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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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해군부사령관 도용(陶勇) '투정자살(投井自殺)'의 수수께끼

글: 왕우군(王友群) 중공 원수 진의(陳毅)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머리를 자른다고 해도, 나는 도용이 자살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중공 대장 속유(粟裕)는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은 살아 있을 때 도용이 살해당한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고. 진의와 속유는 모두 도용의 옛 상사들이다. 도용 "투정자살" 1967년 1월 21일, 당시 남경군구 부사령원, 해군 부사령원, 동해함대 사령원으로 있던 중장 도용은 '투정자살'한다. 장소는 상해시 동해함대 제4초대소 후화원의 우물 안이다. 그날 오전 도용은 상해경비구사령원 요정국(廖政國)과 함께 타도당한 전 상해시위제1서기 진비현(陳丕顯)을 구해내는 일을 얘기했다. 정오에 도용은 요정국과 함께 식사를 하고, 마오타이주도 ..

11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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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사인방"의 상해잔당에 대한 재판: 마천수(馬天水), 서경현(徐景賢), 왕수진(王秀珍)

글: 왕문정(王文正), 심국범(沈國凡) 마천수 강청반혁명집단의 상해잔당중 핵심분자로 당시에 이름이 열거된 사람은 모두 사십여명이다. 그중 제1차로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은 모두 9명이다. 그들은 전중공상해시위서기, 시혁명위원회부주임 마천수, 서경현, 왕수진(여), 그리고 진아대(陳阿大), 섭창명(葉昌明), 황금해(黃金海), 대립청(戴立淸), 마진룡(馬振龍), 주영가(朱永嘉)이다. 이들은 '문화대혁명'때 상해에서 앞장선 인물들이다. 마천수가 원래 상해시위에서 지도자의 직위에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조반파로 관직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 재판후의 판결문에는 오직 8명밖에 없고, 이들 잔당중 우두머리인 마천수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왜그럴까? 마천수에 대하여 왜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는지를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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