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021년 04월

16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조조는 왜 고향인 박주(亳州)가 아닌 진류(陳留)에서 거병했을까?

글: 역사백가쟁명(歷史百家爭鳴) 진류(陳留)는 아주 신기한 곳이다. 동한말기에 하나의 군(郡)으로 연주(兖州)에 속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왕(王)의 작위를 내리는 지방이기도 하다. 역사에 기록된 진류왕(陳留王)은 한헌제(漢獻帝) 유협(劉協), 조환(曹奐)등이 있다. 유협과 조환의 특수성으로 진류왕은 자주 망국지군이 죽기 전에 강등되어 봉해지는 곳이 되었다. 우연하게도 조조가 거병한 곳이 바로 진류이다. 조위의 마지막 황제인 조환은 진류왕에 봉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조위가 진류에서 시작해서 진류에서 망했다고 말한다. 조조는 진류 사람도 아닌데, 왜 진류를 선택해서 거병했을까? 조조는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즉 현재의 안휘 박주이다.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거병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당연히 ..

12 2021년 04월

12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조조(曹操)는 왜 장료(張遼)를 받아들이고, 고순(高順)을 죽였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장료와 고순은 모두 여포의 수하대장이다. 여포의 군중에서의 활약으로 보자면 고순의 군사적 능력은 장료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조는 하비성(下邳城)을 함락시킨 후, 장료의 투항은 받아들였지만, 고순은 여포와 함께 죽여버린ㄴ다. 둘 다 여포의 수하장수인데, 조조는 왜 장료의 투항을 받아들이면서, 고순은 죽여야했을까? 장료는 원래 정원(丁原)의 부하였다. 무공이 뛰어나고 힘이 세서 정원이 휘하로 거둔다. 하진(何進)이 군대를 경성으로 불러모을 때, 정원은 장료를 데리고 간다. 정원이 패망한 후, 장료는 동탁에 넘어간다. 동탁이 패망한 후에는 장료와 그의 부하들이 다시 여포에게 귀속된다. 여포가 이곽에게 패배한 후, 장료는 여포를 따라 서주로 간다. 그리고 대리노국상(代理..

07 2021년 04월

07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모택동) 모택동은 준의회의(遵義會議)에서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확립했는가?

글: 원빈(袁斌)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의 전당 및 전군의 최고지도자지위를 확립했다는 것이 중공의 일관된 설명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학자들은 장정역사연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현존하는 자료와 학자 허팡(何方)등의 연구에 따르면, 준의회의는 중공이 장정으로 도망하는 도중에 귀주 준의에서 거행한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이다. 주로 박고, 주른애, 이덕이 장정에서 통솔하던 군사노선의 잘못을 반성한 것이다. 그때 중앙홍군의 장정을 통솔한 사람은 소위 "삼인단"(총서기 박고, 정치국상위 주은래 및 코민테른 대표 이덕)이다. 회의에서 박고는 5차에 걸친 포위소탕에 대한 총괄보고를 했고, 주은래는 부보고(副報告)를 했다. 정치국상위 장문천(張聞天)은 '반보고(反報告)'를 하여, 삼인단의 군사노선의 ..

02 2021년 04월

02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중남해의 신축지몽(辛丑之夢)과 당태종의 정관지치(貞觀之治)

글: 사전(謝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공19대전에 내부에서 열람되는 문건에서, 시진핑과 그의 지낭(智囊)들은 중국에서 '정관지치'를 실현할 계획을 내놓았다. 중공의 풍촉잔년(風燭殘年)인 때, 성당(盛唐)의 미몽(美夢)을 꾸다니 정말 황당무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5년간, 중남해의 과두들은 롤러코스트를 탄 것같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트럼프의 강유병제(剛柔幷濟)의 강력한 힘에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가, 작년 미국이 인류역사상 최대의 정치체제도전을 겪은 후, 중공음 마치 강심제라고 맞은 것처럼 다시 살 길이 열렸다고 생각하게 된 것같다. 이에 상응하여 5년전의 '정관지치'가 돌연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고,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같다. 그러나 중남해는 너무 빨..

