幸福 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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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7.

 

김호중(천상재회)/youtube

 

                                                                                                                                                                                               

 

 

 

갈림 길에서 선택이 운명을 좌우하듯이

세상을 살아가며 선택의 기로에서 하는 결정은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이라 하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左 와 右로 나뉘어진 개념이 정립되어 있는데,

옳으냐 그르냐, 하느냐 마느냐, 이렇듯 좌 우 논쟁이 던지는 의미는

대칭된 개념으로 서로의 장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세상의 한쪽 면만을 보는 이러한 좌우 개념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일까 !

좌파들이 그토록 의지하는 정부의 역할이 최선의 선택인지, 아니면 우파들이

숭배하는 市場(시장)의 기능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아니면 이러한 좌우논쟁은 더 이상 이 복잡하고 예측이 어려운 세상살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이 아니고 서로가 협조하며 장점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적절한 방안일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

富(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누구나가

살아가면서 갖는 의문일 것이다.

 

 

그러면 富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참 어렵고 어려운 문제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히 잘살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富를 이루고 증대시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흘린 땀과 축적된 지식은 富로 가는 지름길인가..

노력하고 교육받은 지식으로 살아간다면 더 많은 일자리의 기회를 갖고 가난과 불평등을

해결하면서 잘 살게 되고 행복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일까..

 

 

富는 경쟁에서 차별화, 합리적인 선택 그리고 증식이라는 과정의 산물이라는데

새로움과 지식 그리고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우리는 사람들의 합리성과 창의력이 富를 이루는 주된 이유라 생각하게 된다.

 

 

富와 관련된 경제활동은 서로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잘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행태를 보면,

좋은 환경에서 물려 받은 富로 잘사는 부류..

근검절약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하여 자수성가해 富를 이루고 살아가는 부류..

행운에 의해 급격히 富를 얻어 잘 살아가는 부류 등.. 이 있을 것이다.

 

   

 

 

 

즉 물려받은 재산으로 잘사는 사람들은 조상덕 이겠고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람은 피와 땀의 소산 이겠고

행운의 여신이 찾아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은 행운의 기회가 주어진 것 일 것이다.

 

이중에 우리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富를 이루어나가며

자수성가하는데에 관심이 있으리라 본다.

이상적인 富의 분포가 이루어진 사회는 평범한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되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이루어진 富가 균등하게 배분되는

체재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에 의하면,

富를 이루는 것은 일의 생산성의 효율에 의한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거래를 통한 기능의 전문화와 분배의 공평성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선택은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이루어 지는데 스스로가 행복에 대한

최고의 판단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최상의 자원의 배분은

자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사회전체의 富를 극대화 하는 것이라 한다.

 

 

즉, 개인의 행복은 자신의 이기심있는 선택에 의해 다가오고 멀어져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자신의 축적된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많은 경험과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富를 이루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은 축적되어 지식이 되는데,

가령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경우 좌로 돌리고 우로 돌려가며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적절한 수온를 찾게 된다.

이렇게 자신이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축적된 지식에 의해 효율성은 증가되고

富를 이루어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富를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재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하는데, 기술 향상(근검절약,재태크..)을 통해 재산을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는 다시 높은 저축율로 이어져 보다 많은 재산을 이루며

이러한 순환을 통해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져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태어날 때의 여건, 개별적 능력, 개별적 운명의 사소한 사연들이 결합되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난과 불평등은 착취하는 부유층의 행태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좌파적 입장

그리고 가난하다면 당신은 멍청하거나 게으르거나, 아니면 둘 다라고 생각하는

우파적 입장은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데 효과적인 해법을 찾으려면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를 넘어가는 富의 상속은 물론이고 유전적 형질의 계승도 가능해져 부유한 삶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 진다는 것이다.

즉,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며 富의 편중이 심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富를 이루는 경제의 흐름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기술향상을 통한 변화, 정치적 사건 들, 소비자 취향의 변화 등으로 동태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태적 현상은 은행계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잔고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데

입금이 되면 욕조의 물처럼 축적되었다가 출금되면 욕조에서 흘러나오는 물흐름의 변화가

경제의 동태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돈의 흐름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컨대, 화페의 공급량이든지 취업자의 수 등이 그것이다.

정부가 화폐공급을 늘이고 줄이는 시책, 기업의 사원 채용하는 흐름이

유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신뢰현상도 유동적이라 할 수 있는데, 소비자의 신뢰가 하락하면

지출감소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생산 감소를 초래하고 지출은 더욱 감소하고

침체 속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을 초래하여 생활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富의 흐름은 기상 예보처럼 예측하기가 어렵다 한다.

