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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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14. 10. 3.

 

Nicos (Kalinifta : 가슴이 뜨거운 사람) - 터키 짚시음악/ YouTube

     

 

 

 

 

              

  동서 문명이 융화된 유적의 나라   터키

 

 

                   

 

                                                                              에미레이트항공 A380

                                                                                   

 

                                                                              

 

한 볕 더위의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8월의 늦 자락.

평상에서 벗어난 흥분된 몸과 마음은 드넓은 창공 속으로 날아오른다.

 

인천공항을 이륙한 A380 대형여객기는 중국북부 상공을 거쳐 몽골접경과, ‘카자흐스탄접경지역을 날아

일직선으로 비행한 후, 기수를 남서쪽으로 돌려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아랍에미레이트의 사막의 항구도시

두바이공항에 도착한 것은 여행의 흥분도 사그러져가는  9시간 30분의 긴 여정이 흐른 뒤였다.

 

12시에 출발하여 지구를 서쪽으로 돌아 반 이상을 날아왔으니 오전 930분이 되야하나

현지시각은 오전 430분이다(시차 5시간 늦음 

두바이페르시아만 뽀족나온 입구에 위치한 아랍에미레이트’(U.A.E.)7 토호국 가운데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사막의 중심도시이다.

 

 

 

 

                           

                                             어둠을 밝히는  대륙의 불빛                                                                        

 

 

페르시아만의 작은 항구도시였던 두바이는 오일 달라를 기반으로 물류허브, 나아가

비즈니스와 관광허브로 성장하여 사막에 신비루 같은 고층빌딩 군을 이루며 성장하고 있는데,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급속한 부동산 개발위주의 개발과 성장은 주춤하고 있으나,

거품을 걷어내고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인구는 약 200만명, 아랍에미리트 1'다르'는 약280원이고 기후는 말 그대로 사막의 35~45도를

오르내리는 살인 무더위이지만 건물 내는 모두 냉방이 잘되어 쾌적한 환경을 이루고 있다.

바닷물을 정수하여 물도 풍족히 사용하여 정원 등 환경을 잘 조성하고 있으나 (생수 1달라() 500리터 4)

야외의 식물들은 강우량이 거의 없는 사막의 기후 탓으로 물을 준다고는

하나 목말라 희뿌연 자태를 하고 있다.

 

 

 

 

 

            

                                  돛단배 모양의 버즈알아랍빌딩 과 도심의 빌딩군    

 

 

                                                                                                                                                                    

 

 

   

   쥬메이라 해변가와  21C바벨탑이라는

    세계최고층(828M:162층,15만평)

       버즈칼리프빌딩(삼성 시공참여)       

      

 

 

                    

        

 

            

                                 두바이 중심가와  쥬메이라 전통시장 그리고 쇼핑몰 (아래)  

(오전이라 한산  함)                                                     

 

                                                     

                                             

                        

                                                                                                    

오전의 짧은 두바이투어를 마치고 오후 220두바이공항을 출발 이스탄불로 향해

북서쪽으로 기수를 돌려 4시간 50분 비행 끝에 이스탄불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55. (시차 6시간 : 하절기 썸머타임)

 

이스탄불의 밤은 고국을 떠날 때 날씨보다 약간 낮거나 거의 비슷한 체감으로 와 닿는다.

저녁 시간에 울려 퍼지는 이슬람의 경전 코란을 읅조리는 소리와 초생 달빛 아래 둥그런

첨탑의 모스크사원의 자태는 이곳이 이슬람국가인 것이 저절로 실감나게 한다.

 

이스탄불은 동 서양이 교차하는 터키의 최대 도시이며 보스포러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대륙이 나뉘어지며  지중해에서 에게해로 마르마다해를 통해 

흑해로 들어가야만 하는 교통의 지정학적인 

요충지이다.

두 대륙을 잇는 보스포러스대교(1,073M:현수교)를 동에서 서로 건너면

터키국토의 3%를 차지하지만 전체 주민의 3/4이 거주하고 주요 건물들이

집결된 발칸반도의 끝 유럽이다.

 

 

 

 

 

 이스탄불의 밤

 

 

 

가끔 보스포러스 해협과 혼동하게 하는 좁은 해협인 골든혼’(Golden Horn)입구를 중심으로 

좌측의 구시가지(유럽)와 우측의 신시가지(유럽)로 나뉘고,

'보스포러스'해협을 중심으로 서쪽(좌측)은  유럽이고 

쪽(우측)은 '아나톨리아' 반도인  아시아 대륙에 속한다.   

 

베이올루(Beyoglu)이스탄불의 현대적 모습을 잘 지니고 있는 신시가지로 극장, 정부청사, 호텔,

쇼핑센터,사무실 현대적 건물들이  밀집해 있고 맞은 편 구시가지 베야줏(Beyazit)은

아야 소피아사원, 술탄 마흐멧사원,  톱 카프궁전 등 고대 유적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스탄불B.C. 8C 말경 고대그리스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한 도시로 B.C. 512

페르시아’(이란,이라크)제국으로 넘어갔고 그 후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의  통치하에 들어간다.

 

로마제국이 동 서로 분열되면서  콘스탄틴누스’1세 때에는 동로마의 수도로

 채택되어  신로마로 불리어지고 B.C. 330년에는 콘스탄틴노플로 개칭되면서

기독교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된다.

 

 

 

 

 

  이스탄불 

 

 

 

1203년에는 제 4차 십자군 원정으로  약탈과 파괴되고 이민족의 칩입과 갈등으로 국력이 약해지면서

동방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무슬림의오스만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스탄불로 불리어지면서

1923년 터키공화국의 수립과  더불어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진다.

 

터키는 

인구 약 8,000만 명, 면적은 대한민국(북한 12만,남한 10만 ) 의 약 7.8 배인 783,502 

화폐단위는 '리라'(1리라=450)이며,

터키족이 80%, 쿠르드 족이 20%를 차지하고,국민의 90%이상이 이슬람교(수니 파)를 믿는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행정수반은 총리이다.  

 

 

 

                                        

 

 

                     

 

                  터키국기 및  지도 

      

                  

         

              

 

    터키영토의 대부분을 이루는 아시아대륙의 서쪽 끝인 아나톨리아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이  상호 영향을 끼친 아주오래 전부터(구석기시대) 인류가 살았던 곳으로

   지정학적인 요지로 인해 시대에 따라 부침하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으로

   영욕을 같이하며 동화되어 많은 시대적 유물과 유적지가 산재 되어있어

   유적개발이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를 

   미완의 땅이다.

 

이국의 낯선 밤의 연정을 느끼지도 못한 체 눈 뜨이자마자 터키여행의 첫째 날이 밝아

 이스탄불유럽지역에 들어서 마르마다해변을 좌측으로 보며 남하하는

'버스 투어'가 시작되었다.

 

 

 

   

 

터키 여행  일정 

          

 

 

에게해가 보이는 케리불루반도의 끝에서 아시아 쪽 아나톨리아반도의 서부해안으로

넘어가기 위해 차들을 실은 페리호를 타고 푸르다 못해 검푸른 물결 위를 포말을

뿌려되며 40여분 항해 끝에 맞은편 작은 항구에 닿아 1차 세계대전(,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은 동맹국, ,,불은 연합군)의 격전지였던 차나칼레를 지나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배경이었던 고대도시 트로이’(Troy)로 이동했다.

