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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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원) 원순제(元順帝)는 어떻게 중원에서 쫓겨났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토토(脫脫)가 축출되어 죽임을 당한 후, 원순제는 철저히 추락한다. 그는 하마(哈麻)에게 고혹되어 성색견마(聲色犬馬)에 빠진다. 궁중에 청녕전(淸寧殿)을 짓고, 청녕전의 주위에 백화궁(百花宮)을 지어, 매 5일마다 궁을 옮긴다. 조정은 황태자인 아유시리다라(愛猷識理答臘)에게 맡겨버린다. 지정16년(1356), 하마는 원순제가 황위를 황태자에게 양위하도록 계획을 꾸민다. 그러나, 그의 매부인 투루테무르(禿魯帖木兒)가 원순제에게 밀고하여, 원순제가 대노하여, 하마를 쫓아낸다. 그후에 다시 박불화(朴不花), 삭사감(搠思監)이 조정을 교란시킨다. 역사서에는 "당시 천하에 사고가 많았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밖으로는 반란군이 일어나 강역이 날로 줄어들었고, 안으로는 국고가 텅비어, 쓸 곳..

01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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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원) 포수경(蒲壽庚): 송원교체기의 아랍계 부호

글: 하신(何新) 중국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각종 원인으로(주로 사신(史臣)이 무지하거나, 혹은 유가적인 이데올로기로 편견을 가져서), 정사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역사의 그림자 속에 매몰되어 버렸다. 남송말, 원초에 한 아랍계통의 상인이 있었다(아마도 유태인일 수도 있다. 당시 유태인과 아랍인을 중국인들은 혼동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포수경이다. 포수경(1205-1290). 일명 포수경(蒲受畊), 호는 해운(海雲)이다. 출신은 불명인데, 고조우(顧祖禹)에 따르면 그의 부자는 서역에서 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의 선조가 점성(占城, 지금의 월남)의 서역 아랍인의 후예라고 한다. 남송시기, 육상비단길은 이미 막혔고, 중국과 아랍의 교역은 해운을 위주로 ..

31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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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영락제) 정난지역(靖難之役)후 주체(朱棣)는 왜 5번이나 몽골정벌에 직접 나섰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정난지역이후, 주체는 성공적으로 조카인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으로부터 황제위를 빼앗는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한 일에 대하여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영락대제(永樂大帝)'로 칭송한다. 주체의 주요 공적을 나열해 보자면, 북경천도, 영락대전편수, 정화하서양, 안남수복, 오정막북(五征漠北)이 있다. 특히 5차례에 걸쳐 막북을 친정(親征)한 것은, 후세의 찬양을 받는다. 자고이래 제왕이 직접 정벌에 나서는 일도 많지 않지만, 주체는 역사상 최초로 직접 장성이북을 친정한 황제이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주원장이 원왕조를 쫓아낸 후, 몽골통치자의 잔여세력은 완전시 소멸되지 않고, 새외(塞外)로 도망쳐 '북원(北元)'을 건립한다..

13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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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청초(淸初)의 체발역복(剃髮易服)과 메이지(明治)의 산발탈도(散髮脫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글: 범인모사(凡人摸史) 어떤 친구가 인터넷에 이런 의문을 올린 바 있다: "왜 청나라초기의 체발역복 얘기를 꺼내면 네티즌들은 의분강개하면서, 현재 서방사회의 헤어스타일은 왜 아무 말없이 받아들이는가?" 이것을 설명하자면 우선 두 마디 말이 필요하다: 새조차도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고, 새장에 갇혀 있기를 원치 않는다. 자유는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론을 이끌어내자면 우리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은 이것이다: "유두불유발(留頭不留髮), 유발불유두(留髮不留頭)" 머리를 남기면 머리카락을 없애야 하고, 머리카락을 남기려면 머리가 잘려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현재 청나라 궁정드라마에 나오는 머리..

02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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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도시 장안(長安)은 왜 서안(西安)으로 개명했는가?

글: 장금(張嶔) 중국고대도시발달사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안개명(長安改名)'이다. 명나라 홍무2년(1369년), 명나라의 북벌군이 관중평원을 점령한다. 그해 삼월 명태조 주원장은 정식으로 조서를 내려, 천년이상의 수도역사를 지닌 고도 장안에 지금까지 사용되는 새 이름을 부여한다: 서안. 비록 이번 '개명'에 대하여 후세에는 여러 논쟁이 있고, 심지어 어떤 아마추어역사가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고도장안'의 격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 이번 개명으로 인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반대로 이 고도가 다시 한번 화려한 변신을 이룬 것이 바로 이 개명으로 인해서이다: 파괴된 '구도(舊都)'에서 서북의 '중진(重鎭)'으로 변신한 것이다. 후세인들이 그리워하는 당나라의 장엄한 장안성은 당나라말기부터..

27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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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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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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