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

권창규박사 2007. 6. 3. 23:13

이 영화는 사랑하는 딸지우(11살)와 세은이(7살)와 함께 어렵게 이 비디오가 있는

DVD방을 찾아 함께 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단원의 주제가 솔선이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고니인데

이렇게 저렇게 여행하다보니 추천하는 영화로 이것이 선정되어 보게 되었다.

 

좁은 비디오방에서 딸아이 2명과 함께 영화를 보는 재미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두딸 모두 감동적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 세은이는 몇차례 울기도 하였다.

사냥꾼들의 총에 이 거위들이 죽는 줄 알고 울었다.

 

함께 영화를 보며 참으로 행복했다.

 

이번달에는 주제가 충성인데 무슨 영화를 함께 볼까?  

 

참 아래 사진과 밑의 글은 내것이 아니다.

흰손이라는 분이 올린 영화의 장면과 글인데 글은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냥 읽어볼만하고 영화내용을 요약하고 있기에 참조하면 좋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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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ineseoul.com/movies/cinedata.html?cinemaID=%3D%3DgqSri2Croqqrhk

 

 

 

얼마 전에 파주 출판단지 쪽에 갈 일이 있었다. 출판단지라는 데가 논밭을 갈아 엎고 건물 몇 채 세운 것인데, 그 부근은 철새들이 오가는 길목이다. 오가는 철새들이 잠시 머물 땅까지 빼앗아 가며,  교통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에 출판사들이 그렇게 모여 있어야만 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거기에 입주한 출판사에서 환경보호에 대한 책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개발과 환경보호ㅡ이 두 낱말은 거의 언제나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부딪힘은 어느 한 쪽이 져야 끝나는 싸움이다. 캐롤 발라드의 영화 <아름다운 비행>도 개발과 환경보호의 싸움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다.

 

아빠와 별거중인 엄마를 따라 여행을 하다 교통 사고로 엄마가 죽자 아빠를 따라 뉴질랜드에서 카나다로 온 에이미는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집 근처의 습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데 그 습지는 개발업자의 불도저가 밀어붙이기 시작한 곳이다.

 

조각가인 아빠 토마스는 환경보호론자로, 마을 회의에서 개발의 부당함을 역설한다. 마을 회의에서 한 농부는, 농사를 짓는 것보다 개발업자에게 땅을 파는 게 낫다는 말을 한다.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한다. 바로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 농사를 지어봤자 아이들 학비도 안 나온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개발업자들에게 땅을 팔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거나, 이 영화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영화가 아니다. 1994년에 모터 글라이더로 철새들을 인도한 최초의 인물인 빌 리쉬만이 쓴 <아빠 거위(Father Goose)>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새끼 거위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카나다의 온타리오 주에서 미국의 버지니아 주까지 인도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토마스의 모델인 빌 리쉬만은 지금도 동료들과 함께 어미 잃은 철새들을 인도하고 있다 http://www.operationmigration.org/ 참조).

 

에이미는 불도저가 밀어버린 나무 밑에 버려져 있던 카나다 거위 알들을 집으로 가져와 부화시키고, 새끼 거위들은 에이미를 어미로 알고 따른다(‘각인 이론’에 따르면, 갓 부화한 새 새끼들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따른다고 한다). 에이미는 가족들과 함께 거위 새끼들에게 모터 글라이더로비행 훈련을 시키고, 그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미국의 버지니아 주까지 인도하기로 한다. 그런데 거위들이 겨울을 나야 할 버지니아 주의 늪지는 조건부로 개발 허가가 난 곳으로, 11월 1일까지 철새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불도저에 밀릴 예정인 곳이다. 영화는 환경보호론자들과 대치중인 불도저 앞에 에이미와 거위들이 도착하는 데서 끝나고, 다음 해 봄에 거위들이 카나다의 에이미네 집으로 돌아 왔다는 자막이 뜬다.

 

우리의 현실은 그러나, 이 영화처럼 환경보호론자들의 승리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이른바 ‘공권력’을 동원해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농부들이 땅을 팔고 떠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발업자와 환경보호론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또 어느날 갑자기 우리 모두의 생각이 바뀌어, 지금의 상태만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는 개발을 전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 같지도 않고,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더 많은 문제들이 따를 것이다.

 

환경을 지키면서, 또는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모두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개발을 할 방법을 찾는 것, 환경보호론자와 개발론자들이 악수할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이것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어떤 개발업자가 이 땅 한복판을 가르고 운하를 놓겠다는 해괴한 소리를 해대는 지금, 정말 절박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