 

 

 

 

                  터키 유럽지역에서 멀리 보이는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

                        아시아 지역으로 건너 간다.(40~50분 소요). 

       

 

 

  트로이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전쟁은 초기 그리스인과 서아나톨리아인 사이에 전설적인

전쟁으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오디세이>의 주요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흑해로 들어가기위한 보스포러스 해협의 선박들의 행렬               

      

 

 

 

트로이전쟁의 발단은 그리스도시국가의 맹주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름다운왕비 헬레나에서 비롯된다.

 

트로이왕자 파리스헬레나를 유혹해 트로이로 그녀를 데리고 가니, 그녀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그의 형제 아가멤논과 함께 그리스원정대를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한다.

10여년의 지루한 공방 끝에 그리스군이 커다란 목마에 특공대를 숨기고 퇴각한다.

 

 

 

 

 파리스 & 헬레나 와   트로니 목마 (영화 'TROY'중에서)

  

                                     

 

 

 

길조나 흉조냐 공론 끝에 승리에 대한 신의 축복이라 여기고 성내로 들여와 승전 잔치를 벌이며 골아 떨어진 트로이군은 목마 속에서 나온 특공대와 성 밖의 그리스군의 협공으로 쓰러져 간다. 불멸의 그리스장군 아킬레스’(영화 TROY에서 브레드피드)아폴로의 도움을 받은 트로이왕자 파리스

쏜 화살을 그의 치명적 약점인 뒷꿈치(아킬러스건)에 맞고 죽어간다.

 

           

이 전설의 전쟁은 올리브와 포도나무만이 재배될 수 있는 척박한 땅에서 그리스는 크림

반도가 있는 흑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해상 입구에 위치한 트로이’(터키)와의 충돌이

불가피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지중해 무역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그리스

트로이와의 충돌을 호메로스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대서사시 <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

신화적인  세계관으로 승화시켰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트로이  유적들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 목마 

                             

 

 

'트로이' 유적지를 뒤로하고 에게해의 휴양도시 아이발륵’(Ayvalik)으로 이동하여 에게해의 저녁놀이 드리워진 아름다운 해변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아이발륵 해안 가. 에게 해를 건너 멀리 보이는 곳은 그리스.

 

 

                            

 

 

 

다음날 아이발륵을 출발해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고대도시 에페소로 이동했다. (3시간 소요)

터키 최대의 고대도시 에페소이오니아문명의 중심지로서 헤라이클레이토스’,

 ‘탈레스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한 예술과 과학이 꽃피웠던 곳이다.

 

 

 

 

 

 

 

                      에페소 가는 길목에 해바라기 밭과  인근 마을.

                     (터키 남서쪽 지방으로 갈수록  대규모 해바라기, 올리브, 밀 밭들이 펼쳐진다.

                            터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5,000불 이라는데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은  

                                         대체로 의.식.주. 기반시설 들이  여유있게 잘 살아가는  모습 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7~6C에 건립된 식민도시로, 주변국가

(스파르타,페르시아,로마 등)

흥망성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며 식민지로서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 B.C. 6C에 지어진 웅대한 아르테미스신전과

로마제국시대에 건축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미티아누스신전(기원 후 1C)등이 유명하다.

 

아르데미스신전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에페소인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

받았고 바올로가 전도와 사목을 한 교회 중에 하나였던 기독교 초기역사에

주요한 의미가 있는 도시이다.

 

 

 

 

 

  에페소 유적지 (자료:에페소 관광자료 참조) 

                            

 

 

터키가 지형학적 주요한 위치로 말미암아 옛 부터 강대국의 침입을 받아온 것처럼 에페소

B.C 11C 이오니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후, B,C. 5C 경에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알렉산더대왕의 지배를 받았으나 로마제국 치하에서 가장 번창하였고 아우구스투스황제 때에는

 당시 500여 개에 달하는 로마의 소아시아 속국의 수도로써 무역항으로써

인구 25만의 번창한 도시였다.

 

7C 무렵 강에서 유입되는 토사가 바다를 메우면서 항구로써의 기능을 잃고

 1,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대도시의 영화를 뒤로하고 저물어 갔다.

 

 

 

 오데온 소극장

 

                                    

 

 

오데온(Odeon) 아고라(광장)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1,500 여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비교적 소규모의 노천 건축물로써 의회와 음악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서기150 년 경에

명문가문 베디우스 안토니우스와 그의 부인 플라비아 파피아니에 의해 세워졌다.

 

바질리카는 오레온 서쪽에 위치한 두줄로 나열된 기둥의 자취만이 남아있는 곳으로

로마시대   화폐의  교환이 이루어지던 상업의 중심지.

 

 

 

                                                                        바질리카와  오데온    

     

                                                                     당시 건축 상상도

                

                                                                           

                                                                                                                                               

                                                                  

관용아고라는  ‘아우구스투스크라디우스황제때 (서기 1C ) 세워진 60m 길이, 73m

광장으로  종교모임 정치적 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주위에는 관용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다.

 

                                           

니케여신 부조는  날고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가 부조되어 있는데 한손에는 화환, 다른 손에는

대추야자 가지를 잡고 잇다. ‘니케제우스의 수행비서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가져오는데

스프츠 브랜드 나이키의 어원이기도 하다.

 

 

 

                                                              

             

              

 

                                         뫼비우스 기념비 

 

 

도미티니아 신전은 서기 81~96 년에 도미티안황제의 이름으로 지어진 최초의 신전이며 뫼비우스 기념탑은 독재자 술라의 손자인 뫼비우스’의 기념비로 서기1C 경 만들어진 기념동상이다.

 

 

헤라클레스 문은크레테스거리가 끝나는 위치한 사자를 두른 헤라클레스 양각이 세겨진  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위관리들이 지날 때 행인들을 검사하던 검색대 역할을 하던 곳이다.

 

 

 

 

                                          헤라클레스 문과  니케의 부조상  

                  

                                                                                                                                                                              

크레데스 거리는 도시의 중심부를 지나는 헤라클레스문에서 셀수스도서관 까지 뻗어있는

대로이며 시작 부위에 크레데스라는 성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도로 중심부로는 마차가다녔고

대로 양쪽 변에는지붕이 있는 보행도로 였으며 거리의 밑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있었는데,

 서기 4C 경 여러 번의 지진으로 크게 

파손되어  변경되어 복구되었다.

 

줄지어선 원형 기둥사이엔 에페소유명 인사들의 석상이 자리 값을 하고 있고 도미티안

광장을 지나면 2개 층의 기둥에 사자를 두른 헤라클레스문이 버티고 있다.

 

트라이언 우물은트라이언황제의 이름딴 2C 초 건축된 U자형의 12m 기둥이 2층으로

세워진 건축물로 황제의 동상이 세워진 동상아래 커다란 수도를 통해 물이 흘러내렸다.

황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상은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나머지는

트라잔분수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트라이언 우물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은 서기 1C 경 만들어져 4C 스콜라스티카라는

 여성에 의해   대규모로 복구되었다.

