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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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자금성(紫金城)의 신수(神獸)

작자: 미상 모든 동물이 자금성 안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궁건축의 서로 다른 위치에는 상서로운 신수들을 놓아두었는데, 진택화살(鎭宅化煞), 구사영샹(驅邪迎祥)을 표시한다. 그리고 수백년동안 같은 자세로 있으면서 집요하게 금구영구(金甌永固), 복수영년(福壽迎年)을 나타낸다. 태화전(太和殿) 앞의 동사(銅獅) 청동으로 만들었고, 아주 정교하다. 아름다운 하얀 대리석 위에 놓여 있다. 정전(正殿)을 지키는 의미를 가진다. 오른쪽의 숫사자는 수구(繡球)를 오른발아래 밟고 있는데, 이는 천하를 통일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의 암사자는 왼발의 앞에 어린새끼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그 뜻은 자손이 창성하라는 것이다. 태화전 앞의 선학(仙鶴)과 동귀(銅龜) 단지(丹墀) 위에 운학(雲鶴)이 서 ..

2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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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혁흔(奕訢)의 후손들은 어떻게 공왕부(共王府)를 팔아버렸는가?

글: 유강화(劉江華) 모두 알고 있다시피, 십찰해(什刹海) 부근의 공왕부는 원래 청나라때 공친왕(共親王) 혁흔의 저택이다. 지금 그것은 가장 잘 보존돈 청나때의 왕부건축군(王府建築群)이다. 공왕부는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좌공왕부(一座共王府), 반부청대사(半部淸代史)" 공왕부 한채는 반권의 청나라역사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청나라때, 공왕부는 건축이 정교하고 아름다울 뿐아니라, 그 안에는 많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골동품과 진귀한 고서화가 보관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진당(晋唐)이래의 서화명작이 120종이상이다. 거기에는 왕희지(王羲之)의 와 왕헌지(王獻之)의 이었다. 그는 투명한 종이를 대고 그림을 배껴서 1달의 시간을 들여, 종이, 비단으로 각각 1본씩 임모한다. 계..

10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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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자금성과 천안문은 누가 건설하였는가?

글: 동몽지(董夢知) 금년은 자금성 탄생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금벽휘황한 궁전군은 당금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되며, 보존이 가장 완벽한 궁전이다. 자금성의 앞에는 화려하고 장엄한 천안문이 있다. 이는 황성의 정문이고, 국가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자금성, 천안문은 누가 지었지?" 북경토박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명나라때의 괴상(蒯祥)이다!' 맞다 바로 괴상이다. 만일 괴상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괴상이 자금성을 건축한 것에 관한 자료는 북경의 여러 사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지 내용이 많지 않고 간략히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자료들 중에서 적지 않은 것은 서로 모순되거나 잘못 기록된 것이 있어, 이해하는게..

08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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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북경 향산(香山) 영안릉(永安陵)의 수수께끼

글: 왕밀림(王密林) 전문사택아중승(傳聞舍宅阿中丞) 승사잔료설폐흥(勝事殘遼說廢興) 유갈난심응조석(遺碣難尋鷹爪石) 한무장몰영안릉(寒蕪長沒永安陵) 부증상(傅增湘)의 에서 언급된 영안릉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경의 서산 지역에 두 개의 황제릉이 있었다. 하나는 명대종(明代宗) 주기옥(朱祁鈺)의 경태릉(景泰陵)이고, 다른 하나는 요선종(遼宣宗) 야율순(耶律淳)의 영안릉이다. 그런데, 경태릉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영안릉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두 명의 서산에 뼈를 묻은 황제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국가의 위기때 옹립된 황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 사가들에 의하여 '사직을 지킨 공로가 있다'고 인정받는 주기옥과는 달리, 야율순은 '명부정(名不正), 언불순(言不順), 사불성자(事不成者)"..

11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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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베이징의 노자호(老字號) 육필거(六必居)의 현액(懸額)은 엄숭(嚴嵩)이 썼을까?

글: 용가독사(勇哥讀史) TV드라마 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명나라때, 북경의 노자호 점포인 '육심거(六心居)'가 있었다. 이곳은 조(趙)씨성의 형제 6명이 창업한 것으로, "육인동심(六人同心)"이라는 뜻이다. 대신 엄숭(嚴嵩)은 육심거의 장채(醬菜)를 아주 좋아해서, 계절마다 새로운 장채가 나오면, 엄숭은 가정제(嘉靖帝)에게 한 단지씩 보내곤 했다. 가정제는 육심거의 장채를 맛본 후 아주 만족하여, 육심거의 '심(心)자에 획을 하나 추가했다. 그렇게 하여, "육필거(六必居)"가 되었다. 그리고 엄숭이 직접 현액을 써서 점포의 이름으로 삼았다. 엄숭이 육필거의 점포현액을 써주었다는 주장은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육필거박물관의 공식입장은 엄숭이 육필거의 점포 편액을 써준 것은 맞지만, 가정제가 육필..

31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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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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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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