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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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그림 봉호도(峰虎圖): 삼백년간 무수한 논쟁을 불러온 그림

글: 취초인문세계(聚焦人文世界)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에는 한폭의 괴화(怪畵)가 소장되어 있어, 300여년동안 무수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그림을 둘러싸고 주로 3가지 의문이 있다: 첫째, 화가는 왜 호랑이를 그리면서 꼬리를 만 상갓집 개같은 모습으로 그렸을까? 둘째, 그림의 제목이 왜 '봉호도(峰虎圖)'일까? 셋째, 이런 그림이 어떻게 명작이 되어 고궁박물원에 소장될 수 있었을까? 먼저 이 그림을 살펴보자.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피골이 상접하고, 몸을 웅크리고 있으며, 눈빛에서는 두려움이 크게 나타나 있다. 호랑이를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렸을까? 그림의 오른쪽 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땡벌이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원래 위풍당당한 산중대왕이 산에서 땡벌을 당해내지 못해서 고통스러..

20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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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륭제) 건륭제가 영국국왕에게 보낸 회신(원문+번역)

(고문이어서 번역에 부족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개략적인 의미로 이해해주면 될 것같습니다) 너희 국가의 국왕은 멀리서도 청나라의 명성을 흠모하여 가르침을 받아, 중국에 동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하여 먼 길을 항해하여왔다. 짐은 너희 나라 국왕의 공손한 성의를 감안하여, 대신으로 하여금 사신을 데리고 짐을 접견하게 해주었다. 연회를 베풀었으며, 선물도 하사했다. 그리고 이미 칙유도 내렸다. 그리고 너희 나라의 국왕에게 진기한 물건도 보냈다. 이를 통해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표시하고자 한다. 어제 그대의 사신은 그 대나라와의 무역의 일을 대신등을 통하여 짐에게 아뢰었다. 모두 제도를 바꾸는 일이니 허가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서양각국과 너희 나라의 상인들이 천조(청국)에 와서 무역을 할 때는 모두 ..

22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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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이자성) 이자성은 왜 북경성을 점령한지 41일만에 패퇴했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1644년, 대명숭정17년(대순영창원년) 정월초하루, 이자성은 서안에서 정식으로 건국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이라 하고, 연호를 영창(永昌)이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은 자성(自晟)으로 개명하고, 서안을 서경(西京)으로 개명한다. 1644년 일월, 이자성은 동정에 나선다. 삼월 십칠일 양로의 군대가 북경성 아래에 결집하고, 십구일 북경성을 함락시킨다. 숭정제 주유검은 매산(현재의 경산)에서 스르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렇게 명왕조는 멸망한다. 이자성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장병들에게 상을 하사했다. 명나라의 관리들에게서는 대거 재물을 긁어모안다. 그리고 우금성(牛金星)등과 등극대전을 준비하고, 신왕조의 통치질서를 건립한다. 나중에, 사월 이십이일 청군과 오삼계가 이자성의 ..

26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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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남명(南明)에 기회는 없었을까?

글: 구어정(九魚亭) 주체(朱棣, 영락제)는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예비방안을 마련해 두었다. 북방은 어쨌든 리스크가 큰 곳이다. 그래서 남경에 온전한 행정조직을 보류해둔 것이다. 육부육과(六部六科)를 모두 갖추었다. 남명에 괜찮은 지도자만 있었더라면, 그 효율은 북경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남명이 판세를 뒤집을 기회도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스쳐지나가 버렸다. 송고종이 건염남도(建炎南渡)할 때, 그는 1인황제라 할 수 있었다. 병사도 없고 장수도 없다. 그리고 금나라군대에 이리저리 쫓겨다녔다. 그에게서 제왕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조구(趙構)는 결국 안정적인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점차 역량을 모아서 금나라와 대치한다. 조구는 비교적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가 ..

20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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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후기) 민국기녀자(民國奇女子) 정령(丁玲):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해서 3명이 같이 살았던...

글: 왕설정감(王說情感)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현대사회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애정은 독점요구가 아주 강하다. 그런데, 민국시대의 많은 문인들은 혼인과 연애방면에서 그다지 1:1을 고집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정한 사랑, 영혼의 반려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정령은 민국시대의 기녀자이다. 대표작으로는 와 가 있다. 많은 민국시대의 여작가중에서 정령은 소설을 좀 늦게 발표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녀의 유명세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청말민초, 글을 읽고 쓸 줄아는 여성은 아직 많지 않았다. 1904년에 출생한 정령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었고, '반역'사상을 가지게 된다. 이런 '반역'은 그녀의 문학작품의 내용에도 포함되어 있을 뿐아니라, 그녀의 애정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정령은 전통적인 중매결혼은..

04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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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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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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