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2020년 10월

31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영락제) 정난지역(靖難之役)후 주체(朱棣)는 왜 5번이나 몽골정벌에 직접 나섰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정난지역이후, 주체는 성공적으로 조카인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으로부터 황제위를 빼앗는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한 일에 대하여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영락대제(永樂大帝)'로 칭송한다. 주체의 주요 공적을 나열해 보자면, 북경천도, 영락대전편수, 정화하서양, 안남수복, 오정막북(五征漠北)이 있다. 특히 5차례에 걸쳐 막북을 친정(親征)한 것은, 후세의 찬양을 받는다. 자고이래 제왕이 직접 정벌에 나서는 일도 많지 않지만, 주체는 역사상 최초로 직접 장성이북을 친정한 황제이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주원장이 원왕조를 쫓아낸 후, 몽골통치자의 잔여세력은 완전시 소멸되지 않고, 새외(塞外)로 도망쳐 '북원(北元)'을 건립한다..

26 2020년 10월

26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공통) 역사상의 "태종(太宗)": 모두 "내로부정(來路不正)"한 황제들이다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중국 수천년의 왕조사에서 묘호(廟號)는 아주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묘호"와 "시호(諡號)"는 모두 어느 정도에서 황제일생의 공과시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다만 후세의 황제는 시호의 수가 늘어나서, 자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시호를 정할 때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기 어려워졌다. 다만 '묘호'는 '시호'를 대체하여 황제에 대한 개관정론(蓋官定論)의 중요한 근거이다. 가장 원시적인 묘호는 상(商)나라때 건립된다. 당시에는 단지, "태(太)", "고(高)", "세(世)", "중(中)"의 4종이었다. 그리고, "조유공이종유덕(祖有功而宗有德)", 조는 공이 있는 황제에게, 종은 덕이 있는 황제에게 붙인다는 기준으로 조종의 묘호를 정했다. 나중에 왕조가..

29 2020년 06월

29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수양제) 수나라가 멸망한 후 수양제 딸들의 운명은...?

글: 김명지(金明枝) 수양제 양광(楊廣)은 딸을 몇이나 두었을까? 아무도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초기에 양광이 형인 태자 양용(楊勇)과 후계타툼을 벌일 때, 첩을 두는 것을 지극히 혐오하는 모친 독고황후에 잘보이기 위하여, 첩이 낳은 자식들은 모조리 버리고 기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양광이 등극한 후에는 장안에 상주하지 않았다. 생존한 딸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일부는 그가 장안에 남겨두고 신경쓰지 않았었고, 일부는 그가 데리고 다녔다. 그중 일부분은 심지어 양광이 죽은 후 적모(嫡母)인 소황후(蕭皇后)를 따라 돌궐로 간다. 그러나 에는 '공주전'이 없으므로 양광의 대부분의 딸들은 구체적인 봉호(封號), 성명, 생년등의 기록이 없다. 인원수도 자연히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열녀인..

04 2020년 05월

04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우림군(羽林軍): 당나라 궁중정변의 결정적 요소

글: 엽서도(獵書徒) 우림군은 중국고대에 가장 유명하고 역사가 오래된 황제의 금군(禁軍)이다. 처음 나타난 것은 서한(西漢)시기이다. '우림'이라는 것은 "위국우익(爲國羽翼), 여림지성(如林之盛)"(나라를 위한 날개가 되어, 숲처럼 무성하라)의 의미라고 한다. 당고조때 당나라는 궁성의 이북에 주둔하며 황제와 황실을 보위하는 것을 주요 직책으로 하는 황제의 사병을 창설했다. 즉, 북위금군(北衛禁軍)인데, 국가의 군대인 남아부병(南衙府兵)에 상대되는 것이다. 그후 당태종, 당고종 양대에 걸쳐 계속 변화하며, 최종적으로 '북위금군'에서 정예부대가 독립하게 되는데, '좌우우림군'이라 명명된다. 우림군은 황제의 개인적 호위부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황실과 궁정의 안전을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또한 황제..

27 2019년 12월

27

26 2019년 05월

26

21 2019년 05월

21

20 2019년 03월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