12 2021년 02월

12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희제) 강희제의 가장 음험한 아들은 황사자(皇四子)가 아니라 황십사자(皇十四子)였다.

글: 초근일일(草根一一) "아비만큼 아들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知子莫若父)"는 말이 있다. 그러나 궁중에서, 부자간의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은 여전히 궤이막측하다. 예를 들어 구자탈적(九子奪嫡)의 곤경에 빠진 강희제는 죽기 전에야 비로소 몇몇 아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에서 강남에 수재가 발생한 후, 황태자 윤잉(胤礽)은 여러 폐단을 드러내서 강희제의 불만을 산다. 양자간의 갈등은 갈수록 쌓여가고, 마침내 열하(熱河)를 순수(巡狩)할는 도중에 폭발하게 된다. 강희제는 여러 몽골왕공들 앞에서 황태자는 병들었다고 선언하고, 황태자에게 내렸던 옥여의(玉如意)를 회수하여, 황태자를 폐위시킬 징조를 드러낸다. 북경으로 돌아올 때 황태자 윤잉은 이미 어연(御輦)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신태자를 추천하는 과정에..

07 2021년 02월

07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륭제) 건륭제는 왜 재덕을 겸비한 황십일자(皇十一子) 영성(永瑆)에게 황위를 물려주지 않았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강희제 말년의 구자탈적(九子奪嫡)과 비교하면, 건륭제 말년의 후계자선택은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가 너무 오래 살아서, 대다수의 황자는 이미 사망했다. 17명의 황자들 중에서 겨우 4명만 남았다. 바로 황팔자(皇八子) 영선(永璇), 황십일자 영성, 황십오자 영염(永琰) 그리고 황십칠자 영린(永璘)이다. 이 네 명의 황자들 중에서, 황팔자 영선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고, 황십칠자 영린은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후계자에서 제외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영성과 영염의 두 황자이다. 재능으로 따지면 영성은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났다. 옹방강(翁方綱), 유용(劉鏞), 철보(鐵保)와 함께 건륭조 4대서예가로 꼽힐 정도이다. 명실상부한 대재자(大才子)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재..

31 2021년 01월

31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문제) 건문제(建文帝)는 정말 실종되었는가?

글: 종고관금(縱古觀今) 사료로 보면, 영락제 주체(朱棣)는 확실히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황궁은 불이 붙었고, 궁전이 모조리 불타버렸으며, 주윤문의 시체도 찾아내질 못했다. 그리하여 일련의 전설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주체가 후기에 계속하여 주윤문을 수색했다고 하고, 정화의 7차에 걸친 하서양(下西洋)까지도 모두 주윤문의 행방을 찾기 위한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주체는 왜 요란하게 주윤문을 찾아다녔을까? 혹시 뭔가를 감추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었을까?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세상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이다: 건문제는 내가 핍박해서 죽은 것이 아니고, 그는 아직 살아있다. 그저 민간에 도망쳤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시군살질(弑君殺侄)의 죄명을..

28 2021년 01월

28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헌충) 장헌충(張獻忠)의 양자 4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초근일일(草根一一) 고대의 많은 제왕들은 양자를 거두기 좋아했다. 예를 들어, 이극용(李克用), 주원장(朱元璋)등이 그러했다. 명나라말기 농민정권인 대서정권(大西政權)의 장헌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4명의 양자를 거두었는데, 나중에 이 4명이 운명은 모두 달랐다. 첫째, 진왕(秦王), 의왕(義王) 손가망(孫可望)(?-1660년), 섬서 연장현 사람. 1630년(명 숭정3년), 손가망은 장헌충을 따라 반란에 가담한다. 용맹하고 잘 싸워서 평동장군(平東將軍)이 되고, 이정국(李定國), 유문수(劉文秀), 애능기(艾能奇)와 함께 장헌충의 양자가 된다. 1646년(순치3년), 청군이 대거 사천으로 쳐들어온다. 장헌충은 봉명산(鳳鳴山)에서 전사하고, 나머지 부대는 손가망과 이정국이 물려받아, 운남, 귀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