 ·온탕이 있고천장에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따뜻한 공기의 순환을 통한

중앙난방시설을 갖춘 4개의 방으로 나뉘어진 2층 건물이다

 

로마인들의 목욕문화는 발달하여 많은 이들이 목욕을 하며 휴식하며 토론하는 것을 즐겼는데

 특히 작은 탕을 선호하였다 한다. 탕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있어 뜨거운 탕인 칼라디움

에서 몸을 씻고 향수와 마시지를 받으며 따뜻한 태피다리움에 가서 휴식하며 토론을 하고

나가기 전에 냉탕인 프리지디룸에서 원기를 회복했다 한다. 한번에 1000여 명이 이용할 수

있었으며 휴게실과 스포츠시설도 구비되어 있었다.

 

 

 

 

                            쿠레트 거리(멀리 앞쪽에 보이는 2층 건물이 셀수스도서관 임)

  

           

                                                       

                                                       

 

 

                                   바리우스 목욕탕 과  사랑의 집

                   

 

                                 

 

로마 시대 이후 목욕문화는 점차 사그러들어 비잔틴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목욕탕을 이용했고 중세에 와서는 아주 잊혀져 갔으며, ‘셀죽터키오스만터키인들이

아나톨리아반도에 들어왔을 때는 자신들만의 목욕탕을 새로히 건설해 갔다.

 

 

하드리아 신전~ ‘크레테스거리에서 복구된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건물이다.

2C 하드리아황제의 의해 복원된 이 신전은 비잔틴 시대에 처참히 파괴된다.

 

코린트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면 아치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티케여신상이 내부에는

메두사를 닮은 젊은 소녀상이 부조되어 있고, 기둥 받침대에는 에페소의 기원, 전설 등이

새겨져 있으며 4면에는 황제들의 청동 동상이 놓여있다.

신전은 4C 중반 지진으로 대파된 후 새로이 복구되었다.

 

 

 

 

                                                 뫼비우스 기념비와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공중화장실은  대리석 변기 밑으로 정화조 시스템과 상하수도 시설과 연결되어 환기를 시켰으며

한 번에 50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있는데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언덕위의 집 들은하드리안신전 맞은편 언덕에 에페소상류층이 살았던 수 천 채의 집들이

있는데 1C 경에 지어져 수리복구를 통해 변형되어 6C 경까지 사용됐다. 이곳의 특이한 특징

중의 하나는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바닥에 꾸며진 모자이크장식이다.

 

                                   

사랑의 집은크레테스대로 북쪽의 셀수스도서관 맞은편에 위치한 서기 4C

만들어진 고대 매춘업소이다. 이곳 여인들은 다른 로마 시민들처럼 회의나 모임에도

참석하고 투표도 할 수 있는 권리도 있었으며 손님들도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구 대리석 거리  길목에는 위치를 알리는 화살표시와 발의 모양을 새겨놓아

발의 크기로 년령 제한을 하였다고 한다.

 

 

 

                      

                      사랑의 집 입구에 부조된  화살표와  발바닥                공중 화장실

                              

 

 

 

셀수스 도서관은‘크레테스대로 끝에 있는 광장과 광장을

연장하여 만든 오디테리움방향으로 만들어 졌다.

서기 2C 초반 로마 아시아지역 총독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념하여 서기 110년 총독이었던 그의 아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퀴라’(C.Aqulia) 이어 손자 켈수스가 서기 125년 완공한다.

 

건물 중앙 그의 묘위에

지어진 도서관은 당시 12,0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방대한 규모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터키 버가모도서관과 함께  세계 3대도서관)이였으나,

서기 265고트족에 의해 훼손되고 수 차례

 발생한 지진으로 파괴되나 1978년에 복구가 된다.

 

 

'마자에오스'와 '미트리드아테스'문은

'셀수스'도서관 입구 동편에 서있는 문으로 기원 전 40년  '아우구스투스' 제왕과

그의  아내 '리비아'가  딸과 사위를 위해 두 노예에게  자유를  준  대가로

 '마자에오스'와 '미트리드아테스'가 감사의 뜻으로 세운  문이라 한다.

 

 

 

 

                                 

                                셀수스 도서관(좌)과 마자에오스와 미트리드아테스 문(입구의 우측)

  

                                                

 

                                                         셀수스도서관 내부와 입구 기둥

 

 

                                                              

                                                                     상업 아고라  

 

                                                                  하드리안  신전   

                                                           

                           

 

아래층 기둥사이에는 셀수스인품을 상징하는 정교한 여인들의 석상들이 서있고

왼쪽(사진)으로 부터 지혜(Wisdom: Sophia), 미덕(Virtue: Arete), 지성(Intelligence:

Ennoia), 지식(Knowledge: Episteme)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곳은 서민들을 제외한

귀족 들과 철학자 들 만이 이용했다고 한다.

 

건물 지하에는 政事(정사)와 학문에 지친 피곤한 지식인들이

피로를 풀게 사랑의 집으로 통하는 비밀의 통로가 되어 있었다 한다.

 

 

 

     

 

                                                                       

                                                                       항구도시 (도로)

 

                 

 

 

                                                    

                                                                                                                                                    

 

 

 

아고라 (광장)는 기원전 3C 경에 만들어진 도시의 가장 큰 상업의 중심지이다. 항구거리와

연결된 이곳은 항구에 들어온 물건들을 무역 상인들이 가져온 물품들과 교환되는 장소이었다.

 

수 백년 동안 사용되어 왔으나 현재에는 토대와 수 많은 동상과 제단 등만이 흩어져 있는데

석상 받침대에는 에페소상류층과 귀족들의 생활상 등이 담긴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다.

이 유적들은 옮겨져 후기 로마 시대 성벽을 쌓은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한다.

 

 

 

                                                         원형 대극장

 

                        

 

대리석 거리는  원형극장 앞에서 셀수스도서관 까지 이어지는 대리석으로 된

로마네로황제시대 만들어진 길인데 중앙부위는 마차가, 옆으로는 위를 덮은

보도로 이루어져 있다.

 

원형 대극장은 고대에 가장 규모가 큰 극장가운데 하나로 기원 전 98~117

트라이바누스제왕 때 지어졌는데, 높이 8m 3층으로 이루어진 무대 총 23,500여 명이

관람할 수 있고 음악당, 투기장, 정치집회장 등으로 사용되었으나 262년 지진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관용 아고라와 시 공의회 

                     

 

 

 

항구도시는 원형대극장과 항구사이에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거리로 폭 11m, 길이 530m이다.

 '헬레닉' 시대에 만들어지고

 수많은 제왕과 지도자들이 드나들었던 항구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주도로로 이용되었다

.

 4C 중반 지진으로 파손된 후 아르카리우스황제 때 복구되어

아르카리우스도로라고도 한다. 밤에도 50여 개의 횃불로 길을 밝혔다고 하는데 거리의

양끝에는 대문이 있고, 거리를 따라 지붕이 덮힌 길거리에는 상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성모마리아교회는 서기 431년과 439년 기독교회의(Konsil)가 열렸던 에페소에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은 곳이다. 431년 열린 종교회의에서 마리아예수와 그리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토론 했던 곳으로, 격론을 거처 예수는 하나고 사람이면서도

()적 존재이며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서 결론을 내리고 부정하는 이들은 파문을 당한다.

