, 입성은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한어에서 동음이의어가 많아진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원인이다. 만주어로 한어를 배우게 되므로 발음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이것은 발음이 가장 엉망인 한어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잔혹하다. 만주족들의 이러한 절름발이 한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당시의 한족 백성들이 이빨이 빠지도록 웃을 절름발이 한어는 청나라 통치계급의 "공동언어"로 변모해갔다. 이것이 조기의 보통화(일단 이런 언어를 영어용어를 써서 Mandarin이라고 부르겠다)이다.

 

[내성북경말의 발전 -- 북경내성을 벗어나 "관화"로 형성된다]

 

북경내성의 Mandarin이라는 절름발이 한어가 형성되자, 북경내성은 Mandarin을 말하는 집단이 형성된다. 이 집단이 바로 중국의 최고통치계급인 팔기귀족이었다. Mandarin은 청나라 통치계급의 관료사회 언어, 즉 "만청관화(滿淸官話)"가 된다.

 

구체적인 시간은 고증이 필요하나, <<강희자전>>에서의 음은 현재의 보통화의 음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어방언과 비교하면 이미 현재의 보통화에 많이 근접했다.

 

"만청관화"의 형성사에서 볼 때, "만청관화"는 만주의 영향을 발음측면에서 많이 받았다. 이것은 일종의 성숙하지 못한 한어발음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단어나 어법측면에서의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언어의 본질에서 보면 "만청관화"는 한어방언에 속한다고 보아야지, 만주어방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가장 엉망인 한어방언이라고 보야야 할 것이다.

 

[내성북경말의 발전 - 뿌리를 내리고 "국어"를 형성한다]

 

"만청관화"의 혀엉후에, 만청정권이 지역을 넓혀가면서, "만청관화"를 얘기하는 팔기귀족도 북경의 내성에서 중국의 구석구석으로 퍼져간다. 그리고 각 지방에서는 지방최고관리의 말투가 바로 현지의 표준적인 말투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현지의 상류사회에서 다시 평민사회로 계속하여 침투해들어갔고, 최종적으로 "만청관화"는 중국의 "국어"로 되었다.

 

지역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북방은 만주족이 활동하던 주요한 지역이었고, 만주어화의 정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남방의 지역들 광동, 광서, 복건등의 지방은 "산은 높고 황제는 멀다"는 곳이어서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 이것은 남방의 여러 언어로 당시, 송사를 읽으면, 보통화로 읽을 때보다 압운이 더욱 맞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청나라때의 중국에는 저명한 시인이 나타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설명이 필요한 것은 Mandarin은 북경내성에서 북경외성을 돌아 전중국으로 퍼져갔고 만청의 "국어"가 되었다. 그래서 북경의 외성화는 진정한 "국어" 즉 보통화가 아니다. 비록 "외성북경말"이 계속 "내성북경말"의 영향을 받아 계속 바뀌기는 하였으나, 북경의 내성귀족과 외성백성간에 서로 간격이 있는 것처럼, 외성북경말과 내성북경말은 계급간의 차별이 있는 것처럼 서로 어울리기 힘든 언어였다. 소위 "북경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성말"과 "내성말"이다. 각지방에서 보통 말하는 북경말은 실제로는 내성말(Mandarin)이지 외성한인들이 말하는 "북경말"이 아니다. 외성한인들이 말하는 "북경말"은 실제로는 중국의 다른 방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소규모의 어종이다.

 

[내성북경말의 발전 --한어의 대표적인 언어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다]

 

Mandarin은 만청황조 200여년을 거치면서, 또한 손문정권에서 1표의 차이로 "국어"로 채택됨으로써,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에서 "국가대표언어"로 조문이 제정되면서, 보통화는 한어의 대표적인 언어로 자리를 확고히 하였고, 이미 동요될 수 없는 지위를 확보하였다.

 

[내성북경말의 북경에서의 소멸]

 

언어사적으로 말하면, 보통화는 북경말이 아니다. 단지 북경의 내성말이었다. 만청황조의 해체에 따라, 북경내성의 귀족집단은 북경성에서 사라졌다. 이에 따라 보통화의 진정한 모체인 북경성도 이미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화를 억지로 무슨 북경말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100여년이전에는 아마도 절반정도는 맞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얘기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북경말"이라는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미 더 이상 원래의 그 "북경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과 언어]

 

세계에서 어떤 언어의 탄생, 발전과 생존도 일정한 사회집단을 벗어날 수 없다. 집단은 언어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비록 세계어, 여서와 같은 인공언어라하더라도  사회집단의 결정적인 작용을 벗어날 수 없다. 사회집단을 벗어나면 언어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언어를 연구하고 사고하는 것은 반드시 이민의 각도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래야 언어의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진정으로 언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보통화도 그 자신의 생성, 발전사를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보통화의 생성, 발전사도 보통화를 말하는 사회집단의 이민사와 일체를 이룬다. 언어학자로서 특정언어의 특성을 뽑아낼 수는 있고, 특성에 대하여 하나하나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고, 두 언어사이의 많은 각종의 '관계'를 분석할 수도 있고, 심지어 중국어와 영어와 같은 두개의 거의 관계없는 언어에서도 동음동의어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언어의 사회적인 근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는 역사이고, 역사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그저 존재하는 사실일 뿐이다.

 

[인공언어?]

 

보통화는 현재의 북경말이 아니고, 무슨 인공언어도 아니다. 왜냐하면 100년전의 중국은 보통화와 같은 "인공언어"를 창조할만한 학술능력도 갖추지 못하였고, 실제적으로도 보통화의 아버지로 부를만한 어떤 개인이나 어떤 언어학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근대언어학자들이 중국의 국어인 보통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만청의 통치자들 도광제, 서태후등은 이미 아주 표준적이고 유려한 보통화를 말할 수 있었고, 진정한 보통화의 아버지는 바로 그들, 만청북경내성의 황친귀족들이었다.

 

[보통화와 북경말]

 

보통화의 역사를 분명히 알면, 보통화의 개념도 명백할 것이다. 다른 "만주어", "관화", "국어", "보통화", "북경화"와 "Mandarin", "한어", "방언" 이러한 개념도 서로 혼란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보통화는 한번도 현재의 북경말인 적이 없었고, 보통화는 그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북경말은 보통화의 이웃이기는 하고, 계속하여 보통화의 영향을 받고, 계속하여 보통화에 가까워지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한번도 진정으로 보통화와 일체가 된 적은 없었다. 이 두 개의 말을 하는 사람은 계속하여 두 개의 선명하게 다른 사회에서 살았고, 그래서 그들은 구별되는 두 개의 한어방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론]

 

보통화는 만주족이 배워서 쓴 한어이지, 만주어의 영향을 받은 한어라고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