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랑포구에 역사공원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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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이야기

2019. 5. 11.

 

 

 

미쓰트롯- 경연 실황                  송가인(한많은 대동강)-Youtube

 

 

 

 

 

 

▣ 고랑포구에 역사공원이 문열다.(2019.5.10.)

 

 

계절이 넘어가는 5월 초순이건만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짙게드리운 이곳 연천 고랑포구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연천군(시설관리공단)이 수년간에 걸쳐 사업비 11,200백만원(국비 5,600만, 군비 5,600만) 들여, 면적 46,521㎡(14,070평)에 지하1층,지상2층,연면적 2,868㎡(868평)의 규모로 문화 및 집회시설을 갖춘 역사공원 개소식을 관내 기관장,지역주민,방문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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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닷길에서 내륙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옛 부터 수운(水運)통한 중부 내륙지방의 물자교류로 번성하였던 나룻터에이르게 되는데 이곳이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구이다.

 

 

 

 

 

 

 

 

 

옛부터 내륙 깊숙히 위치하였기에  파주,연천평원의 풍부한 농산물과 철원 고원 등 중부내륙지방의 임산물 등

특산물들이 물길을 따라 나가고, 외부에서 조기,새우 젖, 젖갈류 등 서해안 산물인 어류와,소금 등, 생필품 등이

중부내륙 지방으로 들어가기위해 이곳에서 하역되어 북적거리던 저잣거리 였다.

 

당시에 드나들던 상인들을 대상으로 여관,국밥집,잡화점,주점,쌀가게,우체국,우시장 등 특히 유명했던

화신백화점 분점도 함께 촘촘히 들어섯던 이곳에 사라진 그당시의 모습들을 재현하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보고자 그 당시 모습들을 재현하고있다. 

 

 

 

 

 

 

한반도의 중원에서 발원한 임진강의 풍부한 물량을 이용한 뱃길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 C 즈음이다.  임진강 뱃길의 종점이였던 고랑포구는 경기북부지역 포구의 중심이었다.

한강지류의 마포포구,대동강의 평양포구와 더불어 육상교통이 여의치 않았던 당시에 수운을 이용한 뱃길은

지역의 교류와 함께 상업의 발전을 촉진 하였다.

 

 

 

 

 

 

연천과 파주를 잇는 고랑포구는 임진나루와 함께 한반도의 남과 북을 잇는 교통로로서 옛 부터 한양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에 이르는 지름 길이었다.북에서 유유히 흘러온 강물이 이곳에 와서 휘감겨 흐르매 강폭과

수심이 얕아져 도강할 수 있는 여울목이어서 많은 사연을 갖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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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포구는 1887년(고종24년)부터 쌀,콩,등의 곡물과 수산물 등의 교류가 1890년 개항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증가하여

포구가 활기를 띄면서 산지와 항구를 연계하는 중간 집결지로서의 역할이 거듭나면서 발전하게된다.  그러나

1930년대 중부내륙지방에 문물교류로 번영과 영화를 누리던 이곳은 이제는 남북 분단과

함께 물길도 끊기고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다.

 

 

 

 

 

♠역사공원내에는 고랑포구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새생하게 구현,재현하였다. 가상(VR),증강(AR)현실을 통해 실감나는 역사 및 안보 체험이 가능하며 어린이들의 놀이공간과 다목적공간(식사장소 포함)및 세미나 실로 이루어져 있다. 총 4개의 안내 및 관람구역으로 구성되었으며, 관람은 ①만남의 찰나  ②삶의 찰나

③역사와 문화의 찰나 ④오감의 찰나 로 이루어져 있다.

 

 

 

 

 

 

 

 

 

 

 

 

 

 

♣레클리스는 6.25 당시 연천 전투에서 활약한 미해병대 소속 군마이다.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한국 중부지역 전투에서

탄약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미해병대는 경주마 '아침해'를 군마로 투입한다. 전장에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Reckless)임무를 수행한

'아침해'에게 '레클리스'란 이름을 지어 주고 정전협정 후 미국으로 데려가 1959년에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하사관으로

진급시킨 후 훈장을 수여했다. 역사박물관 전면에 서있는 기마상이 미국에서 공수해온 '레클리스'동상이다.  

 

 

 

 

 

 

삼국시대에는 남쪽의 백제,신라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곳까지 내려온 고구려와 국경을 이루며 격전을 보였던 곳이였으며

6.25당시에는 국군 제1사단이 새벽에 북한군 1사단과 6사단의 기습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열세한 전력으로 북한군 2개사단을 6.25일 부터 6.28일까지 4 일 동안 임진강 북쪽에서 저지함으로써 우방국의

참전할 때까지 북한군 주력군 탱크부대를 육탄으로 저지하면서 임진강의 양안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강물을

핏빛으로 물들게 하였다. 

 

 

 

 

 

 

 

또한 1968.1.17. 평양에서 남파된 김신조외 30명의 무장공비가 얼어붙은 고랑포구를 건너 침투한 곳이기도 하다.

1968. 1.16. 밤 10시 경 황해북도 연산군 소재 북한군 124부대를 떠난  김신조일행은 1.17. 20.00경 북방한계선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3시간만에 남방한계선의 이지역에 도착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을 도하하고 파주 장파리를 거쳐 파평산과 북노고산의 앵무봉과 남노고산의 비봉을 거쳐,1.17. 23시, 상상치 못할 행군속도로 침투를 시작하여 1.21. 서울에 잠입한다.

원래는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에 집결하여 청와대를 공격하려 했으나 이들은 눈덮인 산 허리를 타면서 그만 그 뒷편

북한산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하산하여 청운동 세검정 길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치열한 전투 끝에 일망타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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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침투로를 안내하는 김신조 목사(출처: chosun.com)

 

 

 

                                                      연천경순왕릉(신라 56대 마지막 왕 : 재위 927~935 )                                                                                                                  

부근 성거산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살아 생전에 그리도 보고싶던 옛 고향 신라 경주를 바라보며

흘러가는 임진강물에 애타는 심정을 흘러보내며 잠들고 있다. 그는 후백제 견훤의 포악함에 치를 떨며 나약해져가는 국력을

어찌하지못하고 성군으로 알려진 고려 왕건에 나라를 바치고 그의 딸 낙랑공주와 이곳에서 오랜 세월 살다가 영면하게 된다.

 

 

 

 

 

 

                        

 

 

 

 

한반도의 중심인 이곳은 옛부터 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이 이지역에서 패권을 갖고자 서로 격전을 보였던 곳으로 지금도

남북이 나뉘어져 있는 역사적인 분쟁의 자취가 드리어져 있다.

최근에는 점차 남북의 교류와 함께 상호의 벽을 점차 낯추어 가는 추세에 이지역에도 그간의 북방지역으로서의 기피와

더딘 발전이 점차 남북의 상호 교류와  관심과 함께 많은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월 -정기 휴관일(10시~17시)          

 

연천 들녁

 

 

 

고랑포구 역사공원과 레클리스(Reckless) 군마(軍馬)

                                                                                                      

 

 

   출처 : 연천군 홍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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