1976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이곳에서 예배를 보았다.

 

 

 

  성모마리아 교회(콘실교회)                                            헤라클레스 문 

  

             

 

아르테미스신전은  B.C. 3C 경 세워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신전으로 셀축

쿠샤다스로 가는 초입에 있는데, 신전 밑에는 기원 전 8C 경 지어진

 4개의 건축물이 발견되었다.

B.C. 6C 중엽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때부터 120년 간 지어져 B.C. 250년 완성되었다.

당시 에페소의 번영으로 인한 풍부한 재정과 에페소인들의 열정으로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보다 4배 이상의 규모로 가로 130M, 세로 70M, 127개의 기둥이 우뚝 선 이오니아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아르테미스 신전

 

                                                   

 

 

 

B.C. 356년 한 정신이상자인 헤로스투스라는 사람에 의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복구를 통해

기둥의 높이가 10M에 불과했던 파르테논신전보다 8M 높게 흰색 최상의 대리석을 사용해

127개의 기둥을 세우고 사방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서기 3C 경 동 고트족의 침입으로 신전은 대파되고 파괴된 대리석은 몰려든 사람들이

가져가 완전히 폐허가 되고 현재 기둥 하나만이 외로이 서있다.

 

 

 

한 낮의 따가운 태양 아래에도 역사책에서 만 보아왔던 수 천 년 전의 유적지를 호기심과

신비로움으로 땀에 적셔가며 돌아본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정에 올라 면처럼 뽀얗다고

해서인지 목화성이라고도 하는 파묵칼레2시간 30여 분 걸려 도착 했다.

 

새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뽀얀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이곳은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는데 남쪽언덕의 비탈을 따라 언덕에서 발원한 칼슘산화물의

온천수가 오랜 세월 흘러내리며 지반을 녹이면서 변화되어

백색의 천국을 만들어내고 있다.

 

 

 

 

 

              

 

                                         

 

      

 

                     

 

파묵칼레 언덕과 히에라 폴리스 유적지

  

           

                  

 

 

고대로부터 온천 휴양지로 많은 이들이 찾았고 상류부근에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에는

거대한 원형극장과 유적의 잔재가 남아있는데 고고학적으로 일급보호지역으로 보호되고

있으나 수차례 지진으로 파괴된 고대유적지는 쓸쓸한 자태와 잔재들이 유구한 세월에

비바람만 스쳐가는 황량한 대지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 쌓인 부근의 한적한 숙소에서 1박하고 콘야평원을 바라보며 암굴 괴석의

고대지역인 카파토키니아로 하루종일(9시간 30) 차편으로 이동하였다.

 

 

 

 

 

 

 에르지에스산(3000m)의 화산의 분화로 분출되어 응고된 응회암이 풍화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1300m 고지 버섯바위의 피사바계곡. 이곳은 스머프계곡이라고 문학작품에도 등장하고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되기도 했음                     

 

 

                                      

 

기암괴석과 지하도시로 잘 알려진 카파토키아30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굳어서 된 응회암이 오랜 세월 빗물이나 지하수 등의 풍화작용에 의해 침식되고 변형되어

버섯이나 죽순모양의 기묘한 자태를 연출하는 장엄하고 환상적인 자연의 걸작품이었다.

 

해발고도 1,000~1,300m 위치한 이 계곡은 원래 3,000m의 산악지대로 연약한 화산암이

침식되어 현재의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이용해 주거지를 만들고 종교적

억압을 피해 지하에 그들만의 종교 모임(이스람교도의 탄압을 피한

기독교인들) 장소로

사용되어왔다.

 

 

 

 

      불루벨리 언덕(상)과

사파리 투어 (짚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카파토키아 명승지를 

                   질주하는데 불루벨리 언덕은 석양이 비치면 븕은 색으로 변하는 장관을 이룬다.)

  

                      

                                 

   

카파토키니아지방은 1C 경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기독교가 3C 부터는 이곳이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으로 이들이 박해를 피해

건설한 지하도시는 그 당시 절박한 환경에서도 의지를 갖고 삶을 개척하여 온 것으로

아마도 굳게 믿는 그들의 신앙의 힘일 것이다.

 

 석굴교회가 300여개나 남아있는 괴레메

야외골짜기, 파샤바계곡이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규모나 설비가 크고 신비하다는

데린구유지하도시는 숙연함 과 신비함그 자체였다.

 

 

 

 

 

                                                                  지하동굴 내부

 

                                                                 

 

                                                           

1965년 우연히 발견되어 세계 9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진 이곳은 히타이트, 로마,

비잔틴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다. 지하 1층은 원시 히타이트이 저장고, 생활공간으로

이용했으며 그 후에 다른 종족 등이 살아오면서 지하로 좀 더 내려가며

지하도시를 확장하게 된다.

 

계곡에는 9C~13C에 형성된 50여개의 마법과 같은 특색있는 교회와 수도원이 있는데,

당시에는 그래도 지반이 연약해 파기가 수월하였다는데 외부에 노출되며 굳어져

지금같이 단단한 암석으로 변했고 벽에는 성인들, 천사, 상징적인

신앙의 표시들이

뛰어난 솜씨로 새겨져 있다.

 

200여개의 지하도시 중 규모나 시설 면에서 크다는 데린구유는 일반인에

개방되어 관람 할 수가 있는데 지하로 층을 나누어 환기통, 주방, 기도실, 넓은 공간, 침실,

창고, 화장실, 연락통로 같은 생활편의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데 현재까지 지하

85m 8층까지만 개방되어 있다.

 

 

 

                 괴레메계곡의  암굴 교회와 주거지 내부 장식

 

                                                    

 

 

 

  Cappadocia지역에는 모두 36개 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는데, 출입구에는 유사시 통로를 봉쇄할 수 있는 대규모 돌문이 있는 은신처로 그리고 그들의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 비밀장소로 이용해 왔다.

1,2층에는 성경학교,수도원,주방,저장고,침실,응접실, 식당 등이 있고, 3,4층에는 무기저장고

은신처가 있어 급작스런 공격에 대피하고 방어할 수 있는 구조로 되있고,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며 맨 아래 부분에는 우물이 있고, 각층마다 환기시설을 위한 공기구멍이 나있어

1만 명 정도가 이곳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지하도시 건설은 해수면 보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가 (70m~85m 정도) 환기구멍을 내고 그

많은 양의 흙을 환기구멍을 통해 들어내 Cappadocia의 지형을 이용하여 계곡의 시냇가에

흙더미들을 쌓았고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빗물과 시냇물에 의해 흘러갔을 것이라 한다.

 

 

 

  수도사의 골짜기라는 비둘기 계곡 웃추히사르와  인근주거지

  

                                

사파리투어는 여행일정에서 선택관광(90유로/1인당)으로 오프로드찝차를 타고 계곡과

언덕을 정신없이 달리는데, 야성미가 물씬 묻어나는 터키아저씨의 운전솜씨에 넋이 나갈 지경으로,

300여 개의 석굴교회가 남아있는 괴뢰메야외 골짜기, 언덕위에 오밀조밀 들어있는

바위산의 비들기집이라는 웃추히사르주거지를 바라보며, 기암괴석의 지형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언덕위를  오르고 내리며 질주를 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 정말 자연의 위대한 장관의 모습에 숙연해 진다.

