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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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10. 9. 16.

 

   

 

          천일의 앤 Ost - Youtube

 

 

 

 

 

 카를로스 5세                                                                                                                                                                          

                       

     

  

16c 초  스페인은 카를로스5세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당시  유럽의 대부분을  자신의 지배 하에 두었던

절대적 권력자 였읍니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은 카스티유와

아라곤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카스티유 통치자는 카를로스5세의 어머니 호안나 여왕이였으며   아라곤은 그의

조부였던 페르디난트 2세가 통치하고  있었읍니다.

 

 

 카를로스5세는 부모로 부터는 스페인을

 조부모로부터는 신성로마제국을

 두지역의 통치권을 모두 이양받아  명실공히 통합된 스페인의 초대국왕이 된것입니다 (1555년) .

 그래서 카를로스 1세라 부르기도 하지요.

 

 

 

  

  

그는 사촌간인 폴투칼의 루앙3세의누이 이사벨라와 결혼하여 40여년간을  황제로서  

중. 서. 남부유럽과  아시아의 필리핀(카를로스2세인  필리페를 기념하여 칭했다 함)제도의  

카스티아식민지 리고 신대륙 아메리카 까지 광대한 영토를 통치 하게됩니다.

 

 

부와 권력의 세습을 위해 그때나 지금이나 정략적 결혼이란 연줄로 그들만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고들  하였는지 ..

 

 

 카를로스 외조부는  아라곤의  페르디난드2세로서,

 그의 외할머니인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 정략적 결혼을 통해 분리되였던  

 아라곤과 카스티아를 연합하게 하여 

 스페인이란 통일된 단일국가가 되는 계기를 마련 합니다. 

   

 

 이들 사이의 태어난 캐서린 공주는

 영국 헨리8세의  첫 왕비이자

 헨리8세의 뒤를이은 매리여왕의 어머니 였읍니다.  

 

 

 

                                                               케서린 왕비

             

 

                                                                                                                                                        

아마도 예전에 '1000일의  앤'이라는 영화를 개봉관이나 아니면 

TV 명화프로그램  혹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대여한 것을 본 기억이 있는지요.

  

 

 옆으로 비스듬히 눌러쓴 cap, 구레나루 수염에 멋진 건장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장원에서  dogs과 함께 사냥하는 멋진 그림이 생각나시겠지요.  그가 바로 리차드버튼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배우이며 한때는 여배우 엘리자베스태일러의 남편이였던 유명배우로  

 헨리 8세의 분신으로 나오지요.

 

 

 

 헨리8세는 슬하에 첫째부인인 스페인의 캐서린 왕비와의 사이에 큰 딸,  

情婦의 자매인  앤 불린에게서 둘째 딸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세번째 부인에게서 

얻었는데  그는 너무나  병약하게 태어나 9살에  왕위에 오르지만 16세에 죽게 됩니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6세 입니다.

 

     

 

 왕위는 우연곡절 끝에  헨리8세와 스페인 캐서린 공주와의 사이에 태어난 첫재 딸

 메리튜터(메리1세) 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녀의 부친 헨리8세는 자신의 두번째 결혼을 위해 이혼을 금지하는 카돌릭을 박해하고 

 영국국교회(신교)를 신봉하며 카돌릭과는 요원한 관계였는데,

 애섧게도 메리는 철저한 카돌릭국가인  스페인의 왕녀의  핏줄이였던지라

 그의 부친과 그렇게 요원하던 카돌릭교로 돌아가게 됩니다.

 

 

 

 메리여왕의 어머니 캐서린은 헨리8세의 형이였던 헨리7세와 먼저 결혼하였으나 그가

 첫날밤도 못치르고 죽자 또다시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되어

 헨리8세와 재혼하게 되는데

 그들사이에는 6명의 자녀를 두지만 왜 그리도 자주 신이 데려가는지 ..

 유일한 딸 메리튜터만 남게 됨니다.

 

 

 

  캐서린의 시녀이자 헨리8세의 정부였던 메리불린과의 자매인  앤불린과

  사랑에 빠져 케서린 왕비를  학대하던  헨리8세는

  바라던 왕자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당시 이혼을 금하는 카돌릭의 반대를 무릎쓰고(캐서린 친정 강국스패인의

  로마교황에 대한 입김도 작용했겠지요.)

  수장령까지 발표하면서 까지 개혁을 통해

  캐서린과의 이혼을 관철시키게 됩니다.

  한 여인을 얻기 위해 국교까지 바꾸어 버리려는..

  절대 군주이였기에 가능했겠지요.

 

 

 

 

      헨리8세 와 앤블린(영화 1000일에 앤 중에서)                                                                                                              

 

 헨리 에게는 6명의 왕비가 있었다는 군요. 그녀들 중 2명을 단두대의 이슬로 보내고..

