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신비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고현혜 시인 / 검은 옷을 찾으며 외 1편

댓글 0

◇ 시인과 시(현대)

2022. 7. 2.

고현혜 시인 / 검은 옷을 찾으며

 

 

아버지 장례식에 가려고

검은 옷을 찾는다.

 

어렸을 적부터

언니와 내게

손수 옷을 사 입히셨던 아버지.

 

나, 열 몇 살 땐가.

어금니 아프다고 울면서

아버지 일하던 세탁소로 전화하자

딜리버리 도중 핫 핑크 미니스커트 사 오셔서

이젠 안 아프지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그 핑크 미니를 입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장례식엔 꼭 가야 하나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아버지가 끝까지 살아 계실 것 같아.

 

어제 관 속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 꼭 주무시는 것 같았어.

 

고통

여기저기 퍼지던 암 덩어리만 죽고

아버지만 다시 사시면 안 될까.

 

절대 만지지 말라는

장의사 몰래

아버지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얼음보다도 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기적을 부르짖으려다

그냥 아빠...... 아빠만

부르다가 왔지.

 

무엇을 입나

차라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처럼

소복을 입고

곡이나 실컷 해봤으면

 

검은 옷은 왠지

슬픔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아버지 장례식에

무엇을 입나

나 망설이며,

옷장 속에서

멍하니

서 있다.

 

 


 

 

고현혜 시인 / 아직도 그대 안에 있는 전쟁

 

 

오늘 밤

내 혀가

은하수를 자른다

검은 뼈 발사되고

울부짖는 첼로 표류된다

 

내 입 열면

천 개 해골 침묵하는

망망한 암흑

살아 올 수 없는

타클라마칸

사막 묘지로 보내진다

 

전쟁을 말 한 적이 없는

눈의 불꽃

모든 비밀은

그곳에서 다

타버린다

내 침묵은 너의 입

해골 가득한

기억의 집

내 턱

어둠의 경첩

별빛

더러운 흙

캡슐의 황폐화

 

백인 남자가 말을 한다

 

아무도 너의 소리를 듣지 못해

아무도 널 찾을 수가 없어

입을 열어

 

내가 말한다

 

내 혀 자르고 불을 질러봐

이 비밀 태울 수 있는지

내겐 다른 혀가 있어

내 눈에 내 뼈에 담은

이전쟁의 모든것을

말할거야

 

ㅡ『한국동서문학』(2019, 봄호)

 

 


 

고현혜 (Tanya Ko) 시인

1964년생. 1993년 《한국시》로 등단. 바이올라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안티오크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 시집으로 영한시집 『일점 오세』,  영시집 『Yellow Flowers on a Rainy Day』와 시집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가 있음. 영시 「Comfort Woman" Women's National Book Association」가 2015년 영예의 시 선정됨. 제1회 윤동주미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현재 미국 거주.