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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속의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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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인과 성화

2010. 7. 16.

성화속의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k) 2

신분: 복음사가

활동연도: +74년경

같은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축일 4월 25일>

 

 

브론치노 / 성 마르코

Agnolo Bronzino, St Mark, c. 1525, Oil on wood

Cappella Capponi, Santa Felicita, Florence

 

로렌초 디 비치 / 성 마르코

Lorenzo di Bicci, St Mark, 1398, Tempera on wood

Museo dell'Opera del Duomo, Florence

 

카스타뇨 / 성 마르코

Andrea del Castagno, St Mark, 1442, Fresco, height of figure 176 cm

San Zaccaria, Venice

 

카르파초 / 성 마르코의 사자

Vittore Carpaccio, The Lion of St Mark, 1516, Tempera on canvas, 130 x 368 cm

Palazzo Ducale, Venice

 

프라 안젤리코 / 리나이올리 감실

Fra Angelico, Linaioli Tabernacle (shutters closed) (왼쪽),

 c. 1433, Tempera on panel, 260x330cm

Museo di San Marco, Florence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 성 마르코 복음사가

Domenico Ghirlandaio, St Mark the Evangelist,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파올로 베로네세 / 성 마르코 복음사가

Paolo Veronese, St Mark, 1555, Oil on canvas, 85x200cm

San Sebastiano, Venice

 

베첼리오 티치아노 / 성 마르코

Vecellio Tiziano, St Mark, Oil on oak panel

Santa Maria della Salute, Venice

 

마르코 복음사가 / 이콘 연구소 회원전, 고정민 루도비꼬 작

 

복음사가 성 마르코 / 이콘, 목판에 템페라, 지름 40cm, 장긍선 신부 작

 

파올로 베네치아노 / 성 마르코 유해의 재발견

Paolo Veneziano, Rediscovery of the Relics of St Mark

1345, Tempera on wood

Basilica di San Marco, Venice

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과 이동

 

중세의 베네치아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도시국가였으나, 그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안가 사라센의 통치자가 알렉산드리아에 거창한 이슬람 성전을 짓도록 명했다. 그는 물자가 모자라자, 이집트에 있는 성당의 기둥을 뽑아 쓰도록 하였다. 그 성당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보관한 곳으로,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성인의 유해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이집트에서 성인의 유해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에 그 유해를 당장 옮겨야 했던 것이다. 이때 성당의 지하묘지에서 성인의 유해를 찾는데, 마르코 성인이 현시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고 한다.

 

성인의 유해를 옮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숙명적인 일이기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우선 이집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성인의 유해를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위장하고, 또 세관원들의 눈을 속이고자 유해의 가슴 부분에 사라센 사람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혐오하는 햄과 돼지고기를 넣었다. 유해의 가슴을 열어젖힌 항구 세관원은 그 속의 햄과 돼지고기를 보고 혐오감에 치를 떨며 얼굴을 돌리고는 그 시신을 당장 배에 실을 것을 명했다. 이렇게 해서 성인의 유해는 별 탈 없이 배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향해 무난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서기 827년의 일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경향잡지 2006년 2월호에서 발췌]

 

파올로 베네치아노 / 성 마르코 생애의 장면

Paolo Veneziano, A Scene from the Life of St Mark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성인의 유해를 옮기는 도중

배에 나타나서 폭풍을 잠재우는 성 마르코)

1345, Tempera on wood, 58 x 42 cm

Basilica di San Marco, Venice

 

미켈레 디 마테오 / 성 마르코

Michele di Matteo, St Mark, c. 1427, Tempera on panel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람베르티 / 축복하는 성 마르코

Niccolo di Piero Lamberti, St Mark Blessing, c. 1410, Stone

Basilica di San Marco, Venice

 

도나텔로 / 성 마르코

Donatello, St Mark, 1411, Marble, height 236 cm

Orsanmichele, Florence

 

도나텔로 / 복음사가 마르코

Donatello, Evangelist Mark, 1428-43, Polychrome stucco, diameter: 215 cm

Old Sacristy, 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마태오는 그의 복음이 예수님의 인간성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어 사람의 얼굴로 나타낸다(편집자 주 : 세리 출신이었던 마태오 사도는 은행원과 회계업무자의 수호성인으로 보통 장부를 펼쳐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그리고 마르코는 그리스도의 품위를 강조했고, 복음의 서두가 사자의 울음처럼 장중하게 시작되므로 사자로 나타냈다.

또한 황소는 주로 제사의 제물로 쓰이는데 루카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대신 속죄하는 제사라고 묘사했기 때문에 황소로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기록했기 때문에 독수리로 나타냈다.

 

 

복음사가 마르코 / 25*32cm, 2006년, 이영희 작

 

복음사가 마르코 / 15*20cm, 2006년, 박에밀 작

 

마르코 / 이홍구 스테파노 작

 

사가 마르코 / 김정자 마리스텔라 작

 


 

 

 

 

 

 

      

 


 

축일 4월 25일 성 마르코(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