저무는 황혼의 햇살이 각양각색의 기묘한 형상의 황토빛 스카이 라인에 퍼져나갈 때

 

사람들은 차 한잔을 마시면서 그 잊지 못할 광경을 마음에 꼭 담아가려는 듯 말들이

없건만 오직 기념품을 파는 상인의 싸요, 사요.좋아요라는 익숙한 소리만 귀로 흘러 나간다.

 

 

      카파토키아의 지는 저녁 놀                                                                                                                  

   

                      

 

자연의 절경의 몸으로 체험하고 흥분은 가라 앉았지만 비포장 언덕을 신나게 달렸던 탓

(도중 바퀴가 펑크 나서 휠을 굴리면서 주행 함)인지 멍한 기운이 잦아들지 않았지만

 숙면을 하니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대계곡을 바라보는  열기구  투어                        

                                                

 

 

 

Cappadocia의 백미라는 배룬’(기구)체험(150유로/1인당) 이었다. 아침 일찍 동트기 전

단단히 채비하고 기상상태가 양호하다는 이륙허가를 받고 두둥실 솟아올라 동트기 전의

장엄한 계곡을 굽어보는 40~50여 분의 체험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한 귀중한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광활한 소금  호수

 

                   

 

 

 

밸룬여행의 흥분된 감정을 추수리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여정을(4시간소요) 계속하여

중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금호수에 들렀다. 이곳은 아나톨리아지역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터키에서 호수 다음으로 큰 규모이지만 수심은 낮아 0.5m미만이고 강우량도

 

터키에서 가장 적으며 주변에서 유입되는 소하천이 있기는 하지만 호수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려 호수바닥은 30cm 정도 두께의 소금 층을 형성하고 있다.

염도는 32.4%로 세계에서 염도가 가장 높으며 터키에서 소비되는 소금은 대부분

이곳에서 나온다.

 

 

 

 

 

 

               

앙카라 부근 의  인근마을과 산림

               

                                                          여행 내내 함께한 애마 

                 

                              

                    

 

소금호수를 떠나 앙카라에 이르는 길은 남쪽지대의 평원과 달리 수목이 무성한 산들이

지속되는 지대가 창밖을 스쳐가는 가운데 저녁놀이 드리워질 무렵 앙카라에 도착했다.

1923國父 아타튀르크대통령은 터키공화국 수도를 내륙 깊숙이 위치한 교통의

요지인 앙카라로 옮긴다.

 

 

 

        

                                                카파토키아(상)와 앙카라숙소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낸 이스탄불  숙소. 

   

                                                         한국공원과  한국전쟁 참전비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에 가담함으로서 영, 불 연합군에 패배한

 오스만제국은 1920세부로조약을 통해 제국이 분리될 운명에 처한다.

이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장군의 주도로 터키민족운동과 함께 독립전쟁이 일어난다.

 

 

1922. 9.18. 점령군은 퇴각하고 623년간 지속되어온 술탄국인 오스만제국은 종식되어

1923. 7.21. 스위스 로잔조약에서 신생 터키공화국이 초대 대통령에 무스타파 케말장군

으로 하여 성립된다. 그는 신생 터키공화국의 출발과 더불어 급진적인 개혁을 통해

현대화의 길로 이끌어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國父)라 불리어지며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1881~1938)초대 대통령이

                               잠든  기념관으로 터키인들에게 신성시 되는 곳임.

 

 

           

 

계획적이고 현대적인 앙카라에는 아타튀르크의 묘 부근에 한국공원이 있고 그 안에

 한국전 참전비가 있다. 세계 2차 대전에서는 터키는 중립을 취하다가 1945. 2,23. 연합국 측에 서고

1945. 국제연합 창립국이 된다. 당시 구 소련은 터키 해협에 군사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이웃 나라 그리스에서도 공산주의와 내전이 일어난다. 이러한 가운데 위기를 느낀 터키는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고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받고 구 소련의 도미노식 공산화에 대항하기

위해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 28)에 가입하려 한다.

                                   

1951. 6. 한국전이 발발하자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4년에 걸쳐 미,,,에 이어  4만 여명의

전투병을 파견하여 741명이 異國(이국) 땅에서 전사한다.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국).  

                           자료 : daum 백과사전 참조 .2014년

                                                

 

1952년 터키는 NATO에 가입되어 팽창되는 공산화에 대항하여 강력한

군사동맹의 일원이 된다.

NATO회원국(벨기에,프랑스,캐나다,덴마크,아이슬란드,이탈리아,룩셈부르크,네델란드,

노르웨이,포르투칼,,,그리스,터키,독일,스페인,체코,항가리,폴란드,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리투아니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알바니아,크로아티아 : 28개국.가입순)

 

 

터키는 에게해와 지중해안을 낀 남서부지방에는 지중해성 따뜻한 기후로

면화,오렌지,올리브,해바라기,채소 등을 드넓은 비옥한  토양에 대규모로 재배하여

농업과 이로인한 식품가공업에 많은  노동력을 흡수하여 터키근로자의 반이상을

 

농업에서 흡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과 동방 (이슬람권)의 경제 기구에

참여하여  공업부분(30%)에도 많은 발전을  보고 있으며

유적의 나라답게 관광산업이 많은

전을 하고 있다. 서비스업(58%)  

 

 

 

                                                                 앙카라 인근 주택가 

 

 

異國의 땅에 세워진 고국의 깃발을 보니 누구나가 애국자의 심정으로 뭉쿨한 감정이 드는데

안에서는 싸우고 나뒹굴어도 멀리 나오면 내 고향 내 나라가 그리워지는 것은 모두가 갖는

人之常情(인지상정)일 것이다.

 

앙카라시내에서 피로를 풀고 이 여행의 특색인 아침 일찍 일어남과 함께 익숙해진 채비를

마치고 여행의 종착지이자 하이라이트이스탄불로의 여정에 들어갔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8시간 하루 종일 버스투어인데 도중에 터키전통 가옥이 잘

보존되고 원래 이 지역에서 자생하던 꽃인 샤프란(:)로 유명한 동화 속 마을 같은

샤프란 불루에 도착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가옥 과 샤프란 불루 전통 상점가

 

 

     

 

 

터키 북서부 이스탄불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18C 부터 20C 초에 세워진 것으로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1994년에는 마을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실크로드상인들이 긴 여정 끝에 머물고 휴식하던 곳으로 모스크 사원, 대상들의 숙소,

시계탑 등이 보존되어 옛 오스만제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지금도 흙벽에 나무창틀을 끼우고 거의 모든 지중해안과 터키가옥이 그렇지만 적갈색의

지붕에 흰 담벽의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는 가옥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동화나라 아기자기한 迷路(미로)처럼 비스듬히 나있는 돌길을 거니면서 오스만풍의

전통기념품, 공예품, 자기 등을 파는 상점을 지나면서 터키 전통 디저트인 로쿰을 시식

해보고 과자에 떡을 가미한 딜라이트의 달콤한 맛이 여행자의 식욕을 당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가옥 과 샤프란 불루 전통 상점가

 

 

 

한적한 곳에서 마시는 샤프란(saffraan)차는 입안을 깔끔하게하고 빨간 수레에서 파는 깨를

뿌린 도넛모양의 길거리 음식 시미트도 홍차와 함께 들면 더욱 여행의 멋을 느끼게 한다.

