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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12월 4일 성녀 바르바라(Barb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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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2012. 3. 29.

축일 12월 4일 성녀 바르바라(Barbara)

ST. BARBARA

St. Barbara of Nicomedia

Santa Barbara Martire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306년?

같은이름: 발바라

 

 

 

성녀 바르바라(Barbara)

 

성녀 바르바라는 중세 시대에 가장 인기 있던 14명의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대중적인 성녀이다.

그녀의 출생과 생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이교도인 디오스코루스(Dioscorus)의 딸로서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성녀의 부친은 수많은 청혼자들을 물리치고 세상에 의해 딸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은 탑 속에 그녀를 가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은 성녀 바르바라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고는 격분한 나머지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녀는 다행히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기적적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하였다.

그녀는 숨어 지내면서 일꾼에게 은신처에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창문을 만들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은신처 또한 발각되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도착하기 전 기적적으로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결국 붙잡혀 아버지에 의해 재판관 막시미누스 다자(Maximinus Daja)에게 넘겨져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배교하라는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여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때 아버지 디오스코루스가 직접 성녀 바르바라를 참수했는데,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녀는 306년경에 순교한 것으로 여겨지며, 순교 장소는 이집트, 니코메디아(Nicomedia),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토스카나(Toscana), 로마(Roma) 등 여러 곳으로 전해져 정확하지 않다.

 

성녀 바르바라는 번개나 광산과 포탄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이었다.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번개에 맞아 죽음을 당한 것에 근거하며, 이러한 공경이 더욱 확산되어 후에 성녀 바르바라는 영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의 포병대의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또한 15-16세기에는 플랑드르의 작가와 이탈리아의 많은 건축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성녀 바르바라는 포병, 건축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바르바라의 상징물은 탑이며, 그녀의 상본에는 왕관, 종려가지와 칼, 탑과 공작, 그리고 그녀의 행복한 죽음을 상징하는 성작이 함께 그려져 있다.

 


 

  

[icon] ST. BARBARA. 15c ('ICONES DE TVER'에서)

 

중세 시대에 가장 인기 있던 성인들 중의 한 분은 동정, 순교자였던 바르바라임에는 추후도 의심하지 않는다.

유력한 어느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디오스쿠루스의 딸로서 뛰어난 미모를 지녔는데, 그의 부친은 수많은 청혼자들의 기를 꺾기 위하여 그녀를 탑 속에 가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은 그녀가 크리스챤이 된 것을 발견하자, 그녀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으나,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여 기적적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곧 다시 붙잡힌 그녀가 이번에는 재판관 앞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였다.

 

이러한 벌로도 만족하지 못한 그의 부친은 그녀를 산으로 끌고 가서 죽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끝내 죽임을 당하였다.

그녀의 순교자는 안티오키아, 헬리오폴리스, 니코메디아 그리고 로마 등, 서로 엇갈린다.

바르바라는 건축가와 건축업자의 수호성인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로마 박해 3백년간의 많고 많은 순교자 중 성녀 바르바라 같은 분은 가장 저명한 분이다.

아버지는 니코메디아 태생으로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나, 딸 바르바라를 진정 사랑했으며 그같이 영특하고 아름다운 딸을 가졌음을 다시없는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 딸이 좋지 못한 사람과 가까이함을 극히 우려했고, 더욱이 가톨릭 신자와도 교제하지 못하도록 견고한 탑을 마련하고 훌륭한 거실을 그 안에 차려 거처하게 했다.

 

하느님께서는 바르바라를 가련히 여기셨음인지, 그녀는 아버지가 믿는 교를 여러모로 살펴보는 중에 우상교의 공허함을 깨닫게 되었고, 진리와 참신을 알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되었다.

아버지가 여행으로 오랫동안 부재중인 틈을 타서 바르바라는 하느님의 배려하심으로 가톨릭신자를 사귀게 되어 그에게서 교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교리를 공부해 세례를 받은 후부터는 흐뭇한 기쁨을 느꼈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딸의 일변한 태도를 알아차리고 부재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바르바라는 그리스도교를 믿게 된 후부터 말할 수 없는 만족과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했다. 뜻하지 않은 이 말에 그는 어쩔 줄 모르게 화가 나서, 그토록 사랑하던 딸을 마구 매질하여 갖은 고통을 주었다. 그리고는 빈사상태에 바진 바르바라를 결박해 끌고 법정에 나가 아버지 자신이 딸을 고소했던 것이다.

 

어린 처녀의 몸에 난 그 같은 참혹한 상처를 보고 법관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부드러운 말로 바르바라에게 배교할 것을 강요했다.

바르바라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자 법관도 소리를 높여 죽인다고 위협했다.

바르바라는 죽음이 두려워 신앙을 버릴 만큼 의지가 나약한 인간은 아니었다.

명을 거부한 바르바라를 괘씸하게 여긴 법관은 무서운 고문을 가했다.

갈퀴 같은 것으로 온몸을 찢게 하고 마침내는 횃불로 양쪽 배를 태워 기절케 한 다음 감옥에 처넣었다.

 

그 날 밤의 일이다. 탈혼 중에 예수께서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로 위로를 해 주시는데, 기이하게도 온몸의 상처가 말끔히 없어졌다.

이튿날 바르바라를 다시 법정에 호출한 법관은 이 기적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했으나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전날보다 더 심한 고문을 하며 그녀를 괴롭혔다.

온갖 고문을 더 해도 바르바라의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끝내는 참수형의 선고가 내려졌다. 자기 딸을 손수 법정에 끌고 나간 무자비한 아버지는 그 고문 현장에 참석해 법관을 충동할 뿐 아니라, 사형이 선고되자 자신이 형리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 딸의 목을 쳐서 떨어뜨렸으니 참으로 짐승만도 못한 자의 천인 공로할 소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듯 악독한 짓에 어찌 하늘이 무심하였으랴! 처형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마른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땅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와 더불어 그 아버지는 벼락에 맞아 즉사했다. 이것은 240년에 있었던 사실이다.

 

바르바라는 죽기까지 신앙을 굳게 지켜 나갔기 때문에 임종자의 주보성인으로 존경을 받는다. 또 그 용감한 견인지덕 때문에 군인의 주보도 된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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