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

낮은목소리 2016. 2. 5. 22:58

 

 

 

             

 

 

                       도반(道伴)이라는 낱말을 사랑하는 이유,

 

사는 게 무엇인지,

서로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가 사소한 일 때문에

원수 척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고

무심히 만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통하여

한 몸처럼 사는 소중한 인연도 있다.

 

      어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정해진 운명을 사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의 삶을 물끄러미 소 닭 보듯, 강 건너 불 보듯,

나하고는 전혀 별개인 전쟁영화를 보듯

순전히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가 있다.

 

전쟁터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사라진다.

그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 사가 진실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하면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간격이 어찌 그리

멀고도 먼지,

 

이런 생각이 들 때 문득 떠오르는 책이 최명희의 <혼불>이다.

 

목숨이란 한 번 지면 기약이 없는 것을, 사람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가느니, 야속한 일이로다.”

다 제명이 그뿐이라 그렇게 부모를 남겨두고 생병을 얻어서 먼저 가는 것이지요.

내 옛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생이라는 것이 참으로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전생에서 서로 지극한 업을 지은 사람들은 이승에서도 지극한 사이로 다시 만난다 하더라.

서로 베푼 마음이 간절하고, 선한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부부나 부모 자식 간으로 인연을 맺는다는 게야.

그러니 오죽이나 애지중지하는 사이겠는가.

허나 반대로 원수 척을 진 사람들이 또 그렇게 뗄 수 없는 인연으로 가까운 곳에 태어나거나 만나거나 한다는 말을 들었다.”

 

원수라면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것인즉, 전생에서만도 질릴 일인데 무엇 하러 이승에까지 와서 다시 만난답니까?“

 

그래서 인연이란 조심해서 맺어야지. 원수를 지어 놓으면 갚아야 할 게 아닌가.

뼛 골에 사무친 원수를 갚는 길은 서로 뗄 수 없는 처지로 만나 평생 동안 괴롭히는 일이거나,

기가 막히게 애틋한 사이에서 먼저 죽어 버려 남은 사람들을 애통하게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원수도 은혜도, 너무 지극해서 갚으려 할 때는 한 다리만 건너도 벌써 힘이 약해져 안 되지.

한 지붕 아래 한 이불 덮는 사이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최명희의 <혼불>2권에서 청암부인과 양자아들인 이기채의 대화 내용이다.

 

저승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 왔던 그 누구도 그곳을 다녀 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만남이 다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기가 막힌 인연설에 따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이라는 광장에서 이렇게 만나서 사는 것도,

슬퍼하고 기뻐하며 멀고도 먼 길을 그렇게 걸어가는 것도,

억겁의 인연이 쌓이고 쌓여서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대단한 인연들인가?

내가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도반道伴이라는 낱말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다.

 

병신년 이월 초닷새길위의 인문학 신정일 도반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