 

 

아쉬움과 함께 샤프란 불루를 뒤로하고 이스탄불로의 4시간에 걸친 일정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키는 육상교통이 발달했는지 도로가 잘 정비되었고 대형 화물차들이 물류를

수송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감리를 잘해서인지 도로상태가 무척 양호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보아온 도로 정비(땜질)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가는 선박들과  마르마다해 인접한 주택가                                                              

                                    

                                                                             

도심으로 근접할수록 이곳도 교통량이 증가하며 늘어선 차량의 줄이 오가는 차선에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보스포러스해협을 통과해 흑해로 들어가려는 배들이 기다란 마르마다

나열되기 시작하는 풍경도 창가에 지나치는 생소로운 모습으로 비쳐지며 현대적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이스탄불시내로 접어드니 어느덧 석양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시내 깨끗이 차려진 한국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저녁을 마치고

이스탄불의 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는 도심의 차량 행렬

 

        

 

 

탁심광장신시가지의 중심지로 유럽식, 현대식 건축물이 늘어선

관광과 쇼핑의  터키의 명동거리.

광장에는 12m의 승전 공화국 기념비가 서있고 탁심은 원래 분배라는 의미라는데

옛 이곳에는 이스탄불 각지로 보내는 상수도시설이 있었다고 함.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터키인들이 불야성같은 거리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상점, 레스토랑,

호텔, 커피 숍, 기념품점 등이 즐비하게 나열된  '이스틱클랄거리의  2km정도트램이라는

빨간색 전차가 소리를 내며 오르내린다

 

 

 

                                    탁심과 튀넬사이의 이스틱클랄거리(2km)를 오가는 1칸짜리 빨간 트램전차

 

 

 

 

 

      도로 위를 달리는 전차 트램

      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오가는 도심의 언덕과 거리풍경.

                  

 

 

 

아마도 이곳을 찾은 이방인들은 한 번씩은 다 거쳐 간다는데 수많은 인파들 중에 자주 귀에

익은 말소리가 들리면 영락없이 세계의 여행지를 휩쓰는 한국인이고 이제 그 뒤를 이어

중국인들의 쭝얼거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몰려오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휘황한 찬란한 불빛 저 너머 장막을 친 듯이 검은 밤하늘에는 초생 달이 비스듬히 걸려있어

술탄왕국에서의 맞는 야밤에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기다리던 트램전차가 오지 않아 줄선

대열에서 이탈해 도보로 30여분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행인들이 낚시를 하는

 

골든혼의  '갈라타 브리지'(Galata Br.)대교

아래 이르게 되어 그곳의 늘어서있는 간이주점에서 생맥주와 고등어를

빵에 감싼 '고등어 케밥'을 곁들인 맛은

 

출렁되는 물결에 스쳐가는 바닷바람이 가슴에 스미며

시야에 어른거리는 불빛 마냥

 산란스러운 여행객의 마음을 이국의 정취에  스며들게한다.

 

 

 

 

 

 

 

 

 

 

이스탄불 골든혼을 가로지르는 갈라타 브리지(Galata Br)  아래 카페들. 생맥주와 서양

경음악에 맟추어 춤추는  젊음도 있고  빵속에 고등어를 싼  케밥이임.

윗 길에는 자동차와 트램이 지나가고 강태공들은 시간을 낚고있다.

 

 

 

                                                               고등어  케밥

 

                                  

                                                                      

            

                                                                                                                                      

이슬람권의 문화는 종교가 생활의 규율에 스며들어 엄격한 통제가 있어 술과 같은 종류를

금지하고 여성들은 두건같은 터번을 두르고 있는데 터키는 그래도 많이 개방되어

술도 장소에 따라 허락되고 여성들에게도 무척 개방된 듯 하나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하루에 5)경전 소리에 맞추어

기도하는 모습은 國敎는 아니지만 국민 90%가 믿는다는

 이슬람교의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해주는 도시로 마르마다’(Marmara)해에서

 보스포러스해협을 통과해 흑해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오래 전부터 동서양을 오가는 통상의 요충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번창하였으며 이로 인한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부침하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야기해

지속적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새로운 정착민과 서로 융화되는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발렌스 수도교 와 지하 물저장고(250 km떨어진 곳에서 당시 수도였던 콘스탄틴노플에 

                                            물공급하기위한 수로 길.1000여년의 세월동안 현재 800m 정도 남아있고

                                            교각 아래로 차량이 통행하고 있는데 로마대표적 건축물이라 함)

                                                

 

                                                       

기원전 7000~5000 년 사이에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으며

비잔티움’(Byzantim)은 이 도시의 첫 번째 이름이다. B.C. 667년 이곳에 정착한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이라 정하고 해상무역의 발달과 교통의 요지라는 지정학적인

주요한 위치로 번창하면서 도시로 발전하였다.

 

 

B.C. 6C 경에는 신흥 강대국 페르시아의 지배에 들어가고, B.C. 333년에는 동방으로

진출한 알렉산더대왕의 마케도니아, B.C. 146년에는 로마의 지배에 들어간다.

서기 330년 로마 콘스탄틴누스’1세에 의해 제국의 수도로

콘스탄틴노플이라 불리어지고

 

 

 

 

 

 

 

유럽지역 신시가지(베이어올루 Beyoglu)는 쇼핑,금융,호텔,

관공서,상점가 등이 밀집되어있는데 거의 모든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탁심광장과  528년 비잔틴제국의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이스탄불을 수호하기위해 세웠다는 갈라타 첨탑이 보인다. 

 

                  

 

 

 

        구시가지(베야줏. Beyazit)로 소피아 사원,불루모스크 등 유적들이 모여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음. 

 

 

 

                           

                                            구시가지 베야줏(Beyazit) . 멀리 사원들의 첨탑이 보임. 

 

 

 

 

            

                              

보스포러스해협 유람선 투어 와

탁심광장 초입의'아타투르크'기념비. 

 

                                쇼핑센타.호텔,관공서,상점가 등이 모여있는  

                                유럽지구 신시가지 너머 갈라타워 첨탑이 멀리 보임. 

 

                     . 

 

 

              

도시는 대로, 광장, 각종기념비와 건축물을 로마 분위기로 조성하여 신 로마라고

불리어 지기도 했다. 395년에는 로마는 동서로 분리되면서 콘스탄틴노플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된다.