 첫번째 부인이 바로 메리여왕의 어머니 , 스패인의 공주 케서린 이고

 아들을 못낳는다는 이유로 왕비에서 내려와 불명예를 갖고 사라지지요.

 

  

 

 두번째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 케서린 왕비의 시녀 메리블린의 자매인 앤 블린입니다.

 그녀들은 토마스 볼턴경의 2자매로써 그의 야심인지 그때 풍속이 그랬는지 하여간 시녀로 들어가

 기구한  왕과의 인연으로 얼키게 됨니다.

 

 

 

 

 

 

 

왕의 환심을 산 앤블린은 무척이나 당찬 여인이였던 것 같읍니다. 요새 말하면 

왕비로써  야심찬 훗날을 그렸는지도 모르죠.

당시 왕의 한마디에 목이 덜렁 덜렁 나가 떨어지는 그런 시대 였는데 말이죠.

그녀의 미모인지 당당함인지 몰라도 헨리 왕은 첫 부인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궁에서 내쫓읍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뜻데로 되지않고 제멋되로 굴러가는 법 ..  대문앞에 달려는

고추는 한숨과 함께 자꾸 쌓여만 가는데  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자꾸만 자꾸만 어린생명을 데려 가는지..

지쳤는지 바람기가 발동했는지  왕의 눈길은 눈웃음치는 여인의  교태로 돌아서 가고 있었읍니다..

주위에 꽃이란 꽃은 다 피여 있었으니까요 ...

 

 

 

아들을 얻기 위해 한나라의 국교까지 갈아치우며 얻은 여인에게서 왕은

더 이상 기대 할것이 없었나 봅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아가 뚜렸했던 여인.. 차라리 왕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사랑했던 사람과 여생을 편히 살아갔을 탠데..

 

 

 

왕은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였고  아름다운 자신의 여식을 낳아주었기에 ..

그녀에게 왕비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랑스런 딸과 먼곳에 가서 

여생을 편히 살아가라고  권유하지만.

그녀는 생과 사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3살박이 딸 엘리자베스를 쳐다보며..

얼마나 많은 고독과 번민 속에 헤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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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선택은 한갓 왕의 정부로서  살아가느니

훗날 딸 엘리자베스의 머리에

찬란한 왕관을 선택하고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집니다.

엘공주가 3살이 되어 아장 아장 거닐때.

그 모습을 마음에, 머리끝까지 새겨 먼 하늘나라에서도 

잊지않으려고 꼭꼭 간직한채..

 

 

 

  사냥하던  헨리8세가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모습..

  그 모습이 생각 나시겠지요?

 

 

 

  단두대에 서서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곁에있던  성직자에게

 

 

 

 '오월 이군요'

 .......

 

 

 

'여기에 전에 왔을 때

나를 위한 축제가 열렸었어요.'

.......

 

 

 

'많이 아플까요!'

 

 

 

'하긴 괜찮을 꺼에요.'

'나는 목이 가느니까.'

 

 

 

 그녀가 참수되던 날 하늘은 왜 그다지도 시리도록  맑았다던가요!

 그래서  슭프도록 너무시려 앤 불루가 되었나요...

 

 

 

 한 때는  왕비였던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앤 불린의 머리가 단두대  아래  굴망태로

 떨어져  나갈때, 허공으로 솟아 나는 

 비둘기를  보며  야릇한 표정으로  안개속에  사라지는 

 절대군주 이며  천하의 바람둥이였던  헨리8세의

 인상적인 모습이  잊혀지지 않겠지요.

 

 

 

죽움으로써 그녀의 외동딸 엘리자베스를 대영제국 여왕에 올려놓고 육신이 사라지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었는지 ..

 아니면  못이룬 한을 자신의 분신에게 이루려는

 무서운 여인의  집착이였는지  ,,  

 역사의 판단은 어떤지 잘 모르겠읍니다.

 

 

 

 

 

   메리1세여왕

 

 

 

 

 

 

 

 

딱 쁘러진 똑순이라 할까..  하여간 그녀는 왕의 한때 정부가 아니라16살에 단명에 간 이복동생  

에드워드6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매리(매리1세)여왕은  그 이듬해 카를로스 스페인 왕의 외아들

펠리페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당시 9살이나 연하인 펠리페2세  왕자와의 결혼은 영국국민을 실망시키는데 ,

커돌릭교도인 이국의 왕족과의 결혼을 우려하였으나 카돌릭세력의 지원아래 결혼은 성사되고 맙니다.

성장기에 고난을 겪었던 매리여왕은 진정으로 펠리페2세를 사랑했으나 펠리페2세는 신교가 지배하는 영국을 

카돌릭 세력권으로 하려는 정략결혼일 뿐 이였나 봅니다.

