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채영 시인 / 베네치아

댓글 0

◇ 시인과 시(현대)

2022. 5. 15.

이채영 시인 / 베네치아

 

 

어디 한 곳 발붙일 곳이 없어

모래에 나무 기둥을 박아 한 뼘 한 뼘 땅을 넓힌다

때론 무너지며 흐르더라도

수백 개의 다리를 세우고 오고 가야만 한다

 

혼자인 듯 하나인 베네치아는

땅이 귀해 심을 수 없는 꽃들을 수상버스 가득 키우고 있다

곤돌라 사공의 노래가 훑고 있는 희극은 느릿느릿 퇴색되고

비극에는 이끼가 낀다

 

산마르코 광장 카페의 긴 머리 여가수가 열창을 한다

서러워 마세요

더 이상 절망은 없을 거예요

이제 맘껏 날아보세요

 

젤라또 녹아내리듯 그렇게

이 공포에서 저 불안으로 이끌고 돌아다녀온 몸이 녹아내린다

바다 위에 있으므로 경계 없는 소통이

잃을 게 없으므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날개가 되어 달콤하게 날아간다

 

극복하여 찬란한 고난을 되비치는 석양 속에

수로를 오고 가는 사람들은 하나 둘 열매를 맺고

어디로 향하든지 바라보는 것들에게 덧창을 닫고 있는 이들은

머지않아 베네치아가 다시 부를 것이다.

 

 


 

이채영 시인

1958년 경기도 안양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엽총을 어디에 두었더라?』 (한국문연,201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