 

 

1000 여 년간 로마문화를 지중해에 꽃피우고 동방과의 융화되면서

찬란한 비잔틴 문화를 이루던 제국의 수도는

영토 전쟁. 넓은 영토관리.이민족과의 갈등, 부상하는 강대국의 침입 등으로

 서서히 약화되면서 

수 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으로 약탈되고 파괴되고,

 1453콘스탄틴노플은 동방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하면서 

수 천 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오랫동안 영욕을 누리다가 1922년 제국의 멸망과 함께

1925년 신생 터키공화국의 성립으로 앙카라에 수도를 넘겨주고

금융,무역,관광, 상업 등의 터키 최대도시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

 

 

 

 

  동로마로    천도

 

AD324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제국의 內亂에서 정적들을 쳐부수고 권력투쟁에 승리하나 그 과정서

 장인 '막시미아누스'황제. 처남 '막센티우스'정제. 매부 '리키리우스'황제 등을 차례로 죽였다. 그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는 제위를 위해 군사적 재능이 월등한 장남 '크리스푸스'를 계모황후와 밀통했다는 죄목으로 죽였다.

 

이 모든 사실을 아는 로마인의 따거운 눈도 피할겸

동방을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세우기로 한다.

'콘스탄틴누스'1세의 아들인 '콘스탄틴누스' 대제 통치기간 중 있었던 최대사건은 개종(改宗)과 천도(遷都)로서

기독교 공인과 제국의 수도를 옮긴 것이었다. 고대로 부터 외래의 신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독자적으로 수많은 신들을

받들어온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 다신교의 전통과 수많은 신전이 산재한 도시였다.

'콘스탄틴누스' 대제는 이 오래된 도시를 벗어나 기독교도를 위한 도시를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고자 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요충지 '보스포로스'해협 연안이며 '그리스'의 옛 도시 '비잔티움'을 제국의 수도로 정하게 된다.

324착공~3305.11일 준공. 6년 공사 끝에 완공했다. 건설한 새 수도는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렀다.

Constantinople은 세모꼴의 해양 도시로 군사적으로 천연의 요새였다.

 

동쪽은 '마르마라' 해로 북풍과 센 조류가 흘러 전함의 접근이 어렵고

서쪽은 황금각 灣(골드혼)에 접해 한 만 육지로 이어지는 위치다.

실제로 '골드혼'에 석양 빛은 출렁이는 바닷물에 어려

황금색의 노을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명동거리라는 탁심(Taksim Square)광장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기독교를 흡수한 로마 문화와 '모슬렘' 문화가 융화된 '이스탄불'은 원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 였다.

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 사후 제국은 양분되어 서마는 큰아들 '아르카리우스'가 

로마는 작은 아들'호노리우스'가 통치하게 되는데 서로마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하고도(A.D.476년)  동로마는 1000 여 년간 지속되며 정치와 경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는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속된 동로마제국(610년~1453년)을 

'비잔틴'(Byzantine Empire)제국 이라하며 당시 문화를 '비잔틴'문화라 한다. 

 

로마 '콘스탄틴누스'황제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비잔티움'(이스탄불)으로 천도하고 비잔티움'은 그의 이름을

 '콘스탄틴노플'이라고 불리어 지는데 

 

로마법,정치,문화 등 로마적 요소가 이곳에 스며들어

 '유스티니아누스'대제 시절에는 로마의 부흥을 외치며

제국의 가장 번성한 시기를 맞는다.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틴누스 11세

        출처- http:// www.chain.org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제국의 메흐메트 2세                                                                                           출처-http:// www.bilkent.edu.tr/~history 

                 



 

                                                                                                                          

                                                                            

그러나 종교적 면에서 로마교황과 동로마 황제간의 정통성문제로 대립하게된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예수님 성상을 내세워 선교하는 로마교황과 성상숭배 금지를 숭상하는

 동로마간의 분쟁이 이는데  '프랑크'왕국의 '카를로스'대제가 로마교황에 즉위하자 분쟁은 격화되어  드디어

'로마카돌릭교'와 동로마는 '그리정교'로 분리된다.

 

 

'비잔틴제국'은 로마의 서구 기독문화와 그리스적 색체를 가미하며 융화되어 '슬라브'족과의

관계에서도 '러시아'정교(기독교)전파시키고 '이슬람'문화와 동화되어간다.

 

 

 

'비잔틴'의 사회구조는 서유럽과는 매우 이질적이며 12C까지 지중해교역의 중심지로서 중세의

 국제무대에서 아랍권과 경쟁하며가장 막강한 세력을 유지하였고 지중해 경제와 종교,학문,문화 등의 중심지였다.

서로마가 멸망하고도 동로마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요인은  지리적인  요새화, 산업이 골고루 발전하였

,인구가 도시에  밀집되어 있었다는 요인 등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제국의 멸망은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점차 지나치게 광범위화 되는 영토와 이로인한 여러종족들과의

갈등,종교적 분열,드넓은 변방의 잦은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제국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신생 강대국들의 잦은침입으로 쇠잔해져 가게되며 사라져 가게된다.

 


 

                   십자군 전쟁( The Crusades , 1095년~1456년)

  

                                                    

 

 

 

종교전쟁인 십자군 전쟁은 제국을 거의 빈사상태에 이르게한다.

11C 말에서 15C  사이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위해  전후 8차례에 걸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간의 종교전쟁과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해전으로 서방세계인 '그리스'와  충돌한  동방의 강력한 중앙전제국가인

사산조 페르시아(이란,이라크), 알렉산더대왕의 마케도니아, 로마의  뒤를 이어

동방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메트' 2세의 공격으

1453년 화려한 영욕의 자취를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약해질때로 쇄약해진 동로마제국은

당시 7,000명 정도의 주둔군 병력으로 수 백척의 함선과 신형 거포를 앞세운  20만의 대군의  '오스만 투르크' 군을 맞아

서방 세계의 지원군을 기다리며 50 여일 간 고군분투하며 항쟁하였으나,

 

'골드혼'으로 침입한 '오스만 투르크' 대군에 의해 '콘스탄틴누스'황제를 비롯한 많은병사가 전사하고

난공불락이라는 성채는 허무러지며  '비잔틴'제국은 멸망에 길에 이르게되고.

그뒤를 이어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로서 찬란한 '이스람' 문화를 꽃피우게된다.

 

 

'비잔틴' 건축양식은 '모자이크' 장식과 '돔'형식 건축물의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비잔틴' 제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와 아랍'및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세력으로 부터 서 유럽 기독교 세계를

보호 해주었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 대교(길이 30km,너비 550~3,000m,수심 60~125m)는

해협입구 골든 혼 부근에  제1교가 있고 상류측에 체2교(파티 술탄 메흐메트 대교)가 있는데 증가하는 교통량 때문에

                       제3대교가 우리나라 건설업체(SK건설,현대건설 공동 시공)도 참여하여  개통되어진다고 한다.)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 Museum)은

보스포러스해협을 내려다 보는 아크로폴언덕에 자리한 16C~17C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오스만 터키제국의 400년간 궁전으로 사용된 오스만 건축양식의 궁전이다.

 

1453년술탄 메메트콘스탄틴노플을 점령한 후 건설하였다.

중국의 자금성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제국의 24명의

술탄(황제)와 왕족들 하인들이 거주하였고 사절들을 맞는

의전실, 숙소, 창고, 무기고, 기도실, 선물보관실,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톱카프궁전 정문과 내부 정원     

                                      

 

 

 

 

마르마다해에서 바라 본 톱카프 궁전(산 언덕)                

자료 :이스탄불 관광guide

 

                                      

                  

 

                          

도시와 떨어져 5Km 성벽으로 둘러쌓인 내성형태로 각각

특색있는 4개의   정원을 갖추고 있다.