정확한 기상예측은  풍부한 자료와 기술적 분석에 의해 가능하기에

돈의 흐름의 동태적 변화도 정확한 자료와 모델의 부족과 환경의 유동성으로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즉, 돈벌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와 지식에 의존해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기심과 아량을 함께 지닌 존재로서 계산된 합리화를 무시할 만큼

공정성과 상호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규칙을 지닌다고 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속에 살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협력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무임승차같은 변칙은 벌하는 뿌리깊은 행태를 갖고 살아간다는데

이러한 것들이 富를 이루는 긴요한 사회적 협력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잘 사는 것은 나라가 잘사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데,

한 나라를 다른 나라보다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국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

중에서 보존 천연자원, 정부의 정책 역량 그리고 물리적 기술의 상대적 정교함이라 하는데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사회적 기술상태라는 것이다.

법률규정, 재산권의 존재, 잘 조직된 금융제도, 경제적 투명성, 부정 부패 척결 그리고

그 외의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이 한 국가의 경제적 성공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자원이 한정되 있는 사회에서 경쟁으로 인해 협력화라는

압력이 존재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조직화하고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혁신을 이루는 것은

바로 협력하게 만드는 경쟁이라고 한다.

 

 

우리는 1+1=2라고 알고 있지만, 1+1=3 이되는 현상은

경제적 활동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첫째로 分業(분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서로 다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각기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주력한 거래를 하면,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한다.

 

 

 

둘째로 사람들의 異質性(이질성)에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필요와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를 할 기회를 맞는다고 한다.

셋째로 돌아오는 몫이 증가한다는 이득이 있고

넷째로 협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확실성을 완화시키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에겐 불행이 닥쳐오면 더욱 어려움을 겪지만, 서로 협력하면

어려움이 반감되는데, 이렇게 서로 돕고 나중에 배상해주면 된다는 뜻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을까!

연구에 의하면, 행복의 약 50% 정도는 강력한 유전적 연관성에 연관되어 있다는데

뇌에서 행복을 관장하는 강력한 생화학적 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보면,

유전적 요인이 개개인의 뇌의 화학적 작용에 의해 따른 상대적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결혼, 사회적 관계, 고용, 사회적 지위, 물리적 환경 등 모든 요소들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배우자, 사회적 결속, 높은 지위, 편안한 환경 등에서

뇌에서 ‘행복’의 화학 물질을 배출하도록 유도하여 행복감을 갖는다고 한다.

 

 

富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모두 다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가난하고 생존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덜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기본적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富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현저하게 평등해진다. 이 시점을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富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관점으로 보려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의 증가,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우리를 일단 행복하게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기존에 느끼던 만큼의

행복감을 느낄 뿐이다.

예상치 않았던 급여 인상이 이루어지면 얼마간은 이를 기뻐하겠지만 어느덧

늘어난 급여에 익숙해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자신의 급여가 박봉이라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복권 당첨자들도 처음에는 기대치 않은 커다란 행운에 기뻐하고 일생의 모든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에 느꼈던 행복만큼 느끼게 되고

심지어는 그 보다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탐욕은 자신과 주변인 모두의 행복에 이득될 것은 없지만,

적당한 욕심(사회적 규범과 조직에 의해 조절될 수 있을 정도)은 富를 얻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성과는 선택된 전략과 환경 그리고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경직된 심정에서 한 결정과 유연한 선택은 어느 것이

더 효과적 결정일까..

이는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만약에 환경이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유연한 사고방식의 선택이 利로 왔을 것이며, 그러나 환경이 어느정도 안정적이고

예측가능성이 있었다면 경직된 성향의 선택이 효과적인 결정이라고 한다.

즉,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경험이 중요해 경직된 선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적절한 선택을 한 경직된 사고방식이 그들의 경험 때문에

유리한 결과에 이르고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되는 경우에는 유연한 사고방식에서

한 선택이 더욱 유리하다는 것이다.

 

 

경제는 항상 정치적 환경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어느편에 속하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다시 말해 右파냐 左파냐하는 물음인 것이다.

市場(시장)에 긍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右파적 입장이라 할 것이고

시장은 효율적이 아니고 정부의 역활이 중요하다는 측은 左파적 입장에

속 한다고 하겠다.

左파냐 右파냐 하는 인식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한 양측의 시각적 차이이며

다른 하나는 市場과 국가에 대한 역할에 대한 견해의 차이라 보면 된다.

 

 

 

 

 

 

左와 右라는 말은 1789년 혁명 와중에 만들어진 프랑스 국회의

議席(의석)배치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3계급(평민)인 혁명세력은 왼쪽에 앉히고 제1계급인 보수세력은 오른쪽에 앉았다 한다.