 

 

 

그는 4번의 결혼을 하였으나 모두가 요절하고 매리여왕과는 2번째 결혼이였으나

자녀를 갖지못하는 것을 알고는  멀어져 갑니다.

매리 사후 그는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와 결혼합니다.

이여인은 펠리페2세의 첫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돈 카를로스'왕자의 신부감이였다하니..

며느리 될 여인을 왕비로 맞게 된 것이죠..   

 

 

 

매리여왕은

재임 중에는 국민들로부터 종교문제로  많은사람들을 처형하여 피의 매리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그녀는 독실한 카톨릭신자였기 때문애 신교도 들을 탄압했죠.

 

 

그녀가 5년간 왕위에 있다 병사하자 그뒤를  이어  변방에서 오랫동안   단지 피붙이라는 연줄로 죽음의 

칼날을 피해왔던 10년 아래 이복여동생이 왕위에 올라 그 찬란한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됩니다.

 

 

 매리여왕은 계모인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앤 블린의 학대로 시련을 겪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이복동생 엘리자베스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학대하였지요.

 

 재임 중 자신을 무시했던 신교와 영국교회를

 탄압하며 피의 숙청으로 떨게하였으나

 

 

병들어 눈 감을때는..

그녀가 그렇케 미워하던  엘리자베스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래도 미움속에 진정한 사랑이 있었나요 !

 

  

 

 엘리자베스여왕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갑니다 .

 주위에 청혼이 오면 나는  대영제국과 결혼했다며..

 무질서했던 아비의 사생활. 아른거리는 생모와의 추억,  유폐되어 고독하고 쓰라린

 

어린시절의 영향 들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하였는지도 모르죠. 

5살에 왕위에 올라 반세기 동안  대영제국을  탄탄한 기반위에 올려 놓고

스콧틀란드의 왕(부왕인 헨리8세의 누이의 딸인 매리여왕의 아들) 제임스 6세(스콧틀랜드왕이며 잉글래드왕으로

통일 슈튜어트왕조를 열게 되어 제임스1세라고도 함.)를  후계자로 삼고 눈을 감었는데

이후로  스콧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하나로통합된 

 

 찬란한 스튜어트왕조가 펼쳐지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

 

 

그 당시 왕족들간의 흔했던 근친결혼으로   스페인 칼르로스 5세의 모친인 호안나여왕은 

정신 질환을 알고있어 일찌기  그에게  통치권을 이양하였지요. 

 

 

 그는 광대한  대제국을  통치하면서 많은 분쟁과,

 이에 따른 과중한 세금으로 민중들의 심리도 동요되가고 있었으며.

 폴투칼의 탐험가 마젤란의  탐험에 대한 소식들로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회자되고 있었던지라  아련한 기대감 속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가  당시 유럽에서  퍼져나는

이슬람세력을 견제하고 카돌릭(기독교)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

신대륙 정복을 위한 피사로의 모험에  지원을 약속하게 됩니다.

 

 

                                                    카를로스 5세 와 이사벨라 왕비

 

 

                                                                                                                                                                                                                                                                                             

피사로는 왕으로 부터 갑옷과 훈장을 하사받았고 1529년 7월 새로 발견된 해안을 따라  파나마이남

96km 까지 지역,즉 누에바카스티야 지방의총독 및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며,

성직자 루케도 페루 원주민의 보호자이며 룸베스의 주교가 됩니다.

그리고 피사로의 심복인 루이즈는 남극해의 지도자가 되어 상당한 금전적 보장을 받게 되며 모험에

앞장서며 선을 넘은  13인의 용사들도 새영토에서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주 등장하였던 알마그로는

이에 미치지못하는 사실상 얻은것이 별로 없었읍니다.

 

 

 일의 성취 뒤에 수반되는 논공행상에 따른 잡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일로 피사로와 알마그로는 사이가 벌어져가며

 후에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읍니다.

 

 

 

 

 

                                                    무장한 피사로

 

 

피사로는 왕실의 제도적 지원 외에 부족한 부문을 채우기 위해 고향으로 갑니다. 

한껏 부풀은 그는 고향인 트루질로로 가서  형제들인,곤잘로,후안,에르난도와 합류하여  

인력과 물자를 모으는데  반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정복사업을 차질없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지금에 우리네도 정치인이나 사업가나 모두다  그들의 고향에 갈 때는

 미리 새차도 뽑고, 세차도 깨끗히 하여, 소위 광내고 때빼고  내려가  냇가나 우물동기끼리  허물없이 옛추억을

 상기하며 즐거워 하듯이  고향 찾은 사람마음은  그때도 마찬가지 였나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타는 야망으로 그 이상 이였겠지요.

                                                                                 

              

                                                                                                 

                                                                                                   자료 : daum이미지,뮤직,지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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