남아있는 궁전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넓은 공간을 갖추었으나 1856

돌마바흐체궁전으로 이전된 후 점차 잊혀져 가고 1924년 이래로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보스포러스 해안가의 돌마바흐체 궁전

 

                     

                                                   

 

                                                                                                                                               

현재 영빈관으로 사용 중인 돌마바흐체 궁전은 바다를 메워 보스포러스해안을 따라 600m 길이로

13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처음에는 목조 건물로 지어졌으며 1814년 대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1856년 석조건물인 대리석으로 재건축 되었으며

                                       14t의 순금과 40t의 은이 사용되었다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을 본따 지어졌으며 19C 유럽에서 유행하던 로코코

건축양식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건축자재를 사용 색다른 양식이 가미되었다.

 

 

 

 

 

 

 

돌마흐체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궁전 연회장 천장에는 영국 빅토리아여왕으로부터 기증받은 750개의 전구가 장식된

4.5t의 대형 샹들리에가 길게 드리워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國父 케말 아타투르크대통령이 생전에 사용했으며 그의 방에는 95분에

멈춘 시간이 1938. 11.10. 생을 마감한 순간을 가리키고 있다.

 

 

 

 

Hippodrome(히포드럼)광장에  서있는 오벨리스크

   

                                                               셀펜타인 기둥

     

                                                                    독일 분수대

  

 

 

 

  

 

'오벨리스크'는 고대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운 단일 암석으로 이루어진  네모진 거대한

사각기둥으로 히포드럼 광장에 남아있는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투르모스'3세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히타이트군을 격파한 메소포타미아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룩소 카르낙' 신전에 세원진것이다.

 

이를 가져와 B.C.390년 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 에 의해

 '히포드럼' 광쟝에 세워졌다.무게 300t,높이 26m,로 대리석 밑바침에는

전차경기를 관전하는 황제, 춤추는 무희 등

당시 귀족들의 생활상이 표현 되어있다.

                              

그리스 델포이 아폴로신전에서 가져온 3마리의 뱀이 뒤엉켜 올라가는 청동 뱀상은

497년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원진것을  콘스탄틴누스 1세때  가져온것으로 

머리부분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고 아랫부분만 남았는데 셀펜타인(Serpentim)기둥이라 한다.

 

 

 

 

 

마르마다 해안가의 술탄 마흐멧 사원

  

 

 

 

술탄 마흐멧 모스크는

6개의 첨탑을 가진 최초의 이슬람사원으로 오스만양식의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다. 16C~17C 20,000여 개의 세라믹타일로 장식되었는데 중앙 돔,

반원형 돔, 아치들은 모두 세밀한 수작업에 의해 장식되었고 돔 천장의 260여 개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빛에 의해 타일에 비치는 푸른 빛으로

불루모스크라고도 한다.

 

성 소피아성당에 대한 이슬람문화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해 술탄 마호메드’ 1세에 의해

1616년 건축 되었다. 이슬람 전통 양식으로 높이 43m, 지름 27.5m, 대형 돔은 4개의

대형 기둥이 떠받치고 있고 6개의 첨탑(미나레르), 4개의 중간 돔, 30개의 작은 돔으로

이루어져 있는 터키인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술탄 마흐멧 사원은 높이 43m,직경 27.5m 거대한 중앙돔을  4개의  중간돔과  30개의

작은 돔이 받히고 있으며 주위에 6개의 미나레(minaret)가 보좌하고 있다.     출처: 이스탄불 관광guide.

   

 

 

 

                     

성 소피아사원( 아야소피아/Ayasofya Muzesi)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 때

서기 532~5375년 간에 걸쳐 비잔틴 양식으로 건립되었으며

현재도 계속하여 복구 중이고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는

이스탄불상징이다.

원래 명칭은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이며 그리스정교의 총 본산이다.

 

비잔틴제국(동로마:기독교 정교)의 성당 양식과 오스만제국(이슬람양식)이 공존하는

로마 성 베드로대성당이 건립되기 전 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이었다.

동로마(비잔틴 제국)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될 때 까지(1453) 그리스 정교의

총 본산이었으며 그 후 이슬람모스크사원으로 개조되면서 사용되었다.

 

 

 

 

 

                                       소피아 사원 내부와 대형 돔

천장의 장식중 가장자리 4곳의 천사의 얼굴 모습이 훼손되있음.

 

                                     

                                            

                                   

 

                   

                                     성 소피아 사원과 내부 천장에 예수를 안고있는 성모 마리아 상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인류구원울 위해 예수에 

                      탄원하고 있는 모습.(옆은 본래 모습).

 

 

 

모나리자와 같이 예수의 눈빛이 보는 이에 따라 다닌다는데 오스만 제국의 이스람교도들이 그리스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회칠을 해대은 탓에 복원 작업 중 그림들이 떨어져 나갔다 한다..

 

                                      

       

  예수(중앙) 옆에 

 콘스탄틴누수9세인 모노마호스 황제와  조에와 왕후.(성금주머니와 봉납명세를 들고 있다.) 

         

 

 

 

 

 

 

  가로 80m 세로 70m의 넓은 공간에 직경 33m의 거대한 돔 지붕을 50m 높이의 공간에

하나의 기둥도 없이 얹혀 1500년 간 지탱해온 건축 기술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손색이 없으며 935년 이후로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전차(트램)가 도심의 주요한 교통수단인 이스탄불 거리 

 

                     

 

 

그랜드 바자르 시장은

지붕이 얹혀 있다는 시장이라는 터키 최대 전통 재래 시장이다.

1461년부터 500여 년간 오랜 역사를 지닌 6만 여평의 면적에 18개의 출입구 65개의

迷路(미로)같은 골목을 따라 5000여 개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그랜드 바자르 전통 재래시장                    

                                                                              

 

이곳에서는 지역특산물, 카펫, 가죽제품, 각 종 수공예품, 보석류, 골동품 등의 토산품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호기심과 관심으로 왕래하는 많은 인파를 맞이하고 있다.

 

 

 

 

                여행을 같이한 각지에서 모인 일행들

              

 

            

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밝아오

는 이스탄불의 아침 

                                                

 

 

                         

89일의 터키 여정을 아쉬움으로 마무리하고 이스탄불공항으로 향해 그 간

친절하고 풍부한 상식으로 여행을 도와준 안내인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여러 곳에서

모인 일행 분들과 함께 귀국 길에 올랐다.

 

특이하게 2번의 검색대를 거치고 현대적인 공항 시설

이지만 붐비는 이스탄불공항을 이륙해 두바이를 거쳐

귀국 길에 올라 짧다며 짧고 길다면  긴 여정 속에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세기며

 긴 잠에서 깨어나니 어느덧 고국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여행은 숨차게 달려온 생활 속에서

다시 한 번 뒤 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지워지지않는 추억을 쌓는가 보다..

 

 

Music : Kalinifta(가슴이 뜨거운 사람) / Nicos 

 

자료: daum(뮤직,이미지,카페,지식),위키,브리태니카(백과사전),터키관광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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