당초 左라는 말은 사회 진보를 위해 투쟁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여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었으며 ‘유토피아니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右파라는 말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고 사회안정과 자연적 점진적

발전을 신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니 隱然(은연)중에 사회의 기득권자인 권력층을

비호하는 것으로 비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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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 초기에 이르러 左파는, 경제면에 있어서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주장하고

이에 반해 右파 체재의 경우는 자유시장경제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용어의 구체적 의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해 왔지만 두 개념의 기본적 차이는

20C 중반에서 말에 이르는 동안 큰 변화없이 유지되어 왔다.

즉, 국가 대 시장, 사회적 진보주의 대 보수주의, 그리고 다수의 요구 대 개인의 권리 등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에는 변화가 없었다.

 

 

左, 右 대결의 역사적 철학적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본성의 두가지 모순된

측면을 보게 된다고 한다.

좌측 입장은 인간을 원초적으로 利他的(이타적)이라고 보고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본성이 아니라 계급사회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람은 정의로운 사회를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우측은 사람들이란 원래 이기적이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 본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고치려하기 보다는 이를

수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좌우간의 이념의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새로운 개념이 정립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富를 창출하는 제도적 장점과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인본주의 목적을 결합해

‘시너지’효과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즉, 자본주의적 수단을 사회주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자는 것으로 좌우대결이 아니라 서로 ‘윈윈’하여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富를 창출하기위해서는 조직적인 규범이론이든 사회적규범이든 진화의 과정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 번째 범주는 개인의 행동과 관련된 규범이다.

노동윤리, 개인의 책임성 그리고 자신이 인생의 주역이며 신이나 통치자에 뜻에 얽메이지

않는다는 신념 등과 관련된 규범이 포함된다.

열심히 일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면 來世(내세)뿐만 아니라 現世(현세)에서도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와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현실주의를 균형있게 조절하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협력과 관련된 것으로 서로 협력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관용과 공정성을 중히 여기는 규범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위도식하며 남을 속이며 기만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부정하는 규범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혁신과 관련된 것으로 현상을 종교적이나 주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보다 합리적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문화가 더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평등주의는 위험 부담에 대한 동기를 감퇴시키므로 경쟁을 촉진하고 성과를

높이 사는 그런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시각이다.

내일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노동을 중히 여기고 세대간 저축율을 높이며 장기적인

이득을 위해 일시적인 쾌락은 희생할 줄 알며 서로 협력하기를 즐겨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협력하고 혁신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는 무언가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목표를

발굴하고 실행하여 진화하는 변화가 쉽게 일어난다.

이와같이 개별 사회의 문화를 분석하고 그 사회규범의 경제적 효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부자가 되고 가난해지는 것이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면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運(운) 또는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적요인이라면 그러한 결과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富의 사회적 이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데

끈질긴 근성, 결단력 그리고 근면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여 가난으로부터 부유함으로

사회적 이동이 된다는 것이다.

 

 

富의 사회적 이동은 빈곤계층에서 부자계층으로 또는 부자계층에서 부자계층으로의

이동보다는 중산충의 부모를 둔 자녀들이 중산계층으로의 이동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左파측의 입장에서는 환호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불공평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이며 가난한 자와 소수계층에서는

경제적 성취를 가로 막는 장애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속단된 판단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현상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준 돈의 영향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성(선천적)과 교육(후천적)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소득 간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고 사실 상 富는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 즉 현금과 유전자는 부의 사회적 이동에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는 자녀를 기르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행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즉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의 사고와 행동에 아주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따라서 부모의 행동이 자녀들의 미래 소득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유전적 요인(약물이나 알콜중독, 우울증 등 정신적 장애)도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유전적 요인들은 장래 소득을 예측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물려받는 행동의 원천은 문화적 규범이나 가치관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左 와 右 의 어느 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가 !

右파는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며 긍정적인 행동이 긍정적인 결과에 이른다는

점에서는 옳은 것이다.

문화적 규범은 특정한 행동의 유전 가능성과 영속성을 설명해줄 수는 있으나

반사회적 행동을 변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左파의 입장도 옳은점이 있다는 것이다.

부와 천부의 재능 그리고 인종과 같은 출생이라는 것은 경제적 성공을 설명하는데

매우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좌도 우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살펴보았다. 소득 재분배는 행동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자유방임주의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左파 및 右파적 논리를 떠나 기회균등과 사회안전망을

결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도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부자들도 경제적으로 응징해서도

안되다고 한다.

이제는 市場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제도가 경제적 진화의 기반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 체제 속에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富를 축적하는 가장 효율적인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확산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의 조화적인 역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자료: daum 이미지,지식,뮤직, 부의 기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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