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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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이릉지전(夷陵之戰)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이릉지전은 동한말기 3대전투중 하나이고, 또한 최후의 대형전투이다. 이 전투이전에 촉한과 동오의 합작관계는 육손이 관우를 기습함으로써 끝났다. 쌍방은 전우에서 적이 된 것이다. 조위는 그래서 잠시 숨돌릴 기회를 갖느다. 촉한은 이 전투에서 일패도지했고, 명장과 정예병사들의 손실이 참혹했다. 이릉지전을 시작하기 전에, 동오는 위에서 아래까지 촉한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육손이 한 행위는 군자의 행동은 아니었다. 동맹국이 적국과 싸우는 틈을 타서, 힘을 보태지 않는 것 정도라면 몰라도, 오히려 등뒤에서 칼질을 했다. 그리하여 관우, 관흥 부자는 피살되고, 유비, 유봉부자는 멀어졌으며, 맹달이 촉한에 투항하고, 더더욱 간접적으로 장비의 죽음을 가져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7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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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촉(蜀)이 멸망한 후 관우의 후손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장비의 후손은 살아남았던 이유는...?

글: 원재예(袁載譽) 에서 주유(周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유비는 효웅의 모습이고, 관우, 장비와 같은 곰,호랑이같은 장수를 가지고 있어, 절대로 오랫동안 남의 밑에 있지 않을 것이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결의형제이다. 형님인 유비를 도와 강산을 취할 때, 관우는 적인 오나라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유비가 죽은 후, 관우의 처와 자식은 모조리 원수의 아들인 방회(龐會)에게 살해당하고, 멸문당한다. 그러나 장비는 건안24년에 죽었고, 둘째형인 관우가 죽은후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의 후손은 관우처럼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같은 지위, 같은 처지인데 왜 그의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었을까? 관우는 용맹하고 싸움을 잘했던 인물이다. 큰형 유비도 그를 중용했다. 촉의 대업을 위..

10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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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삼국) 유비(劉備)가 건립한 정권은 분명 "한(漢)"인데, 왜 "촉(蜀)"이라 부르는 것일까?

글: 장생전(張生全) 유비가 황제를 칭할 때, 국호로 선정한 것은 "한(漢)"이었다. 다만 후세에 이르러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비가 건립한 이 국가를 '촉(蜀)'이라 부르거나, '촉국(蜀國)'이라 부른다. 기껏해야 '촉한(蜀漢)'으로 불러준다. 결국 유비가 당초 건국할 떄 정한 국호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때문일까? 만일, 이렇게 부른다면 목적은 한왕조의 '한'과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인데, 그것도 아닌 것같다. 역사상 건국때 '한'으로 지은 왕조는 아주 많다. 그러나 후인들은 그들이 취한 국명과 한왕조의 '한'이 중복된다고 여겨서 '한'이라는 국명을 빼버리지는 않았다. 양한(兩漢, 서한과 동한)의 사이에 유현(劉玄)이 건립한 '한'이 있는데, 구분을 위하여 우리는 "현한(玄漢)"이라 부른다...

31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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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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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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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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